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4

        

        

       메르헨 아카데미에 돌아온 이후로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최근엔 메르헨 아카데미를 포함해 황국 일부가 멸망할 뻔한 엄청난 사건이 있었으나.

        

       며칠간 휴강하며 안정기를 거친 뒤, 아카데미는 수업을 재개했다.

        

       마법학부 수업동, 오르핀관. 2학년 강의실.

        

       옆으로 묶은 청은발의 여학생, 이브 로펜하임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기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면, 상공에 떠있던 거대한 천공의 섬이 떠올라 버린다.

        

       그것이 부유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그리고 부유섬 위에서 벌어졌던 무시무시한 격돌을 이브는 기억했다.

        

       검은 괴물. 그는 부유섬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메르헨 아카데미도, 사람들도, 제 동생인 아이작도,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

        

       돌연 책상을 두들기던 이브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합동 실습 평가에서 보았던 아이작의 능숙한 마법 실력.

        

       뛰어난 신체 능력.

        

       얼음 속성.

        

       그리고.

        

        

       ─ ‘다짜고짜 절 공격하고 아이작 님을 뺏으려 드는 건 용납 못합니다.’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이 내뱉었던 공격적인 언사.

        

        

       “아이작, 님….”

        

        

       이브는 독백했다.

        

       카야를 처음 만났을 땐 공포감 때문에 몹시 흥분한 상태여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성을 되찾은 후로는 쭉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려 메르헨 아카데미의 마법학부 차석이나 되는 학생이, 아이작을 ‘아이작 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른다….

        

        

       “…그럴 리가.”

        

        

       엉뚱한 생각이 들자 이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작이 검은 괴물일 리 없잖은가.

        

       검은 괴물은 대마법사. 괴물 중의 괴물.

        

       아이작처럼 일말의 마법적 재능도 없었던 녀석이 죽어라 노력했더라도, 결코 검은 괴물 수준에 이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이작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만데.

        

       자신은 아이작과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누나였기에, 그가 검은 괴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오자 머릿속을 갈무리했다.

       

       이브는 창가에서 눈을 떼고 상념을 집어던진 뒤, 현실로 되돌아왔다.   

        

        

       

       

       * * *

        

        

       

        

       최근 운동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마법 단련이 일과에서 빠진 덕분이었다. 지금 나는 마력 고갈 상태에 이른 마법 고자니까.

        

       컨디션은 매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고, 잠자리도 몹시 편안해졌다.

        

       평소에 고된 마법 단련이 얼마나 과한 피로를 안겨 줬는지 새삼 실감이 날 정도.

        

       지금이 재정비 시기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진짜, 적응 안 된다.’

        

        

       가벼운 얼음이나 바위를 만드는 건 심심할 때마다 스피너 돌리듯 간단하게 가능했고.

       

       피로는 패시브 스킬처럼 매순간 달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마법을 못 쓰는 몸이면서 기분은 상쾌하기까지 하다니.

       

       도저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수업을 마친 뒤 오후 끝자락의 햇살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메르헨 아카데미의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부유섬 때문에 휴강한 것도 고작 3일이었지.’

        

        

       3일간 휴강하고 수업 재개.

       

       오늘은 내가 부유섬을 쓰러뜨린 뒤 3주차에 접어든 때였다.

        

       부유섬 사건의 후폭풍은 학사 측에서 애처롭게 감내하는 중이었다.

        

       뭐, 그냥 엄청 난리가 났다.

       

       

       ‘부유섬이 뒤졌으니까.’

        

        

       천공의 요새, 멸망의 전조, 낙원이자 지옥.

        

       부유섬은 제르베르 황국 토벌 목표 1순위였다.

        

       그 전력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 미스터리하고도 거대한 섬이, 갑자기 천공에 나타나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역사 속에서 부유섬이 발생 시킨 인명 및 재산 피해는 무슨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하룻밤 새에 그 거대한 형상이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아, 황국으로선 아무리 빠르게 토벌대를 구성해도 부유섬을 해치우러 갈 수 없었다.

        

       그리 역사 속에서 인류는 부유섬에게 유린당하며 살아왔으나.

        

       그런 생물을 메르헨 아카데미에 서식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 검은 괴물이 해치운 것이다. 그것도 단 혼자서.

        

       

       ‘사건 정황이랑 도로시 증언 토대로 아카데미에서 내린 결론이었지.’

       

       

       그 소식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부유섬까지 해치우며 황국을 지켜낸 검은 괴물은 이제까지의 행보와 더불어 ‘이름 없는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카데미는 덤이고, 인류 자체를 구원한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

        

        

       ‘기대 이상의 결과야.’

        

        

       어차피 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을 쭉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검은 괴물이 메르헨 아카데미 편이라는 확고한 스탠스를 선제적으로 내보일 생각이었는데… 밑밥이 내 기대 이상으로 아주 잘 깔렸다.

        

       다만, 교장을 포함해 학사 인력들이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을지가 눈에 선했다. 마족 출현 건으로도 수습이 벅찬데, 검은 괴물을 중점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을 테니.

        

       하지만 아쉽게도 악신이 쓰러지기 전까지 그들에게 봄날이란 찾아오지 않을 터.

        

       휴교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역시나 이 아카데미는 기필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이념으로 부단히 굴러가고 있었다.

        

        

       ‘물론, 그건 둘째 문제고.’

       

        

       애당초 이념이고 자시고 메르헨 아카데미는 휴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전술했듯.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놈들이 죄다 여길 주목하고 있으니까.’

        

        

       제르베르 황국의 카를로스 황제가 대놓고 메르헨 아카데미를 든든하게 지원하려 하고 있으며.

        

       헬리제 교단도 메르헨 아카데미를 눈여겨보고 있는 상황.

        

       헬리제 교단의 교황에겐 세속적 지배권이 인정되어, 그가 다스리고 있는 영유지는 독립된 성국(聖國)으로 분류된다.

        

       황국 내에서 유일하게 카를로스 황제랑 맞다이 뜰 수 있는 지위를 지녔다는 얘기다. 황제라고 신의 영역에서까지 위에 서 있진 못하니까.

        

       하물며 제르베르 황국 수준에 버금가는 국력을 지닌 동방국, ‘화봉국-호란’도 이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내년에 황실에서 황녀가, 교단에서 성녀가, 동방국에서 무녀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으려는 상황이므로….

        

       아카데미 윗놈들에게 휴교나 폐교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황제의 보호 아래 학생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며, 아카데미는 어떻게든 계속 굴러갈 예정이었다.

       

       애초에 학생들 모두 메르헨 아카데미의 엘리트 교육과 졸업장을 원하고 있으니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셈.

        

       나는 속으로 학사 행정의 중심지, 바르토스관을 향해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

       

       

       이제 공부나 조져야지.

        

       수업도 끝났고, 필기 시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메르헨 아카데미 도서관은 규모가 무척 큰 편이었다. 시험 기간임에도 자리가 매번 남아 있어서, 자리 문제로 일정이 꼬일 염려는 없었다.

        

       자리를 잡고 책 5권을 올려 두었다. 이미 세 번씩 읽은 책들이라 빠르게 다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가볍게 심호흡하고서, 고시 생활의 한때를 떠올리며 나는 책 내용에 정신을 온전히 쏟아붓기 시작했다.

        

        

        

       * * *

        

        

        

       ‘또 왔다, 저 사람.’

        

        

       메르헨 아카데미 도서관은 규모가 무척 큰 편이지만, 청은발 남학생만큼은 사서 여학생의 눈에 곧잘 들어오곤 했다.

        

       그는 시험 기간에 접어들면서 매일 도서관을 찾아오고 있었고.

        

       요새는 밤늦게까지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하고는, 사서가 문을 닫겠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도서관을 나섰다.

        

       사서 자리에 앉은 채, 여학생은 턱을 괴고 청은발 남학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학부 1학년, 아이작. 1학년 사이에선 마력량 E급인 평민으로 정평이 나 있던 남자였지. 그야말로 최약체 중 최약체였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깔보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굳건하게 실력을 갈고닦으며 엄청난 성장세를 내보였다.

        

       지금은 B 클래스 학생들과 견주어봐도 손색이 없는 수준. 아이작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마력량 E급 평민이라 무시 받던 사람이기에 그 인식의 변화는 사서 여학생에게 더욱 극적인 느낌을 주었다.

        

        

       ‘멋있어….’

        

        

       은근한 홍조가 두 뺨에 떠올랐다.

        

       사랑이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아카데미에서 청춘을 구가하고 있는 학생들끼리라면 더더욱.

        

       아이작이란 사내는 사서 여학생의 호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

        

        

       그러나 연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자, 사서 여학생은 헛숨을 집어삼켰다.

        

       마치 바닷속에서 거대한 상어가 두 눈을 부라리고 있는 듯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싹한 감각. 절대로 저 남자를 좋아해선 안 된다고 생존 본능이 무섭게 경고하는 듯했다.

        

       그리고 돌연.

       

       로즈골드색 머리칼을 늘어뜨린 곱상한 여학생이 아이작 뒤편에 나타났다.

        

        

       “두둥, 루체 등장.”

        

        

       상체를 숙이고 망설임 없이 아이작 옆으로 훅 들어오는 그녀.

        

       장난기가 어려 있음에도 고혹적인 음색은 공기마저 흐느적거리게 했다.

        

       공부하던 주변 학생들은 책을 보다 말고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누구라도 넋을 잃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기에.

        

       루체 엘타니아. 마법학부 1학년의 독보적인 수석이었다.

        

        

       “아, 루체.”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자기 어깨 옆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루체를 쳐다보았다.

        

       지근거리. 루체는 싱긋 웃으면서 아이작과 눈을 맞추었다.

        

       누가 보아도 연인이나 다를 게 없는 모습.

        

       주변 남학생들의 책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함께 공부하는 커플들은 이미 여럿 있었지만, 유독 아이작 만큼은 주변 학생들에게 강한 질투심과 부러움을 안겨 주고 있었다.

        

        

       “아이작, 같이 공부하자.”

       “나야 상관없는데. 아, 루체. 너 이 부분 이해했어? 이 책만 4번째 읽고 있는데 진심 이해가 안 된다.”

       “어, 알아. 중급 각론까지 통째로 외워 놓으니까 이해되더라.”

       “…진짜 머리 개 사기다.”

        

        

       도끼눈을 뜨고 루체를 부러워하는 아이작.

        

       그 후로 두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나란히 앉아서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내용을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중얼거리며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아이작과는 달리.

        

       루체는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로 책 페이지만 여유롭게 휙휙 넘겨댔다.

        

       어차피 보이는 건 뭐든지 단번에 기억해내고 마는 루체다.

        

       단지 아이작과 공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느린 속도로 책을 읽어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너무 세….’

        

        

       사서 여학생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서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에게 호감을 품기에는, 그를 지키고 있는 벽이 너무나도 드높다는 느낌이었다.

        

        

       “…….”

        

        

       그때, 루체는 사서 여학생을 힐끔 곁눈질하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아이작.”

       “왜?”

       “오늘 쭉 같이 있자. 갑자기 엄청,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

       “필기 4일 남았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

        

        

       공부하느라 죽을 맛이었던 아이작에게, 루체의 머리는 부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루체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이작의 손등을 깃펜으로 간질이며 잠시 장난치고는, 다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2학기 마지막 시험, 학기말 평가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현게 문제로 휴재를 하였습니다.

    공지로 사정을 올렸으며, 연이은 휴재를 때려 죄송합니다.

    현게 사정은 차차 해결해 나가는 중입니다.

    면목이 없지만, 그때까지 연재 주기가 오락가락할 것 같습니다.

    항상 부족한 모습만 보여 죄송하고, 제 독자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늒비 님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ㅠㅠ

    다음화 보기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