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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네? 벌써 퇴원했다고요?”

        “조금 전에 보호자 분과 함께 나가셨어요. 수납까지 끝내셔서 보내도 되는 줄 알았는데요.”

       

        38층에서 라면 한 그릇을 때리고 온 마가렛은 창구 직원의 말에 곧장 클락의 병실로 향했다.

        그가 혼자 사용하던 일인실의 침대는 텅 비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적당히 구석으로 밀어져 있었다.

        아연실색하던 와중 창구 직원도 그녀를 따라왔다.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안절부절못하는 중이었다.

       

        “중층에서 활동 중인 공략대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볼까요 참모님?”

        “뭐 어떻게 찾게요? 정보부가 데려갔는데. 그리고 이번 천변의 방 공략의 중요 증인인데 사정청취도 안 하고 내보내면 어떡해요? 41층 근무 하루이틀 해봐요?”

        “죄, 죄송합니다.”

       

        마가렛은 고개를 떨구는 직원을 보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시엔 측에서 클락을 빼돌리기로 작정했으면 의료소 측에서 막으려고 해봤자 소용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클락이 눈을 뜬 것은 다행이고, 그를 섭외하고 공략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책잡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허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보 2과의 무시무시한 악명은 세간에 널리 퍼져 있었기에 그를 데려갔다는 것만으로 불안할 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2과에서 백가나 대형 학파들도 언급을 꺼리는 뭔가를 계획 중이라는데…… 응?’

       

        마법으로 유리조각들을 쓸어 모으던 마가렛은 서랍 안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탑에 처음 입탑한 수습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도구인 위치노트.

       

        실수로 빠뜨렸는지 시엔이 클락의 소지품 중 유일하게 챙겨가지 않은 물건이었다.

       

       

       

        *

       

        “지금 너는 안정이 최우선이니까 등반 같은 건 신경쓸 필요 없어.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나랑 같이 다니면 돼 알겠지?”

        “여기가 진짜로 저희가 살던 집인가요? 무슨 숙소처럼 보이는데요. 침대보나 화장실에 놓인 칫솔도 왠지 여자 취향인 것 같은…….”

        “워, 원래 같이 지내던 애가 있었는데 쫓겨…… 다, 다른 집을 구해서 나갔을 뿐이야. 그리고 말했잖아, 정보부는 기밀이 생명이라 화려한 저택 같은 데서 살진 않는다고.”

        “크기가 불만인 건 아니었어요.”

       

        21층에 위치한 정보부의 관사.

        자고 있던 릴리벨을 내쫓고 그곳에 클락을 데려온 시엔은 침대에 앉아 멀뚱히 주위를 둘러보는 그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현재 그는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마치 어미새에게 밥을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무엇이든 고개를 끄덕이는 상태였다.

        ‘엘리시아의 복종’ 같은 노예 목줄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클락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니까 저희는 5년 전에 같은 기수로 마탑에 들어올 때부터 알게 된 사이로 마법제를 기점으로 점점 가까워지다가 제 고백으로 사귀기 시작해 지금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조만간 둘만의 오붓한 신혼 여행을 갈 계획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제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거네요.”

        “그, 그렇지! 그리고 이 사실은…….”

        “시엔의 소속 때문에 저희 관계를 남들에게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겠어요. 으음, 죄송해요 역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요.”

        “너, 넌 원래 기억력이 나빴으니까……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이건 치료 목적, 어디까지나 치료 목적이다.

        환자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해처럼 넓은 진실 속에 사실과 아주 약간 다른 내용을 스포이드로 딱 한 방울 정도 떨어뜨렸을 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클락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시엔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넌 검이랑 창 중에 더 뛰어난 건 검이라고 평소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어.”

        “갑자기 두통이……! 여긴 어디? 처음 보는 방인데……!”

        “차, 창이었지 참! 내가 잘못 말했구나!”

        “휴, 좀 나아졌네요.”

       

        그래도 너무 사실과 반대되는 내용은 주입하면 안 되는구나.

        황급히 클락의 손에 창대를 쥐어주며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낸 시엔이었다.

       

        “여긴 3층이고 2층은 신입들이 쓰는 방, 1층은 식당이야. 4층은 내가 일하는 전략부서인데 중요한 회의가 자주 열리니까 굳이 올라올 필요는 없어.”

        “알겠어요.”

        “그럼 난 출근할 테니까 저녁에 보자. 답답하면 밖에 대기하고 있는 분홍머리 여자애 있거든? 걔한테 말하고 나갔다 와.”

        “잠시만요 시엔.”

        “으, 으응?”

       

        다행히 이 건물에 있는 정보부 소속 마법사들에게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사용해 단단히 엄포를 놓아 뒀다.

        그가 지나치게 잔혹한 진실(현실)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아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터.

       

        “출근할 때는 현관 앞에서 잘 다녀오라고 포옹하라고 배웠어요.”

        “누구한테……?”

        “글쎄요, 뭔가 제 안에 있는 엄격한 규칙 같은 게…… 평소엔 안 이랬나요?”

        “읏, 아니! 무조건, 무조건 했어!”

       

        그러니 당분간 달달한 신혼생활을 즐기면 되겠지.

        뺨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출근을 늦게 한 시엔이었다.

       

       

       

        *

       

        마탑은 참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순식간에 없던 공간이 눈앞에 나타나거나, 끝도 없는 계단이 이어지거나, 허리춤에 찬 칼이 갑자기 쉬지 않고 떨리는 일도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어떻게 이런 이상한 곳에서 적응하고 살았을까?

        만약 시엔을 만나지 않았다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고 싶다고요? 뭐,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멋대로 하심 됨다.”

        “굳이 그렇게 챙겨주진 않으셔도 되는데…… 릴리벨 님도 다른 업무가 있으실 테니까요.”

        “지금 제 일이 클락 님을 감시, 크흠 보호하는 검다. 오늘 밤 잘 곳만 찾으면 되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됨다.”

       

        굉장한 마법사로 보이는 시엔의 후배조차 잠자리를 걱정하는 처지인 듯하니까.

       

        자신의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지금 나는 말 그대로 짐덩어리였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기억을 되찾아 원래 생활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산책 삼아 4층을 제외한 정보부의 건물을 돌아봤으나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시엔과 함께 여기서 살았으면 오다가다 안면을 튼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전부 처음 보는 듯한 눈빛.

       

        개중에는 다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서류 떨어뜨리셨어요.”

        “아, 감사합니…… 세상에.”

        “혹시 저희 어디선가 만난 적 있나요? 제가 기억력이 나쁘다고 들어서.”

        “네, 아니 없…… 있는 걸로 해요!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야! 너 제정신이야!? 시엔 과장님 한테 취조실 끌려가고 싶어? 죄송합니다, 먼저 갈게요!”

       

        이후로는 복도를 걷다보면 심심지 않게 여자들이 말을 걸어왔다.

        정보부답게 얼굴 부분이 흐릿하거나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많았으나 살가운 미소를 띠며 식사 권유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 식사 중 베르농 정보부장을 만났는데, 같은 테이블에서 삼십 분간 그의 말을 들어 주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음,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로군. 역시 첸돌 그놈의 평가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첸돌이요?”

        “치안부 국장인데 신경쓰지 말게. 자네만 괜찮다면 여기 계속 있어도 좋네. 시엔과의 관계도 그렇고, 이쪽도 나름의 편의를 봐주도록 하지. 딱히 이런 걸 줘서는 아니니 오해 말게 하하!”

       

        설화수 한 병을 챙기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베르농이었다.

        가방에 들어있었을 뿐이고 딱히 누군가에게 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뭔가 높은 사람인 것처럼 훈장을 달고 있는 그와 만났더니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역시 평소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 걸까.

        주변의 반응을 보니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남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고 살아왔겠지.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 가각, 가가각……!

       

        “또 이러네 이 칼은. 무슨 악마라도 봉인되어 있나.”

        “다 드셨슴까?”

        “릴리벨 님, 어디 계셨어요?”

        “부장이랑 같이 밥먹기 싫어서 피신해 있었슴다. 비위가 좋으심다, 업무 얘기 빼면 신세 한탄만 늘어놓는 인간을 앞에 두고 싹싹 비우시다니.”

        “별거 아닙니다. 정보부 식당은 밥이 맛있더군요.”

       

        그냥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이었기에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오후에는 건물 밖으로 나가보려고 하는데 동행해주실 수 있나요?”

        “…….”

        “릴리벨 님?”

        “과연, ‘이것’만 없으면 그런 파괴력이 나오는군요, 선배의 걱정을 알 것도 같슴다.”

       

        인식 저해 마법을 삼중으로 깔고 삐걱삐걱 고개를 돌린 그녀는 품에서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고 다시 집어넣었다.

        갈색 겉표지와 가름끈, 그리고 손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

        전해듣기론 위치노트라고 불리는 마도구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마법사들은 하나씩 들고 있는 물건인데 왜 나한테는 없는 거지?

        없으면 안 되는데.

        한 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데.

        만일을 대비해 100개씩은 항상 가지고 다녔었는데.

       

        무슨 일이 생겨도 『(@ㅜ6*&ㅏㄱ이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데.

       

        “윽!”

        “괜찮으심까!?”

        “죄송합니다, 머리가 조금.”

        “사, 사과는 필요 없슴다. 달라붙는 것도 조금, 앗, 숨결, 귀에다 내뿜지 말아주실…… 으읏!”

       

        그 순간 지금까지 없었던 극심한 두통과 함께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릴리벨의 부축을 받은 나는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휴식을 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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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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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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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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