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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루터스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시끄러운 알람도, 기습을 알리는 경계 사이렌도 울리지 않는다.

         

       마냥 이질적이면서도 어쩐지 익숙한 감각을 느끼며, 루터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였다.

         

       “우웅….”

         

       옆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 이불 속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나체의 여자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흑단발의 머리카락과 가늘고 곱게 뻗은 손가락.

         

       전속부관 카린 메이븐 소령이다.

         

       “카린, 잘 때는 네 방 가서 자라니까.”

         

       “우으으으….”

         

       루터스가 그 뺨을 쿡 찌르자, 강아지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신이라 불리던 여자가 전쟁 끝났다고 이렇게 풀어지다니, 지옥에 있는 티탄이 울겠어.”

         

       3년 전, 티탄의 습격에 방치된 요새에서부터 편입된 병사는 전장에서 뛰어난 공을 세우며 일개 병사에서 소령까지 초고속 진급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고백한 카린은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의 세 약혼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

       약혼녀만 세 사람이다.

         

       귀족이라는 신분이 버젓이 존재할 적에도 약혼녀를 세 명씩이나 두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하물며 귀족들이 몰락하고 황정이 폐지된 오늘날에는 사회적 통념상으로 쉬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하렘의 주인공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레이브야드 요새 사령관, 루터스 에단이라면 대부분 그려러니 수긍해버리곤 했던 것이다.

         

       방어의 사자.

       제국의 파수꾼.

         

       전쟁은 무수히 많은 영웅호걸들을 탄생시켰으나, 업적만으로 따지자면 단언컨대 루터스가 원톱이었다.

         

       괜히 미치광이, 미하일 비스마르크 전대 총통을 실각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전승 총통’ 아서 필리아스가 인류 모두가 빚을 졌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5년이 넘는 기간동안 사망자는 0명.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던 전투도 승리로 이끄는가 하면, 최후의 공세에서도 선봉을 자처하여 티탄을 땅 끝까지 절멸시켰다.

         

       그야말로 현세에 강림한 군신.

         

       게다가 어디 전략전술에 통달했을 뿐이던가?

         

       루터스 에단의 인성은 그의 능력만큼이나 유명했다.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된 부하들의 치료도 사비까지 탈탈 털어가며 지원해주었다.

         

       방치상태였던 포비든 레이크 요새를 수복하여 중부전선의 방어선을 강화하는 한편, 그곳에 남아있던 인력들도 거둬들여 각자 한 몫을 하는 훌륭한 군인으로 키워냈다.

         

       당장 제 품에 안겨 투정을 부리는 카린 메이븐 역시 포비든 레이크 출신이었으니까.

         

       그런 위인이었으니, 절세의 미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얼굴이면 얼굴, 덩치면 덩치, 사회적 지위면 지위, 어디하나 흠결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남자.

         

       같은 남자들마저 무심코 동경을 품게 되는 사람이지 않은가.

         

       “더 잘 거야?”

         

       “네에… 조금 이따가 당직 들어가야 해서….”

         

       “그래, 나는 일어나야겠다.”

         

       루터스는 이불 밖을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카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창문 너머 우뚝 솟아오른 그레이브야드 요새 특유의 칙칙한 전경이 들어왔다.

         

       몇 겹으로 발라진 회색 콘크리트로 지어진 육면체의 빌딩과 그 주변 요새 시설들.

         

       한때는 관짝이라는 멸칭으로 불릴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레이브야드 요새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인류와 제국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뤄내긴 했군.”

         

       제아무리 몇 번의 회귀를 반복하며 감정이 무뎌져버린 루터스 에단이라 한들, 그 끝에서 마주하는 평화에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벅차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가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던 결과였다.

         

       그렇게 한가로이 기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아! 사령관님, 좋은 아침이에요.”

         

       “레아.”

         

       복도에서 꽃병을 들고 있는 레아 길리아드를 마주치게 되었다.

         

       “웬 꽃이야?”

         

       “아, 마리골드에요. 왜, 그 율리아 안케 대령 기억하시죠?”

         

       “지난번 작전에서 활약했던 연대장이잖아. 당연히 기억하지.”

         

       “종종 선물로 꽃을 보내주시는데 이번에는 좀 많이 와서요. 남는 방 안을 좀 꾸며둘까 하고….”

         

       레아 길리아드의 시선이 텅 비어있는 공실로 향했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공실로 유지되던 방이다.

         

       루터스 에단 역시 어째서인지 저 공실에는 유독 시선이 가기는 했다.

         

       방에 사람을 들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하지만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전쟁이 끝났어도 방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긴… 너무 칙칙하기는 했지.”

         

       “그쵸?”

         

       레아가 싱긋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둔 덕에 내부는 여전히 깨끗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방에 노란 꽃이 놓여지자, 그 분위기가 확실히 보다 화사해진다.

         

       “원래는 천수국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만수국이더라고요.”

         

       “별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겉으로는 그럴지 모르죠. 근데 꽃말은 아예 정 반대에요. 천수국은 이별의 슬픔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서, 조화로도 종종 쓰이거든요.”

         

       “아… 어쩐지, 한번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네. 그럼 만수국의 꽃말은 뭐길래?”

         

       루터스의 물음에 레아 길리아드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이라고 하더라고요.”

         

         

         

       ***

         

         

         

       -저는 조금 더 여기에 있을게요. 왠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앉아있으면 저도 모르게 편안해지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라.

         

       -아 참, 사령관님! 오늘 밤은 제 차례 맞죠?

         

       -…그, 그건 각자들 알아서 정하기로 하지 않았나? 난 모르는 일인데.

         

       레아와의 만남 이후에도 루터스는 아침부터 여유롭게 요새를 거닐며 그레이브야드의 전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공식적으로 종전이 선포된지도 벌써 며칠 째.

         

       처음에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생활하던 그들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확실히 점점 풀리고 있었다.

         

       “…흠?”

       “허어억!!”

       “엑, 사령관님!? 아, 아니, 저흰… 그 그게….”

         

       같은 방에서 자기라도 했던 것인지, 한 방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던 리디야 글레노바와 하인츠 비스마르크가 루터스의 시야에 딱 걸리는 해프닝이 있는가 하면.

         

       “음…… 어……, 이것이…….”

       “뭐 그럴 수도 있지. 듀랜드, 너도 실수를 하는 군.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정찰대대원들과 옥상에서 토마호크를 구워먹던 듀랜드 스털링이 실수로 작은 화재를 일으키는 사건도 있었다.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의 바람이 이곳 공동묘지ㅡ 그레이브야드에도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역을 준비하는 병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오는가 하면.

         

       전공을 인정받아 보다 좋은 근무지로 영전하게된 장교들도 많았다.

         

       “시원섭섭하지?”

         

       “그럴 게 뭐가 있다고.”

         

       사령관실의 의자에 마주앉은 드레이크 브라운이 크하하 웃음을 터트리더니, 루터스의 잔에 술을 쪼르르 따른다.

         

       발렌타인 30년.

         

       전쟁 중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고급 술이었다.

         

       “크아아~!”

         

       40도가 훌쩍 넘는 술을 드레이크는 훌떡 넘겨버리고는 시원하게 목을 긁었다.

         

       “다들 바쁘구만. 막상 그토록 고대하던 날이 오니까 싱숭생숭한 모양이야.”

         

       “그러게.”

         

       루터스 에단 역시 드레이크가 준 술을 홀짝이며 덧붙였다.

         

       마지막 회귀 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이뤄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망정이었다.

         

       혼자서 그 길을 걸어가는 고독함은 다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으니까.

         

       ‘….’

         

       그런데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더라.

         

       문득 떠오르는 위화감에 루터스가 멈칫하기도 잠시, 어느새 두 잔째를 비워낸 드레이크가 입을 열어 주절거린다.

         

       “참나… 전쟁이 끝나자마자 모든 아카샤가 한 개도 빠짐없이 작동 불능이라니. 너도 이유를 모른다면서?”

         

       “그래. 어차피 아카샤 쪽은 나보다 샬롯이 더 전문가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아까 씨발씨발거리면서 중앙 제어실로 가는 거 봤어. 제대로 자지도 못한 모양이던데?”

         

       “그러냐….”

         

       루터스는 조금 이따가 제어실로 가서 샬롯을 좀 더 케어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멀쩡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만큼은 유난히 극성맞은 군수과의 얼음 여왕이 아닌가.

         

       제때제때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완전히 토라져 더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존이랑 애들은 뭐하고 있대? 어제부터 안 보이는데.”

         

       카린 메이븐과 매한가지로 이전 포비든 레이크에서 전입해온 인원들이었다.

         

       부관이라는 직책의 한계상 소령까지 진급한 카린과는 달리, 모두가 중령 이상으로 진급하여 요새 참모진의 중역들을 도맡고 있었다.

         

       “아서 총통이 새로 안보전략국인가 뭔가를 설립한다던데.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민간 정보기관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나 보더라고. 하기사 이제 슬슬 군축이 진행될 테니까.”

         

       전쟁은 끝났다.

         

       과도할 정도로 비대한 군을 유지하고 있던 제국이기에, 새롭게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군의 축소는 필수불가결이다.

         

       “그래서… 국방장관직은 수락했냐? 그것도 아니면 최고사령관은?”

         

       “둘 다 거절했다.”

         

       루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은퇴하고 싶어. 더 이상 이룰 것도 없잖나. 예쁜 호숫가가 보이는 곳에 세워진 저택 하나 사서, 거기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그놈의 호숫가는… 호수 좋아하는 애들이 우리 부대에 어디 있다고 호수 타령인지 모르겠네.”

         

       “카린이 좋아하잖아.”

         

       “걔는 그냥 네가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거고. 가끔 보면 무서워 죽겠다니까. 네 다른 약혼녀들이랑 사이가 좋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파국이야 파국.”

         

       드레이크가 쯧쯧 혀를 차며 능글맞게 웃는다.

         

       “그러면 정말 은퇴하는 거냐? 그동안 그레이브야드는 누가 관리하고.”

         

       “당연히 부사령관이지.”

         

       “…? 뭐라는 거냐. 며칠 전부터 있지도 않은 부사령관 타령이야? 너 저번부터 이상한 거 알지? 애들도 많이 걱정하던데, 정말 괜찮은 거 맞냐.”

         

       “아ㅡ.”

         

       그제서야 루터스가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이제 슬슬 너한테도 한계가 찾아오는 모양이다. 기억에도 혼동이 있는 걸 보면 가까운 병원이라도 한번 가보는 게 어때? 이제까지 병원은커녕 의무실도 한번 안 가봤을 거 아니냐.”

         

       “그래, 네 말대로인거 같다. 좀…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그레이브야드에 부사령관이라는 직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랬다.

         

       사실 전속 부관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구태여 부사령관을 유지할 이유도 없는데다가,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력까지 빼서 집어넣을 이유가 없는 직책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부사령관이라면 루터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전략전술에 통달하는 한편, 각 병과에 대한 이해도 웬만한 영관급보다는 높아야 했다.

         

       아무리 그레이브야드의 인재풀이 뛰어나다한들 그 정도로 육각형인 인재는 찾기 힘들다.

         

       당장 루터스조차도 무수히 많은 죽음을 통해 단련된 케이스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필시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한 사람이 되었겠지.

         

       “맞아. 좀 쉬어라. 애들한테도 그만 좀 찾아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전쟁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령관이 보모인 줄 아는 애들이 많아.”

         

       “하하….”

         

       단순 농담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드레이크였으나, 루터스는 쉬이 넘길 수 없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기우처럼 느껴질 뿐이었던 위화감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마음 한 켠이 답답하고,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승전.

         

       모두가 얼싸안고 기뻐하던 요새에서, 반드시 함께 있어야 했을 누군가.

         

       하지만 도대체 누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을까.

         

       회귀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마당에, 외부의 개입으로 정신이 오염이 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루터스 에단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우ㄹ일 뿐이라고 넘겨버렸다.

         

       사실 뭐가 됐든 이제와서는 정말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말이다.

         

         

         

       ***

         

         

         

       또 하루가 지났다.

         

       일주일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간다.

         

       산맥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던 가을이 지나가고, 순백의 겨울이 다가왔다.

         

       승전 총통 아서 필리아스의 아래의 제국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본래부터 권력욕이 없었던 아서다.

         

       그는 국내의 정세가 안정화됨에 따라 총통직을 내려놓으며 본격적인 내각제로서의 전환을 진행하고 있었다.

         

       군축이 시행되었으며, 쉴새없이 총과 포탄을 생산하던 군수공장은 민간에 판매되어 생필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혁명의 주춧돌이 되었다.

         

       무수한 장병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망가진 국토의 수복도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전쟁특수에 가려져 온갖 범죄들을 저질렀던 사회 권력층에 대한 처벌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루터스 에단을 물밑에서 도왔던 비석의 주춧돌들 역시, 자연스럽게 해체.

         

       그 스스로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어쩔 수 없이 붙여다니던 암덩이같은 이들이 아니었던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한들, 그들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

         

       그다지 찾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해버린 제국이다.

         

       자연스레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그레이브야드 요새 역시 폐쇄 절차에 들어갔다.

         

       전역하는 이들과 영전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떠나간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못난 사령관 밑에서 다들 고생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인원들까지 오늘부로 그레이브야드 요새를 떠나게 되었다.

         

       루터스는 수십 번의 회귀 동안 함께 했던 전우들을 진심으로 배웅해주었다.

         

       분명 기뻐해야할 일이건만, 뭐가 이렇게 먹먹한 것인지.

         

       “행복해라.”

         

       “사령관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사령관님도 행복하십쇼!!!”

         

       그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자, 자신들의 상관을 향해 우렁차게 경례하고 위병소의 밖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으로 끝이네요.”

         

       마찬가지로 루터스의 곁에 서서 전우들을 배웅해주던 카린이 읊조렸다.

         

       “그러네.”

         

       “그러면… 저는 이제 준비하러 가볼게요. 사령관님도 짐 다 싣으셨죠?”

         

       “어제 레아랑 샬롯 편으로 다 보냈어.”

         

       “그럼 몸만 오시면 되겠네요! 이제 이 요새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실텐데, 호수 산책이라도 다녀오세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요.”

         

       “…음.”

         

       루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5층에서 활짝 열려있는 숙소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가에는 쌀쌀한 공기에도 여전히 생생한 만수국이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요새가 완전히 폐쇄되기 전까지 오지 않았구나.

         

       ‘…정말로 그냥 기분탓이었을까.’

         

       루터스가 그레이브야드가 완전히 해체되기까지, 형식상의 요새 사령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기억이 날 법하면 나지 않고, 마치 신기루와도 같이 손을 뻗으면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레아도, 샬롯도, 피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며 이야기하곤 했지만, 루터스는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쏴아아아아.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카린의 말대로, 이런 광경도 마지막이었다.

         

       새롭게 구한 터전은 남부의 어느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런 작은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은 호수를 앞에 두고, 날씨도 척박할 뿐인 북부에 비하면 훨씬 온화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으니까.

         

       “이제 슬슬 돌아가야하나.”

         

       결국 호수 끝에 다다라 미련을 접은 루터스가 발걸음을 돌렸다.

         

       분명 샬롯과 레아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오늘 저녁은 함께 먹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

         

       몸을 돌린 루터스 에단은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혼자 거닐고 있던 호숫가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호수네요.”

         

       서서히 저물어가는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이 살랑거린다.

         

       호숫가의 색처럼 아름다운 에메랄드 눈동자가 루터스를 똑바로 바라본다.

         

       “…여기가 소문의 전쟁영웅이 끝까지 사수했던 그레이브야드 요새군요? 여전하네요, 칙칙한 건.”

         

       루터스 에단은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연히 군사시설이니만큼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눈앞의 여성은 외부인이 아니었으니까.

         

       “네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 아르헨.”

         

       루터스 에단 역시 환하게 웃었다.

         

       첫 번째 회귀 이후로 처음으로 지어보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웃음이었다.

         

       언제나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었던 후회란 티끌조차 존재하지 않는.

         

         

         

         

         

         

         

         

         

         

         

       후회하지 않는 전쟁영웅 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루고 미뤄지던 작품의 완결이 드디어 났습니다.

    독자님들께 선보이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작품과 작가임에도 끝까지 따라와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70화 즈음부터 슬럼프가 왔었는데, 그게 100화가 넘어서까지 이어질 줄이야…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생각하던 전개대로 마무리 짓기는 했습니다만, 그 과정이 결코 매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나쁜 일은 연속적으로 온다고, 중간부터는 작품 외적으로도 온갖 억까가 가득했거든요.

    당장 지지난주만 해도 꽤 오래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이별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여정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은,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을 사랑해주셨던 독자분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몇 번을 감사드려도 모자랄 지경이네요, 독자님들이 제게 부어주신 사랑은요.

    사실 해소되지 않은 떡밥들도 있고, 전개 과정에서도 일부러 누락시킨 설정들이 몇 개 있습니다만은…

    그건 저 작가의 마음속에 묻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꺼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도 아니구요.

    하여튼!
    이렇게 연재가 마무리가 되었네요.

    엔딩은 며칠 전부터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따지고보면 전형적인 클리셰이니까요.

    타다이마 오카이리.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평범한 해피엔딩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결국 후피집이잖아요?

    (당시에 유행했던) 메이저한 소스들은 다 섞어 만든 작품이다보니, 끝맺음에 구태여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해피엔딩. 좋잖아요.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인데, 시련을 모두 극복한 끝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등장인물들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개인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런 엔딩이야말로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의 피날레를 맡기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저는 어느 정도의 휴식기를 가진 후, 보다 가볍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다시 뵐게요!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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