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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얼마 뒤 아카데미 외곽.

         

       “악마님! 악마님!”

         

       분홍톤 소녀는 공학과에서 시범 설치한 검은 열차로 달려갔다. 머리 부분인 기관차 부분만 덩그러니 있는 열차 주변을 빙빙 돌더니 양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열차라는 것! 칙칙포포!”

         

       무려 먹구름이 나와요!

         

       『호오.』

         

       악마가 턱을 문지르며 열차에 다가갔다. 주먹이 검은 철제를 두들겼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발전하는군.』

         

       와아, 나이대가 느껴지는 발언.

         

       오래 살면 이렇게 되는 걸까.

         

       난 안 그래야징.

         

       『꽤 무거워 보이는데 제대로 움직이긴 하는 건가?』

         

       혼잣말에 고학년 선배가 머뭇거렸다.

         

       눈앞의 남자가 자칭 사용인인데 당당한 태도도 그렇고 각하의 대우도 그렇고 뭔지 모를 상대라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서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파스텔은 바로 해답을 알려줬다.

         

       “직접 타 보면 되죠! 선배님! 어서 석탄 삽질해 주세요!”

         

       고학년생은 입장을 깨닫고 조용히 삽을 들었다. 삽질 소리가 났다.

         

       파스텔은 폴짝 뛰어 기관차에 올라탔다.

         

       “악마님도! 악마님도!”

       『기다려 봐라.』

         

       악마가 철도와 열차 바퀴를 관찰하다가 올라탔다. 고학년생이 열심히 석탄을 삽질해 화실에 넣자 열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외곽에 작게 설치된 원형 철도를 따라 검은 바퀴가 달렸다.

         

       『호오. 정말 이 무게에 바퀴가 굴러가는군.』

         

       파스텔은 괜히 뿌듯해졌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뒤쪽에 몸통을 줄줄이 달면 대량 운송이 가능해져요! 마차보다 훨씬 대규모에 비공정보다 월등히 값싼 운송!”

         

       대규모 운송은 규모의 경제를 유발하고 물가 하락을 만들며 저임금을 감수 가능하게 하고 공장 확충과 공급 팽창을 일으켜 시장 경제를 가속시키는 어쩌구저쩌구!

         

       부자가 될 거야!

         

       파스텔은 백만 배 더 부자가 되기로 했다.

         

       “모든 마차를 독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모든 비공정! 뭔가 큰일을 하려면 제 도움이 필수적이겠죠! 모두가 제 앞에서 눈치를 보고 반짝반짝 노란 선물을 건네주게 되는 거예요!”

         

       우와아!

         

       입이 헤 벌어졌다.

         

       독점까진 아니라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그 비슷한 위치가 될 수 있어!

         

       지금 아무도 초창기 철도 인프라는 민간이 먹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구!

         

       “모두 파스텔 각하께 무릎을 꿇는 미래!”

         

       허억.

         

       난 딱히 꿇으라고 한 적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짜릿짜릿 오싹오싹할 듯.

         

       “흐아.”

         

       파스텔은 몸을 감싸며 바들 떨었다.

         

       이것이 권력.

         

       권력자 파스텔이 됐지만 아직도 미약한 권력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라버려.

         

       고학년생이 삽질하며 힐끔 봤다. 그러다 황실 능멸을 못 들은 척 열심히 삽질에 집중했다.

         

       『대규모 운송 수단인가. 발전이 기대되긴 하다만, 이런 속도면 민간 운용으론 당장 썩 유용하진 않겠군. 화물이 많아지면 여기서 월등히 느려지는 거 아닌가?』

         

       악마님의 무지한 발언.

         

       하지만 파스텔은 아카데미 풍경이 지나치는 속도를 체감하고 살짝 공감해 버렸다.

         

       “시속이 어떻게 돼요?”

       “네?”

       “시속이요.”

       “석탄 품질에 따라 살짝 다르긴 하지만 지금은 시속 15km쯤 됩니다.”

         

       사람이 달리는 속도…….

         

       보다 느리다!

         

       으이이.

         

       파스텔은 어째 지나치는 게 느려서 대화도 가능할 듯한 돌멩이 친구에게 인사했다.

         

       “안녕!”

         

       대답이 돌아왔다.

         

       돌멩이 친구: 안녕!

         

       허억.

         

       진짜 인사가 되잖아!

         

       으이이이.

         

       “많이 느리긴 해요! 사람보다 느린 수준!”

         

       땀을 흘리며 삽질하던 고학년생이 움찔했다. 공학도로서 자존심이 걸린 눈빛이 됐다.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100m 달리기로 재면 열차가 아직은 다소 느리지만 운행과 운송은 킬로미터 단위입니다!. 사람이 수십 킬로미터를 전력 달리기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파스텔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다 정정했다.

         

       “자전거보다 느린 수준!”

         

       고학년생이 입을 뻐끔거렸다. 반박 못 하고 삽질을 다시 시작했다.

         

       “자전거도 최신 제품인 데다가 화물 운송에 적합하지 않고…….”

         

       중얼중얼.

         

       악마가 풍경의 속도를 보며 고심했다.

         

       『속도가 중요한 건 운행 시간 때문이다. 보아하니 철도 부설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유지 비용까지 계속 쏟아야 한다. 열차 속도가 느리면 단위 시간당 수익이 낮아져. 민간에서 상용화해 상단이 부도가 안 나려면 열차 속도부터 올려야 할 거다.』

         

       헛.

         

       악마님의 무지한 발언이 아니라 악마님의 합리적 발언이었어.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연륜이 느껴져요!”

         

       이게 400년 플러스알파의 지혜!

         

       나이 차이에 압도되는 기분!

         

       악마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봤다.

         

       『밀무역에서 벗어나는 건 매우 좋다만 그렇다고 신기술에 리스크 큰 투자를 하라는 건 아니었다.』

         

       철도 상단으로 마계 연줄을 얻어 건설 골렘의 마석 연료까지 밀무역할 생각이던 파스텔은 묘로롱~해졌다.

         

       『왜 그러지?』

         

       그냥 분홍분홍!

         

       파스텔은 맹한 표정을 지었다.

         

       바보바보 파스텔인 거임.

         

       『흠?』

         

       악마가 미심쩍게 살펴봤지만 금세 관뒀다.

         

       『당장 열차 기술은 민간 운용으론 수지타산이 안 나올 거다. 할 거면 국가와 거래하는 게 좋겠지. 군대와 엮어서 제국의 투자를 받아도 좋긴 하겠다만, 군축 기조니 어려울 듯하고. 마계 연합왕국이 좋을 거다. 이빨이 빠지긴 했어도 국가는 민간과 차원이 다르니. 다만 크래프트 가문이라는 게 곤란하긴 할 텐데…….』

         

       붉은 눈동자가 차기 마왕을 봤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군. 해봐야 알 거 같다.』

         

       마계 연합왕국.

         

       여태 마계 거주자를 위해 선량한 배송을 몇 번씩 했건만 완전 낯선 느낌.

         

       “악마님은 마계에 친구 없으세요?”

         

       여태 가문 원한과 엮인 과거사는 민감한 문제라 건들기 불안해 질문도 공부도 잘 안 했다.

         

       다만 반마족주의자 마리우스 교수님 등에게 몇 번 흘려듣기로는 마계에서 오래 지내셨다고?

         

       악마는 양심 없는 질문을 하는 크래프트를 보며 순간 굉장히 어이없어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젠 없다.』

         

       별로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파스텔은 눈치껏 시선을 돌렸다.

         

       화제 잘못 꺼냈어.

         

       유일한 보호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건 좋지 못하다.

         

       고학년생의 힘찬 석탄 삽질을 멍하게 구경하다가 풍경을 돌아봤다.

         

       풍경 저편에서 행정 직원이 전력으로 달려왔다.

         

       “각하!”

         

       얼마나 긴급한 일인지 달리는 열차 옆으로 나란히 달릴 정도였다.

         

       열차 완전 느려!

         

       “각하!”

         

       직원이 반응을 재촉했다.

         

       파스텔은 힘차게 손을 들었다.

         

       “네! 위대한 각하 여기 있어요!”

       “상단 인수 계획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직원이 헉헉대며 빠르게 서류를 꺼냈다. 서류가 바람을 못 이기고 날아갔다.

         

       “어억!”

         

       손이 급박하게 헛손질했다.

         

       “우와아!”

         

       파스텔은 열차 밖으로 상체를 내밀었다. 뒤편으로 날아가는 서류에게 손을 흔들었다.

         

       “서류 친구 바이바이!”

         

       서류 친구와 함께 인사고과도 바이바이 될 직원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저건 나중에 주워 오시고요! 일단 요점만 말해주세요!”

         

       직원이 서둘러 진정했다.

         

       “제국은행이 인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상단 인수를 원한다면 절차 무시하지 말고 경매에 참여하랍니다!”

         

       으아?

         

       파스텔은 직원 반응대로 심각한 문제인지 긴가민가했다. 판매자와 거래해 깔끔하게 구매하면 좋지만 경매도 어쨌든 큰 문제까진 아니지 않나?

         

       우리는 하늘섬 행정부라구.

         

       직원이 정보를 덧붙였다.

         

       “경쟁 상대는 마계주식회사입니다!”

         

       파스텔은 맹해졌다.

         

       그게 누구.

         

       직원이 요약 정리해 줬다.

         

       “하늘섬 전체 예산보다 돈이 많습니다!”

         

       허억.

         

       “으아아!”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 열차……!”

         

       절차 무시하게 해줘요오!

         

         

         

       #

         

         

         

       파스텔은 깊게 고민했다.

         

       한 손에 들린 검은 정장과 반대 손에 들린 가을 원피스를 번갈아 봤다.

         

       “비즈니스 전투 전에 무엇을 입어야 하는가.”

         

       심각한 문제.

         

       악마가 픽 웃었다. 상식 문제를 고심하는 귀여운 딸내미를 보는 눈빛이었다.

         

       『당연히 정장이다.』

         

       으이.

         

       파스텔은 기분이 복잡해졌다.

         

       이거 입으면 분홍분홍이 변질되는뎅.

         

       그래도 정말 가을 원피스는 얕잡혀 보일 거 같아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불리한 상황에 얕잡히는 건 곤란.

         

       거울을 보자 소녀의 검은 정장에 분홍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분홍 눈동자가 몽롱하게 반짝였다.

         

       으이.

         

       이거 진짜 악마.

         

       정장 차림에 분홍 머리는 너무 스탠다드한 악마 모습인데.

         

       파스텔은 악마님에게 매달렸다.

         

       “악마니임! 이 모습으로는 이전처럼 억울해할 수 없어요!”

       『뭔 이상한 이유인 거냐.』

         

       농담 아니고 정말 크래프트!

         

       완전 이중적!

         

       일단 경계부터 받아도 이해가 되는 외형!

         

       이런 모습으로는 내 분홍분홍 외견을 보고 믿어줘! 라는 평소 대사를 당당히 칠 수 없어!

         

       “억울해애!”

         

       파스텔은 외치다 문득 깨달았다.

         

       허억.

         

       억울해할 수 있음.

         

       분홍 눈동자가 굴러갔다.

         

       그럼 그냥 억울해 해야징.

         

       “억울해애!”

         

       으아아!

         

       나는 완전 착하고! 완전 선량한데!

         

       쪼끔 권력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할 뿐인데!

         

       이건 너무 악마 모습이잖아……!

         

       “악마님! 위로! 위로!”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뭘 위로 하라는 거냐.』

       “어쨌든 위로요!”

         

       악마가 등을 토닥여줬다.

         

       “흐아아.”

         

       벚꽃벚꽃 파스텔 완전 망함.

         

       행정 직원이 노크를 하고 객실로 들어왔다.

         

       “곧 M&A 매물 설명회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지금 가셔야 합니다.”

         

       본격적 경매 전에 제국은행에서 준비한 설명회에 참여하러 온 참이었다.

         

       완전 전초전.

         

       “흐아.”

         

       소녀는 악마 품에서 떨어졌다.

         

       정장 차림 하면 이런 모습이 될 줄 알고 패션 소품으로 가져온 막대 사탕을 꺼냈다.

         

       막대 사탕을 입에 물었다. 사탕이 깨지며 소리를 냈다.

         

       “가볼까.”

         

       분홍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비즈니스 하러.”

         

       크래프트 가주는 객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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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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