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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닿지 않는다.

       

       닿을 수 없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막대한 사기를 다루는 데에 능숙해져도. 지금 내가 펼칠 수 있는 최선을 보여도.

       

       나의 검은 내 앞에 있는 자에게 닿지 못했다.

       

       어째서?

       

       지금 내가 지닌 검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산 전체의 생기를 끌어 모아서 공양을 한 지금 난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넘어 그 위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니.

       

       무림의 역사에서 전설처럼 여겨지던 이들과 같은 선상에 서는 데에 성공했을 터인데 어찌 하야 내 앞에 있는 자를 벨 수 없는 것일까.

       

       대체 이 여자는 어느 경지에 서 있는 거지? 어떤 경치를 보고 있기에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는 게냐.

       

       내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던 여류무인이 갑작스레 앞으로 진각을 내딛었다.

       

       드디어 공격을 하려는 게냐. 와라. 네 놈이 펼치는 천마신권으로 내 검을 박살내 보아라.

       

       검 위에 사기를 덧씌운다. 검을 받아칠 생각이라면 주먹 채로 반으로 갈라주겠다 마음을 먹고서 검을 휘둘렀다.

       

       여류 무인이 내지른 주먹은 얼핏 가벼워 보였다. 안에 담긴 내기도 많지 않은데다 동작도 가벼워서 간을 보려고 내지른 주먹이라 생각될 정도로.

       

       그 권을 본 순간 나는 승리를 직감했다. 저런 허약한 권으로 나의 검을 뚫어낼 순 없을 것이라 여겼기에.

       

       허나 결과는 달랐다. 여류무인의 권이 닿은 순간 검에 모여 있던 사기가 흩어지며 검이 튕겨나왔다.

       

       어째서?

       

       실패를 예상하지 않았기에 대응이 느렸다. 튕겨나온 검을 되돌리기엔 시간이 늦다. 이래서야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어.

       

       다급하게나마 몸 위에 강기를 덧씌우며 나에게 쏘아지는 권을 보았다.

       

       기시감이 들었다.

       

       난 이 권을 본 적이 있다.

       

       어디서? 그런 물음은 필요치 않았다. 여류무인이 내지르는 권을 보며 떠오른 것은 한 사람의 얼굴 뿐이었으니까.

       

       천마. 백화령. 그래. 이 권은 분명 그 빌어먹을 년이 사용하던 것과 한없이.

       

       콰앙!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나의 위에 건물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권에 맞고 여기에 처박힌 건가.

       

       힘을 조절했구나. 하고자하면 얼마든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지 않고 충격만을 가했다.

       

       화가 나는 것은 그녀가 손속을 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본보기를 보인 것이다. 내가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에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거냐 질책을 하며 예시를 들어준 거다.

       

       오만하구나. 그 빌어먹을 천마년처럼.

       

       건물의 잔해를 해치고 몸을 일으키자 나를 날려버렸던 자리에 서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대체 네놈은 무엇이지?”

       

       어찌 외부인인 주제에 그리 천마와 닮은 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물음을 던지자 여자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더니 뒷짐을 지고는 읊조리듯 목소리를 냈다.

       

       “본인은 민트초코파인… 하. 젠장.”

       

       자신의 소개를 하던 그녀는 갑자기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입을 다물더니 말을 바꿨다.

       

       “네 놈이 알 필요 없는 이름이다.”

       

       하. 본인에게는 이름을 댈 가치조차 없다는 소리더냐?

       

       개 같은 마교도년. 천마를 스승으로 둔 게 확실하구나.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그 년과 닮았어.

       

       사용하던 권도 그랬다. 이 여류무인이 사용하던 권은 내가 보았던 천마의 권과 한없이 닮아 있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그보다 더 세련되었다 볼 수도 있었다.

       

       자신이 지닌 막대한 내공으로 모든 걸 부셔버리던 천마와는 달리 이 여자는 작은 힘으로 커다란 결과를 낼 줄 알았으니까.

       

       …잠시. 만일 저 여자가 천마의 제자라 한다면 천마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저 여자의 재능이 뛰어나다 한들 단 시간에 천마를 뛰어넘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천마도 무림의 역사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인데 그를 뛰어넘는 인간이 나타날 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혹시나.

       

       만약에.

       

       내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진짜 천마라면. 나의 원수라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약한 몸에 깃들어 나의 앞에 서 있는 것이라면.

       

       그리 생각을 하고 나서 다시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기억하는 천마의 얼굴과 닮은 점보단 다른 점이 더 많았지만 단 한 군데. 한 군데만큼은 내 기억에 머무르던 것과 같았다.

       

       무심하고도 거만한 저 검은 눈동자.

       

       나는 왜 여태 저것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천마여! 화산을 멸문의 직전까지 몰아 붙였던 걸로는 부족했던 것이냐?

       

       우리의 복수마저도 짓밟아야 그대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더냐?!

       

       아하. 알겠다. 그대가 나를 살려 두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구나. 내게 절망을 안겨주기 위함이었구나.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대의 아래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새겨주기 위함이었구나.

       

       웃음이 샜다.

       

       잘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천하의 제일인을 두고 다투는 천마가 왜 일류의 흉내를 내고 있단 말이더냐.

       

       모든 걸 부수어 버릴 힘을 지닌 그녀가 외부인인 체를 하며 화산에 들리겠는가.

       

       나의 추측은 구멍투성이였다.

       

       허나 그것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저 여자가 천마건 천마가 아니건 간에 천마와 가까운 존재임은 분명한데.

       

       이 년의 목을 날린다면 천마에게 화산의 이름을 새길 수 있을 터인데.

       

       그거면 충분했다.

       

       몸 안의 사기가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사고가 뚝뚝 끊어지는 것도, 점차 이성이 좀 먹혀가는 것도.

       

       방금 전에 새겼던 장로들의 얼굴이 사라진다. 나의 은인이었던 장문인의 얼굴이 사라진다. 나 대신에 희생된 사제들의 얼굴이 사라진다.

       

       그 자리를 집어 삼킨 것은 사기의 외침이었다.

       

       눈앞의 적을 잡아 죽이라는 외침은 하늘에서 내게 내린 신탁이었으며 저승에 있는 이들이 내게 부탁을 하는 목소리 였으니.

       

       필사적으로 다스리던 사기의 제어를 놓아버리자 화산파의 부지 전체가 내 안에 있던 사기로 물들었다.

       

       진작에 이러면 좋았을 것을 난 왜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던 것일까.

       

       “천마여! 마교의 우두머리여! 정파의 원수여! 내 그대를 죽일 날만을 기다렸다!”

       

       내 외침을 들은 천마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하. 겁을 먹은 것이더냐! 이 압도적인 사기의 양에 질려버린 것이더냐?!

       

       “화산의 복수가 드디어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겠구나!”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던졌다.

       

       지금의 나에게 검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주변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 나의 검이 될 수 있는데 어찌하야 내게 검이 필요하겠는가.

       

       사기를 집약해 그를 검의 형태로 바꾸어 손에 쥐자 만족감이 차올랐다.

       

       “죽음을 각오하라! 화산의 이름을 그대의 혼에 새길 준비를 하라!

       

       이 자리에 승리와 패배는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롯이 삶과 죽음뿐일 지어니!

       

       권을 들어라. 천마여!”

       

       찌푸려진 미간으로 나를 노려보던 천마는 내가 소리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다 무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흥이 식는구나.”

       

       

       *

       

       곰방대를 입에 물고 싶구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던 기분이 이리 싸늘하게 식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둔한 놈. 내 계속 말하지 않았더냐. 무인으로써 싸우라고 몇 번이나 소리를 쳤거늘!

       

       그를 돕기 위해 내 친히 힘을 다루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찌하야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어버린 것인가.

       

       나의 권에서 원수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더냐.

       

       평생을 원망하던 천마가 나라는 걸 확신하게 되어 이성을 붙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야?

       

       분노가 너무도. 너무도 커서 자신을 다잡는 것조차 불가능해 진게냐.

       

       이제는 그대에게 묻는 것조차 불가능하겠구나. 이미 그대는 짐승이 되어버렸으니.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다 개가 짖는 소리나 다름이 없겠지.

       

       화산의 이름을 내게 새기고 싶다고 했느냐.

       

       잘 되었구나. 적어도 그대의 이름은 내게 새겨졌다. 증오에 사로잡혀 짐승이 되어버린 멍청한 작자의 말로로.

       

       사기로써 검을 만들어 낸 화산문주를 본다.

       

       넘실거리는 보랏빛 사기를 쥔 그의 눈에 이성은 없다.

       

       아마 지금 자신에게서 역겨울 정도로 진한 혈향이 난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덤벼라. 짐승아. 도축해주마.”

       

       화산 문주는 내 말에 이를 악물곤 주변에 몇 개의 검을 더 만들어냈다.

       

       사기로써 이기어검을 재현하겠단 것인가.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허나 그대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기어검이 위협적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만한 경지에 이른 무인이 무를 펼치기 때문이다.

       

       검선이 휘두르는 검이 여럿으로 불어난다고 생각을 해봐라. 전조를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검이 불어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허나 화산문주가 휘두르는 검이 느는 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지금의 그가 강해 보이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압도적으로 많은 내공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코 그가 지닌 검의 경지가 드높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무작정 이기어검을 사용하려 해봐야 박살이 날 뿐이지.

       

       한 번의 주먹으로 내 게 휘둘러진 검을 모두 파한 후 앞으로 향한다.

       

       화산문주가 만들어 내는 검이 점차 수를 불린다.

       

       하나에서 시작해 네 개로. 네 개에서 열 개로. 열 개에서 수십 개가 되어 나를 위협한다.

       

       그러면 무얼 하겠는가. 화산문주에게 그 모든 검을 다룰 능력이 없는데.

       

       자신의 손에 쥔 검 하나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멍청이가 수십의 검을 조종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검은 미친 듯이 수를 불린 잡졸들에 불과했으니 그를 상대하는 건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내 앞을 가리는 검들을 파하자 저 뒤에서 자신의 검에 사기를 덧씌우는 화산문주가 보였다.

       

       검기 위에 또 다시 검기를 씌워, 사기로 만들어 낸 검의 밀도가 점차 짙어져 간다.

       

       처음에는 연한 보라색에 불과했던 것이 진해져 검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이 이기어검들은 미끼였고 그 검으로 본인을 날려버리는 게 본 목적이었더냐. 아예 산 채로 본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은 게로구나.

       

       분명 저기에 담긴 힘은 강렬했으나 본인에게 감동을 안겨주기엔 부족했다.

       

       본인은 최근 경이로운 힘의 악몽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신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검은 것의 파동은 그대가 준비하는 것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위협적이었지.

       

       그 때의 감동에 비하면 그대가 준비하는 검격은 그저 그럴 따름이구나.

       

       진각을 밟아 달려드는 검을 물러서게 만들며 발에다 힘을 실었다.

       

       화산문주가 검을 내지르자 보라색의 검기가 해일마냥 나에게 밀려 들어왔다.

       

       넘실거리는 검기의 파도에 나에게 닿기 직전 권을 내질렀다.

       

       그러자 해일의 한 가운데에 구멍이 나더니 이윽고 집약되어 있던 사기가 터져나가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권의 여파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하여 나아간 힘은 화산문주에게 닿아 그 몸을 터트리고 그 뒤에 있는 돌산의 턱을 날려버리고서야 멈추었으니.

       

       화산문주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보라색의 사기가 구심점을 잃고 하늘 위로 흩어져 버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화산 전체에 화산문주에게서 새나온 연보랏빛 내기가 퍼지고 있었다.

       

       화산 어디를 보아도 보랏빛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그는 꼭 화산 전체에 매화가 피어난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매화의 향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화산문주의 사기에서 느껴지던 혈향 뿐이었다.

       

       이 멋진 풍경에 어울리는 냄새는 아니니 다른 것으로 뒤덮어 볼까.

       

       이치를 따라 심상을 그린다.

       

       마음에 품은 것은 어릴 적에 보았던 매화나무의 풍경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지녔던 몇 안 되는 아름다운 모양의 추억. 그 안에 새겨진 매화는 실로 향기로웠으니.

       

       화산문주의 심상의 위에 나의 심상을 덧그렸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화산문주가 펼친 심상은 짙었지만 굳건하지는 않았으니 그를 흔들어 나의 심상으로 뒤덮는 일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역겨운 냄새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매화의 향기가 화산을 뒤덮는다.

       

       [히든 퀘스트 ‘화산의 매화’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에피소드도 슬슬 막바지네요!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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