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13

       대검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그래. 자기가 조금 유리하다고 촐랑거리는 상대를, 일검에 제압해서 날려버리는 힘이라거나.

        

       꾸욱 눌러 참으며 타이밍을 노리다가 날리는 일격에는 그 자체로 대역전승과 같은 쾌감이 있더라.

        

       평소에는 반대 입장인 만큼, 한 번씩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는 그만인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머리를 날리는 피니시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마지막 공격에 바다바다의 머리가 먼 발치로 날아가는 걸 보며 약간 상쾌한 기분이 든 건……그만큼, 그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뜻이겠지.

        

       이럴 때면 VR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나의 연출은 고어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사실적이었으니.

        

       공포영화 따위에서 보여주는 연출도 딱히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무섭다기보다는……조금, 꺼려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봇으로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려던 찰나. 여전히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가 새삼 눈에 밟혔다.

        

       음…….

        

       적장의 수급을 들고 돌아가겠다는 건……당연히, 비유적인 의미로 한 생각이었는데.

        

       ……이거, 진짜 들어지네?

        

       널부러진 머리를 지나쳐가던 중 상호작용 버튼이 활성화되어서. 무심결에 그만.

        

       원래도 이런 게 됐던가. 아니,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안 썼을 리가 없지. 고까운 놈의 머리를 든 자신의 모습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는 놈들로 가득했을 거다.

        

       문득, 늦은 새벽에 갤러리에서 함께 한탄하던 친우들이 떠올랐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시즌 3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던 게임을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냐, 평행세계의 패러데이 게임스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잘 저었을까, 따위의 넋두리를 나누곤 했었는데.

        

       정말로 평행세계에서는 운영 잘 하고 있었구나.

        

       시선을 내려보니,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힌 머리카락이 비쳤다. 하기야, 머리통을 손으로 잡기는 어렵겠지. 

        

       잘 구현했네. 원래 갓겜은 이런 디테일에서부터 티가 나는 법이다. 보기 조금 그런 듯 싶긴 한데……어쨌든 굳이 시야를 내리지만 않으면 내 눈에는 안 보이니까.

        

       그러고 보면, 이것저것 달라진 모습이 기껍게 느껴지는 건……처음인 것 같은데.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포기하고 정신승리나마 하게 된 걸까.

        

       가슴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잠식하기 직전에,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각 진영의 본진이 교전하고 있는 전장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인원수에서 앞선다고 우르르 들어가지는 않은 모양. 지난 세트에서 얻은 교훈이겠지.

        

       뭐, 아무래도 좋다.

        

       양손검 운용에 방해될 전리품을 포물선으로 던져 넣으며, 천천히 전장의 한복판에 발을 들였다.

        

       ……느낌이 좀 그렇긴 한데.

       

       머리를 들고 싸울 수는 없잖아.

        

       * * * *

        

       중세시대의 공성전에서는, 역병을 퍼트리고 기세를 꺾기 위해 적 진영에 시체를 투척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가. 그리 생각하면, 기왕 얻은 적장의 수급을 사기를 꺾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물론, 정말로 전쟁을 할 때의 얘기겠지만.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물체는 기이할 정도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툭. 데구르르.

        

       땅에 부딪힌 후에도, 조금 거친 공 마냥 데구르르 굴러가는 둥그런 물체. 조금 전까지 긴박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단 사실조차 잊은 채, 그 자리에 있던 10명의 눈은 자석에 붙은 듯 이끌렸다.

        

       폭탄처럼 떨어진, 주인 잃은 머리.

       

       그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10쌍의 눈동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금 전 그려진 포물선의 시작점을 향해 일제히 움직였다.

        

       거대한 양손검을 한 쪽 어깨에 걸친 기사.

        

       피칠갑을 한 갑옷이 어딘가 소름끼쳤다. 저 중 어느 정도가 자신의 피일지. 조금 전 던진 머리의 원주인이 흩뿌린 생명의 흔적은 아닐지. 소속을 드러내기 위해 몸에 두른 붉은 휘장조차, 과연 본래 저리도 불길한 적색이었는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발자국씩 다가오던 기사가, 천천히 왼손을 들어올려 오른 어깨에 느슨하게 걸쳐져 있던 대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제서야 그 손에 응당 들려있어야 할 방패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기사의 상징과도 같은 방패를 대체 어디에 팔아먹고 왔단 말인가.

        

       흉포한 기세에 눌려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한 질문. 그러나 물었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돌격을 시작한 기사가 줄 대답은 검 외에 없었으니.

         

       -콰앙!

        

       전장을 울리는 굉음이 전투의 재개를 알렸다.

        

       돌격에 이은 내리찍기. 관성이 고스란히 실린 일격을 방패로 받아낸 성기사의 무릎이 절로 꺾였다.

       

       노려졌던 마법사의 앞으로 달려나가, 가까스로 방패를 앞세우기는 했으나- 방패와 병기가 부딪혔다고 하여 방어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저 견뎌낸 것에 불과한 일합이었으니.

        

       덕분에 목숨을 구한 마법사가 다급하게 저 괴한의 움직임을 늦추기 위한 주문을 외웠지만,

       

       늦었다.

        

       -퍼억!

        

       격돌의 충격에서 미처 회복하지 못한 성기사의 가슴을 꿰뚫을 기세의, 발길질. 그리 쏘아진 일격이 몸통의 중앙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육중한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두터운 갑옷은 날붙이로부터 그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 걷어차여 밀려나는 순간엔 무게추에 불과했으니.

        

       그리하여 비참하게 널브러진 채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성기사의 위로, 피로 물든 기사가 점차 확대되듯 다가왔다.

        

       그리고,

        

       -푸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성기사의 목에 1.7미터에 달하는 십자가 모양 묘비가 심어졌다. 공격이라기보단 처형에 가까운 마무리. 잠시나마 발버둥을 치던 성기사가 그 움직임을 멎을 때까지, 붉은 기사는 역수로 쥔 대검을 무심히 밀어 넣을 뿐이었다.

        

       과연 이걸 교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켜보는 이들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짧았던 전투의 끝에, 생명을 거둔 기사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냥감을 물색하는 맹수와도 같은 움직임. 그 와중에도 피 묻은 손은 성호를 긋고 있었다.

        

       저리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달리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괴리감 있는 손짓.

        

       그 끝에, 기사가 다시 묵직한 검을 뽑아 들었다.

        

       목표를 정한 걸까.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걸어나가는 기사의 모습이 사뭇 장엄했다.

        

       * * * *

        

       《저 왔어요.》

        

       《아니, 제 정신이야? 머리를 들고 오면 어떡해. 대회에서 티배깅을 하는 미친년이 어딨어. 지금 채팅 얼마나 난리났을지 상상도 안 가네. 경기 끝나면 바로 해명부터 해요.》

        

       《……머리를 들려 오는 것보단 낫잖아요. 칭찬할 줄 알았는데. 내기 질 것 같아서 그러는 거 아닌가……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봐요.》

        

       《아니-》

        

       시끄럽던 보이스는 어느새 두 명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나긋나긋하고 나른한 목소리와, 무언가를 눌러참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

       

       시청자들이 문제삼기 전에 미리 꼬집어 혼내고 사과를 유도해서, 화재를 조기진압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이예나가 그걸 받아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그렇게 레반과 이예나가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금 전까지 복잡한 전장을 지휘하느라 핏대를 올리며 소리를 지르던 아크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대체 뭘 본 거지.

        

       알고는 있었다. 저 나른한 목소리와 매혹적인 외모 뒤에, 어떤 흉포한 실력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였구나.

        

       상식선을 벗어나는 크기의 대검을 휘두르는 전사는, 등장한 순간부터 전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태풍처럼 휩쓰는 움직임 뒤에 남는 건 시체 뿐이었으니.

        

       직전까지 치열하게 교전하던 적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채 널브러진 광경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비쳤으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다바다의 목까지 베어온 그녀를 대체 누가 막겠는가. 더욱이, 도착하자마자 탱커의 숨통을 끊어버린 덕분에 진형까지 붕괴된 마당에야.

        

       적 도적이 달려들 때 어째서인지 잠깐 멈칫하긴 했으나- 어쩐지 움직임이 조금 거칠어진 레반이 빠르게 마무리했으니, 변수 따위도 없었다.

        

       -우우웅

        

       마지막 적이 쓰러지고, 수 초. 중앙 거점에서 강렬한 빛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첨탑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허공에 소환된 회색 빛 벽돌들이, 아주 잠시 공중에 부유하다가 쿵-! 소리와 함께 꽂히듯 제 자리로 날아든다.

        

       삽시간에 첨탑이 생겨나는 광경은, 언제나 그러하듯 장관이었으나-

        

       승리를 반쯤 확정짓는 상징과도 같은 그 탑조차,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는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아크는 고개를 돌려, 선두에서 자리를 지키는 기사를 눈에 담았다.

        

       피가 흐르는 흙길 위에 꼿꼿이 선 기사는 검을 땅에 꽂아 넣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슴팍까지 오는 대검의 검신에서 천천히 흘러내리는, 아직 채 닦지 않은 핏방울이 하나씩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는 동안- 기사는, 그저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첨탑을 등지고 한 번 더 교전한 후에, 한 번에 밀어버리자는 오더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목소리. 얼마 전, 커피 잔을 들고 건배를 권유하던 그 얼굴과 어울리는-

        

       ‘아니, 위스키 칵테일이지. 그걸 누가 커피라고 불러.’

        

       그리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 자신을 바라보며, 아크는 새삼 깨달았다.

       

        아, 우승이구나- 하고.

        

       물론, 아직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다. 아크 역시, 곧 들이칠 공세에 대비하여 선 캐스팅이 가능한 주문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러나 전장을 지켜본 관객들조차 이미 직감한 사실을, 그 현장에 참여한 이들이 모를리 없다.

        

       이 승부는, 끝났다.

        

        

        

       

       한편, 조금 전 교전이 대회의 하이라이트가 되리라고 판단한 옵저버 역시 구도를 고쳐 잡고 있었다.

       

       교전과 타워 상황 등을 보여주는 중계용 구도에서, 대검의 폼멜에 두 손을 얹은 이예나를 옆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조만간 온갖 지튜브 영상의 썸네일로 쓰일 장면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명군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지각을 몇 차례 하였던 점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오늘 연재분은 조금 빠르게 업로드 예약을 걸어보았습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