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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내가 단단하게 토진궁을 감싼 결계 앞으로 나섰다.

     

    “선생님, 주의하십시오.”

     

    타냐와 브루노가 내 앞을 든든하게 방어하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앰브로시아는 옆에서 성서를 펼친다.

     

    “자애로운 여신님께서 두루 굽어 소인들을 살피리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귀염뽀짝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기도를 읊으니 그다지 위엄은 없었다.

     

    별개로 성능은 확실하다.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신성력이 풍성하게 피어올랐다.

     

    나 역시 수첩을 꺼내들었다.

     

    ‘시모어에게 배웠었지.’

     

    주문은 완성까지 인식, 발동, 시전의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인식. 내가 쓰려는 주문이 무엇인지 지식으로 확신한다.’

     

    비록 회귀 때문에 스킬창에는 없어도 수도 없이 사용해왔던 주문이기에 정확하게 기억한다.

     

    지금 사용할 건 [상급정화]. 지속성이 있는 방어형 흑마술에 대한 파훼주문이다. 결계 계통에 유효하다.

     

    저주 계통은 디버프형 주문이라 정화는 안 먹힌다. [해주]로 대응해야 한다.

     

    상급정화는 일반정화보다 어렵지만 그만큼 높은 위계의 흑마술에 대응 가능하다.

     

    여러 흑마술을 동시에 무효화하는 건 광역정화라 하여 더욱 어려운 주문이다.

     

    ‘관련 지식을 명확히 해 인식을 완료.’

     

    다음으로 발동. 마법에서는 마법진을 그리는 과정이다. 마법진은 일종의 수학 공식과 같다.

     

    신성주문은 기도하면 믿음에 의해 대충 기적이 일어났다는 느낌이라 수식화된 진은 필요 없다.

     

    내가 주문의 원리에 대해 이해도가 깊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마법이 명확한 방정식으로 주문을 구성하는 이과적인 스타일이라면, 신성주문은 감각으로 링을 고리에 던져넣는 예체능이랄까.

     

    “시간의 선행자가 길을 선택하매, 운명을 관장하던 여신이 눈을 돌렸음이라.”

     

    “예편 7장 101절이라. 어려운 구절을 외고 계시구려.”

     

    내 기도에 앰브로시아가 한 마디 건네며 신성력을 보조해왔다. 나는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신성주문의 발동은 이 선언으로 충분하다. [상급정화]가 실체화하여 세상에 드러난다.

     

    여기에서 참조하는 스탯이 바로 신앙심이다. 마법에서는 마력을 참조한다.

     

    4위계 정도면 해당 스탯이 50에서 60은 되어야 안정적으로 발동한다.

    스탯이 낮다면 발동 단계에서 펑크가 난다. 근력이 없으면 무거운 검을 못 드는 건 당연하니까.

     

     

    이제 주문의 효과를 적용하는 마지막 단계, 시전으로 들어간다.

     

    가동 준비가 된 주문은 공장에서 막 출하된 자동차와 같다. 인식이 설계도, 발동이 제작 공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완제품이 되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연료가 없으면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 연료가 되는 것이 마법은 마나, 신성주문은 신성력이다.

     

    지금 남은 신성력은 35.

     

    4위계 주문을 시전하기에 아주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앰브로시아가 보조해준다.

     

    화아아악―

     

    나와 앰브로시아에게서 뿜어진 새하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신비한 아우라다.

     

    주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시전을 마친다.

     

    “상급정화.”

     

    탁, 수첩을 접는다.

     

    ―파아앗!!

     

    신성력이 마치 살아있는 정령처럼 결계를 향해 비행했다.

     

    아끼지 않고 몸을 부딪치며 흑과 백이 화려하게 섞여 춤춘다.

     

    접촉부부터 쩌적, 금이 가며 결계가 조금씩 깨져나갔다.

     

    “오오!”

    “이것이 정화주문인가.”

     

    기사들이 신성력에 눈을 찡그리며 감탄했다. 곧 한 개 부대가 무리없이 진입할 수 있을 정도의 입구가 생겨났다.

     

    “통로가 생겼다!”

    “진형을 유지해라. 진입하겠다.”

     

    지그문트가 검을 치켜들고 친위대를 선봉으로 기사들이 진격한다.

     

    그들이 정문 현관에 진입하기도 잠시.

     

    ―콰아앙!

     

    폭발이 일고 몇 명이 나가떨어졌다.

     

    “흑마술사다!”

    “전투 2진형으로!”

     

    내부에서 흑마술사 예장으로 갈아입은 궁중마법사들이 진을 그리며 나타났다.

     

    카밀라의 제자들이었다.

     

    “역시 흑마술사였나. 자매님, 축복으로 보조합시다.”

     

    “함께하겠소. 보호를 맡지. 선생이 강화를 부탁하오.”

     

    앰브로시아가 권법이라도 선보이듯 팔을 내뻗으며 다음 주문을 시전했다.

     

    “소녀의 팔은 짧을지언정 축복은 어느 장강보다도 오래 갈 것이오!”

     

    기사들의 흑마술 내성이 올라간다. 실전에서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조금만 훈련하면 용사파티에서 뛰어도 무리 없을 정도겠는데. 모양새가 잡혀있다.

     

    후방에서 아셀라가 명령을 내렸다. 월광궁 기사들도 친위대와 합세하여 흑마술 폭격을 돌파한다.

     

    “호오. 기사들을 잘 키웠군, 아셀라.”

     

    “황송하옵니다.”

     

    황제가 감탄하며 넌지시 아셀라에게 칭찬을 던졌다. 아셀라는 흐름을 타 기사단에 다음 포진을 명령했다.

     

    “저건 뭐지?”

    “주의하라, 무언가 있… 아악!”

     

    내부로 진입하던 친위대 한 명의 팔이 순식간에 어둠에 잡아먹혔다.

     

    딸그랑, 들고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부상자를 이끌고 기사들이 대피한다.

     

    쿵, 쿵. 천황궁 내부에서 나타난 그 형체를 보고 전원이 식겁했다.

     

    “악마다…!”

     

    붉은 피부를 가진 커다란 덩치의 야수. 공허 차원에서 살아간다는 악마였다.

     

    “악마 소환까지 하고 있었다니, 토진궁을 무슨 흑마술 실험장으로 쓰고 있었는가. 카밀라, 모습을 드러내라!”

     

    황제가 분노에 차 위엄 있게 외쳤다.

     

    사람의 대답은 없고, 대신 악마가 흉포한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악마라니, 상위 마족 아니오! 엄청나게 강하지 않소이까?”

     

    악마가 일으킨 풍압에 모자를 꽉 눌러 잡은 앰브로시아가 식겁했다.

     

    나는 그녀가 긴장을 풀도록 양어깨를 주물러줬다.

     

    “응갸악.”

     

    “괜찮습니다, 자매님. 악마라고 같은 악마가 아닙니다. 1품계가 제일 강하고 9품계가 밑인데, 3품계 이상은 인간형을 하고 있고 언어도 쓸 줄 알지요.”

     

    “거, 거기, 뭉쳐있단 말이오오…! 흐약.”

     

    “저 악마를 보면 야수의 형태이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파수견, 6품계 아래일 겁니다. 머리도 한 개니 저희 기사들이라면 충분합니다.”

     

    “선생이 그걸 어찌 아시오? 오, 거기는 좀 괜찮… 호옥.”

     

    “타냐, 도전해보겠어?”

     

    내 제안에 타냐가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였다.

     

    “맡겨주십시오.”

     

    타냐가 땅을 박차자 공기가 갈라지며 풍압이 일었다.

     

    태풍은 한 개 더 있었다. 친위대의 소드마스터, 지그문트도 호기롭게 적을 향해 돌진 중이었다.

     

    “빛을.”

     

    그가 치켜든 대검이 번쩍였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검사만 쓸 수 있는 오러였다.

     

    쿵, 쿵. 악마견도 큰 덩치를 이끌고 돌진한다. 충돌까지 5미터.

     

    콰앙!

     

    악마견의 이빨과 대검이 충돌하자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의 대리석이 깨지며 공중을 날았다.

     

    “흐음.”

     

    악마견과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지그문트. 악마의 붉은 눈을 죽일 듯 쏘아본다.

     

    누가 적의 힘을 뚫어내 상대를 찢는가.

     

    그 대치의 순간, 악마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그문트의 뒤에서 타냐가 높게 뛰어올랐다. 악마견의 등으로 착지하며 검격이 그어진다.

     

    ―촤아아악!

     

    타냐의 예리한 검기가 두꺼운 살가죽을 뚫고 악마를 베어낸다.

     

    지그문트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치를 해제한 후 악마견의 머리를 향해 이격, 삼격을 빠르게 연속으로 베었다.

     

    “카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며 손톱을 내지르는 악마견. 타냐가 능숙하게 회피기동을 선보인다.

     

    “호오.”

     

    지그문트와 타냐의 눈이 맞았다. 검사들에게 별다른 말은 필요 없다는 듯, 그 눈빛만으로 합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검이 그림 같은 궤적을 그리며 합쳐진다.

     

    ―파아악!

     

    약점을 꿰뚫은 참격과 함께, 악마견이 휘두르던 팔을 멈추었다.

     

    그 손톱 끝은 타냐의 눈과 고작 1센티미터 정도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타냐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잔심을 유지했다.

     

    스르륵, 거대한 덩치가 힘을 잃고.

     

    ―쿠우웅!

     

    악마가 지상으로 쓰러졌다.

     

    “오오, 단숨에 쓰러트렸군!”

    “역시 소드마스터의 검이오.”

    “함께 싸운 저 검사는 누구인가?”

     

    친위대가 술렁였다. 대검을 나뭇가지처럼 탁 휘두르며 피를 털어낸 지그문트가 타냐에게 말했다.

     

    “인재로군. 기사, 이름은?”

     

    타냐는 소드마스터 앞에서도 주눅드는 일 없이 대답했다.

     

    “월광궁의 타냐요. 고트베르크 선생님의 호위를 맡고 있소.”

     

    오히려 지나치게 힘을 준 느낌인데.

    타냐는 큰 자리에서 괜히 멋을 부리는 습관이 있단 말이지.

     

    나중에 놀려야겠다.

     

    “생각 있으면 시간 날 때 천황궁 병영을 방문하시오.”

     

    “기꺼이.”

     

    두 검사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 타냐다. 한 번의 공동작전에서 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지그문트에게 영향받으면 금방 엄청 강해지겠는데.

     

    나중엔 내가 상전으로 모셔야 할지도 모르겠다.

     

     

    악마견은 쓰러트렸지만 기사들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적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어서 진입할까요?”

     

    “재정비가 우선이다. 궁 안에 어떤 함정을 설치했을지 모를 일이니 위험하다.”

     

    황제도 지그문트의 판단이 옳다 여겼는지 별다른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때 아셀라가 황제에게 간언했다.

     

    “폐하, 본녀에게 흑마술사를 끌어낼 수단이 있습니다.”

     

    “마법인가.”

     

    “그렇습니다.”

     

    “으음.”

     

    황제는 조금 고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거라, 아셀라.”

     

    “예.”

     

    아셀라가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지면에 커다란 주 마법진이 새겨진다.

     

    이어 그에 연결된 다음 마법진이 차례로 성처럼 연결되어 구축된다.

     

    총 다섯, 5위계다.

     

    “얼음성.”

     

    ―쿠르르릉!

     

    아셀라의 황금빛 마나가 발현한다.

     

    토진궁의 바닥부터 얼음의 산이 솟아오르듯 피어오르며 점점 건물을 잠식해간다.

     

    화려한 대리석을 무너트려 너덜너덜한 폐허로 만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대단하군.”

    “3황녀는 대마법사인가?”

     

    친위대가 감탄하기도 잠시, 토진궁의 최상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녀를 발견한 기사단이 어느 때보다도 경계를 높이며 검을 고쳐 쥐었다.

     

    검은 마나를 몸에 두르고 나타난 마녀, 카밀라가 공중을 부양하며 지상에 착지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폐하.”

     

    그녀가 싸늘한 표정으로 황제에게 차갑게 증오를 내비쳤다.

     

    “카밀라.”

     

    “너도 아주 기세가 등등해졌구나, 아셀라.”

     

    카밀라를 목격한 아셀라는 긴장한 듯 대답 없이 턱을 당겼다.

     

    카밀라는 다소곳이 모은 양손과 다르게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실망했습니다, 폐하. 아니, 발타사르.”

     

    카밀라가 황제의 이름을 불렀다.

     

    당연하지만 모욕이다. 즉위한 순간부터 황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제 아주 막 가자는 거구만.

     

    황제는 카밀라를 향해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토벌하겠다, 흑마술사.”

     

    “그렇다면 저는 저항하겠습니다.”

     

    카밀라가 눈을 번쩍 뜨며 그 새까만 눈동자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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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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