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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원더스타인은 마을을 내려가면서 이번 일로 얻은 성과를 정리했다.

         

       살덩어리를 처치하면서 놈에게 남아 있던 잔여 데볼루트를 흡수한 덕분에 상태창은 다시 부하가 걸려서 사용할 수 없었다.

       암산으로 남은 양을 계산했다.

         

       일단 데볼루트의 총량은 마을에 들어오기 전보다 줄어 있었다.

       두 번에 걸친 기초 능력치 상승이 있었지만, 그것을 데볼루트로 치환해 봐도 마이너스였다.

       방금 흡수한 데볼루트까지 더해야 겨우 본전이 될까 말까였다.

         

       데볼루트 수용량을 확장하는 데 1000개가 넘는 데볼루트를 써버린 탓이었다.

         

       1966개의 데볼루트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니.

       TT0가 끝나는 날까지 이걸 다 채울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나마 마야의 호감도가 30을 돌파한 것을 위안 삼기로 했다.

         

       그는 품에서 납작한 튜브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받으세요.”

       “이게 뭔가요?”

       “새로운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설마 마도구인가요?”

         

       그녀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 원더스타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면 좋아할 줄 알았다.

         

       “물론이죠. 마야 양에게 딱 맞는 게 우연히 손에 들어왔답니다.”

         

         

       이름: 투명 물감

       적용 대상: 물체의 표면

       효과: 대상을 투명하게 만드는 물감을 생성합니다. 지속시간은 마력의 농도에 비례합니다.

       요구 자원: 마야의 호감도 30, 마력

         

         

       투명 물감은 TTT에 등장하는 마야 전용 아이템 중 하나였다.

       마야는 환상 마법의 천재라는 설정답게 투명화 주문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설정대로 마야가 투명화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버리면,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망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투명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투명 물감이라는 소비 아이템을 먹어서 투명화 게이지를 충전해야 했다.

       게임에서는 딱 적절한 양의 투명 물감이 스테이지에 뿌려져 있었다.

         

       호감도 보상으로 주어진 이 투명 물감은 게임의 것과 디자인이 같았지만, 소비 아이템은 아니었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튜브에서 투명 물감을 얼마든지 짜낼 수 있었다.

         

       마야는 원더스타인의 설명을 들으며 그의 손에 든 물건을 바라봤다.

         

       그는 예전에 그녀에게 투명화 마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투명화는 환상 마법 중에서도 아주 고난도에 속한다고 답했다.

       순수하게 마법만으로 투명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3명도 안 될 거라고.

         

       왜 그런 걸 묻냐는 마야의 질문에 그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라 답했고, 그녀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이후로 그는 그녀에게 염동력으로 물감을 뿌리는 훈련을 시켰다.

       그것 덕분에 그녀는 환상에 물리력을 실을 수 있었다.

       서커스단은 그녀 덕분에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2가지가 훈련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장님은 능력에 어울리는 마도구 역시 구비 해두었다.

         

       투명 물감.

       그는 그녀에게 투명화에 대해 물었을 때부터, 물감을 통제하는 훈련을 시켰을 때부터, 이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니…….

       그는 정말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후후, 스케치북을 잃어서 속상했었죠?”

         

       미소짓는 그를 바라보며 마야는 복잡한 감정적 동요를 느꼈다.

         

       당신은 바보다.

       내가 속상했던 것은 스케치북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그것을 걱정했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또 다른 것을 선물해주었다.

       이것을 받는 내 마음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

         

       “아, 또, 가격이 얼마나 묻는 표정이군요,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얼마 안 하니까요.”

         

       그의 말에 마야는 속으로 한숨을 토했다.

         

       상대방의 말이 거짓임을 알아차리고 대신 마음을 헤아려야 되는 상황이 그녀에게 너무나 불편했다.

         

       나 하나의 해석만으로 완전했던 세상이었는데…….

       다른 이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를 변화시킨 당신이 원망스럽다.

       타인을 신경 쓴다는 게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힘겨운 일일 줄 몰랐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타인 중 하나가 당신이라는 게 즐겁다.

         

       마야는 그가 주는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의 품속에 들어있던 것이라 그런 걸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고맙습…….”

         

       감사의 인사를 건네려던 마야는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무언가 풀썩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뒤를 돌아본 그녀는 길가의 건초 더미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원더스타인을 발견했다.

       그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아, 이거 생각보다 무리한 모양입니다……. 하하, 몸이 이렇게 망가진 줄 몰랐어요…….”

         

       그는 웃는 남자의 진통 효과에 너무 기댔다.

       공성무기 이상 가는 파괴력과 정면으로 부딪쳤는데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전투 중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고통과 피로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아픔을 무시하고 웃을 수 있다는 건 마냥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 회복력이라도 멀쩡했다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마지막에 흡수한 데볼루트 때문에 몸에 부하가 걸려서 능력치도 떨어진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잠이 너무 오는군요…….”

         

       원더스타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졌다.

         

       마야는 쓰러지려는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염동력 덕분에 무리 없이 그를 받쳐 들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겨 주었다.

         

       구름이 물러가며 달빛이 그의 얼굴에 비쳤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조각 같은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잠든 와중에도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그는 자신이 아프고 다치는 상황에서도 계속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녀는 그의 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남자답지 않게 매끄러운 피부였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유를 굳이 대자면 충동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그녀의 손은 이어서 그의 감긴 눈을, 그의 오뚝한 콧날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얼굴을 더듬으며 삼차원 형태를 하나하나 기억했다.

         

       스케치북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얼굴을 완벽히 담아서…….

         

       -웨……옹……?

         

       고양이 울음소리.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퍼뜩 손을 뗐다.

         

       건초 더미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월리?”

         

       그건 그녀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환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환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의 환상 마법은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선명한 환상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이런 건 ‘상’의 신비를 활용하는 보통의 환상 마법사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마음의 작용으로 환상을 만들어내니까.

         

       상의 신비를 인지하지 못하는 그녀가 어떻게…….

         

       -마음에 도화지가 비어있는 사람은 평생 환상 마법을 익힐 수 없습니다.

         

       아카데미의 선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선생이 그녀에게 충고랍시고 던진 말은 그녀가 싫어하는 신비주의에 기반한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마음의 도화지라니.

       자신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상에 기반한 환상이 구현되었다는 것은…….

       설마 그녀의 마음속 도화지에 무언가 채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웨…옹….

         

       월리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가 뭔가 못마땅한 것을 발견했을 때, 짓던 표정이었다.

         

       마야는 곧 자신이 방금까지 하고 있던 행동을 떠올렸다.

       그녀의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그녀는 그녀가 취해있던 ‘어떤 감정’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다.

       동시에 상으로 구현되었던 월리의 환상 역시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비웠다.

       깨끗하게.

       도화지는 다시 새하얘졌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몸을 품에 안고 지표면을 미끄러지듯이 언덕을 타고 내려갔다.

         

       -웨오오옹!

         

       마음 한구석에서 월리가 불만스럽게 울어댔지만 무시했다.

         

       몇 분 후,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나타났다.

       머리가 건물 지붕에 닿을 만큼 큰 녀석이었다.

       놈은 건초 더미에 머리를 박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곤 곧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리며 마야가 남기고 간 자취를 뒤쫓아 달렸다.

         

         

       ***

         

         

       괴물서커스단 일행은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 계속 서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마을에 저주 역병이 퍼진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과 관련이 깊다는 것도.

         

       무작정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일단 기절한 마을 사람들을 깨워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을 때였다.

         

       마부석에 앉아 자기네들끼리 찍찍거리고 있던 랫맨들이 갑자기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들은 털을 바짝 세우고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부단장! 부단장!”

         

       랫맨들이 엘라를 불렀다.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녀를 찾는 것은 그녀가 요리한 음식을 먹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녀는 안 그래도 원더스타인이 이곳에서 무슨 짓을 벌이는가 걱정이 돼서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랫맨들이 갑자기 단체로 꽥꽥거리자 깜짝 놀라 그들을 돌아봤다.

         

       “찍찍! 도망쳐야 한다!”

       “이곳! 위험하다!”

       “온다! 오고 있다!”

         

       랫맨은 위기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족으로 유명했다.

       지진이 날 것 같으면 며칠 전부터 도피 준비를 한다는 속설이 떠돌 정도였다.

       그들이 이렇게나 호들갑을 떤다는 것은 확실히 무언가가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슨 일인데?”

         

       엘라의 물음에 랫맨들은 펄쩍펄쩍 뛰었다.

         

       “위험하다!”

       “심연의 냄새가 난다!”

         

       랫맨들의 말에 단원들을 어리둥절해 했다.

       뜬금없이 심연의 냄새라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랫맨들이 동시에 입을 흡 다물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단원들도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책 근처에 있는 3층 건물.

       그 지붕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이족보행 생물로 보이는 커다란 그림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놈은 허리를 굽히고 있는데도 우몬과 비슷한 키로 보였다.

       실제 몸길이는 3m가 넘을 것 같았다.

         

       엘라는 놈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살폈다.

       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섞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처럼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

         

       토끼 머리를 달고 있었지만, 귀가 있어야 할 장소에는 순록의 것과 같은 큰 뿔이 있었다.

       두 다리에는 염소의 발굽이, 두 팔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그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있었다.

         

       “저, 저게 마귀?”

       “우리 서커스단에 초청하고 싶군요.”

       “다들 조용히 해!”

         

       마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놈은 목책 바깥으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저 풀과 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행은 숨을 삼키고 몸을 웅크리며 놈의 동태를 살폈다.

         

       놈이 다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 일행들 바로 근처에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괴물이다!”

       “여기들 와봐! 이놈들이 우리보다 앞서가던 분들을!”

       “죽였구나! 이놈들!”

         

       마을을 나오던 일군의 주민들이었다.

       그 숫자는 20명이 넘었다.

       그들은 각자 손에 무기를 들고 단원들을 겨냥했다.

         

       단원들은 아연실색해서 주민들과 지붕 위의 마귀를 번갈아 바라봤다.

         

       “끼끼끼!”

         

       토끼 머리 마귀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동자와 뾰족한 이빨이 달빛에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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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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