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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의 여성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옛날 클레오파트라가 취했을 자세와 똑같은 자세로 반쯤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은 지루함과 짜증이 가득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성격이 예민한 젊은 미인이라고만 여길 모습이었다.

         

       하지만 겉이 곧 속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 법.

       그녀는 외모와는 달리 나치 독일 시절부터 살아왔으며, 나이와 고강한 무력 때문에 다른 마녀들에게선 ‘대마녀’라는 칭호를 얻은 여인이었다.

         

       대마녀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

         

       그녀가 러시아에 온 것이다.

         

       오딜리아는 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짜증이 솟았는지 고개를 돌려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에는 엘라가 있었다.

         

       그녀는 바라보기만 해도 짜증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이 춥고 야만적인 러시아 놈들 땅에 내 발로 걸어올 줄은 몰랐구나. 이 나이에 참 색다른 경험을 하고, 기분이 아~주 좋구나. 응?”

         

       퉁명스럽고 짜증이 가득 담긴 말투.

         

       “화장품을 제대로 팔아먹기도 힘드니 사업 관련 일을 할 수도 없고, 어딜 가나 냄새나는 러시아 놈들이 가득하니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야만적인 놈들이 넘쳐나니 관광하기도 힘들고. 게다가 러시아 놈들이 만드는 음식은 쓸데없이 칼로리는 높아서 몸매를 가꾸는데 전혀 도움이 안 돼. 얘, 이게 무슨 뜻인지나 아니?”

         

       오딜리아는 엘라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쉴 새 없이 폭언을 내뱉었다.

         

       “어디서 용한 주술사와 연이 닿은 것은 잘한 일이야. 어쩌면 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그러면 뭐하니. 주술사를 설득해서 잡아두기나 할 것이지, 뭐?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엘-라. 엘라 블루 조이사이트 빈-터! 클 대로 커서 조금은 머리가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는데, 내 크나큰 착각이었나 보구나! 이 대마녀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의 오너라는 사람이 시간을 막 써도 된다고 여겼나 보다! 아니면 혹시, 네가 나에게 그 정도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니?”

         

       그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짜증을 엘라에게 풀었다.

       그것도 마구잡이로 말이다.

         

       방에는 오직 오딜리아와 엘라만 있는 상황.

       그녀의 스승이자 대마녀의 억제기 역할을 하는 아그네스는 아나스타시아와 외출을 한 상황이었다.

       엘라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도망치면 그걸로 트집을 잡아 난리를 피울 것을 알기에 얌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오딜리아는 흥미가 떨어진 듯 고개를 홱 돌리곤 소파 옆에 놓인 미니 테이블에 놓인 벨을 눌렀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음성이 흘러나왔다.

         

       [ 안녕하십니….]

       “주문받아요.”

         

       오딜리아는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어버리곤 주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커피.”

       [ 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떤 커피를 원하십니까? ]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팔미라 에스테이트 원두 풀시티 로스팅 플랫 화이트. 단, 에스프레소는 일반 기계 말고 반드시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하세요. 그게 안 된다면 마법사가 직접 나서서 하던지. 우유는 무유당 우유로 해주고, 스테비아 7g.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빈 3g 갈아서 넣어주고, 델라피 초콜릿 한 알 마법이나 아티팩트로 급속냉동 시킨 다음 잘게 갈아서 위에 얹어줘요. 아, 커피 온도는 정확히 90도여야 해요. 그리고 왕실에 납품하는 도자기…. 아. 이런 촌구석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겠구나. 그냥 1등급 보온 아티팩트 텀블러에 담아주도록 하세요. 그리고 되도록 빨리.”

       [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최대한 빨리 가져다드리겠습니다. ]

         

       까다로운 질문에 아주 잠깐 호텔 직원의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미 호텔 측에 진상으로 찍혀버린 대마녀에게 책 잡힐 건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순식간에 친절한 말투로 대답해주곤 분주하게 움직였다.

         

       직원들은 순식간에 주문한 커피를 완성했다.

       그것도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똑똑,

         

       “들어와서 저한테 주고 가세요.”

         

       노크 소리가 들리자 오딜리아는 손가락을 튕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친절함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행여 책이라도 잡힐까 두려웠는지 호텔 직원의 태도 하나하나에서 긴장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흐응, 향기는 괜찮고. 뭐, 그럭저럭? 가세요. 그리고.”

         

       오딜리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달러 묶음 하나를 직원의 가슴팍에 집어 던졌다.

         

       툭!

         

       지폐 뭉치는 직원의 가슴을 맞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팁이니까 주워가요.”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아, 그리고 러시아에도 쇼콜라티에는 있죠? 좀 유명한 사람 작품으로 사 와요. 초콜릿 위주로 한 1,000달러 정도. 대신 초콜릿은 상온 12도 유지해줘요. 아티팩트를 쓰던 마법을 걸던 방법은 알아서 하고, 최대한 빠르게 가져와요. 뭐해요? 주문 끝났으니까 가세요.”

         

       그녀는 손짓해서 직원을 쫓아냈다.

       그리곤 커피 향을 즐기는 것처럼 한껏 들이마시곤, 다시 문을 바라보며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그렇게 그녀가 커피를 반절 정도 먹었을 때.

         

       덜컹.

         

       “으~추워!”

       “후후. 아샤. 춥다고 바로 침대로 가려고 하지 말고, 손부터 씻도록 하렴!”

       “알았어용~”

         

       아그네스와 아나스타시아가 돌아왔다.

       오딜리아와 마찬가지로 아그네스 역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스승과는 다르게 끝을 살짝 묶어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가 세 보이는 화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아나스타시아를 대해주고 있었고, 아나스타시아 역시 그 상냥함이 기쁜지 한껏 애교를 부리며 그녀를 대해주었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 만에 엄청나게 친해진 것인지, 아그네스는 아나스타시아를 아샤라는 애칭으로 거리낌 없이 불렀고, 아나스타시아 역시 그 애칭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녀에게 한껏 애교를 부렸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그네스의 외모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나스타시아의 외모.

       그 두 개가 합쳐지니 마치 젊은 엄마와 어린 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나스타시아는 눈처럼 하얀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화장실로 뛰어가 손을 씻고는 다시 아그네스의 옆에 붙었다. 그리곤 아그네스가 입고 있는 니트 드레스의 감촉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소파에 반쯤 누워있는 오딜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저 돌아왔어요~”

       “흥. 돌아왔으면 냉큼 몸이나 녹일 것이지, 뭘 그리 방정맞게 뛰어다니는지.”

         

       똑똑.

         

       무언가를 아나스타시아에게 말하려던 오딜리아는 능력을 사용해 문을 열어주었고, 직원이 한 아름 초콜릿을 들고 오자 손짓으로 테이블에 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직원이 초콜릿을 다 놓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끝났으면 가세요.”

       “초콜릿 고마워요.”

         

       아그네스는 위로라도 하듯 상냥하게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말해주었고, 핸드백에서 100달러 지폐 하나를 꺼내 직원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슬쩍 미소를 지으며 방 밖으로 나갔다.

         

       “스승님.”

       “왜?”

       “하아…. 또 이상한 주문 해서 직원들 괴롭힌 거예요?”

         

       아그네스는 한숨을 쉬며 오딜리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딜리아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근감이 가득 담긴 말투로, ‘네스’라는 아그네스의 애칭까지 사용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업무이지 않니? 내가 뭐 못할 거 시킨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저들이 해야 할 일을 시킨 것뿐인데 그게 무슨 문제라고. 그것보다 네스, 너 좋아하는 초콜릿 저기 있으니 먹으렴. 그리고.”

         

       그녀는 슬쩍 눈을 돌려 아그네스의 옆에 딱 달라붙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엘라의 어릴 적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엘라와는 달리 초롱초롱한 눈에 활발한 성격, 거기에 애교까지 많은 아이를.

         

       엘라의 어릴 적과 똑같은 외모를 가졌으니 얼굴만 보아도 짜증이 나야 정상일 것인데.

       기이하게도 아나스타시아는 오딜리아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기묘한 주술사에게 한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아니면 아그네스의 옆에 딱 달라붙은 모습이 그녀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오딜리아는 조금 짜증이 누그러진 얼굴로 아나스타시아를 향해 말했다.

         

       “너. 아나스타시아. 너도 같이 먹거라. 넉넉하게 주문했으니까 부족하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곤 오딜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아그네스는 타박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스승님? 더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 엘라 너도 가서 먹던지. 마음대로 해라.”

         

       그녀는 퉁명스럽게 툭 말을 던지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있던 꽃 하나가 부르르 떨더니 화병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뿌리를 발처럼 움직이며 초콜릿 더미에 다가가더니, 잎을 팔처럼 사용해 초콜릿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테이블 아래로 폴짝 뛰어내리곤 오딜리아를 향해 다가가 그녀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초콜릿 맛이 나쁘지 않네.”

       “그래요? 어디, 어?! 와!”

         

       아나스타시아는 초콜릿 맛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자신이 입에 넣었던 초콜릿과 똑같은 것을 들고 엘라를 향해 뛰어갔다.

         

       “동생! 동생도 먹어보세요~”

       “아니, 그. 저는 괜찮아요.”

       “언니의 명령에 토 달지 말아요. 입을 벌리세요!”

         

       성질 더러운 대마녀와 같이 있느라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던 엘라는 입맛이 뚝 떨어졌는지 초콜릿을 거절하려고 했지만, 아나스타시아의 귀여운 명령에 못 이겨 결국 입을 벌리고 말았다.

         

       초콜릿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며 감미로운 단맛을 선사해주었는데.

         

       “흡?!”

         

       그 맛에 엘라 역시 깜짝 놀라서 아나스타시아처럼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아나스타시아는 만족했는지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그녀의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곧 은인이 올 거예요~다 잘 될 거랍니다. 앞으로 스트레스 안 받고 살 거예요~”

         

       그 말에 엘라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녀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나스타시아는 배시시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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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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