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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3

   광장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소울 아카데미에서의 시험은 다음 학년으로 승급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르는 중대한 기점이다.

   

   이 곳에 속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 성적은 게시되지도 않은 듯 하다만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많군.

   

   아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우야. 너도 성적을 보러 왔느냐?”

   

   왕궁의 신하들에게 전사답다는 평을 듣는 그 목소리로 아서를 부른 것은 그의 형제인 세실 솔라딘이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2왕자님.”

   

   아서는 그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지만 그 옆에 서 있던 조이는 달랐다.

   

   그녀는 능숙하게 예의를 차리며 세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세실은 아카데미인데 그리 예를 차릴 필요 없다 이야기했으나 흐뭇한 듯 올라간 입꼬리는 조이의 겉치레가 마음에 들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조이와 가볍게 사담을 나눈 세실은 이윽고 아서 쪽으로 고갤 돌리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아우야. 어떠냐. 이번에는 최고가 될 수 있을 듯 싶으냐?”

   

   이는 형제에게 시험을 잘 쳤느냐고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세실이 아서에게 안부를 물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저는 지난번에 루시 알른에게 참패했는데 이번이라고 이길 수 있겠느냐.

   

   매번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다 거기서 밀리니 어떠냐는 도발이었다.

   

   보란 듯이 지어진 웃음을 보면 분명했다.

   

   루시와 내기를 하기 전의 아서였다면 저 도발에 넘어가 목소리에 감정을 담았으리라.

   

   그 때의 아서에게 최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사실은 콤플렉스 그 자체였으니까.

   

   허나 지금은 다르다.

   

   루시 알른이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 위에 있는 상대이며 언젠가 넘어서고 말 라이벌이라 여기게 된 지금은 세실의 도발에도 웃을 수 있었다.

   

   “글쎄요. 최선은 다했습니다만 결과는 모르겠습니다.”

   “…흠. 그래?”

   

   자신이 생각했던 것에 비해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것일까.

   

   세실은 노골적으로 실망을 드러내더니 자기 성적을 확인하러 가봐야겠단 말과 함께 떠나가 버렸다.

   

   정말이지.

   

   생긴 것도 체형도 거침없는 전사에 가까우면서 속은 자그마하니.

   

   세실 형님은 결코 왕이 될 그릇은 아닌 듯 하구나.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인파를 뚫으며 지나가는 세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서는 그 너머에서 거대한 종이를 들고 등장한 교수의 모습에 세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드디어 왔나.

   

   과연 이번에 루시 알른은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가.

   

   자신의 자만에 치여버렸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도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널리 떨쳤을까.

   

   어느 쪽일지 실로 궁금하구나.

   

   자아. 보여다오.

   

   종이를 가지고서 광장 한복판에 도착한 교수가 그를 게시판에 걸었다.

   

   맨 처음으로 펼쳐진 것은 1학년의 성적이었다.

   

   그 가장 위 편에 적혀 있는 이름은.

   

   ‘루시 알른’

   

   아서가 예상했던 그 이름이었다.

   

   하.

   

   하하하하.

   

   그래. 천재라 그것이더냐?

   

   교수들의 수업 따위 듣지 않아도 자신이 지닌 재능만으로 모든 이들을 자기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그것이야?!

   

   도저히 본인의 머리로는 납득을 할 수가 없군.

   

   대륙 제일의 천재 검사인 프레이 켄트를 굴복시킬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공부 하나 하지 않고 소울 아카데미를 재패할 정도의 지성을 지니고 있다니.

   

   이것이 진정 나와 같은 인간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존재인가?

   

   본인도 나름 천재란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만 하늘 위엔 하늘이 있다는 게냐!

   

   “우와! 와!”

   

   또 다시 꼭대기를 차지한 루시 알른의 이름을 보고 아서가 감탄하던 때에 그 옆에서 갑작스레 탄성이 튀어나왔다.

   

   평소 귀족다운 기품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조이치고는 과한 감정표현이었다.

   

   대체 그대의 성적이 어떻기에 이런 반응인 것인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닌 듯 한데.

   

   슬쩍 눈길을 돌렸다 다시 성적표 쪽으로 시선을 돌린 아서는 루시의 아래에 있는 이름을 보고서 눈을 크게 떴다.

   

   왕자의 체통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이름은 그의 예상과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조이 파트란’

   

   “제가 2등이라니! 여태까지 받은 성적 중에 가장 높은 것 같아요!”

   

   아서 솔라딘의 이름은 그 아래 3등에 적혀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조이가 본인을 이겼다고?

   

   어떻게?

   

   본인이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인가?

   

   채점 과정에서 무슨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 나돌았지만 아서는 차마 그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옆에 있는 조이가 너무 기뻐보였던 것이다.

   

   차마 지인의 앞에서 네가 왜 나를 이겼느냐는 소리를 할만큼 치졸하지 못했던 아서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축하한다. 조이.”

   “감사합니다. 왕자님!”

   

   *

   

   사령들에게 홀로 쫓기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 나는 벌떡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벽을 바라보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피곤해.

   

   어젯밤에 나대지 말고 일찍 잘걸 그랬어. 지금 내 피로의 원흉은 어젯밤에 처음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 할배는 빨리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루 종일 내게 잔소리를 내뱉었다.

   

   방금 시험이 끝났으니 조금만 쉬다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네가 시험을 쳤느냐? 내가 쳤지?’ 라는 발언 앞에서는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하루 이틀 미루다보면 평생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로 시작을 해야지!>

   

   할배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한 나는 아카데미의 도서관에 가서 기초부터 시작하는 유아용 공부서적을 들고 왔다.

   

   배움이니 뭐니 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상식부터가 없는 나다.

   

   공부를 위해서는 머리가 새하얀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것부터 시작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할배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서적을 펼쳤던 나였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더라?

   

   공부를 하다가 재미가 없어지는 구간은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골이 아파질 때잖아.

   

   수학으로 따지면 덧셈 뺄셈을 배우는 레벨에서는 그런 막힘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단 말이지.

   

   거기에 더해서 그런 기본적인 것을 풀 때마다 할배가 잘했다면서 넌 천재라면서 칭찬을 해주니까 나도 모르게 몰입을 해버렸어.

   

   그 결과 내가 어제 잠에 든 시간은 새벽이 되고 난 후였다.

   

   그 때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잠에 들긴 했지만 오래 자진 못했을 거다.

   

   어디 보자.

   

   지금 시간이 7시 10…

   

   늦었다!

   

   다급히 일어난 나는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잠버릇 때문에 개판이 된 머리부터 가다듬고…

   

   ‘왜 안 깨워 주신 거에요?!’

   <곤히 자는 녀석을 깨우기는 그렇지 않으냐. 매일 하는 수련이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패턴이라는 게 있잖아요!

   

   원래 나는 새벽녘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알른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훈련을 하며 패턴을 맞추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지.

   

   처음에는 아카데미에 오고 나서 홀로 훈련을 하던 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기에 프레이가 추가 되고 지난 번 일로 조이가 추가 됐다.

   

   우리 셋은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새벽마다 같은 시간에 나와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은 훈련장에 나와 있을 것이다.

   

   알아서 훈련을 하고 있겠지?

   

   날 기다린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수련장으로 뛰듯이 향하던 나는 아카데미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뭔가 있는 게 아니면 사람들이 저기 있을 이유가 없는데?

   

   아! 오늘 성적 나오는 날이구나. 맞다.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네.

   

   …지금 가더라도 늦은 건 늦은 거니까 조금 더 늦어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두 사람은 알아서 훈련을 하고 있을 테니까.

   

   발걸음을 늦춘 나는 게시판을 살피기 위해서 까치발을 들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 내 키는 보통 학생들에 비해서 머리 한 개에서 두 개 정도는 작다.

   

   까치발을 든다고 해서 저들의 어깨를 넘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이 방법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으니 어떡하겠어.

   

   어깨 너머로 성적을 확인하는 걸 포기한 나는 아무 말 없이 앞사람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러자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남학생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누구…”

   

   허나 그의 험악했던 표정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길 좀 비켜주시겠어요?’

   “잔챙이. 방해되니까 사라져 줄래? 내 앞에 멀뚱히 서 있는 거 기분 나쁘거든?”

   

   “넵! 알겠습니다!”

   

   남학생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에 닿았다.

   

   그리고 나서 내 출현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 둘 뒤로 물러나며 인파의 한 가운데에 길이 생겨났다.

   

   이게 바로 아르마디의 사도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

   

   사람의 파도를 가르는 일이다.

   

   아르마디한테 그런 권능은 없다고?

   

   알빠냐.

   

   어차피 우리 허접 주신의 사도가 나밖에 없는데 내가 지닌 힘이면 그게 바로 허접 주신의 권능이지 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익숙해져서 그를 한 귀로 흘리며 앞으로 나아간 나는 게시판에 걸린 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시 알른’

   ‘조이 파르탄’

   ‘아서 솔라딘’

   ‘자칼 버로우’

   

   맨 위에 쫘르륵 걸려있는 네 개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순간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보았다.

   

   허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라?

   

   왜 조이가 2등에 있는 거야?

   

   내가 아직 잠에서 덜 깼나?

   

   ‘할배. 이거 꿈이에요?’

   <꿈이겠느냐. 정신을 차려라.>

   ‘그쵸?’

   

   근데 왜 얼빵 영애가 2등이지?

   

   우리 얼빵 영애에게는 이럴 능력이 없는데?!

   

   너 누구야!

   

   사실대로말해!

   

   나 말고 다른 빙의자라도 나타난 건가?!

   

   얼빵 영애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고 2등을 할 리가 없잖아!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인벤토리 기능이 개방됩니다!]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던 중 알림소리가 났다.

   

   허접 주신님이 확실히 보상은 성실히 챙겨주신다니까.

   

   조이가 어떻게 2등을 한 건지는 나중에 확인해도 되니까 일단 보상부터 보자.

   

   

   인벤토리 창을 연 나는 소울 아카데미를 할 적에 지겹도록 봤던 모습에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게임이고 섹X지.

   

   시험 삼아 손에 차고 있던 반지를 인벤토리 창 안에 집어넣은 나는 반지가 사라지며 창 안에 들어간 곳을 보고 감격했다.

   

   아르마디님. 주신 행동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편의 기능만 넣어 주세요.

   

   제발요.

   

   로그 창 같은 쓰레기 기능 좀 그만 넣어 주시고요.

   

   –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지급됩니다!]

   

   퀘스트 하나 깼으니까 또 새 거 주는 거에요?

   

   이번에는 뭔데요?

   

   뭐 주실 건데요?

   

   인벤토리 기능처럼 쓸모있는 건가요?

   

   아님 다른 사람 호감도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건가요?

   

   우리 허접 주신이 다시 허접 무능 변태 행동을 해서 날 억까하려고 퀘스트를 주더라도 난 그걸 얼마든 해결할 수 있으니까.

   

   보상만 제대로 된 걸 주면 좋겠는데.

   

   “알른 가문의 루시 영애.”

   

   퀘스트를 확인 하기 위해 다음 메시지를 읽으려던 나는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보통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나한테 접근하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시비를 걸려는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메스가키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맛 보여줄 테다.

   

   머릿속으로 여러 매운 단어를 장전하며 고갤 돌린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ㅅ…헙!’

   

   “반갑다. 솔라딘 왕국의 2왕자 세실 솔라딘이라고 한다.”

   

   세실 솔라딘.

   

   솔라딘 왕국의 2왕자이자 왕을 노리고 아서와 경쟁하는 NPC.

   

   개인 스토리를 통해 성장하기전엔 단순무식하고 치졸한 인간이라 도저히 왕에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

   

   와아. 진짜 큰일 날 뻔 했다.

   

   다급하게 입을 틀어 막아서 망정이지 이 사람 이름을 입에 담았다면 큰일 났을 거야.

   

   그도 그럴 게 이 사람 유저들 사이에서 별명이 ‘병신 왕자’인 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고 날 뻔했습니다.

——

노벨 머스타드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렇죠! 메스가키 붐은 올 겁니다!
메스가키탈리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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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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