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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2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개인실.

   

   그 안에서 애버리는 자신의 두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신과 얽혔다는 문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한 때 악신에 의해 홍역을 치루었던 대륙의 여러 나라와 교회는 악신과 관계된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애버리는 귀족 영애로써 교육을 받으며 그에 대한 경고를 몇 번이나 들었다.

   

   때문에 악신과 연관된 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죄과는 그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루시 알른이 그녀가 악신과 얽혀 있음을 주신 교회에 고발한다면 주신 교회는 그 즉시 그녀를 붙잡으리라.

   

   여러 방식을 통해 그녀의 입에서 진실을 뽑아낼 것이고 그 후엔 애버리의 머리를 처형대 위에 올리겠지.

   

   문제는 이야기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버리가 저지른 죄의 영향은 그녀의 가문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가문의 딸이 악신에게 물들었으니 가문의 구성원들도 의심을 사게 될 테고 교회와 국가에 의해 철저한 조사를 받게 될 터.

   

   물론 애버리의 가문은 아무런 죄도 없다.

   

   이건 멍청한 애버리가 혼자서 저지른 짓이니까.

   

   그렇지만 교회가 국가가 그 사실을 믿어줄까?

   

   없는 죄과를 만들어서 그들을 처벌해 본보기로 삼으려 하지 않을까?

   

   설령 그 끝에 가문의 무죄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애버리의 가문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채겠지.

   

   난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악신과 연관된 마도구를 손에 쥔 걸까.

   

   아무리 루시 알른이 미웠다 하더라도 그녀를 벌 할 방법은 수도 없지 많지 않던가.

   

   어째서 그 검은 사람이 해 준 이야기를 냅다 믿고.

   

   절대로 들킬 리 없다는 소리에 귀를 팔랑거려서.

   

   다른 사람이 어찌 되더라도 루시 알른을 해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생각을 했을까.

   

   왜.

   

   애버리는 이제와서 후회를 마음에 품었지만 그렇다 한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마도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변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녀가 악신의 마도구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고 그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까지 했으니.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한들 자신을 루시 알른이 교회에 가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그녀가 상상했던 여러 일은 현실이 되리라.

   

   루시 알른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요 목줄이 걸린 동물이었으니.

   

   애버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루시 알른의 온정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좆밥 영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애버리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는 루시 알른의 얼굴은 여느 때와 같았다.

   

   얄미운 웃음도.

   

   장난스런 눈가도.

   

   그래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의 과거를 아는 입장에서 저 입에서 나올 말이 온건하지 않다 예상할 따름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루시 알른은 애버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교회에 휙하고 넘겨버릴 생각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으리라.

   

   그리고 나서 절망에 빠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짓겠지.

   

   애버리가 아는 루시 알른은 그럴 수 있는 인간이었다.

   

   “허접 돼지여도 지금 자기 상황이 어떤지는 알지?♡”

   “…네.”

   “한 번 울음소리를 내 봐.”

   

   치욕적이고 또 모욕적이었지만 애버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루시 알른이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는 그녀는 이미 루시 알른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꿀.”

   

   입술을 부들부들 떨던 애버리가 돼지소리를 내자 루시 알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대를 칭찬하는 듯한 폭소와 박수소리에 애버리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루시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개인실을 웃음으로 채우고 나서야 진정을 한 루시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입술을 움직였다.

   

   “푸하핫♡ 좆밥 영애♡ 멍청이야?♡ 울음소리를 내라는 게 돼지 흉내를 내란 게 아니잖아♡ 네 가치를 설명해보라는 거였다고.”

   

   돼지라고 불리다보니 머리까지 돼지가 되어버린 거냐며 웃는 루시의 모습에 애버리가 두 손으로 치마를 꾹 붙잡았다.

   

   “아하하♡ 좋아♡ 마음에 드네♡”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는 자신의 자그마한 발이 움직이는 소리로 방을 가득 채우며 애버리의 옆에 걸어왔다.

   

   그리고는 애버리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했다.

   

   “당장은 살려 줄게. 그치만 알지? 난 엄청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우리 허접 돼지 영애의 불같은 성격처럼 말야.”

   

   애버리는 천재가 아니다.

   

   허나 그렇다 해서 아주 멍청한 인간도 아니다.

   

   그녀의 머리가 모자랐다면 아카데미에 합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애버리는 자신의 귓가에 꽂히는 웃음의 의미를 너무도 잘 이해했다.

   

   지금 이 순간부로 애버리는 루시 알른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도구가 되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의향을 실행하는 물건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루시 알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회에 찾아가 애버리의 목숨을 날려버릴 테니까.

   

   만약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애버리도 배짱을 부려 보았으리라.

   

   네가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지는 걸.

   

   한 가문에 담긴 역사가 사라지는 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를 지껄여 봤을 것이다.

   

   허나 지금 그녀를 협박하고 있는 것은 루시 알른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제 즐거운 일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할 미친년말이다.

   

   “알았지?♡ 응?♡ 대답해♡ 허접한 돼지야♡ 꿀꿀 대는 것도 못해?♡”

   “아뇨!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다 할게요. 다요.”

   

   그러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당신이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할게요.

   

   제발 제 목숨만은. 가문의 생명만은 지켜주세요.

   

   애버리가 그리 빌었음에도 루시 알른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좆밥 영애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협박을 할 생각은 맞았고 실제로 협박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무서워 할 줄은 몰랐는데.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잖아.

   

   오크 한 마리를 죽였다고 얼마 동안 고기도 못 먹은 꼬맹이가 한 사람과 가문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질 수 있을 리가.

   

   당장 비시의 부탁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해서 목숨을 걸까 고민하던 나인걸.

   

   만약 애버리가 꼬우면 고발해 보시든가요. 같은 식으로 나왔다면 무척 곤란했을 거야.

   

   진짜 다행이다.

   

   애버리가 겁쟁이여서.

   

   덕분에 협박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네.

   

   이제부터는 내 평판도 좀 나아지겠지?

   

   조이랑 아서가 나에 관한 여러 소문들을 정정해 주는데다가 여러 영애들을 직접 이끄는 입장인 애버리까지도 나에 대해 좋은 말만을 하게 될 테니까.

   

   메스가키 스킬의 왜곡 때문에 생겨나는 오해는 어쩔 수 없지만 아예 억울한 소문들은 거의 없어질 거야.

   

   애버리를 내 아래에 둔 장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애버리가 나크라드와 계속 연관이 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아니 연관이 되라고 시킬 것이다.

   

   그럼 나크라드가 벌일 다음 장난질을 엿 먹이기 더 수월해질 테니까.

   

   이 두 가지 임무만 잘 수행해 준다면 내가 애버리에게 위협을 가할 일은 없을 거다.

   

   지금 이토록 무서워하는 걸 보면 내가 따로 경고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줄 것 같고.

   

   ‘저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그럼 이만 가볼게. 좆밥 영애. 부디 알아서 기어줬으면 좋겠네. 돼지처럼 말이야.”

   

   “ㄴ…네! 알겠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가있는 애버리를 내버려 둔 채 개인실 바깥으로 나온 나는 바로 식당 쪽으로 향했다.

   

   어젯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플 지경이야.

   

   오늘의 메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는 걸 시켜 놓고 기숙사에 들어가서 그대로 침대에 다이브해야지.

   

   어제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까 오늘만큼은 훈련 같은 건 스킵하고 편하게 쉬자.

   

   반쯤 정신줄이 나갈 정도로 피곤하니까 분명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거야.

   

   *

   

   중간고사가 끝나고서 나흘이 지난 날.

   

   아서는 아침 일찍부터 아카데미의 광장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평상시라면 이 시간에 잠도 깰 겸 가벼운 체력단련을 할 그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오늘은 그가 소울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나서 대략 2개월 동안 한 노력의 결과물이 나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아카데미 중간고사의 성적 발표일.

   

   어릴 적 이후로 자신의 성적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는 아서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성적의 순위를 보러가는 그의 심장은 분명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전에는 그를 뛰어넘을 만한 지성을 지닌 자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를 맨 위의 자리에서 아래로 끌어내린 자.

   

   지금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일 게 분명한 자.

   

   루시 알른이 있으니까.

   

   “왕자님.”

   “오. 얼빵 영애. 자네도 성적을 구경하러 가는 길인가?”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조이와 마주친 아서는 최근 들어 입에 달라붙기 시작한 별명으로 조이를 불렀다.

   

   “네. 체력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확인해 두려고요.”

   

   처음에는 얼빵 영애라는 별명에 발작하던 조이이지만 최근에는 거기에도 익숙해진 듯 반응이 약했다.

   

   조금 지나면 그냥 이름을 부른 정도의 반응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흐음. 재미가 없군.

   

   처음에 짜증을 낼 때가 좋았는데 말이야.

   

   루시 알른이 또 다른 재미난 별명을 만들어주지 않으려나.

   

   “어떤가. 조이. 이번 시험은 자신이 있나?”

   “물론이에요. 어쩌면 왕자님보다 높을지도 몰라요.”

   “하하. 그것 참 재밌는 농담이군.”

   “진담입니다만.”

   

   조이가 정색을 하고서 이야기를 했지만 아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조이가 그보다 높은 성적을 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아서는 조이의 두뇌를 무시하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높은 지성을 지닌데다가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까지 거듭하는 초인이다.

   

   아서에 비견될 만한 실력을 지닌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서가 조이를 무시하는 이유는 그녀가 지닌 단점에 있었다.

   

   조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실수를 저지른다.

   

   아서가 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서 십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조이는 언제나 중요한 때마다 제 발에 걸려서 넘어졌다.

   

   그러지 않은 때를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아서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얼마 전에 함께 공부를 했을 때도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던가.

   

   “그러는 왕자님은 1등을 거머쥘 자신이 있으신가요?”

   “물론. 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만 확신하기는 어렵군.”

   

   아서가 자신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루시 알른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 학기 내내 공부와는 담을 쌓은 생활을 했지.

   

   뒤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제대로 된 성적을 거둘 순 없으리라.

   

   그렇지만 아서는 안심을 하지 못했다.

   

   천재라는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식을 부술 수 있는 존재니까.

   

   “과연 이번에도 루시 알른은 자신의 재능과 오만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아서는 마음 한 켠으론 루시가 미끄러지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른 곳으로는 그녀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빛을 증명해주길 바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빙의 전 루시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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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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