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2

       한차례 전투가 벌어지긴 했지만, 놀랍도록 관심은 전무했다.

       병사들의 경우 땅굴 바깥에서 보초만 서지, 땅굴 안으로 접근도 안 하여 그들이 싸우건 죽건 관심이 없었고.

       죄수의 경우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이들이 많아 그다지 크게 화제 되지 않은 것이고, 무엇보다 전투가 2분을 넘기지 않은 덕분도 있으리라.

         

       허나 이 자리에 그 누구도 2분이 넘지 않은 대결이라 하여 상대를 만만하게 여기거나 저 대결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숙련된 솜씨군. 수상한 놈일지언정 실력이 탄탄한 명문가의 기사임은 분명해.”

       “선배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등골이 서늘한 실력자였습니다. …저걸 저렇게 제압하는 선배님이 말이 안 되는 거겠죠.”

       “…괴물 같으니.”

         

       로이 반트의 실력은 ‘진짜’였다.

       적어도 백은사자에 널린 반쪽짜리들에 비하자면 못해도 두 배는 강했다.

       그들 중 그를 저토록 쉽게 제압할 자신은 없다 여길 정도로.

         

       다만.

         

       “로, 로이 경! 무, 무슨 짓이더냐…! 저토록 약한 로이 경에게 갑자기 무슨 무도한 행동이냔 말이다! 비록 멸망했다고 한들 브리튼의 기사가 되어 어찌 이런 비겁한 짓을…! 네놈들은 수치도 모르더냐!”

         

       “…당신, 진짜 어떻게 장군이 된 겁니까?”

         

       저렇듯, 한때 장군이었던 양반은 제 곁에 있던 인물의 실력은커녕, 그들의 공방전을 아예 보지도 못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짜게 식은 눈짓을 주었고, 이에 격분하듯 더욱 크게 소리치려는 머스탱이었으나.

         

       “네놈….”

         

       빠악!

         

       “끄윽…?!”

         

       털썩.

         

       “너무 소란스럽습니다.”

         

       가볍게 뒤통수를 후려치니 기절하는 머스탱이었고, 드디어 주변은 조용해졌다.

       요르드의 적절한 처방이었으며 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너도 저 녀석 닮아가?”

       “하하, 아무래도 이 수단이 제일 빠른 것 같아서요.”

       “…어휴, 닮지 말아야 할 걸 닮아가네.”

       “아니지, 잘 크고 있구먼, 뭘.”

       “……다친 곳은.”

       “없어, 흐흐.”

       “…그, 그러냐.”

         

       어느새 곁까지 다가온 이한은 한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마치 싸운 게 아니라 잠시 산보를 다녀온 듯하다.

       저만한 실력자조차 생채기 하나 못 낸다는 건가?

         

       ‘짐작은 했었지만, 이 녀석. 실력이 반년 전과 비교도 안 되게 성장했어.’

         

       백은사자 135명을 손쉽게 제압하는 걸 보며 짐작은 했지만, 진짜 전과는 격이 다른 강함이었다.

       반년 전에도 분명 트롤 같은 녀석이었지만, 이제는….

         

       ‘오우거도 한 수 접어야겠군.’

         

       제이크는 이제 백은사자에서 발타르 경을 제외하곤 저 흉악한 놈과 대적할 놈이 없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 * *

         

       다행스럽게도 로이 반트는 죽지 않았다.

       역시 1인분을 하는 기사는 신체능력부터가 상당하다.

       뒤통수가 깨지고 뇌진탕이 좀 심하여 기억의 부분적 상실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할 뿐.

         

       털썩!

         

       인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곳까지 질질 끌고 와 로이 반트를 내려놓고 이한은 품속에서 약병을 꺼냈고.

         

       치이익.

         

       그대로 내용물을 붓자 로이 반트의 상처가 아물어갔다.

         

       “포션이라니,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놈을 살려야 뭘 듣던 하지.”

       “…역시 사경을 헤매고 있던 거였나.”

         

       하긴, 머리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도리어 사경을 안 헤매는 것이 신기할 터.

         

       “선배님. 그런데 이놈이 그 혈십자군 소속이 맞을까요?”

       “아니더라도 수상한 놈인 건 맞잖아.”

       “그거야….”

         

       확실히 수상한 놈임은 분명했다.

       땅굴에 들어온 놈 주제에 투기법이 봉인되지 않은 것도 그렇고. 그들에게 은밀하게 접근하려는 것도 그렇고.

         

       또….

         

       “이 무능한 장군을 저희에게 보낸 것도 이놈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들의 간을 보려는 것도 그렇고.

         

       머스탱이 제 의지로 그들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 로이 반트가 뒤에서 부추기며 그들과 대화를 나눌 명분을 만들기 위한 셈이 아닐까?

         

       “아마 우리가 브리튼의 기사라고 하니,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겠지.”

         

       최근 땅굴에 갇힌 죄인들의 경우 대부분이 브리튼 출신인 경우가 많다.

       병사부터 기사까지, 무력이 상당한 신분들은 대부분 땅굴에 모인 격이었고. 아마 그들과도 금세 친분을 나눌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겠지.

         

       “땅굴에서 친분 같은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뭘 그런 걸 따져. 원래 어느 나라를 가건 혈연, 지연, 학연 따지는 게 인간이란 건데. 저놈도 그런 거겠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것도 그렇지.”

       “이런 곳까지 와서 그런 걸 따지는 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요.”

       “저기 있잖아, 수감 생활 하는 주제에 여전히 신분 타령 하는 놈이.”

       “아.”

       “…왜 날 보고 그러는 건가?”

       “몰라서 묻냐?”

       “…….”

         

       아렌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건 말건 상관없이 이한은 묵묵히 제 할 일만 하였다.

       로이 반트가 깨어나기까지 그가 옷에 무언가 숨겨둔 것이 없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이런 놈은 뭔가 숨기길 마련이거든.’

         

       아니나 다를까.

         

       “이건 뭐야?”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입은 죄수복과 달리 안주머니가 달려 있는 로이 반트였고, 안주머니에는 수상한 물품이 다섯 개 정도 나왔다.

         

       찢어진 종이와 수상한 냄새를 풍기는 비약 3개, 그리고 역십자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다지 긍정적인 물품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특히 역십자가의 경우.

         

       “신을 모독하는 배교자의 것이 아닐 수 없군.”

         

       독실한 신자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이한을 제외한 세 사람이 손으로 십자가를 그으며 성경의 구절을 외웠다.

       마치 자신들의 신앙심을 증명하듯이.

         

       “흐음….”

         

       이한은 독실한 신도들을 놔두곤 그저 역십자가를 살필 따름이었다.

       그는 딱히 신에 대한 불경함을 논하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노라면 어떠한 ‘이질감’을 주었기에 관찰할 따름.

         

       그러더니 돌연.

         

       뽀각.

         

       “그게 사탕도 아니고….”

       “사탕도 저렇게 쉽게 안 깨집니다, 선배님.”

       “미친 괴물 같으니…!”

         

       그는 역십자가를 손쉽게 반으로 쪼갰다.

       마치 쿠키를 반으로 쪼갠 것만 같았고, 이한은 역십자가의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거…. 마석이네?”

       “뭐어?”

       “정확힌 마석을 혼합한 것 같은데?”

       “…진짜네?!”

         

       깨진 부분에서 미세하게 반짝이는 알갱이들.

       보고 있노라면 눈을 현혹하는 기운을 내뿜는 것이 마물에게서 나오는 마석임이 분명했다

         

       허나.

         

       “마석을 겨우 이런 역십자가 하나 만드는 데 쓴다고? 돈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마석은 마물 스무 마리 중 한 마리에게만 나오는 희귀한 돌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담석인 셈이며, 제법 구하기 힘든 희귀 아이템이란 뜻이기도 했다.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환장하는 재료기도 해서 비싸기도 더럽게 비싼데, 그런 비싼 재료를 역십자가 만드는 데 사용한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이런 돈 버리는 짓은 안 할 것이다.

         

       “…미친놈이란 거네.”

       “으음.”

       “아니면 이놈들이 마석 따윈 우습게 여길 정도로 엄청난 부자인 걸 수도 있고. …그래서 어느 쪽이냐?”

       “이한?”

         

       뜬금없는 그의 발언에 모두가 의아하길 잠시.

       그들은 곧 그가 말을 건 대상이 쓰러져 있는 로이 반트임을 깨달으며 눈을 매섭게 떴다.

         

       “…….”

         

       허나 피어오르는 그들의 기세에도 로이 반트는 미동도 없이 잠잠할 뿐.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후욱!

         

       이한은 거침없이 다리를 치켜들며 로이 반트의 머리를 정확히 겨누었다.

         

       콰아앙!

         

       아찔한 발구르기.

       땅바닥이 움푹 파였고, 사람의 두개골조차 수박처럼 산산조각 낼 위력이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살인귀와 다를 바가 없군. 기사란 자가 어찌 이리도 손속이 잔혹한 것인지….”

         

       놈은 이한의 발을 가까스로 피하며 한쪽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었으리라.

       기절한 척 연기 한 번 잘못하다가 세상을 하직할 뻔한 것이다.

         

       이한은 놈의 타박에도 코웃음을 쳤다.

       먼저 연기를 한 놈이 뭐라는 건지, 원.

         

       “너 같이 음흉한 놈들은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 어떻게, 강제적으로 시체놀이를 더 시켜줘? 깨어난다는 보장은 못 한다만.”

       “…….”

       “말을 해, 노려보지 말고.”

       “…크윽.”

         

       화르륵!

         

       이한의 강렬한 시선과 마주한 로이 반트는 몸을 움찔거렸다.

       기세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고, 그 열기가 몸을 덮치는 순간 로이 반트는 생전 처음 겪는 뜨거움마저 느꼈다.

       마치 몸이 익어가는 착각마저 드는 기세.

         

       로이 반트는 인정했다.

       상대는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강자가 맞음을.

       못해도.

         

       ‘챔피언이다. 그것도 왕국을 대표할….’

         

       한 지역의 패자를 넘어 왕국에 명성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사들.

       브리튼에서도 얼마 없는 수준의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주르륵.

         

       로이 반트는 땀을 미치도록 흘려대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머리를 끊임없이 굴리는 것이었고, 그는 그렇게….

         

       “…내가 아는 정보를 반 정도 넘기도록 하지. 대신 나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해라. 그리고 같이 탈출까지 시켜준다면 모든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넘기겠다. 참고로 내가 아는 정보는 제법 훌륭할 것이다.”

         

       “…….”

         

       “네놈들, 분명 팬드래건의 기사겠지? 브리튼인치고 영 피부가 고운 게 딱 팬드래건이다. 아, 네놈만 빼곤.”

         

       “…….”

         

       “어쨌든, 팬드래건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정보일 거다. 아무렴, 왕국의 경제마저 뒤흔드는 정보를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니 무조건….”

         

       “-이 새끼가 주제를 모르네?”

         

       타악.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악!”

         

       이한은 놈의 쇄골을 그대로 으스러트렸다.

       더는 저 개소리를 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끄으으윽!”

       “입 닥쳐.”

         

       우왁스럽기 그지없는 손길이 이번엔 얼굴을 덮쳤다.

       일반 장정보다 2배 더 큰 손바닥은 로이 반트의 얼굴을 그대로 뒤덮었고, 그대로.

         

       우득!

         

       “!!!”

         

       얼굴 전체를 우그러트리는 압박감을 선사했다.

         

       허나 입마저 막힌지라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로이 반트였고, 이러한 고통은 3분간 지속되었다.

       3분. 누군가는 한없이 짧은 시간이라고 할 테지만.

         

       “허억! 허어억! 커헉! 커허어억…!”

         

       로이 반트의 얼굴은 세월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늙어버렸다.

       순식간에 초췌해진 얼굴.

         

       그는 3분이 3년처럼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극도의 공포감을 맞본 것이었다.

         

       “네놈에게, 아니 네놈들에게 협상의 자격이 있을 것 같냐?”

         

       이한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맹수의 으르렁거림과 같은 포악함이 담겨 있었다.

         

       분노.

         

       그는 맹렬한 분노를 느끼는 중이었다.

       아마 이토록 분노한 것은 주문쟁이를 잡을 때 이후 간만일 터.

         

       이한은 이 순간 이놈이 혈십자군인지 뭔지 하는 놈임을 확신했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터졌다.

         

       왕도가 습격당하여 이토록 분노한 것인가?

       아니다, 그는 그 정도로 성실한 기사가 아니며 정의롭지 않다.

         

       그가 이토록 격렬히 분노한 이유는.

         

       “네놈들은 감히 ‘내 사람들을 위협’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그의 사람들.

         

       그건 학술원의 제자들일 수도 있으며, 그가 가는 단골 빵집의 주인일 수도 있다.

       혹은 싼 가격에 서비스로 고기 등을 나눠 주는 정육점의 주인일 수도 있을 테고.

         

       그의 일상과 함께하는 사람들.

         

       한데 이놈들은 감히 자신의 ‘일상’을 망가트리려고 했다.

       이러한 사실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에 분노해야 할까?

       그런 주제에 협상?

         

       ……안 그래도 뜨거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푹! 푸욱!

         

       이한은 주먹으로 가볍게 로이 반트의 몸을 세 번 쳤다.

       가격한 것이 아니라 툭툭 친 수준.

       장난이 아닐까 싶었으나, 이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고 도저히 장난을 칠 마음이 없었다.

         

       우지지직!!

         

       “!!!?”

         

       일순 로이 반트의 몸에서 괴랄한 울림이 퍼졌다.

       몸속 내부의 울림이 외부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난 수준이고, 고통의 수준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로이 반트는 덮쳐오는 고통에 기절조차 못 한 채 마냥 침을 질질 흘렸으나 이한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처음 당해보는 기술일 거다. 근육과 뼈에 경을, 내 힘을 흘린 거니까.”

         

       전날 불칸에서 제자들에게 [경]을 전수할 때 그는 직접적으로 체내에 힘을 주입하는 것으로 기술을 전수했다.

         

       근육과 뼈 등 육체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이한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예였고, 아마 이한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수했다면 열에 아홉은 불구가 됐으리라.

       그리고 이 말뜻은.

         

       “많이 아플 거다. 상당히….”

         

       힘을 흘려 넣어 상대를 인위적으로 불구로 만들 수도 있단 뜻이기도 했다.

         

       -분근착골(分筋錯骨).

         

       이한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지독한 고문법이었다.

       걱정은 마라, 불구가 될 고통을 겪는 거지 진짜 불구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또 모르지, 고통이 길어질수록 백치가 될지도.”

         

       “!!…?!…!”

         

       “입을 열 준비가 되면 말해라, 그때 멈춰줄 테니까.”

         

       “…!!!!”

         

       “더 버틸 생각인가? 그래, 최선을 다해 버텨봐.”

         

       “!!?!!!”

         

       “지독한 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아무리 봐도 당장 모든 정보를 뱉어내고 싶어 발악하는 로이 반트였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여전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기에.

         

       허나 로이 반트의 고통 어린, 그리고 간절하고도 다급한 눈길을 마주하고도.

         

         

       “-지독한 새끼, 왜 입을 안 열지?”

         

         

       그는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