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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끝없는 겨울을 떠도는 원한, 혹한의 망령.

         

       공작과 에덴은 침을 삼켰다. 마치 돌덩이가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연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칠흑의 갑주. 지반은 가볍게 분쇄할 수 있는 오러.

         

       “설화에서나 나오던 혹한의 망령이 나올 줄이야. 작년보다 마수가 적은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화륵! 공작은 온몸에 불길을 두르곤 혹한의 망령에 검을 겨누었다. 에덴도 그에 따라 핏빛 오러를 극한으로 활성화했다.

         

       “에덴, 지원을 불러라.”

         

       공작의 말에 에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공작님 혼자서 저걸 상대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어차피 누군가는 지원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곳은 마수가 잘 오지 않는 측면. 방어선만 구축하고, 마수들은 멀리 있는 궁병이나 마법사들이 제거한다.

         

       이 자리에는 공작과 에덴밖에 없다.

         

       “저는 둘이서 상대하면서 궁병과 마법사들이 눈치챌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 판단이라 봅니다.”

         

       발걸음을 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에덴.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에덴, 혹한의 망령은 단순한 마수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지원을 불러와야 해.”

         

       공작의 설득. 이 시간에도 저 혹한의 망령은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에덴! 시간이 없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후계자가 누군지 떠올려라!”

         

       에덴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알겠습니다.”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방어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버텨야겠군.’

         

       혹한의 망령은 설화가 생겨날 정도로 강력한 마수다. 황실 기사단장은 와야 상대할 수 있겠지.

         

       하지만 공작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 시간 벌기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말년에 혹한의 망령을 상대하다니, 운이 지지리도 없군.”

         

       그간 아들 둘과 막내딸에게 한 짓에 대해서 벌이라도 주러 온 것일까. 혹한의 망령은 겉보기에도 자비가 없어 보였다.

         

       “…….”

         

       온몸을 두른 푸른 오러. 혹한의 망령이 가진 오러의 성질은 빙결이다. 반면 공작의 오러는 화염. 극상성인 점을 이용하면 상대할 수 있을 터.

         

       그런데…….

         

       투웅─!

         

       별안간 혹한의 망령이 높게 뛰었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꾸더니 오러를 폭발시켜 풍압으로 이동했다.

         

       “…?!”

         

       저곳은 에덴이 이동한 방향.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지성을 가진 것인가!”

         

       설화에 나오는 혹한의 망령은 지성이 없다고 나왔다. 오직 살육을 위한 본능으로만 움직일 뿐.

         

       그래서 망령인 거다.

         

       그런데 눈앞의 적을 무시하고 지원을 끊으러 가는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오러의 활용. 저건 누가 봐도 지성을 가진 인간 같지 않나!

         

       “에덴!”

         

       공작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쿠웅─!

         

       혹한의 망령이 낙하하자 연막탄이라도 터트린 것처럼 눈이 이리저리 튀며 시야를 가렸다.

         

       “젠장!”

         

       공작은 서둘러 방어선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에덴은 데카르트의 후계자.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에덴!”

         

       하늘로 비산했던 눈들이 사라지고, 혹한의 망령과 대치하고 있는 에덴이 눈에 들어왔다.

         

       우웅…! 혹한의 망령이 든 검이 진동한다.

         

       “에덴, 피해라!”

       “알고 있습니다!”

         

       콰과과과─!

         

       가볍게 검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지면이 커다란 뱀이 지나간 것처럼 파였다.

         

       “빌어먹을…!”

         

       에덴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칼자루를 굳세게 잡곤 핏빛의 오러를 최대로 활성화했다. 여기서는 하는 수밖에 없다.

         

       “공작님! 여기선 해치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혹한의 망령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지원을 요청하러 간 자신을 막으러 온 걸 보면 지성이 있다는 뜻.

         

       “에덴, 상성이 좋은 내가 방어를 맡으마. 네가 기회를 틈타서 공격을 찔러 넣어라.”

         

       에덴은 “예, 알겠습니다.”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부릅떴다. 절대 움직임을 놓치면 안 된…….

         

       쿠웅─!

         

       “?!”

       “?!”

         

       파바박! 지면에 쌓인 눈이 사방으로 퍼지며 혹한의 망령이 쇄도한다. 공작은 앞으로 나서서 검을 휘둘렀다.

         

       차앙─!

         

       강철과 강철이 맞붙어 차가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흑!”

         

       단 한 번 맞부딪쳤을 뿐인데 일방적으로 당한 것처럼 공작의 검이 멀리 튕겨 나왔다. 심지어 오러의 상성도 나쁜 건 아닌데 말이다.

         

       ‘설마 빙결이 아닌 건가?’

         

       그럴 리가 없다. 혹한의 망령은 무조건 빙결 성질을 가진 마수. 다른 오러가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공작님! 다음 공격이 옵니다!”

         

       생각할 시간은 사치였다. 바로 이어져 오는 망령의 검격. 빠르다!

         

       “크흡!”

         

       차앙─!

         

       이번에도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작이 크게 뒤로 물러났다. 맞부딪치기는커녕 방어도 힘든 상황.

         

       “에덴! 기회를 기다려라!”

         

       공작은 다시 자세를 고쳐잡았다. 손목이 시큰거리며 덜덜 떨려오지만,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다.

         

       “지금 기회를 열겠다! 에덴, 따라붙어라!”

         

       화르륵! 공작이 오러를 끌어올리자 주변의 눈이 녹아내렸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혹한의 망령.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여러 의문이 드는 마수다.

         

       “흐읍!”

         

       공작이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자 불길이 따라왔다. 그러나…….

         

       차앙─!

         

       이번에도 맞붙기는커녕 그대로 튕겨 나왔다. 하지만 빈틈은 확실하게 만들었다.

         

       “에덴! 찔러넣어라!”

       “예!”

         

       혹한의 망령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에덴의 검이 쇄도한다. 핏빛의 오러가 최대로 담긴 찌르기. 저걸 막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런데.

         

       “뭣?!”

         

       혹한의 망령은 가볍게 뛰어 에덴의 검신을 팔꿈치와 무릎에 끼웠다. 그러고는 반대쪽 손에 응축시킨 오러를 폭발시켜 몸을 비튼다. 쨍강! 검신이 부러졌다.

         

       “무슨…!”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혹한의 망령은 지면으로 착지하자마자 몸을 유연하게 회전시킨 후, 화려한 뒤돌려 차기로 에덴의 복부를 결정적으로 강타했다.

         

       “크허억…!”

         

       에덴의 입가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안 된다…!”

         

       화르륵! 공작은 자신의 한계까지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진각을 밟았다.

         

       콰앙─! 지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공작.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불길이 일렁인다. 최대로 담은 불길. 이거라면 아무리 혹한의 망령이라도……

         

       턱!

         

       “뭐?!”

         

       어깨에 오러를 담아 가볍게 방향을 비틀어냈다. 검신이 견갑을 스쳐 허공을 베어냈다.

         

       이 혹한의 망령은 단순한 마수가 아니다.

         

       수많은 전장을 구른 백전노장과도 같은 경험을 가진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전투 센스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작님!”

         

       혹한의 망령이 움직인다. 완전히 근접한 거리. 이 자세에서는 방어는커녕 몸을 반절로 꺾지 않는 이상 절대 피할 수 없다.

         

       빠악!

         

       “커흑…!”

         

       예상과 달리 혹한의 망령은 검을 휘두르지 않고 칼자루로 공작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허윽…!”

         

       공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통이 몰려옴과 동시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눈앞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혹한의 망령은 그런 공작을 잠시 응시한 뒤 관심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설마…!”

         

       에덴이 있는 방향이었다.

         

       “도망…!”

         

       빠악! 보이지 않는 속도로 쇄도한 혹한의 망령은 주먹을 내질러 에덴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허억!”

         

       몸이 거의 반절로 접힌 채 날아가는 에덴.

         

       “에덴!!”

         

       혹한의 망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날아가는 에덴의 속도를 따라잡아 멱살을 쥔 채 칼자루로 복부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빠악─! 빠악─!

         

       “커허억!”

         

       에덴의 입가에서 울컥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핏물.

         

       털썩. 혹한의 망령이 멱살을 놓자 에덴은 힘없이 널브러졌다. 어떻게든 놓친 검을 잡기 위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을 기어간다.

         

       “…….”

         

       파악! 바닥에 놓인 검을 발로 차 멀리 보낸 뒤 에덴의 손을 짓밟는 혹한의 망령.

         

       “끄아아악!”

         

       마치 고통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듯한 가슴을 울리는 비명.

         

       ‘대체 저 혹한의 망령은 뭐란 말인가!’

         

       마치 에덴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행동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목적이 죽이기보다는 가지고 놀겠다는 심산이었다.

         

       “에덴!”

         

       공작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칼자루를 쥔 채 오러를 활성화한다. 진각을 밟아 앞으로 달려나갔다.

         

       “흐읍!”

         

       검을 휘두르려 하던 그때. 혹한의 망령이 공작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

         

       푸른 오러가 일렁이더니.

         

       파아앙─!

         

       거센 오러 폭발이 생겨났다.

         

       “커허억!”

         

       응축된 오러 폭풍이 공작의 전신을 난타했다.

         

       “커흑…….”

         

       결국, 전투 불능이 된 공작. 혹한의 망령은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고개를 까딱였다.

         

       ‘대체 저 마수는 뭐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인간에 가깝다. 말도 안 되는 노련함과 전투 센스를 가진 것도 그렇고, 지성을 가진 것도 그렇고.

         

       본능으로 움직이는 혹한의 망령으로 보기엔 힘들었다.

         

       “크흑…!”

         

       당장이라도 일어서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러의 충돌과 폭발로 인해 내부가 만신창이에 가까웠으니.

         

       “에덴……!”

         

       두개골이 깨질 것 같은 두통. 속은 울렁거리고 시야는 흔들린다. 공작은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안 돼…!”

         

       바닥을 기어서라도 몸을 움직여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끄윽…….”

         

       어떻게든 잡고 있던 의식이 끊어지며 공작은 그대로 기절했다.

         

       “빌어먹을…!”

         

       에덴은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것 같다.

         

       콰드득!

         

       “끄아아악!!”

         

       혹한의 망령은 고개를 까딱이며 에덴의 손을 짓밟았다. 뿌드드득! 기어코 오른손이 으스러지고 말았다.

         

       “아아아아악!!”

         

       아무리 훈련받은 기사라도, 오러를 깨우친 소드 마스터라도 손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을 수는 없었다.

         

       “끄윽! 젠장…!”

         

       너덜너덜해진 오른손에 감각이 없다.

         

       빠악!

         

       “커헉!”

         

       혹한의 망령이 가벼운 발길질로 에덴의 복부를 걷어찼다. 에덴이 할 수 있는 건 눈밭을 구르며 피를 토하는 것뿐이었다.

         

       “푸훗.”

         

       고통에 몸부림치던 에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지금 웃은 건가? 마수가? 인간을 가지고 놀면서? 에덴의 등줄기에 오한이 깃들었다.

         

       “푸훕.”

         

       옅은 조소를 터트리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혹한의 망령. 에덴의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두려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에서 나오는 공포.

         

       “크흑…!”

         

       에덴은 왼손으로 바닥을 끌며 기어서라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푸훕!”

         

       혹한의 망령은 그런 에덴을 보며 계속해서 비웃었다.

         

       ‘젠장, 젠장!’

         

       기사 되는 자. 데카르트의 후계자 되는 몸. 고작 마수에게 쩔쩔매 바닥을 기는 에덴은 자신이 추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사박. 사박. 눈밭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혹한의 망령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걸, 이걸 어떻게 해야…!’

         

       전쟁에서 바렌베르크의 기사단장도 손쉽게 죽였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푸훗!”

         

       혹한의 망령이 비웃는다. 에덴의 눈썹이 일그러졌지만, 지금은 분노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사박. 사박. 망령이 다가온다. 에덴은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젠장…! 젠장!”

         

       이곳의 상황을 궁병이나 마법사들은 무조건 눈치챘을 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5분? 10분? 아직도 지원이 없는 걸 보면 그다지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여기서 죽는 건가…!’

         

       사박. 혹한의 망령이 에덴의 앞에 섰다.

         

       “…….”

         

       고개를 꺾으며 에덴을 내려보는 혹한의 망령. 에덴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흡…!”

         

       압도적인 강함에서 나오는 공포. 에덴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혹한의 망령은 한동안 에덴을 바라보더니, 허리를 굽혔다.

         

       “뭘…?”

         

       그대로 에덴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 들어 올리는 혹한의 망령. 오른손에 들린 검이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설마…!”

         

       스각! 검이 아래로 쇄도하며 에덴의 오른팔 전체가 잘려나갔다.

         

       “끄아아악!!!”

         

       멈출 줄 모르고 터져 나오는 새빨간 피가 새하얀 눈밭을 적신다.

         

       “꺼어어…….”

         

       쇼크로 인해 에덴의 눈이 풀리며, 동공이 올라갔다.

         

       “기절했군.”

         

       혹한의 망령은 에덴이 입고 있던 벨트를 뽑아냈다.

         

       “아깝게 여기서 죽으면 안 되지.”

         

       에덴의 오른팔을 벨트로 꽉 조여서 지혈하니 출혈이 멈췄다.

         

       “프란체의 복수는 이제 시작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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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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