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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 * *

       

       

       

       “조선인들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턱을 문지르며 잠깐 생각에 빠진 운게른이 한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나도 그래.

       

       그것과 별개로 슬슬 북만주도 가봐야지.

       

       단순히 한국 임시정부 보겠다고 가는 건 아니다.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임시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만 있던 것도 아니고 한국도 임시 정부가 좀 나뉘어 있었거든.

       

       지금 하얼빈 임시정부만 있는 건지도 알 수 없고. 적어도 러시아 여제가 한국 임시정부를 찾는답시고 북만주에 갈 수는 없다.

       

       임시정부는 겸사겸사 접촉해보는 것이고. 원래 가보려고 한 곳을 가는 것이다.

       

       꼭 해방 한국에 지금의 임시정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뭐 그건 나중에 오흐라나를 이용해 접근해 볼 문제고, 그럼 제가 한 번 북만주로 가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토지관리부 장관에게 말하는 거지만, 동시에 북만주 총독이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아시아기마사단을 지휘하는 운게른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저봐 눈을 그윽하게 반짝이고 있잖아.

       

       

       “폐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애초에 이전부터 나오던 말이었고.

       

       

       “지금 뭐 사정이 나쁜 건 아니잖습니까. 슬슬 그쪽에도 얼굴 비춰야 보여주겠죠. 그래야 북만주 개발에 더 힘이 붙을 것이고요.”

       

       

       딱 봐라.

       

       모두의 아이돌 아나스타샤가 북만주에 강림한다.

       

       힘들게 일하는 러시아인들이 저절로 사기가 오를 지도-는 아니고.

       

       그냥 직접 가서 열심히 얼굴이라도 비춰야지. 그래야 북만주가 완전히 러시아령이 될게 아니냐고.

       

       

       “그럼, 이번에 북만주 총독에게 토지 관련해서 연락할 겸, 폐하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하겠습니다.”

       

       

       토지관리부 장관의 말에 나는 슬쩍 그 옆에 있는 운게른에게 향했다.

       

       저 양반 로마국민당이고. 지금 우리 대화 다 들었는데, 거창하게 준비하려 할 거 같거든.

       

       그렇다면 그냥 맞이하라 하는게 좋을 거 같다.

       

       

       “흠, 나쁘지 않지만 너무 거창하게 하지는 마세요. 하지만 최대한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북만주 상황을 감안해서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그냥 가도 되기는 하는데. 아나스타샤 팬클럽 로마국민당 이 사람들에게 말을 안 해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거 같다는 말이지.

       

       

       “저, 그런데 말입니다.”

       “예, 운게른 대장. 말씀하세요.”

       

       

       뭘 그렇게 꾸물거려 감질나게 시리. 저 사람 로마국민당 2인자나 마찬가지라서 저러면 좀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지.

       

       

       “국가 두마는 어떻게 설득하실 겁니까?”

       “아.”

       

       

       옆에 있는 토지관리부 장관까지 그건 생각 못해봤다는 표정이다.

       

       그러게 말이야. 이거 국가두마에서 먼저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북만주 말입니까? 음. 가시기로 하셨으니 가시는 게 맞겠지요.”

       “의외로군요? 거부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폴란드라면 모를까. 북만주는 완전히 저희 영향권인데 별다른 일은 없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아시아 기마사단도 있으니 안심인 지역이지요.”

       

       

       의외로 국가 두마는 차리나의 휴가를 받아줬다.

       

       휴가라고 해봤자 그리 오래 머물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마리아나 베라게드로이츠도 함께 데려가는 것이 맞겠지.

       

       저번처럼 테러받을 일은 없다고 해도.

       

       자, 그럼 드디어 북만주를 가본다.

       

       이 시대에 다민족을 들이부어서 개발된 북만주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좀 척박한 땅이긴 해도 20세기인 걸 감안하면 그래도 꽤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지.

       

       

       * * *

       

       

       러시아령 북만주 하얼빈

       

       이 무렵, 북만주의 대표적인 도시라 할 수 있는 하얼빈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때 만주족이며, 한족이 살았던 도시는 토착민의 흔적은 나날이 지워지고 지금은, 블라디보스크처럼 러시아의 극동 도시로 우뚝 서듯,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유대인의 자본과, 러시아 정부의 투자로 만들어진 이 서양식 도시에는 동양의 전통가옥은 없었지만, 동양인들은 제법 살았다.

       

       그리고.

       

       오늘 북만주 총독 드미트리 호르바트는 모스크바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름 아닌, 차리나께서 직접 왕림하신다는 연락을!

       

       

       “폐.폐하께서 직접!?”

       

       

       드미트리 호르바트는 백군 소속이지만, 차리나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어린 시절의 황녀라면 모를까. 내전 이후에는 이 북만주의 중동철도를 맡고 있었고, 당장 인력이 부족한 시점에서 북만주에 행정력을 떨칠 사람은 그 밖에 없어 모스크바로 가는 것도 어려웠으니까.

       

       그나마 라디오로 차리나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것과 라디오로 듣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하여 드미트리 호르바트는 다급했다.

       

       그 차리나를 직접 보는 일이니까.

       

       드미트리 호르바트는 바로 총독부 군대를 소집했다.

       

       아시아 기마사단도 이곳에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북만주를 다스리는 총독이 직접 군대를 끌고 맞이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러시아의 영웅을 맞이하는 적합한 절차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철도나 지키는 몸이었던 몸을 북만주 총독으로 임명해주신 차리나이시니까.

       

       

       “폐하께서 북만주로 친히 행차하신다고 하신다. 모두 폐하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예!”””

       

       

       최근 수만명으로 증가한 총독부 군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오실 전러시아의 차르를 맞이 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차역에 촘촘이 배치되기 시작한 병사들의 모습에 북만주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궁금해졌다.

       

       총독부 군대가 만철 국경이 아닌 다른 곳에, 특히 역에 배치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으니까.

       

       총독부 군대는 최근 끽해야 아시아 기마사단과 같이 주로 북만주의 마적들 토벌만 했는데, 역에 배치된다는 것은 내전 이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가 오길래 총독부 군대가 저리 움직여?”

       “듣자하니 차르께서 직접 북만주에 오신다는데.”

       “오오오 차리나께서 이 만주까지 오시다니!”

       “우리에게 땅을 내려주신 분이 직접 오신다고 하면 마땅히 직접 환영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기존에 만주로 온 러시아인들, 유대인 이주정책으로 북만주에 정착한 유대인 및 석유탐사의 냄새를 맡은 러시아, 유대인 자본가들까지.

       

       모두가 차리나의 방문을 환영했다.

       

       차르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북만주 총독 호르바트도 이들을 환영인파로 만들어 차르를 환영하기로 했다.

       어느새 하얼빈 시내 곳곳에는 쌍두독수리가 새겨진 삼색기로 도배되었고, 본격적으로 차르를 환영하는데 준비를 했다.

       

       어쨌든 북만주의 민심이 차르에게 가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한편, 유대인 자본가 덕에 겨우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임시정부를 수립한 안창호도 이런 움직임을 감지했다.

       

       안창호는 하얼빈역에서 뭐가 오는지 구경하는 한 한국인에게 다가갔다.

       

       

       “이보게. 누가 오길래. 총독부 군대가 저러는 건가?”

       “아, 참, 최근에 오셨나? 아라사의 여제가 오신다고 해서 다들 기다리는 중이오.”

       

       

       아무래도 아직 임시정부를 모르는 동포인 거 같지만, 어쨌든 그의 말대로라면 여제가 곧 이곳으로 순행을 나선다는 거 같다.

       

       그것도 이렇게 모여있는 것을 보면 얼마 후에 온다는 것이겠지.

       

       삐이이이이익!

       

       호랑이도 제말한다면 온다고 했을까.

       

       마침내 한 기차가 드디어 하얼빈 역에서 멈추고. 군복차림의 장정 몇이 기차에서 내리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금발의 한 여성이 내렸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는 말에 반박하듯 이게 바로 왕의 혈통이라는 걸 알려줄 정도로 남다른 기품을 갖춘 외모의 여성이.

       

       이 시대 몽골의 대칸이자 구라파의 대진국(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전러시아의 차르라 불리는 직함을 갖춘 러시아 합중국의 절대적인 군주.

       

       꿀꺽

       

       막상 이렇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봐도 자신들은 너무 초라하기만 했다.

       

       하얼빈 임시정부는 제대로 된 병력조차 없는 임시정부니까.

       

       아시아 기마사단에 있는 아시아 조선군 부대의 홍범도 대장이 임시정부 소속으로도 있기야 하지만, 어쨌든 아시아 조선군 자체가 러시아군에 속해 있는 것이니 합법적인 군대조차도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과연 저 여제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돕는다고 러시아 여제가 얻을 이익이 아무것도 없는 데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눅 들어 있을 수는 없다.

       

       안창호는 임시정부 청사로 달려갔다.

       

       

       “총리께서는 왜 그리 다급하시오?”

       “아 김주석. 전하께서는 계십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아라사의 여제가 하얼빈에 도착했소.”

       

       

       청사에서 안창호를 마중한 김구 주석도 아라사의 여제가 도착했다는 말에 눈알을 데굴 굴렸다.

       

       아라사의 여제가 왔다.

       

       안 총리가 이렇게 다급하게 청사로 달려온 것은 여제와 접촉하기 위함이리라.

       

       

       “안총리. 이건 우리 임시정부에게 중요한 일이오. 만에 하나라도 아라사의 여제가 왜놈들 편을 든다면, 우리는 끝이오.”

       “이곳에 가만히 있는다고 독립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해봐야 합니다.”

       “끄응.”

       “중국 깊숙이 영향력을 떨치는 여제입니다. 우리를 이미 파악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접촉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후우. 알겠소.”

       

       

       김구도 어쩔 수 없었다.

       

       저 구국의 결단을 내린 표정을 보고 어찌 말릴 수 있을까.

       

       더군다나 슬프게도 지금 이 임시정부는 출범만 했을 뿐이다.

       

       체계적인 조직도 갖추지 못했고, 요원을 일제에 투입해 정보만 얻는 것이 정부의 주업무였다.

       

       그래. 이렇게만 있는다고 조국이 독립할 일은 없을 터다.

       

       가끔은 대범하게 나서야 했다.

       

       

       * * *

       

       

       하얼빈에 도착했다.

       

       황금색 배경의 흑색 쌍두 독수리가 새겨진 러시아 합중국의 삼색기가 사방에서 팔락이고 있다.

       

       그냥 적당히 바랬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나 이거 정말 부끄럽거든.

       

       그리고 이들의 함성을 한번 들어보건대.

       

       저기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러시아인 노인까지 보인다.

       

       

       “하느님 차르를 보우하소서!”

       “아나스타샤 차리나 만세! 대러시아 합중국 만세! 비잔티움 만세!”

       “전러시아의 성녀 만세! 대몽골제국 대칸 만세!”

       

       

       정말 어지럽기 짝이 없구나.

       

       설마하니 몽골국 대칸 소리까지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 이곳에 러시아몽을 꿈꾸는 몽골인까지 있는 모양이다.

       

       여기다가 자금성에 입성하고 푸이에게 선위라도 받으면 중원 천자 직함도 달게 되는 거 아닐까.

       

       애초에 청나라도 만주족이잖아.

       

       로마노프 왕조가 중원 천자 달지 말란 법은 없지.

       

       물론 농담이다.

       

       내가 무엇하러 천자직을 달까. 천자직 다는 순간, 중국인들 싹 다 백인이 천자가 되냐 따져들 것이고, 반기를 들지 않는다해도 저 수억의 중국인들을 먹여살리면서 근대화 해야 할 텐데 무리지.

       

       

       “오오옷! 이 보십시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신민이 폐하의 북만주 순행을 이리도 반기고 있습니다!”

       

       

       운게른은 옆에서 감동한 얼굴이다.

       

       하, 그래. 솔직히 나도 놀랐다.

       

       원래 북만주에서도 백계 러시아인과 적군 계열이 좀 다퉜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이곳의 사람들은 조금도 억지로 나를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번에 동지들과 라디오로 차르 폐하의 내전기를 직접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이 벅찼는지 많이 울었습니다. 그 수년의 내전이 페하께는 대단한 시련이었던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폐하의 목소리도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는 수정자본주의에 대해서 너무 몰랐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폐하!”

       

       

       와아아아아아!

       

       차리나! 차리나! 차리나!

       

       

       와 기차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네.

       

       내가 그만큼이나 이들에게 좋은 차르였던 것일까.

       

       그보다. 조금 전 대화도 그렇고 저렇게 함성지르는 것도 그렇고. 러시아어라서 그렇지 대사는 뭔가 익숙하다.

       

       

       “이거 뭔가 떠오르는 거 같은데.”

       “예?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그 인터넷 합성물을 떠올렸다.

       

       아무렴 뭐 대사가 비슷할 수도 있는 건대,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합성물 동영상을 너무 봤다. 좀 줄여야지.

       

       아니지. 애초에 여기서는 보지도 못하는 구나.

       

       어쨌든 나를 만나서 반가워하고 있으니 한마디는 해야겠지.

       

       

       “고맙습니다! 합중국 국민 여러분! 당신들의 차리나는 결코 오늘의 이 환영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를 향해 두 손을 흔들어주면서.

       

       열심히 북만주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아닙니다! 폐하! 폐하의 지원으로 북만주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차리나 만세! 북만주 총독부 만세!”

       

       

       이거 진짜 알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응이 너무 현란하다.

       

       진짜 얼굴이 부끄러워서 달아오르는 거 같다.

       

       저렇게 반응하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잖아.

       

       그렇게 거의 팬미팅 수준으로 몰려든 북만주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나는 총독부 건물로 들어갔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하하하하! 폐하를 향한 국민의 충심이 이토록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운게른 이 사람도 약 빤 거 같고.

       

       아무리 봐도 이 인간이 로마국민당 아나스타샤 팬 1호 아닌가 싶다.

       

       군주주의자라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아 모르겠다.

       

       지금은 그간 북만주를 다스린 총독부터 봐야 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래간만에 역설사 게임을 했는데. 역시 군주제가 뽕 차는 거 같습니다.

    튀르키예는 판도를 어디까지 만들지 고민이네요.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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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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