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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113 – 지금 막 결심했다>

     

    수요일 강의일정이 시작되었다.

    그 말인 즉슨, 안목키우기 강의가 시작된다는 뜻!

    정의심 주머니가 투철한 교수님이 오늘은 어떤 강의를 할지 기대하며 강의실에 나왔건만, 무슨 일인지 강의실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 왔냐, 오크노디?”

    “안녕하세요, 선배님!”

    “지난 번에 그거, 잘 써먹었다.”

    “헤헤. 저두요.”

     

    빅스톤 선배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니 옆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을 정돈하던 리즈나 선배가 흐음- 하고 의심스레 쳐다보았다.

     

    “뭐야.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선배님이 좋은 걸 주셨거든요!”

    “좋은 거?”

    “작지만 1인분이 되는 버섯이요!”

    “…버섯?”

     

    리즈나 선배가 빅스톤 선배를 째려봤다.

     

    “너, 애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설마…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방과 후에 따로 서로 윈윈하는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빅스톤 선배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앗, 품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작지만 훌륭한 버섯이었어요!”

     

    리즈나 선배의 시선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쓰레기야. 열 살 남짓한 애한테 작지만 훌륭한 버섯을 보여주고 싶어?”

    “빨간이빨버섯이라고 말해! 오크노디!! 빨리 빨간이빨버섯이라고 말하라고!!!”

    “빨간이빨버섯이에요!”

    “…진즉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그냥 작지만 훌륭한 버섯이라고 하면 이상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잖아.”

     

    바지춤을 내려다보는 리즈나 선배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빅스톤 선배가 다리를 꼬며 시선을 외면했다.

     

    “선배님 다리는 갑자기 왜 꼬세요?”

    “미안하다 후배야.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진짜 죽을 죄를 지었나보다. 그만 좀 용서해주고 저리 가면 안 되냐?”

    “오크노디. 아침부터 애꿎은 선배만 불쌍하게 왜 그리 괴롭히고 있어?”

     

    이사벨이 적당히 하라며 타이르는 통에 어수룩한 선배 놀리기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근데 강의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몰라서 물어? 당연히 과제 때문이지.”

    “아하.”

     

    티토소가의 의도치 않은 트롤링으로 인해 추가가산점과 추가벌점이 공존하게 된 과제.

    공동벌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재산평가에 대한 안목키우기>와 관련된 관련서적과 공문을 준비해오는 번거로운 일을 겪어야만 했다.

    1학년생들의 부쩍 서먹해진 거리감과 싸늘한 분위기는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한 서로를 향한 견제와 긴장감 때문이었다.

     

    “아, 안녕. 오크노디…”

    “티토소가. 입구에서 왜 그러고 있어?”

    “으읏. 왠지 들어가기가 힘들어.”

     

    하긴 지난 강의 끝나고서도 티토소가에게 심한 말을 잔뜩 했던 1학년들이었지.

     

    “다들! 티토소가 왔으니까 사과하세요!”

    “으아앗, 오크노디! 그렇게 큰 소리로 다 일러버리면 어떡해!”

    “이런 일은 빨리 화해하는 게 좋아!”

     

    괜히 내버려두면 서로 꿍해져서 나중에는 더 음습하게 싸우고, 싸우던 김에 계속 싸우다보니 적대관계가 되어서 아카데미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마련이다.

    고정이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은 학년끼리도 싸움이 벌어질 미래가 기다리고는 있지만 굳이 학기 초부터 각을 세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왜 사과를 해?”

    “티토소가 때문에 벌점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1학년생들은 툴툴거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벌점을 받아도 티토소가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게으르고 과제 준비를 안 해서 그런 거예요!”

    “너, 너가 뭘 안 다고 그런 소리를 해!”

    “그룹수석인데 공부랑 과제는 당연히 제 말을 들으셔야죠!”

     

    학교랑 아카데미에서는 성적이 깡패다.

    그래서 님 석차순위가? 한 마디면 서열정리가 끝!

    학생들은 마지못해 툴툴거리며 사과했다.

    나도 티토소가도 진심어린 사과까지는 기대 안 했다.

    자존심 높은 기프트 아카데미 학생들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어디야.

    애초에 학생의 주적은 모범생이 아니다.

     

    “자, 다들 첫 과제를 얼마나 잘해왔나 확인하도록 하지. 각자 가져온 관련서적과 공문을 꺼내보게.”

     

    반반한 얼굴과 커다란 정의심 주머니 아래로 잔혹하게 학생들을 부려먹는 교수님이야말로 주적!

    학생들은 저마다 귀족들의 재산내역을 확인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서적과 공문을 꺼냈다.

     

    훌륭한 도적이란 부유한 부잣집의 자산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 법!

    …이라는 브론즈 교수의 지론으로 주어진 과제에 학생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해봤다.

     

    “교수님. 저는 귀족가 소유의 토지를 파악하는 토지장부를 띄워왔어요!”

    “잘했네, 비비앙. 지방영주는 시장이 없이 토지소득만으로 부와 자산을 축적하는 경향이 있기에 토지를 알아보는 것은 기초 중에 기초이지.”

    “저는 영주들이 거느린 봉신이야말로 자산의 핵심이라 판단하고 각국 중앙에 제출된 영주의 봉신계약리스트를 조회했습니다!”

    “수고했네, 아돌프군. 영주의 토지를 지키는 것은 가신. 지휘계급의 보유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여기까지는 대충 공문조회로 때운 이들이다.

    티토소가는 모두에게 핍박받은 기억이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관련서적을 세 권이나 빌려왔다.

     

    “저는 각 지역에서 잉여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의 사설대여를 맡는 임대업자의 서적을 통해서 어느 영지에 부가 축적되는지 확인하고, 각 지역의 축제에 대한 음유시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잉여소출이 농민들에게 재분배되지 않은 영지의 리스트를 짜왔어요!”

     

    브론즈 교수가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아주 훌륭하네. 영주가 영지민의 복지와 편이, 영지개발에 투자하지 않을수록 부정한 재산이 축적되고 백성들이 고단할 가능성이 높지. 의적의 ‘의로움’을 놓치지 않은 훌륭한 안목이었네.”

     

    학생들은 티토소가가 칭찬 받는 것을 아니꼽게 여기면서도 그 준비성만큼은 인정했다.

    매점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사벨조차도 티토소가만큼 철저한 준비는 해오지 못했으니 그 대단함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2학년 빅스톤 선배와 리즈나 선배마저 티토소가만큼의 칭찬은 받지 못했다.

     

    “아니 쟨 강의를 안목키우기밖에 안 듣나? 왜 저렇게 준비를 빡세게 해와?”

    “변명하지 마, 빅스톤. 엄청 추해보이니까.”

     

    과제제출과 검사가 이어지며 어느덧 싱의 차례가 되었다.

    모두가 저 고독한 동방검객은 어떤 준비를 해왔을지 기대하며 바라보는데 싱은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책상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다.

     

    “싱군. 자네는 보여줄 것이 없나?”

    “검을 단련하는데 도움이 되는 과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아니기에 과감하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교수의 면전에서 단언해버리는 엄청난 패기!

     

    “와씨. 존나 카리스마 있네.”

    “멋진데?”

     

    선배들의 감탄과는 별개로 당연히 싱은 최하점으로 벌점을 받았다.

    어느덧 마지막 순번인 내 차례가 되었다.

     

    “오크노디 신입생. 자네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나?”

    “설마요.”

     

    싱처럼 개썅마이웨이로 살 수 있는 인간은 드물다.

    플레이어인 나조차도 저 정도 막장력은 지니지 못했기에 순순히 준비해온 서적과 공문을 올렸다.

    많아봤자 책 세권.

    보통은 공문 몇 장 떼온 것으로 끝난 학생들과 달리, 나는 서적과 공문으로 탑을 쌓아올렸다.

     

    “이건 토지장부등본이고요, 요건 봉신계약리스트고요, 창고임대현황과 잉여소출 재분배 리스트, 각 영지의 귀금속 매출과 경매낙찰기록을 떼어왔어요!”

     

    당연히 이 강의를 들으면서 NPC들이 조사해온 것들을 모조리 외워다가 그대로 빌린 것이다.

     

    “수석이 수석인 이유를 알 수 있었군.”

    “대박. 1등이 되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우리가 가져온 것들은 전부 있어.”

     

    남들의 노력을 도둑질 한 것처럼 조금 찔리는 구석도 없잖아 있지만 애초에 교수님부터 의적인걸!

     

    [안목키우기 강의의 과제를 가장 훌륭하게 완료했습니다.]

    [브론즈 교수가 당신을 수제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을 얻습니다.]

    [클래스 ‘의적의 수제자’로 진급이 가능합니다.]

     

    …근데 보상은 원래 이런 게 아니었는데?

    포인트 어디감?

    상은 어디가고 왜 벌만 줌?

    억울한 마음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브론즈 교수는 그것도 귀엽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진짜 못된 교수님이다.

     

    “티토소가. 다음 강의부터는 네가 수석이 될 거야.”

    “됐어. 오크노디 네 준비성을 어떻게 따라가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자신 없어.”

    “아니야. 네가 하기 싫어도 너 수석으로 만들 거야.”

    “오크노디. 그렇게까지 날 도와주고 싶은 거야?”

    “그런 걸로 하자.”

    “오크노디…!”

     

    브론즈 교수의 어그로를 티토소가에게 떠넘기기 위한 밑공작이지만 당사자도 저리 좋아하니 괜찮겠지!

     

     

    * *

     

     

    열심히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점심시간을 맞아 한참 클래스 별로 단체로 힘과 지혜를 모아 자이언트 킹크랩을 사냥해야 할 1학년들이 울상을 지으며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해요?”

    “3학년 선배들이 자이언트 킹크랩을 싹 쓸어갔어.”

    “!!”

     

    굶주린 선배들이 사냥감을 쓸어가며 졸지에 배를 굶게 된 것!

     

    “그럼 물고기를 잡으면 되잖아요!”

    “그것도 불가능하다냐.”

     

    고양이수인 제냐가 슬픈 개구리처럼 딱한 얼굴로 하소연을 했다.

     

    “2학년 선배들이 어선을 띄워서 물고기를 쓸어가고 있다냐. 물고기를 먹고 싶으면 포인트를 주고 사야한다냐…”

     

    980기 2학년 선배들이 아주 치졸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냥터를 독점하고 자릿세를 받는 대형길드 마냥 힘을 앞세워 불합리를 강요한다.

    머지? 싸우자는 건가?

    배 굶고 손가락의 염분이나 섭취하는 소금쟁이가 되어버린 동기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다.

     

    “저런. 안됐네요!”

    “오크노디도 무럭무럭 먹어야 키가 클 텐데 불쌍하다냐.”

    “전 괜찮아요. 아카디아 언니의 티타임에 초대받았거든요!”

     

    식품도감도 채우고 배도 채우고 일석이조.

    기아체험은 남의 일이라고 여기며 아카디아를 찾아갔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디. 상황이 이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해서 오늘은 저도 굶기로 했어요. 동방에서 건너온 약과를 시식하는 티타임은 취소랍니다.”

     

    1학년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2학년을 부순다.

    지금 막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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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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