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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넌 어떻게 생각해?”

         

         정식으로 인가받은 거주자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허름한 건물들과 모래먼지가 흩날리는 공사판.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리무진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걸 구경하며, 제공된 정보를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취합할 수 있는 제로의 견해를 물었다.

         

         물론… 저걸 본 시민들이 어떤 도시전설로 재가공할지를 묻는 게 아니라 이 일에 더 관여해도 될지에 대해서.

         

         – …내키지 않으십니까? 아샤님의 능력이라면 마음에 안 드는 일을 억지로 하실 필요는…. –

         

         “아니, 내 눈치보지 말고. 그냥 솔직한 의견이 궁금해서 그래.”

         

         듣기에 달콤한 말-제로는 딱히 아첨할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을 끊어버리자, 정말 내가 자신의 판단력을 묻는 거라는 걸 눈치챈 그의 센서가 바쁘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던, 가진 변수를 다 포함해서 계산을 해보던.

         

         업무에 충실하셨던 안내인 씨의 말을 그대로 삼킨다면.

         실상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갈 경우 발을 함부로 빼기도 요원해질 것 같았기에, 마지노선이라 느껴지는 지금 여기서 확실히 정하고 가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은 큰 건수라고 해도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당초에 지금 있는 일거리 중에서 해결이 안 된 채로 원작 시기까지 미결 사건으로 남아, 최종적으로 퀘스트화 되는 게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그럼 결국에는 과거에 있었던 살얼음판 걷는 의뢰 중 하나라는 건데… 과연 그게 나에게 이득이기만 할지는 모르겠다.

         

         규모가 크다는 건 곳 상위 기업이 엮였거나, 슬쩍 한 손 거들고 있거나, 목표가 되었다는 것.

         앞길에 거무튀튀한 구정물이 얼핏얼핏 보이는데 무작정 지나가기는 조금 거슬리기는 했다.

         

         하지만 또 언제는 내가 아는 사건에만 머리를 들이밀었나?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모른 척하기 싫으면, 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저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지.

         

         이제는 정말 프리랜서다운 감시자 없는 환경과 여유가 좀 갖추어졌으니 마음에 드는 길만 골라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했는데….

         

         – 계좌에 아직 여행자 보험 보장금이 납입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관련 소송이 예정되어 있습니까? –

         

         “……그거 내 돈 주고 산 표가 아니래서 파라다이스가 다시 먹는다더라.”

         

         얘는 뭘 얼마나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 줄려고 민망한 신상정보까지 다 들추고 있는 걸까?

         별로 감출 만한 정보는 아니었으니 상관은 없긴 해도 당황스럽네.

         

         그렇게 멍하니. 공사장에 남은 골조 가건물을 노려본 채 기다렸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대체 저 황량한 곳 어디에 다른 참가자들이 있다는 건지… 고민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음성 모듈이 다시 공기를 떨리게 만들었다.

         

         – 네오 헤이븐에서 활동하실 예정이라면. 언젠가는 결국 회피해야 할 메가 코프-에나마-와 맞닥트리리라 예상됩니다. 고로 활동 자금이 목적이실 경우 자질구레한 일을 여러 차례 수행하기보단 높은 보수가 약속된 의뢰를 적게, 은밀히 수행하시는 게 좋다고 사료됩니다. –

         

         – 또한, 지금처럼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자격요건이 엄격하다면 막상 계약 이후에는 대체재가 없는 용병 쪽에도 관계 주도권이 생길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쫄지 말고 해 볼 만 하다는 거네. 알았어, 고마워.”

         

         안전이 최고라며 만류할 줄 알았던 녀석치고는 의외의 발언에 가까웠다.

         뭐, 근거가 명확했으니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위험(Risk)이 없으면 보상(Return)도 없다.’

         

         투자에 관련된 금융업계의 격언이나 실상 삶의 어떤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무엇이든 시도해도지 않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일어날 확률은 0%고, 무가치한 일에 보수를 책정해주는 세상에 없으니까.

         

         게다가 아무도 모를 일 아닌가?

         어쩌면 이 안에서 괜찮은 인맥을 만들거나, 뜻밖의 원작 인물들과 마주칠지도.

         

         사박 사박.

         

         땅을 파내느라 황갈색 흙이 잔뜩 드러난 지면을 밟고 넘어간다.

         저지르기로 결정했다면 확실하게. 괜히 어중간한 태도로 간 보다가 테스트인지 뭔지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부끄러워서… 제로를 두들겨 팰 것이다.

         

         같이 참가하기로 한 거니 책임도 같이 져야지!

         케어봇이라고 조별과제의 혹독함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암.

         

         한데 부츠가 푹푹 파고드는 흙바닥을 지나 곳곳이 휑하니 뚫린, 시멘트 가루 흩날리는 건물 내부로 들어왔거늘.

         

         밖에서 째려볼 때도 어렴풋이 느낀 거지만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내 감각에는.

         

         블랙마켓 일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으슥한 장소를 선점하고 집결지로 삼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막상 그걸 매번 따라가거나 찾는 입장이 되니까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나마 이번 경우엔 그저 주최 측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단순한 모임 장소로 삼은 게 아니라 시험도 쳐야 한다 했으니 이해는 가지만.

         

         “그래봐야 네트워크에서 암호화된 입구만 찾아도 들어올 수 있으면서.”

         

         당연히 나야 해커여서 비교적 쉬운 통로를 이용한 거고, 힘쓰는 쪽 직군이라면 따로 소개를 받거나 어디 숨어있는 창구를 발견해야 겨우 암시장 문턱을 뚫을 수 있다는 건 내 투덜거림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반면… 거침없던 발걸음을 가로막은 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강렬한 이상 현상.

         

         “윽?!”

         

         보이지 않는 허공의 경계를 넘어간 손끝으로부터 썩은 내, 지독한 악취, 끈적거리는 냄새가 느껴졌기에 화들짝 놀라 거두어들였다.

         

         손가락으로 냄새를 맡는 게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감각이 교란된 그대로 설명했기에 저런 결과물이 튀어나왔을 뿐이지. 사실 수상쩍은 건 공기의 질이 아닌 감각에 걸려드는 전파 강도와 그 가짓수.

         

         사이버웨어에 정식으로 표시되지도 않는 음습한 신호들이 어떻게든 침투해 들어오려는 게 피부 위로 저릿저릿하게 느껴졌다.

         

         전기 능력자로서 가지는 부작용인지, 평소에도 좀 전자파가 지나치게 많거나 강한 곳에 가면 거슬리는 감각이 있었는데. 완전 공격적인, 적대하는 상태에 놓여보니 그 강도가 확연하게 다른 게 체감되었다.

         

         그러고 보니… 각지에서 추천받은 해커들만 모였다고 했던가?

         

         “……시발련이?”

         

         입꼬리가 당겨지며 저절로 흉흉한 미소가 지어진다.

         

         마음가짐이 안일했다.

         반갑게 악수나 나눌 사이는 아니더라도, 얼굴도 마주보기 전에 어떤 새끼가 이딴 헛수작부터 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전포고는 아주 확실히 받았다.

         

         저쪽이 인사 대신 엿을 날려준다면 나는 엿 대신 이 새끼를 찾아서 정강이를 걷어차 주마.

         

         우선 사이버웨어의 일반적인 송수신 기능을 모조리 차단했다. 개방한 채널은 오직 제로와 나 사이에 연결된 전용 회선뿐.

         

         전처럼 신호 자체를 더듬어 근원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이 제한된 공간에서 숨어봐야 어디에 숨었겠나, 작정하고 뒤집어엎으면 알아서 나오겠지.

         

         “의심 가는 곳은 다 말해봐.”

         

         – 제 열 감지 주사장치(Heat Scanner)는 어디까지나 가정용이기에 범위가 좁으나… 건물 지하로부터 올라오는 대기 온도가 평균 기온보다 약간 더 높게 감지됩니다. 다수의 체온과 호흡으로 인한 현상이라 보여집니다. –

         

         “딱 숨어있을 법한 장소네.”

         

         나보다는 제로가 간섭당하지 않도록 방화벽을 단단하게 굳힌 뒤, 독기 가득한 장막을 가르고 들어갔다.

         

         허름한 층계를 밟고 내려간다.

         지상으로는 구조물도 제대로 못 올린 주제에 지하로는 호쾌하리만치 깊이 파 놓고 지지대까지 올린 게 웃겼지만 어쨌거나.

         

         타닥…!!

         

         노골적으로 큰 소리가 지하공동에 울려 퍼지도록 발을 구르며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일부는 옹기종기, 또 일부는 어수선하게 거리를 둔 채로 시간을 죽이느라 바빠 보이던 인간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 나와 마주쳤다.

         

         자, 어느 놈이냐? 매너는커녕 기본적인 싸가지조차 없이 다짜고짜 시비부터 걸어온 건?

         

         “햐… 피부 뽀얀 거 봐라. 역시 우리 업계가 음침하긴 해도 미녀가 많….”

         “근데 저런 꼬맹이도 추천받은 해커랍시고 오는….”

         

         쿵!!

         

         “”…….””

         

         좋을 대로 나불대던 입들은, 부실한 계단의 내구성이 염려된다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쫓아오던 제로가 그 모습을 드러내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꾹 닫혔다.

         

         음담패설이나 꼬맹이…거리는 건 상당히 열 받는 데다가 강약약강의 태도가 치졸하긴 해도 일단 저것들은 범인이 아니다.

         탐지가 목적이던, 견제가 목적이던지간에. 전파를 뿌린 장본인은 방화벽을 감지한 시점에 드로이드의 존재도 눈치챘을 테니까.

         

         ‘나와라… 나와.’

         

         간헐적으로 따끔거리는 팔뚝을 쓸어내리며 참가자 무리를 훑었다.

         차라리 진짜 악취가 풍기는 게 나았겠다. 냄새는 적어도 시간이 지나면 후각이 마비되어 느껴지지 않지만, 이 망할 전파는 꾸준히 거슬렸기에 우선은 멈추게 만들 심산이었는데.

         

         누적된 짜증은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해소되었다.

         

         “엥…?”

         

         한 여성이 다가오자 몸 여기저기에 뒤엉켜 있던 그물망이 단번에 날아간다.

         마치 복슬거리는 아프로 머리가 해로운 전자파를 흡수해주는 것처럼, 주변에 청정구역을 두른 그녀가 당당하게 이쪽으로 걸어오더니… 척! 하고 손을 뻗어왔다.

         

         “아재들이 뭘 모르시네. 요즘은 어릴 때부터 임플란트 넣은 채로 큰 애들이 훨씬 유능한데. 안 그래?”

         

         “….”

         

         나를 안다는 것처럼 쾌활하게 동의를 구하는 여자한테 난 돌려줄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니,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삐딱한 눈초리를 돌려주었더니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우치고는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마리나 세라노라고 해! 옷깃이 스친 인연이라도 이런 데서 다시 만나니 꽤 반갑네!”

         

         “…….”

         

         아니, 진짜 누구냐고 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의가 없어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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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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