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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죽고 싶다.”

       

       

       요즘 들어 자주 이 말을 하게 되네.

       

       그렇게 입 밖에 자주 내뱉어서 좋은 말도 아니고, 정말로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조금 과장되어 있더라도 이런 말을 내뱉지 않는다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눈앞의 참상에 절로 머리가 아파졌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부탁이니까 고개 들지 말아주세요.”

       

       “아. 미안.”

       

       

       고개를 내리고 있던 시우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우가 고개를 들었다가 내 부탁에 황급히 다시 고개를 내렸다.

       

       

       “···으.”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괜히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우면 일이 또 늘어날 것 같아 그저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다 마르지도 않은 이불을 끌어 내린 채 끌어안고 몸을 뒹굴거린 결과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바닥은 물기 탓에 미끄러워졌고, 빨아둔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하얀 이불은 먼지를 잔뜩 먹어 다시금 더러워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유.

       

       ···옷이 물에 젖어 축축하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이게 뭐가 문제냐며 당당히 걸어 다녔을 텐데.

       

       지금의 나는 양손으로 어떻게든 비춰 보이는 부분을 가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시우가 봤으려나? ···봤겠지?

       

       부끄러운 꼴을 보였다는 수치심에 한 행동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다니.

       

       시우가 고개만 들어도 물에 젖어 안이 다 비춰보이는 크롭티를 마주하겠지.

       

       미치겠네. 화끈거리는 얼굴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 내 얼굴을 바라본다면 새빨간 홍시 같은 색이지 않을까.

       

       적당히 진정하고 나니 이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침묵이 나를 책망하는 것 같아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이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도중,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은···이하율.

       

       냉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르테 님. 접니다. 급하게 말씀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네. 마침 잘됐네요.”

       

       

       딱 좋은 타이밍이었어, 하율.

       

       그녀의 아름다운 타이밍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좋아. 이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생겼구나.

       

       

       “음, 큼. 죄송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요. 잠깐 다녀오겠···.”

       

       “나도 갈게.”

       

       “네, 네? 아니, 그것보다.”

       

       “그거, 아라크네가 관련된 일이지? 위험하잖아. 나도 들을래.”

       

       “아니, 그게···.”

       

       

       어떻게 들은 거지. 분명 꽤 떨어져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오래 지나지 않아 실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우의 감각은 남들보다 뛰어나다.

       

       아마도 직감의 영향 때문이겠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심코 너무 가까이서 전화를 받아버렸다.

       

       시우가 듣고도 남을 거리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리고 시우가 이런 소식을 들어버리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시우는, 이렇게 말하기에는 조금 뭐하지만···.

       

       나를 굉장히 아껴주는 것 같았으니까.

       

       ···자의식 과잉 같은 생각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쨌든, 이건 시우랑은 관계없는 일이니 거절해야···.

       

       

       [결사반대에요! 비밀 조직은 비밀 조직! 외부인은 모르는 우리들만의 비밀이···!]

       

       “좋아요. 상관없어요.”

       

       [독자님?!]

       

       

       아, 실수.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반대로 행동해버렸다.

       

       ···상관없겠지. 시우도 저렇게 좋아해 주고 있고.

       

       

       [독자님. 삐졌어요···?]

       

       

       삐졌겠냐.

       

       나는 절대 삐지지 않는 사람이다. 고작 그런 거로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그래, 내가 화낼까 봐 일부러 내게 말을 걸지 않고 화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들 나는 전혀 화나지 않았다.

       

       

       [독자님, 제발 말 좀 해주세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러니 이건 화난 게 아니다.

       

       그냥, 시우가 원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이미 대부분 들켜버렸는데, 조금 더 들킨다고 해도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시우가 들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절대, 절대로.

       

       작가님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아 불안했던 감각을 너도 겪어보라는 차원에서 사소한 복수를 하는 건 아니다.

       

       아니라고.

       

       

       “고마워, 아르테. 믿어줘서.”

       

       “···별거 아니에요.”

       

       

       이것 봐.

       

       시우의 감사 인사도 듣고 신뢰도 올라가고. 얼마나 좋아.

       

       역시 작가님은 허당이 분명하네. 작가님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겠어.

       

       

       [도, 독자님···! 미안해요!]

       

       

       가볍게 작가님의 말을 무시한 나는, 시우가 내게 써도 된다고 내어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이런 꼴로 하율을 볼 수는 없으니까.

       

       

       

       ***

       

       

       

       “···선생님?”

       

       “안녕하세요, 시우 학생. 잠깐 실례하겠···.”

       

       “선생님도 아라크네였나요?”

       

       “네?”

       

       

       아.

       

       그러고 보니 시우는 하율이 그냥 선생님으로 오게 된 전 수사관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 생각을 못 했구나.

       

       나를 바라보는 하율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황한 모습이었다.

       

       곧장 그게 대답이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가 어떻게든 진정했지만···.

       

       이미 늦었지.

       

       그 사실을 깨달은 하율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알았나요?”

       

       “아라크네 한 명이 올 거라고 말했거든요.”

       

       “···? 네?”

       

       “그게 필요할 것 같아서.”

       

       

       아라크네는 비밀 조직이다. 심지어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일은 중요한 이야기.

       

       급한 일이라고 불렀는데 외부인이 있다니.

       

       하율이 반발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반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내게 무언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으니까.

       

       

       “···아르테 님의 판단이니 괜찮겠죠. 여기, 협회의 공문입니다. 오늘 찾아뵌 건 이것 때문이고요.”

       

       

       협회의 공문?

       

       그녀의 말에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공문이라기에는 너무 글씨가 동글동글한데.

       

       보통 이런 건 프린터로 하지 않나.

       

       그런 질문을 건네자, 시원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적었습니다.”

       

       “···아, 네.”

       

       

       차가운 인상이라서 글씨체도 딱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귀여운 글씨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읽은 공문을 읽어 내려갔다.

       

       

       “···뭐야, 이거.”

       

       “뭔데?”

       

       “한번 보시는 게 빠를 거예요.”

       

       

       도무지 설명할 자신이 없어 공문을 읽어보라며 시우에게 건네주었다.

       

       작가님이 또 무언가 저지른 걸까.

       

       이곳에 오고 난 뒤 배운 상식으로는 도통 맞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마수와 소통할 수 있는 빌런에게, 협회 산하의 개척단 하나가 전멸?”

       

       

       마수와 소통이라니.

       

       그런 게 될 리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배운 상식으로는.

       

       

       “고마워요, 하율. 잠깐 생각을 하고 싶은데.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하율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운 뒤.

       

       나는 곧장 허공에 말을 걸었다.

       

       하율이야 그렇다 쳐도, 시우는 이미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굳이 시우에게까지 숨길 이유가 없었다.

       

       

       “작가님이 하신 건가요?”

       

       [헉, 드디어! 이제 화난 건 풀리셨나요?!]

       

       “그건 됐고.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작가님이 예전에 대충 욱여넣은 설정이 있었지.

       

       뭐였더라.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면 던전에서 시험을 치는 장면은 있어야 한다.

       

       대충 그런 논리로 사실 500년 정도 전에 마력이 생겼다는 설정을 욱여넣었던가.

       

       500년 전쯤에는 헌터와 던전이 판치는 레이드물 소설 같은 세상에서 지금의 세상으로 변한 거라고.

       

       그렇기에 세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사람과 마수는 서로 소통할 수 없다고.

       

       던전 출신인 마수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화는커녕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어.

       

       그게 이곳의 상식이다. 그게 이 세계의 설정이다.

       

       그랬을 텐데.

       

       

       [아뇨. 제가 건드린 건 없어요]

       

       “···그럴 리가.”

       

       [정말인데···. 아직 기말고사 내용도 생각 안 했는데···.]

       

       

       그러나 작가님은 자신이 꾸민 게 아니라며 부정했다.

       

       멍청한 작가님이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작가님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 걸까.

       

       

       [재미있어 보이니 이것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아···.”

       

       

       작가님의 천진한 목소리에 납득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무래도 개변된 세상이 제멋대로 흘러가며 무언가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을 작가님이 다루는 건 아니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거겠지.

       

       

       “그 작가님···이라는 사람이 한 거래?”

       

       “아뇨. 그건 아니에요.”

       

       “···.”

       

       

       나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우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작가님이 만든 사건이 아니다.

       

       작가님이 내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으니, 아마 사실이겠지.

       

       그러나 작가님은 자주 제멋대로 행동하고, 아이 같은 면이 있다.

       

       그러니 재미있어 보인다면 그걸 메인 스토리로 끌고 가려고 하겠지.

       

       

       [그래도 재밌겠네요! 마수와 소통하는 빌런, 위협받는 세계···!]

       

       

       이거 봐.

       

       대충 무슨 느낌으로 이야기할지 감도 잡힌다.

       

       뭐, 기말고사 대신 몇 달 정도 최전방에서 생활하는 건 어떻겠냐. 그런 이야기를 하겠지.

       

       

       [최전방!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할 때예요! 아카데미를 빠져나가서, 격전지에 몸을 던져라!]

       

       

       ···예상에서 벗어나는 게 하나도 없네.

       

       앞으로의 고생길이 보이는 것 같아 이마를 짚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축축하다는 말에 이상한 상상을 한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음란마귀들아 물럿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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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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