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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데릭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뭐가 그리 난감하냐고?

       혹 정체를 들키고 궁지에 몰리거나 적에게 둘러싸인 것이 아니냐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편이 마음이라도 편하겠다.’

         

       데릭이 그렇게 쓴웃음을 지을 때.

         

       [내 말 듣고 있나요!]

         

       “아, 드, 듣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뭐라고 했는지 똑같이 말해봐요.]

         

       “그, 그게….”

         

       [내 이럴 줄 알았지. 데릭, 당신 정말 너무한 거 알아요! 어떻게 나와의 약속을 잊을 수 있죠!]

         

       “…잊었다기보단, 그냥 영애님이 일방적으로 하신 약속인 게-.”

         

       [뭐라고요-?]

         

       “…그냥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영애님. 화 푸세요.”

         

       [흥!]

         

       “으음…!”

         

       데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난감함과 곤혹스러움을 느끼며 침음을 흘려야 했다.

         

       땅굴까지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고.

         

       남들이 봤다면 주먹을 부르는 연인간의 다툼이 아닐 수 없었고, 이한이 이를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봤다면 그가 분근착골을 당할 우려가 있었으니까.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세상에 통신 기술 따윈 없다.

         

       한데도 데릭이 땅굴과 수백 키로 떨어진 왕도의 영애와 연애질, 아니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획득 가능한 아이템, [파랑새의 지저귐].

       남녀가 나눠 가졌을 때만 사용 가능한 귀걸이 형태의 아티팩트였고, 데릭은 이 아티팩트가 이벤트성으로 존재하는 아이템임을 알아 미리 회수한 것이었다.

       비록 남녀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조건이 있을지언정, 그 효용성이 어마어마하단 건 누구나 인정할 테니까.

         

       현대전만 보더라도 통신기술이 확보되는 것으로 전장의 양상이 바뀌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벤트 아이템치곤 상당한 사기템인 바.

         

       뭐, 지금이야.

         

       [그래서, 언제 돌아오는데요?]

         

       “아, 아마 아카데미 휴식기가 끝날 때쯤이면….”

         

       [여름이 다 가고 오겠다는 뜻인가요? 제 저택에 오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네요?]

         

       “그, 그게 아니라….”

         

       친분을 나눈 여성의 기분을 풀어주는 처지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데릭은 후회를 머금었다.

         

       ‘…괜히 줬어.’

         

       알고 지내는 여성 중 가장 친분이 깊고, 무엇보다 신뢰가 있었기에 맡기긴 했는데 이런 단점(??)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데릭은 침음이 흐르려는 것을 참으며 그녀, 카린에게 말을 건넸다.

         

       “영애님, 아니 카린 한 번만 봐줘요. 다음에 만나면 사과도 건네겠습니다.”

         

       [흐음, 영 믿음이 안 가는데요….]

         

       “하, 한 번만요.”

         

       [흥! 이번만이에요.]

         

       “고, 고마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영애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주면 화를 풀어줄 때가 잦았고, 오늘 이 수단이 잘 먹힌 것에 안도하였다.

         

       ‘다행이다.’

         

       전날 화가 났을 때 온종일 내내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빠르게 풀린 편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안도감을 머금으려는 그때.

         

       [당신이 먼저 연락한 걸 보니, 수도의 상황이 궁금한가 보네요?]

         

       “…….”

         

       [하여튼 얄미워.]

         

       “미, 미안합니다.”

         

       [흥!]

         

       역시 영특한 여인답게 그가 먼저 연락을 건넨 이유를 빠르게 눈치채는 카린이었다.

         

       데릭으로선 미안한 일이긴 했다.

       그녀의 호의에 기대어 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보를 수집하는 셈이었으니까.

       허나 그로선 땅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수도, 그러니까 모든 일의 중심지인 왕도조차 관심을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이었다.

         

       ‘왕도에는 지금 로엔 공자와 아이린 공녀가 있으니까.’

         

       원래 같으면 원작의 주인공이자 악녀가 될 인물.

       그러나 지금은, …하니까 교관님이 추정하기로.

         

       ‘회귀자이자 빙의자일 것으로 예측되는 인물….’

         

       교관님 못지않게 예측 불가한 나비의 날갯짓임이 분명한 이들이었다.

       데릭은 그들에 대한 소식을 궁금해 하는 불가피할 수밖에.

         

       [흥, 날 정보원으로 쓰는 비용은 비쌀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후우, 일단 수도에는 별다른 일이 없어요. ‘외부적’으로는.]

         

       “그 말씀은…?”

         

       [내부적으론 여러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트리스탄 후작 각하께서 레비 영애를 정식으로 입적(入籍)시켰다는 소식이 있을 테죠.]

         

       “이, 입적이라니…! 수양딸로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트리스탄의 성마저 주기로 했다는 겁니까?”

         

       [레비 영애를 후작 전하께서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신 모양이에요. 아마 이 소식이 정식으로 퍼지면 한동안 사교계가 시끄러울 테죠.]

         

       “허어….”

         

       사람 일은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다고들 하지만, 설마 비운의 영웅이 이러한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될 줄이야….

         

       ‘이거 이러다 내가 가진 정보가 다 쓸모없어지는 거 아니야?’

         

       사람들 개개인의 운명이 너무나 뒤바뀌었다.

       데릭으로선 이 흐름이 어떠한 격류를 안길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허나 더욱 복잡할 일은 많이 남았다는 듯이 카린의 입은 계속해서 열렸다.

         

       [그리고 최근 들어 어느 상단이 운영하던 ‘불법 노예 경매장’의 존재가 밝혀졌다고 하네요.]

         

       “…….”

         

       [또한 듣기론 경매장의 존재를 세간에 밝히고, 경매장 자체를 없애며 노예들을 풀어준 사람은 어느 흑발머리 검사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흥, 자기 정체를 숨길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네요.]

         

       “…로엔 공자.”

         

       [십중팔구 그가 맞겠죠. 덕분에 지금 로엔 공자를 영웅이라 칭송하는 자가 많아요. …본인은 여전히 부정하고 있지만요.]

         

       “음.”

         

       ‘…그들을 구하러 갔구나.’

         

       데릭은 로엔의 움직임을 들으며 그가 습격한 노예 경매장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챕터 17장에 등장하는 노예 경매장.

       암흑가의 지배자가 운영하는 곳으로 경매가 어디서 일어날지는 예측 불가.

       하여 데릭도 그 존재는 알지만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곳이기도 했다.

         

       허나 역시 회귀자로 추정되는 사람답게 경매장을 찾은 듯했으며, 그의 목적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간다.

         

       ‘암흑가의 주인인 놀란 백작을 처단하고, 경매장에 잡혀 있던 인재들의 영입, 그리고 난쟁이와 친목을 도모하려고 그러는 건가?’

         

       암흑가의 주인 놀란 백작은 챕터30에 가서도 골치 아픈 적이니 그를 미리 처리하기 위해서라면 지금이 적기가 맞다.

       때 아닌 테러로 인해 왕도가 범죄에 대한 인식이 살벌하여 암흑가의 주인이 가장 약할 시점일 테니.

         

       그리고 놀란 백작만 처리한다면 얻을 수 있는 은닉 자금은 거의 만 명이 넘는 병력을 반년은 먹여 살릴 자금이다.

         

       아마 예측이지만 이 은닉 자금을 온전히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의 공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경매장을 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이득은 다름 아닌 ‘인재’와 ‘인연’에 있었다.

         

       ‘경매장에 분명 쌍둥이 하프가 있었지? 거둬들일 수만 있다면 1티어급 인재인….’

         

       잘만 키우면 Lv.7까지 거뜬히 성장할 인재들.

       권력과 돈으로도 얻을 수 없을 [영웅 클래스]를 얻을 기회인 바.

         

       거기다 추가적으로 경매장에 잡혀 있던 이들 중엔 ‘난쟁이’가 있을 터.

         

       원수는 두 배로, 은혜는 열 배로 갚는다는 신비종족.

       손재주가 좋으며, 장인으로서도 훌륭하지만 여러 많은 지혜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종족이다.

       이들과 인연이 생긴다는 것은 천문한적인 가치가 아닐 수 없는 바.

         

       ‘일석이조, 아니 일석사조를 얻었네, 그 사람.’

         

       명예와 돈, 인재와 인연.

         

       그야말로 회귀자의 특권은 이런 거다를 보여주는 정석이 아닐까.

         

       그러나 데릭은 로엔이 얻은 것이 부럽거나 아니꼽게 보지 않았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하진 않았으니까.’

         

       솔직히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는 로엔 공자다.

       거기다 그가 알던 것과 달리 회귀자란 불확실한 요소마저 섞인 것이니, 그로선 그의 인성이 어떠한지를 모른다.

       한데 비록 자신의 이득을 취득하긴 했지만, 다른 히든 피스 중 유독 경매장을 습격하여 처단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줄만했다.

         

       경매장의 경우 놔두면 놔둘수록 납치당한 이들의 고통만 커지는데, 이를 구한 것이니까.

         

       ‘이 시기에 이득을 취할 거라면 가령 [던전] 같은 것을 노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대신 경매장이었으니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내심 좋은 평가를 내리는 데릭은 로엔에 대한 의심을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의 성격상 모든 의심을 버릴 수는 없을 테지만.

         

       “카, 카린, 혹, 혹시 괜찮다면 로엔 공자의 행적을 계속 알려주세요. 깊게는 파고들지 않아도 되고요.”

         

       [흐음, 그에 대한 미심쩍음이 있는 거군요?]

         

       “…하하.”

         

       하여튼 똑똑한 사람을 상대론 뭘 숨길 수가 없다.

         

       [후후, 좋아요. 안 그래도 저도 그 사람에게 관심이 가던 참이었으니까.]

         

       “?”

         

       [차, 착각은 하지 말아요! 이성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알겠죠? 저는 그런 느끼한 남자 취향이 아닐뿐더러, 경계심 많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남자가 좋아요. 알겠죠?]

         

       “네에…?”

         

       …남자 취향이 너무 특이한 거 아닌가?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데릭은 이를 입으로 내뱉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취향을 존중할 뿐.

         

       하지만 경계심 많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남자라니….

         

       ‘그런 사람이 그녀 주변에 있었나?’

         

       한편으로 그런 사람이 실존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들었지만.

         

       [아, 그리고. 아이린 영애 말이에요.]

         

       “…….”

         

       다급하게 말을 돌리려는 기색이 역력한 카린이었으나, 이와 상관없이 데릭은 아이린이란 단어에 집중했다.

         

       아이린 윈들러.

       추장하기로 빙의자일 것임이 분명한 소녀.

       다만 회귀자와 달리 이 세상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던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란 게 데릭의 판단이었다.

         

       본인이 뭘 주체적으로 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말 그대로 전형적인 로판 속 여주인공 같은 느낌이 드는 소녀가 아닐까 싶었고, 아니나 다를까.

         

       [여러 거물들의 관심을 받는 모양이더라고요. 그 갈라하드의 수양딸이란 것도 있을 테지만, 전날 보인 마법이 정말 엄청났잖아요? 그것 때문인지 제국 마탑의 후계자란 이가 직접 아이린을 보러 오겠다는 얘기도 있어요. 추가적으로 서부 대륙의 술탄도 그녀가 가진 물의 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왕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허.”

         

       중앙 대륙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마탑의 후계자와 서부 대륙의 술탄이 직접 방문한다?

         

       그것도 한 여성에게 관심이 생겨서?

         

       ‘워, 원래 여주한테 일어나야 할 일이 아이린 영애한테 다 생기는 느낌인데….’

         

       원래 원작의 본격적인 시작은 내년, 그러니까 데릭이 2학년일 때 일어나야 함이 맞다.

       한데 워낙 지금 원작이 훼손된지라 모든 게 정확하지 않았고, 내년에 일어나야 할 이벤트가 벌써 발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여 데릭은.

         

       ‘조졌네, 이거….’

         

       자신이 가진 정보의 7할 이상이 못 써먹을 게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회귀자(추정)도 비슷하리라.

         

       ‘이래서 사공이 많으면 안 된다는 거구나.’

         

       배가 산으로 가다 못해 하늘로 가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하아….”

         

       [갑자기 웬 한숨?]

         

       “아, 미안합니다, 카린. 마음이 좀 복잡해져서.”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도 있고.]

         

       “…….”

         

       [혼자 끙끙대지 말란 거예요. 칫, 이것도 한 번에 못 알아들어요.]

         

       “…아니요, 알아 들었요. 고마워요, 카린. 덕분에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겨우 좀이요?]

         

       “아, 아주 많이요…!”

         

       [후후, 그래야죠.]

         

       “…하하.”

         

       당당한 그녀의 발언에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지만, 정말 속은 좀 편안해졌다.

       자신과 달리 항상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그런 걸까?

         

       ‘좋은 사람이야, 카린 영애님은.’

         

       그리고 그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혼자서만 끙끙 앓아봤자 무얼 하겠는가.

         

       ‘지금에 집중하자.’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기자.

       자신의 정보를 못 써먹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 대신 일을 처리해줄 인물들이 ‘둘이나’ 더 있다고.

         

       ‘자기들 일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데릭은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본인들이 불러들인 재앙이나 일은 저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아무렴 컬쳐 업계에서 클리셰의 삼대장이라 불리는 회귀자와 빙의자가 아닌가.

         

       ‘물론 끝판왕이 나(상태창)지만.’

         

       하니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나만 잘하면 그만이다.

         

       이러한 마인드와 함께 데릭은 카린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후 믿음직한 협력자의 곁으로 귀환했다.

         

       그에게 얼른 정보를 공유하고 이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

         

       ……분명 그랬는데.

         

       “어, 왔냐?”

         

       “…?”

         

       “아, 저거? 신경 쓰지 마. 그냥 장식이라고 생각해.”

         

       “…….”

         

       “맞다. 내가 알아낸 게 좀 있다. 아무래도 그 혈교 짝퉁 녀석들이 괴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더라.”

         

       “…어어? 네에?”

         

       “그러니 그것만 해결하고 집에 가자. 아무래도 빨리 끝날 것 같다.”

         

       “??”

         

       …데릭은 갑자기 자신이 그다지 필요 없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혼자 다 해결하시네….’

         

         

       왠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오는 데릭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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