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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베니는 샤도우가 없으면 정신적으로 취약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도우와의 연결을 끊어내고 싶은가.

       

       그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베니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삶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해.”

       

       삶을 돌려받는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짧은 한마디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절절할 정도로 전해져왔다.

       

       하여 자세를 바로잡고, 조금 전까지의 장난치던 분위기를 가다듬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좋아. 요나 너는 내 실험을 돕기로 했으니 들을 자격이 있겠지.”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는 베니. 그녀가 소중한 것을 늘어놓듯 조심스런 태도로 말을 이었다.

       

       “우선 나는 샤도우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거나, 언젠가 떼어내야 할 인생의 오점 같은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렇겠죠. 만약 진심으로 베니가 샤도우를 싫어했다면 진작에 서로 죽어라 싸워대고 있었을 테니까요.”

       

       샤도우의 행동 원리는 간단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호의를 품으면 호의로 돌려주고, 적의를 품으면 적의로 돌려줄 뿐이니까.

       

       물론, 그중에서도 베니를 각별히 여기는 것 같긴 하지만…예외가 될 정도는 아닌 듯하더라고.

       

       “샤도우는 뭐랄까. 굳이 말하자면 내 역린이야. 존재 자체로 내 과거의 상징 같은 거니까.”

       

       “아무래도 태생이 태생이다 보니 그렇겠죠.”

       

       “…그래서 샤도우를 보고 있으면 나는 아직도 내가 그 비좁은 철창에 갇혀있는 것 같아져.”

       

       허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는 비좁은 우리. 사방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 밤낮 구분 없이 울려 퍼지는 비명과 애원. 어제까지 친구였던 이가 오늘은 뭔지 모를 괴물이 되어 살처분 당한다.

       

       베니는 어린 시절은 그러한 악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우리는 고아였지만, 그래도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어.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로 했으니까.”

       

       “무슨 조직에 들어가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 그래서야 미래가 없잖아. 같은 범죄자가 되거나, 조금 쓰임 당하다가 버려질 테니까.”

       

       판 그레이브의 뒷골목은 크게 2개로 나뉜다.

       

       양아치 수준의 잡범들이 모여있는 옅은 음지. 그리고 거르고 걸러진 진짜 흉악범들이 모여드는 깊은 암부.

       

       나나 과거의 베니 같은 고아가 후자와 엮일 일은 없고, 그들 또한 별 볼 일 없는 고아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니 결국 여기서 말하는 조직은 양아치들의 갱단을 말하는 거겠지.

       

       놈들은 분명 오합지졸이다. 지금의 나 혼자서도 얼마든 줘패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렇기에 자기보다 약한 이에겐 악독하게 구는 족속들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고아들 말이다. 내가 괜히 소매치기 능력이 생기자마자 양아치들 주머니만 노려서 털고 다닌 게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고아라 하여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자기들끼리 서로 도우려 들거든.

       

       당연한 말이지만 힘을 합쳐 갱단과 싸운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어느 골목에서는 돈만 바치면 때리지는 않더라, 술만 마시면 눈이 돌아버리는 미친년이 어느 길을 자주 돌아다니더라 등.

       

       살아남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이었지.

       

       나도 막 빙의했을 때는 그런 고아 커뮤니티 쪽에서 먼저 접근해 오기도 했었다.

       

       다만, 내 경우에는 그 커뮤니티의 리더가 싹수가 노랬다고 해야 하나. 군대도 안 다녀온 것들이 군대놀이하며, 나중에 자기가 판 그레이브 최고의 갱단을 만들겠다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더라고.

       

       나를 그런 차기 보스인 자신의 남자로 삼겠다나 뭐라나. 그래서 그냥 거리를 벌리고 혼자 다녔다.

       

       장래 희망이 전국구 깡패라니. 이 얼마나 무서운 아이란 말인가.

       

       아무튼 나는 그랬지만 베니는 달랐던 모양. 베니의 친구들은 말 그대로 좋은 친구였다.

       

       때로는 간신히 구한 빵을 나눠 먹기도 하고, 때로는 누가 맞고 있으면 멀리서 돌을 던지건 같이 맞아주건 하면서 보호해 주는.

       

       그런 진짜 친구들 말이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였어. 어른이 되면 대단한 모험가가 돼서 이 거지 같은 팔자를 고쳐보는 것,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같은 아이들이 없도록 만드는 거였어.”

       

       “현실성은 둘째치고 좋은 꿈이었네요.”

       

       “맞아. 가끔 배식 나오시는 신전의 사제님도 좋게 봤는지 없는 자리가 나자마자 우리를 전부 고아원에 넣어주셨거든.”

       

       이 세계에서 고아원에 들어간 고아와, 길거리의 고아는 그 위상 자체가 다르다.

       

       모든 고아원이 신전 소속이거나, 신전의 감사를 받는 기관이기에 고아원의 아이를 건드리는 일은 신전과 대적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어중간한 양아치들은 엄두도 못 낼 일.

       

       사실상 어른이 될 때까지의 안전을 약속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면 판 그레이브가 아주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말이야.”

       

       “…황혼을 삼키는 자.”

       

       “맞아. 판 그레이브에서 간 크게도 대놓고 신전을 공격하는 건 놈들밖에 없으니까.”

       

       어느 날 쳐들어온 이단자들은 고아원의 어른들을 전부 죽이고, 아이들은 전부 납치해 미궁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렇게 베니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그 미치광이들은 나름의 선의로 고아원을 노린 거였어. 어른들은 좋은 일 하던 사람이니 죽어도 여신의 천국으로 향할 테고, 아이는 여신의 이름으로 양육되고 있었으니 분명 여신의 곁으로 갈 거라면서 말이야.”

       

       “세상에….”

       

       어차피 천국 갈 테니 죽여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라니. 광신도의 행동이 괜히 망설임 없는 게 아니었다.

       

       “우리를 납치한 놈은 친절하게도 꿈이 뭐냐고 묻더라고. 여느 어른들이 아이에게 물어볼 때처럼 말이야.”

       

       겁에 질린 채로 고아원의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말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걸맞는 실험을 받게 되었다.

       

       “그건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어. 뛰어난 검사가 되어서 모험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던 멜로니아는 샤크맨의 이빨을 이식받았어. 그리고 나날이 전신의 수분이 말라가더니, 결국 검처럼 날카로운 이빨만 남기고 미라가 되어버렸고.”

       

       “마법사가 되어 멜로니아와 함께 미궁을 탐사하겠다던 자밋은 이블 아이의 눈을 이식받고 환각에 몸부림치기 시작했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더니, 결국 살가죽이 전부 벗겨진 뒤에야 편한 얼굴로 숨을 거두더라.”

       

       “성직자가 되어 둘이 죽지 않도록 보조하겠다는 프레이는 산 채로 언데드 몬스터의 사기死氣에 절여졌어. 당연히 얼마 못 가 죽었지만…그 뼈는 사후에도 남겨져 조금씩 변형되기 시작했어. 큼직한 갑각처럼 말이야.”

       

       “유일한 청일점. 다른 친구들처럼 모험가가 되는 건 무섭지만, 우리가 돌아올 곳을 만들고, 우리 같은 고아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고아원장이 되고 싶었던 마렉은 몬스터와의 교배 실험에 종마로 쓰였어. 전염되는 광기와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위에 올라탄 드릴 보어의 뿔에 이마를 박고 자살했지만.”

       

       “그리고 나. 마찬가지로 모험가가 되어 잘 먹고 잘 자고 싶었던 나는 혼자 멀쩡히 살아남아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 했어.”

       

       아이러니하게도 베니의 친구들은 멀쩡한 베니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어떻게든 버티면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마렉은 더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다며 짧은 사과를 마지막으로 베니 앞에서 자살했으니까.

       

       “거기서 끝이 아니야. 그 미친년은 죽은 다른 아이들과 내 친구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 억지로 생명력을 주입하더라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샤도우다.

       

       멜로니아가 이식받은 이빨, 대체된 자밋의 눈, 변형된 프레이의 갑각, 마렉이 스스로의 이마를 꿰뚫은 뿔,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체액으로 이루어진 촉수를 달고 태어난 이름없는 불사의 괴물.

       

       마지막 실험으로 황혼을 삼키는 자는 베니에게 샤도우를 이식하려 했고, 그 뒤에는 역으로 당해 지금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샤도우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었어. 멜로니아? 프레이? 자밋? 아니면 마렉?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거든.”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위를 덕지덕지 달고 다니는 샤도우를 볼 때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을 테니까.

       

       거기에 이번에 모르가나와 싸우며 쓰는 마법을 보고 깨달았다. 베니의 마법은 간절함에서 피어나는 기적과 같은 것.

       

       즉, 그녀의 트라우마와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수시로 자신의 상처를 헤집는 베니에게 샤도우의 존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 악몽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녀가 샤도우를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나도 알아. 당시의 광신도는 내 손으로 직접 죽였고, 많은 시간이 흘러 이렇게 고위 모험가가 되었어. 모두가 되고 싶어 하던 그 대단한 모험가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베니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이 될 수 없었지만 말이야.”

       

       샤도우가 불사의 괴물이라면 베니는 불로의 마녀다. 그녀의 시간은 먼 과거, 샤도우를 삼키던 그 순간에 박제되어 있으니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샤도우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연결은…침식은 사라져야 해.”

       

       그래야 베니가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의 친구들과 나눴던 가장 소중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자신을 얽어맨 모든 족쇄를 벗어던진 뒤에야 베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좁은 철창에 갇혀있는 것도 아닐 텐데 몸을 둥글게 웅크린 베니.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그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허벅지를 손으로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일단 누워봐요 베니.”

       

       “…뭐?”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니의 머리를 잡아 내 허벅지에 눕혔다.

       

       정신 차려보니 무릎베개 자세가 된 그녀의 보라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베니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다음은 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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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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