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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나의 말에 둘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괜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앞에 두고 괴롭힌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착잡해진다.

        하지만 나의 결정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하는 법.’

       

        이곳에도 그런 격언이 있었지 않았던가?

        뭐랬더라?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라는 격언 말이다.

        내가 앞장서서 인간들을 돕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헉!

        – 비상!

        – 비-상!

        – 우리 X됐네.

        – ㅎㄷㄷ

        – 그럼 지구 멸망해도 안도와주심?

        – ㅎㄷㄷㄷㄷ

        – ㄷㄷㄷ

       

        “물론 그 녀석을 두고 볼 생각은 없단다.”

       

        그 녀석이 내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영역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내가 나설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초월자가 호주 정도의 영역에 만족한다면…….

       

        “딱히 내가 나설 이유는 없겠지.”

       

        – 지금 속보 올라왔는데, 백익룡이 호주 갔다는데요?

        – 백익룡 위험해지면 가시나요?

        – ㅇㅇ?

       

        “그래도 내가 갈 일은 없을 거란다.”

       

        지금의 내 아이들은 내가 돌봐주어야 할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자기 미래에 대한 선택을 내리고,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동시에 그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존중한다.

       

        “그것은 블레이즈의 선택이었고, 그에 대한 책임도 그 아이가 짊어져야 할 일이지.”

       

        설사 그것이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 좀 매정한 것 같은데요?

        – ㄹㅇ

        – 차갑다.

        – 어우

       

        “무리 생활하는 너희 인간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무리 생활하는 생명체는, 무리의 개체 수 하나하나가 자기 생존에 직결된다.

        그렇기에 무리를 이루는 개체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무리를 이루는 개체 하나하나를 지키려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무리 생활하는 생명체가 아니다.

        나는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낳고, 돌보고, 키워내야 할 모성애가 있으나…… 성체가 된 아이들까지 신경 써야 할 의무는 없다.

        왜냐하면 성체가 된 아이들은 이미 내 손에서 떠난 이들이니까.

       

        “어머니로서 나에게 찾아온 아이들을 환대해 줄 수는 있다. 도움을 요청한다면 들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나서서 아이들을 돕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나마 헤니시아가 산란하기 적당한 장소가 없다고 날 찾아온 것 정도?

       

        “자. 그럼 방송을 계속해 볼까?”

       

        “아, 네에.”

       

        “네에에…….”

       

        드래곤으로서 할 이야기는 다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다시 방송인 라그나의 시간이다.

        방송을 어디까지 진행했더라……?

       

        “음? 왜 그러고 있느냐?”

       

        다음 사연을 읽어보려고 했더니, 내 옆에 앉아 있던 살랑미미와 최강물소의 반응이 이상하다.

        어딘가 침울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내 기세에 압도당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기엔 조금 전에 드래곤으로서 말을 할 때 조금의 기세도 내뿜지 않았었다.

        내 본체라면 모를까, 아바타는 필멸자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필멸자를 상대로는 완벽하게 기세를 감출 수 있으니까.

       

        – 드래곤은 인간의 마음을 모름.

        – ㅋㅋㅋㅋㅋ

        – 오늘 방송 쫑났다! 가자!

        – ㅋㅋㅋㅋㅋㅋㅋ

        – 이런 상황에서 방송 어케 계속함?

        – 인간이 아니기는 하구낰ㅋㅋㅋ

        – 마이페이스 끝판왕ㅋㅋㅋㅋ

       

        “???”

       

        채팅창도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으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김두식은 살랑미미의 방송을 시청하다 탄식을 터뜨렸다.

       

        “망했다.”

       

        멸천룡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최대한 돌리고 돌려서 어떻게든 설득을 해 보기 위해 노력했는데, 방금 전에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백익룡도 보장한 초월자씩이나 되는 존재가 저렇게 선언한 이상, 멸천룡은 진짜로 인간들을 위해 나서지는 않으리라.

        그나마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백익룡을 설득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데…….

       

        ‘그쪽도 건드리기 좀 그래서…….’

       

        참고로 살랑미미와 최강물소에게 도와달라고 하기 이전에, 이미 백익룡을 경유해서 멸천룡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먼저 사용했다.

        당연히 백익룡은 ‘겨우 이런 일에 어머니를 부르는 것은 싫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말이다.

       

        멸천룡 때문에 조금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현의 파트너인 백익룡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그나마 이쪽은 확실하게 ‘인간의 편’에 선 덕분에(약간의 조건이 있었지만) 그나마 대하기 편했던 것이지, 이쪽도 한 자존심 한다.

        과거에 백익룡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었던 한국의 국회의원 몇 명이 지금은 숨만 쉬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아니, 그런데 자기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강대한 적이라면서? 그러면서 자존심 때문에 엄마 부르기 싫다는 것은 무슨 어린애 같은 투정이야?!’

       

        ……생각해 보니까 빡치네?

        슬슬 노년에 접어드는 김두식이 뒷목을 잡았다.

        그래…… 자기들은 결국 드래곤이다 이거지? 어차피 피해 보는 것은 인간들이다 이거지?

        확 그냥 백익룡에게 공급되는 최고급 한우 품질을 한 단계 낮춰버릴까 보다…….

       

        “후우~!”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호주는…… 포기해야 하나?

        김두식은 우울한 얼굴로 내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호주의 시민들은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울루루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더 있을 테니까…….

       

        쾅!

       

        “회장님!!”

       

        “깜짝이야!!”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부하직원의 행동에 김두식은 들고 있던 전화기를 놓칠뻔하다 간신히 잡아챘다.

        어우. 요즘은 유선 전화기 자체가 단종되어서 비싼데…… 하마터면 예산 허투루 날릴 뻔했다.

        김두식이 화난 얼굴로 부하직원을 돌아보았고…….

       

        “호주에서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뭬이야?!!”

       

        부하의 보고에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            *            *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이 곧바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은 자신들을 향한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개를 펼쳤다가 타올랐고, 헌터들은 새까맣게 타오르다 일제히 날아갔다.

       

        털썩!

       

        “크어억!”

       

        “허억!”

       

        “메딕! 메딕!”

       

        헌터라면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는 ‘수호부’ 덕분에 목숨을 잃은 이들은 극소수였으나, 대부분이 열기에 노출되어 극심한 화상을 입었다.

        다수의 헌터들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들었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헌터들이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들도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큭! 이건?!”

       

        = 비상이다 파트너!

       

        용의 비늘로도 다 막지 못한 열기에 비틀거리는 이현의 곁으로, 백익룡이 날아왔다.

        의아해하는 이현에게, 백익룡이 소리쳤다.

       

        = 보스다! 놈이 나오고 있어!

       

        “뭐?! 벌써?!”

       

        그놈이 어떻게 벌써 나온단 말인가?

        보통 게이트가 터질 경우에는 약한 몬스터부터 순차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풍선’을 생각하면 된다.

        게이트는 일종의 풍선, 혹은 거품이다.

        내용물이 늘어날수록 점점 크기를 불려 가다, 한계를 맞이하는 순간 가장 약한 곳에 찢어지며 터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게이트가 터진다’라는 현상이고, 그렇게 되기 전에 게이트의 보스를 사냥해 게이트를 닫는 이들이 바로 ‘헌터’다.

        설사 보스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들을 사냥함으로써 게이트가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만약 게이트가 터질 경우를 생각해 보자.

        게이트의 가장 약한 부분이 찢어져 구멍이 뚫리고, 그곳을 통해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맨 처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은 아주 약한 몬스터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구멍이 작으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구멍이 점점 넓어지다 아예 게이트 자체가 사라지겠지만…… 어쨌든 ‘구멍이 작아서’ 초반에는 약한 몬스터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 말은, 게이트가 열린 초반에는 보스 몬스터가 나올 수 없다는 소리다.

       

        “어떻게 벌써 보스가 튀어나와?!”

       

        = 저 무식한 놈이, 게이트의 구멍을 억지로 찢고 나왔다!

       

        구멍이 작아서 통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구멍을 찢으면 된다.

        가능한 방법이기는 한데…… 이 경우에는 차원 하나를 찢어 버리는 방법이기에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하게 된다.

        그냥 시간만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굳이 힘을 대량으로 사용해서 밖으로 나간다?

        

        “……그런 미친 짓을 했다고?”

       

        = 그렇다.

       

        이현과 백익룡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울루루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지가 융해될 정도의 열기 속에서 마침내 보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쿵!

       

        철퍽!

       

        치이이익!!

       

        그것은 거대한 태양이었다.

        아니…… 태양으로 착각될 것 같은 거대한 불의 새였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10쌍의 날개가 깃털처럼 뭉쳐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 샛별처럼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

        마치 태양이 지상에 현현한 것 같은 열기는 감히 필멸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강렬하게 타오르는 대지와 대기는 비명을 지르며 사그라졌다.

       

        = 젠장. 아그라다의 주인인가?

       

        “아는 놈이야?”

       

        = 들어 본 적이 있다.

       

        어머니를 찾아 다른 차원을 돌아다니던 중,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차원에서 온 여행자와 만난 적이 있었다.

        블레이즈와 차원의 여행자는 함께 음식을 나누며, 서로가 다른 차원에서 보았던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중 ‘아그라다’라 부르는 항성을 삼키고, 그 힘을 흡수한 초월자에 대해 들었었는데…….

       

        = 왜 저놈이 여기 있는 거야?

       

        초월자들 중에서도 격이 다른 상위의 초월자들은, 다른 초월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하다.

        그리고 블레이즈가 알기로, 저 ‘아그라다의 주인’이라는 존재도 제법 유명한 존재다.

       

        “그렇게 유명해?”

       

        = 쉽게 말하자면…… 이쪽 차원에서는 ‘불사조’, ‘태양신 라’와 같은 존재의 모티브가 된 이들 중 하나다.

       

        “……엄청난 놈이네.”

       

        귀에 속속 박히는 요약에 이현이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그런 신화 속 존재의 원본 격인 존재가 바로 저 보스 몬스터라는 소리인데…….

       

        “……우리 이길 수 있냐?”

       

        = 넌 승기를 따지기 전에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하지 않나?

       

        “젠장. 반박할 수가 없네.”

       

        이현은 한숨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런 이현과 교대하듯, 백익룡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부탁한다 파트너!”

       

        =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마.

       

        우우우웅!!

       

        백익룡의 말과 동시에, 그의 몸이 빛으로 감싸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틀락 나챠를 떠올리신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쟌넨! 불사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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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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