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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원래대로라면 내가 참석했을 리가 없을 졸업식.

        

       사실 참석했더라도 참석 안 하느니만 못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는 없는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성적은 평균점에 걸치고 결석이나 조퇴, 지각은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재벌 영애가 학교를 너무 많이 빠지고, 그것 때문에 퇴학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자체로 이미 스캔들이 되었을 테니까.

        

       이유가 어쨌건, 그 사람은 졸업식에 참석했다.

        

       교실에 앉아있는 내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그 사람도 그런 고독을 아는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졸업식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 하나의 기적을 만났다.

        

       “그렇구나.”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사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스마트폰은 아니었다. 이수아의 스마트폰이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마치 증거라도 남기듯 중학교 교문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 사진을 찍는 것은 처음이었을 텐데도, ‘나’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오히려 내 옆에 서 있는 이수아가 더 긴장해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학교에서 제일 먼저 말을 걸어준 사람은, 이수아였다.

        

       어쩌면 그게 ‘나’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워낙 희미해서 어떻게 자세하게 설명할 내용은 없었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수아를 보고, 나는 ‘기쁨’을 느꼈다.

        

       “너였구나,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수아는 사진 속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귀여웠다. 역시, 이런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부모가 완전히 달라야 하겠지만.

        

       ……이런 곳이 아니라 다른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있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나였다.

        

       차라리, 재산이 이렇게 많지는 않아도 화목하게 살아가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건, 포기하고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냐, 그냥 내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 아니야.”

        

       이수아는 빨갛게 변한 얼굴로 그렇게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그저 말을 걸었을 뿐이고, 그걸 받아준 건 너였으니까…….”

        

       나를 따라온 경호원은 내가 대답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럴만했다. 그 사람이 지시받은 일은 그런 일이었을 거고, 돈을 받은 이상 그 일을 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말 몇 마디로 그 경호원을 멋지게 쳐내버리고, 이수아와 쿨하게 사진을 찍은 다음 미련 없이 떠난 모양이었다.

        

       ……이수아가 정확하게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표정과 말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보면 이수아는 그렇게 느낀 모양이었다.

        

       “그랬구나.”

        

       나라면 이수아에게 대답도 하지 못했을 텐데.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다운 친구를 만들어볼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

        

       “…….”

        

       나는 말없이 유하늘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받는 유하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평소에는 나를 포옹하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던 신소희도, 나의 표정을 보고 뭔가 느꼈는지, 몸을 뒤로 쭉 빼고 나의 시선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교실 안.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긴 했지만, 아이들은 비교적 조용했다. 사실 언제나 그런 분위기이긴 했다. 내가 있건 없건 열심히 떠들건 중학교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마 학교를 한번 휘어잡았던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마나 우리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내가 너의 위에 올라탔다는 말이지?”

        

       내가 천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물어보자, 유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도 수업 시간에.”

        

       “응.”

        

       “남들 보는 앞에서.”

        

       “……맞아.”

        

       나를 보는 주변 아이들의 시선은 ‘의아함’이었다. 놀라움 같은 것이 아닌 것을 보면, 확실히 내가 그런 일을 벌이긴 벌렸던 모양이다.

        

       ……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유하늘은 나의 표정을 보고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

        

       그 말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이 학교에 온 뒤 그 사람은 끊임없이 남들의 이목을 끌려고 노력했던 모양이다. 선생들의 수업을 방해하거나 대놓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거나 한 것을 보면,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던 모양이고.

        

       그리고 교내에서 가장 확실하게 눈길을 끄는 방법은,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 대충 이유는 알겠다.

        

       그걸 진짜로 실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뿐.

        

       ……지금까지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이 조금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엄청나게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계획대로 하나하나 차분하게 처리해나가는 인상이었는데, 인제 보니 그냥 생각나는 대로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만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그게…….”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유하늘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래, 그게 내가 너와 함께 겪었던 가장 ‘강렬했던’ 일이야.”

        

       그래, 그런 기억을 말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유하늘은 그 요청대로 응했을 뿐이고.

        

       마음 같아서는 내 뒷자리나 앞자리에 앉은 애한테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로 남에게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그래.”

        

       사실 무엇보다, 유하늘과 비교해서 그 아이들의 말을 더 신뢰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그대로 납득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잠깐 침묵에 휩싸인 사이에, 교실 앞문이 드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선생이 말도 없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타이밍 좋게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자, 다들 조용히 하고.”

        

       선생은 우리 쪽을 향해 흘끗 시선을 준 뒤, 출석부를 펼쳤다.

        

       출석을 부르고, 수업이 시작되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내가 표면으로 돌아오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강렬한 기억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말은, 그 사람이 이 몸에 있으면서 겪었던 강렬한 기억에 접근한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법칙이 한쪽으로만 통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너무 위험해서 쓸 수 없다.

        

       기억의 조각들을 조금씩 모아서 하나의 큰 기억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지도 모르고 확실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특별히 강렬하다고 생각되었던 기억을 되돌리면 어떨까.

        

       “…….”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아니, 내가 하려는 일이 ‘여자와’ 하려는 일이라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뭐랄까, 감정적인 이유였다.

        

       그래, 내가 ‘유하늘’과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유하늘이 싫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싫다, 좋다 둘 중 하나의 말로 대답하라고 하면 ‘좋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유하늘과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게, 그 사람이 아프지 않게 돌아오는 방법이라면?

        

       일부러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 좋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사라?”

        

       선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무시했다.

        

       내가 유하늘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는지, 뭐라고 외치긴 했지만, 귀에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가슴이 세게 뛰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긴장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강렬한 기억’에 가까워져, 그 사람의 기억이 깨어나려고 하고 있어서일까?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원래라면 느끼지 않았을 부끄러움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선생은 연신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주변 애들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마치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 알고 있다는 듯.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유하늘의 말은 진짜인 모양이다.

        

       이미 유하늘과 신소희,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몇 번이나 교실에서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뭐라고 생각했을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하늘에게 가서, 말했다.

        

       “의자, 뒤로 빼주지 않을래?”

        

       유하늘은 참 똑똑하게도 그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하려고?”

        

       “그래.”

        

       “…….”

        

       내 말에, 유하늘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드륵.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했다. 좋아, 어떻게 될지 보자.

        

       ……내가 이렇게 대책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전부 그 사람 탓이다.

        

       ……만나면, 절대로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거야.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리를 천천히 벌린다. 그리고 조금 엉거주춤한 자세로 유하늘의 허벅지에 엉덩이를 내렸다.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말랑했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의외로, 치마와 속옷은 얇은 재질인 모양이다.

        

       그 적나라한 감각과 온도에 잠깐 몸을 떨었다.

        

       숨이 가빠진다.

        

       이것도 ‘그저’ 부끄럽기 때문일까?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눈을 감은 채로 그렇게 묻자, 유하늘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았다. 입에서 “흐엫,” 하는 볼품없는 소리가 났다.

        

       내 손은 아마 유하늘의 양어깨 위에 올려진 모양이다.

        

       허리에 손이 감기는 게 느껴지고,

        

       “으에……”

        

       상체가 앞으로 바싹 붙는 것이 느껴졌다.

        

       미지근한 공기가 내 입 부근까지 밀려왔다.

        

       “……그때 사라는, 눈을 뜨고 있었어.”

        

       “…….”

        

       유하늘이 속삭이듯이 말한다.

        

       주변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저 심장 소리만이 내 귀를 쿵쿵 울렸다.

        

       “눈, 뜨는 게 어때?”

        

       그래, 이건 모두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순간 후회했다. 내 얼굴에 닿던 미지근한 공기가 입 안으로 그대로 들어와서 순간 당황했으니까. 기침을 하지 않은 것이 용했다.

        

       나는 숨을 참은 그대로 눈을 떴다.

        

       유하늘은 거의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 둘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심장 소리가 겹친다. 윙— 하고 이명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나의 의식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뒤틀린황천의독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최나경의 간호사 복장을 원하신다는 건, 최나경이 작중에서 젊은 시절 간호사였기 때문이겠죠? 당연히 간호사 복장은 현실의 간호사 복장이 아니라 서브컬쳐에 자주 나오는 간호사 복장이겠죠? 진지하게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등장인물들도 다른 복장들이 하나씩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작중에서 나오는 중요한 장면들부터 하나 씩 순서대로 추가한 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한 번씩 등장한 뒤에 특별한 복장 일러스트를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소설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때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독자 여러분 덕분에 힘든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네요. 제가 글을 쓰는 동안 느끼는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도 저의 글을 읽으시며 느끼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꾸준히 읽으실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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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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