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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흐음….”

         

         무기를 집어넣고 거리를 좁히면서도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안내인이라는 직함이 그렇게 막 익숙하고 친근한 것은 아니나, 블랙마켓 관련 퀘스트에서 몇 번 언급되고 마주해본 기억은 있었다.

         

         용병이나 브로커가 블랙마켓에 가입한 채로 일감을 찾아 배회하는 참가자 겸 손님이라면. 안내인은 암시장 자체에 소속되어 급여를 받는 커뮤니티 멤버(Community Member; 구성원)… 그러니까 월급쟁이 같은 존재다.

         

         어디까지나 마켓 측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의뢰인(Client)과 수주자를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담당 직원.

         

         …뭐, 이번 경우에는 중개인의 부재와 더불어 누군지도 모를 고객님께서 일에 관심있는 인간들을 잔뜩 불러 놓고 입맛대로 골라 뽑겠다고 하는 바람에 끌려 나온 것 같지만 말이다.

         

         물론 본인이 급한대로 대충 그럴싸한 직함을 주워섬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긴 한데… 그렇기엔 쓰러진 두 남자를 보며 낭패하는 모습에서 너무 진정성이 넘쳐났다.

         

         그리고 나는 그녀보다는 대체 의뢰인이 얼마나 잘났길래 블랙마켓을 인력사무소 마냥 부려먹는지가 더욱 궁금했고.

         

         혹시 크레딧이 썩어 넘치나? 그런 문제라면 불쌍한 나한테나 좀 나눠줬으면 좋겠는데.

         

         “하아…. 이럴 줄 알았어. 넷 해커라는 인간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가시가 돋혀 있을까….”

         

         워낙 작게. 입 안에서 웅얼거린 수준에서 그친 소리라, 특별히 나보고 들으라는 한 말이라기 보단 신세 한탄에 가까운 혼잣말이었으나… 제로의 센서에 딱 걸려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들어버린 이상, 먼저 의심받을 짓을 해 놓고 불쌍한 척하는 건 절대 못 참아주겠다.

         

         “…거기 안내인 씨? 왜 갑자기 책임을 돌리려고 빌드 업을 쌓으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

         

         아차 하는 손동작과 함께 그녀가 입을 틀어막았으나 그걸로 내뱉은 말이 주워담아졌다면 유구한 인간사에 범죄도 없지 않았을까 한다.

         

         내 치켜 뜬 눈과 움찔거리는 제로의 손아귀.

         둘 중 어느 쪽 요소가 더 크게 기인했는지는 몰라도, 장렬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걸 재빨리 캐치한 안내인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동조라도 받아야겠다 싶었는지 속사정을 마구잡이로 털어놓았다.

         

         “아니 아니, 미스 아이보리께 따로 무례를 범하려던 게 아니라…! 현재 추천을 받고 입국한 엔지니어와 해커분들을 모두 안내해드리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 무력 충돌이 자주 발생해서….”

         

         “…그럼 누가 봐도 수상하게 미행하는 게 아니라, 이런 덩치들 없이 얌전히 블랙마켓 아이디부터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끙끙대며 정신차리는 두 동물 표본이었던 남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걸 도운 뒤 얕은 변명을 일축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닌, 정말 인과가 명확한 문제를 덮어씌우는 건. 내가 특별히 해커 커뮤니티에 소속감 같은 게 없더라도 충분히 나쁜 기분이 들 만한….

         

         “미행 같은 건 안 했어요! 그저 가까이 가서 당사자가 맞는지 확인한다 했는데도 발작하며 플라즈마 수류탄을 터트리려 들거나,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면서 과호흡 상태에 빠지는 중증 대인 기피 환자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마중 인원을 늘린 것뿐!”

         

         “……그래요?”

         

         선입견과 궂은 실체험이 낳은 오해.

         넷 해커라는 족속들이 얼마나 극심한 에고이스트인지는 나도 몇 번 구경했었다.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도 신상 털고, 수상쩍은 코드 공유하다가 서로 열 받아서 쌈박질하고.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라이너가 번질 정도로 물기가 그렁그렁한, 업무에 지친 월급쟁이를 마주하니.

         어쩌면… 불쌍한 척이 아니라, 진짜 불쌍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추궁할 거리가 한가지 남았다. 그럼 거기서 왜 나만 특별 대우인데요?!

         

         “…아이보리 해커님은 전속 경호 로봇까지 구입해서 데리고 다닐 만큼 안전에 민감하니까, 각별히 조심해서 접근하라는 상부 명령이. 그리고… 뒤숭숭한 업계 소문도 마음에 걸려서….”

         

         “뒤숭숭한 소문??”

         

         이런 걸 과연 본인한테 직접 말해도 되나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재촉하는 내게 마지못해 입을 열었고.

         

         이어진 설명은 황당했다.

         

         가라사대, ‘일처리는 확실하지만 성깔이 보통이 아니니 주의하라.’고 옐로우 섹터 진압작전을 함께 하고 후처리까지 목격한 익명의 용병이 증언했다.

         또는, ‘주어진 목표는 달성하나, 거기까지의 경로를 예측하기가 힘들다.’며 크리스마스 근무 도중 관제실에서 멋대로 탈주하고도 성과급을 가장 많이 받아간 점을 평가했다.

         거기에 더해, ‘보기와는 달리 화가 나면 굉장히 용서가 없고 무자비하다.’라는 업계 네임드의 언질까지 최근에 추가되었다고 한다.

         

         ……시발, 뭘 사람을 몹쓸 문제아처럼 표현하는 거야!? 나름 다 확실한 사정이 있었는데!!

         애당초 누군데! 이런 단편적인 정보로 내 이미지를 시한폭탄처럼 포장한 건…!

         

         “전부 새빨간 거짓말인 것 같네. 응, 난 짐작가는 게 전혀 없어.”

         

         “…그렇지만 방금 전에도 저희 쪽 용병 견습들을.”

         

         “쓰읍…!”

         

         쇳소리를 내서 강제로 얘기를 끝내 버렸다.

         절대 할 말이 떨어진 게 아니다. 아주 논리적인 반박을 해보려고 했으나, 지금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아서… 또 탈선한 이야기를 되돌려야 하니 정신을 차린 것뿐.

         

         이 아찔한 화약과 날붙이의 세계는 기본이 죽창 대결이라 먼저 찌른 놈이 이기는 구조다 보니 내가 좀 날카롭게 반응한 감은 분명 있으나.

         생애 첫 의뢰부터 거하게 뒤통수 맞아서 메가 코프 임원과 일대일 담판까지 지어야 했던 처량한 뉴비 용병에 대한 음해를 더 참아주기 힘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네트워크를 한 번 돌면서 헛소문을 치워버리던가, 블랙마켓에서 쓰는 신분만 세탁하던가 해야지.

         

         “그러면 잠시 실례……. 등록번호 BMHA-7JWE7IOk 아이보리, 확인되었습니다.”

         

         다가온 안내인 씨가 정중하게 내밀어진 손목을 훑는다.

         여태 실컷 떠들기는 했어도 서로의 신원을 확정지었던 건 아니기에 다소 어색한 침묵이 있었지만… 다행히 금세 인증이 완료되었다.

         

         나도 사이버웨어로 전송된 그녀의 블랙마켓 명함, 그리고 손가락 끝과 한 쪽 안구가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대규모 DB에서 정보를 읽어내는 작업) 용 임플란트의 불빛으로 형형하게 발광하는 걸 확인해서 안심했고.

         

         이런 걸 보면 신체에 영향을 안 끼치는 독립형 장비일 경우 나도 어깨에 삽입한 통신 임플란트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막상 따져보면 대부분은 내 능력의 하위호환인 셈이라 좀 아쉬웠다.

         

         나도 슬슬 초인들을 상대로도 써먹을 수 있는 방어 수단 정도는 가지고 싶은데 말이다.

         

         “…현시간부로 아이보리 해커님은 임시 고용 형태로 시간당 보수를 정산 받으시며, 시험장으로 이동 및 테스트가 종료될 때까지 클라이언트 측 참관인과 저희 쪽 담당자에게 ‘우수한 넷 해커’로서의 실력을 평가받으실 예정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실까요…?”

         

         “정말 미친듯이 많아.”

         

         시급을 챙겨준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도 납득되지 않았다.

         

         방구석 폐인들을 끄집어내서 몰아 놓고는 시험도 치고 평가도 해서 점수를 매기겠다고?

         벌써부터 장난 아닐 정도로 많은 잡음과 소란이 예상된다.

         

         위이잉….

         

         떠드는 사이 그녀가 호출한 걸로 추정되는 기다란 리무진 같은 차량이 골목 바깥 대로변에 정차.

         조용히 열린 문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인 건 기분 탓이 아니었는지 안내인 씨가 앞장서서 에스코트 시작하셨다.

         

         “우려하시는 만큼 복잡한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의뢰를 시작하는 순간, 비밀유지서약 100년짜리 계약은 물론. 소명이 끝날 때까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작업이라는 클라이언트의 안내가 있었기에. 오히려 저희 마켓 쪽에서 해커분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본계약에 앞서 거름망을 준비한 셈이죠.”

         

         무려 제로가 탑승해도 멀쩡한 리무진의 수직문이 부드럽게 닫히고 미끄러지듯 출발한 차량이 상업 구역을 빠져나간다.

         

         십 점 만점에 백 점짜리 주행감과는 별개로 안내인 씨의 설명은… 그냥 듣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정보상 마녀가 큰 건수라고 은근히 눈치 준 게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니.

         

         “…내가 더럽게 우려돼서 그러는데, 그 안내를 듣고 그냥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몇 명이나 돼?”

         

         “……약 30명 정도가 뇌파교란용 환각제를 드셔서 기억을 짓뭉갠 뒤에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만.”

         

         ‘한 알 드릴까요? 미스 아이보리의 경우엔 로봇 메모리도 확실하게 손봐야 하는데.’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으며 품에서 주황색 약통을 꺼내는 그녀에게 사양을 표했다.

         

         – ……. –

         

         옆자리에 앉은 제로의 팔뚝에서 칼날이 반쯤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음에도, 마음을 다잡고 블랙마켓의 대변인 화한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태 만나본 교섭이나 서비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포커페이스가 능숙해서 곤란하단 말이지….

         

         “시험 내용은…? 아, 해커 평가니까. 설마 그걸 알아내는 것도 포함인가?”

         

         꽤 그럴싸한 추리라고 생각했지만, 거기까지 가혹한 술책은 없는지 고개가 저어졌다.

         

         “정확한 실력도 알 수 없는 다수의 해커분들을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접근시켰다간… 대참사가 일어난다는 말이 나와서. 누구나 결과에 수긍하실 수 있는 실물작업을 준비했습니다.”

         

         “아하.”

         

         가혹한 게 아니라, 난장판을 미연에 방지한 모양.

         …이렇게 된 거. 아예 채점기준이나 그 실물작업이란 물건의 정체도 물어볼까 했는데, 어느새 내려야 할 위치에 도착했는지 잠겼던 문이 다시 열렸다.

         

         발을 내디딘 곳은 건물을 올리다 만 것 같은 공사현장.

         곳곳에 드러난 철근과 뼈대가 네오 헤이븐에서 보기 드문 풍경에 감도는 음산한 기운을 증폭시켰다.

         

         케어봇에 탑재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를 찍어보니 기업간 분쟁 구역과 일반 구역 중간에 미묘하게 낀, 무슨 지랄이 나더라도 경찰조차 얼굴 비추기 싫어할 동네였다.

         

         “그럼 아이보리 해커님,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먼저 도착한 다른 참가자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합류하신 후, 담당자 분을 따라 시험에 임하시면 되겠습니다. …행운을 빌게요.”

         

         또 다른 사람을 데리러 가야 하니, 이만 가보겠다며 꾸벅 머리를 숙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좀 많이 무례한 인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응대해 주셨기에 나름 고맙다는 의미를 더해 농담을 건넸거늘.

         

         “…꽤 친절하네. 시험이라면 경쟁인데, 안내인이 누구를 편애해도 돼?”

         

         “아뇨? 그저 설명을 담당했던 분들이 많이 합격하실수록 제 월말 인센티브가 늘어나니까요.”

         

         “…….”

         

         블랙마켓은… 이름만큼이나 꽤 블랙한 조직이라는 너무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밑에 견습 애들이 박살 난 것에 대해 아무 말 안 하더라니. 날 소중한 수입원으로 보고 있었냐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엣.

    내일은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양병원 면회는 3일전에 미리 해야하기에 갑작스러운 휴재는 더 없겠지… 했는데.
    제가 가족들과 워낙 반대되는 시간대에 활동하다보니, 어제 연재분을 올리고나서 잠들기 전에 겨우 전해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급적 와리가리하는 빈 시간에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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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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