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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개강 당일.

       

        가랑비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쓴 학생들이 총회 장소에 하나둘씩 모여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자, 모두들 집중!]

       

        마이크를 점검한 한 교사가 큰 목소리로 재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조금 있다가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 모두들 경청할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2학기 첫날부터 중요한 발표라니. 그게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겠지.

       

        애초에 학기 초에 총회를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세상에 어느 대학이 개강하는 날 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지를 올린단 말인가? 이건 뭐 고등학교도 아니고.

       

        이런 귀찮은 공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러는 편이 내 성미에도 맞았고.

       

        그러나 나는 이 총회가 왜 열렸는지를 지레짐작하고 있었기에 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교무처장의 훈화와도 같은 말씀이 지나간 직후, 실처럼 가늘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연단 위로 한 소녀가 올라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품에 맞지 않은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체구는 프레이보다 약간 큰 정도.

       

        곧게 뻗은 남색 머리카락이 특징이었다. 시원시원한 이마와, 쭉 잡아당기고 싶은 동글동글한 볼살도 매력 포인트였다.

       

        소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명문 틸레트 아카데미의 재학생 여러분. 저는 제국 사대공작인 블랜튼 가문의 공녀 로즈마리라고 하옵니다.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어 갑작스럽게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혹여나 교정에서 저를 보시거든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상하다. 저런 말을 중요한 공지랍시고 왜 개강 총회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구태여 말하지 않고 있거나.

       

        고개 숙여 물러나는 로즈마리의 뒤로 로베스피에르 이사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우산을 로즈마리에게 씌워주며 함께 내려갔다. 아주 잠깐 동안 그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작업을 쳐 놓은 건가.

       

        …로즈마리 블랜튼이라고 했지.

       

        로즈마리라는 이름 자체는 버멜에게 몇 번이고 들었다. 황궁에서 우리를 남몰래 감시하고 있던 절멸급 마수가 그녀의 정체였다. 

       

        저 녀석을 의식해서 눈에 안 띄게 행동하고 있었는데, 사태가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오고 말았다. 쟤가 여기 나타났다는 건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직접 움직였다는 뜻일 테니까.

       

        […이상으로 개강 총회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는 교실로 이동하여 각자 신청한 첫 수업을 수강해 주시길 바랍니다.]

       

        땡, 하고 종이 치는 소리와 함께 대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 무리가 흩어진다.

       

        회랑을 걸으면서 앞으로 계획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던 찰나, 로즈마리가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왔다.

       

        “우연이네요, 언니. 이사장님께 들었는데 우리 같은 반이래요.”

       

        저 멀리서 뛰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숨을 고르며 평탄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로즈마리. 디테일이 부족한 사람 연기에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다.

       

        때마침 주변에 친구들도 없겠다, 잠깐 떠볼까.

       

        “저번에 만날 때는 왜 교환학생이라고 거짓말했어?”

        “교환학생 비슷한 거라고 둘러댔지, 아예 똑같다고는 얘기한 적 없는걸요?”

       “시치미 떼기는.”

        “흐응,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녀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변한다. 절멸급 마수치고는 앙증맞은 얼굴을 하고 있다.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입술을 샐쭉 내밀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로즈마리.

       

        “갑자기 왜.”

        “저번에 만날 때부터 계속 시큰둥한 반응만 보여줬잖아요. 맛있는 가게 알려드렸더니 그저 그렇구나, 하는 반응만 보이시고. 생각해 보니까 저 그때 조금 언니에게 상처받았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꼭 디저트 값을 내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아뇨, 돈 갚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언니도 아까 들었잖아요? 전 사대공작가의 공녀, 자본력만큼은 탄탄하답니다.”

       

        글쎄다. 다 같은 공작이라고 돈이 많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당장 하스펠트만 하더라도 연구비 아껴야 한다고 날 들볶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아시죠?”

        “…따라와. 교실은 이쪽이야.”

        “후흐, 고마워요. 언니.” 

       

        거의 세 달만에 교실에 입성했다. 앞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온 급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기습과도 같은 로즈마리의 인사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먼저 와 있던 로테도 마찬가지로 제국식 인사를 건네며 예를 표했다.

       

        “블랜튼 공작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따님이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어쩜 이리 귀여우신지….”

        “그런데 왜 에테르와 같이 오셨나요? 둘이 아는 사이이신가요?”

       

        다들 로즈마리에게 존대를 사용한다. 급우들이 로즈마리를 틸레트의 정식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재학생이 보기에는 로즈마리가 왜 이번 학기 동안 같이 수업을 듣는 건지 아리송하겠지. 단지 공녀라는 신분이 있어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할 뿐.

       

        아마 로즈마리를 자극할 친구가 이 교실에는 없을 거다.

       

        “야! 너 누구야?”

       

       ……한 녀석만 빼고.

       

        프레이는 챙이 넓은 모자를 고쳐 쓰며 책상 앞으로 튀어나왔다. 먹잇감을 탐색하는 여우처럼 로즈마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꼬맹이가 말을 이었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교환학생도 아니고, 일회성으로 참관하러 온 외부인도 아니야. 왜 네가 우리 학급에서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건데?”

       

        프레이의 말은 로즈마리의 정곡을 찌르기 충분했다.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원론적인 것뿐.

       

        “그야 황제 폐하의 어명이니까요. 장차 나라를 이끌기 위해 틸레트에서 미리 공부하라는 지대하신 뜻이겠죠. 어차피 저도 내년에는 이곳에 정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들어올 테니까요.”

        “그러니까! 내년에 입학해서 그때부터 수업 들으면 되잖아! 이러면 우리만 억울한 거 아니냐구!”

        “고작 한 학기 차이랍니다. 뭐가 그리 억울하신가요?”

       

        프레이가 더욱더 씩씩거리며 달려들었다. 얘는 오늘따라 왜 이리 기가 센 건지.

       

        “귀족, 평민 상관없이 마법 잘 부리고 공부 잘하는 애들만 뽑혀서 모인 곳이야. 누구는 실력을 인정받고도 비싼 등록금 들여서 선생님들 수업을 듣는 건데, 넌 황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거절도 안 하고 왜 염치없이 여기 와 있는 거야? 이건 불공평해!”

        “공평을 논하려거든 카우렐리아로 가세요. 여긴 제국이잖아요?”

        “틸레트 안에서만큼은 신분에 차별 없다며!”

       

        프레이의 항변에 로즈마리는 난감하다는 듯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지위를 이용해서 편히 잠입할 줄 알았는데 순수한 애한테 찍혀 당황한 모양이다.

       

        “그러면 그쪽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뭐가 이상한데!”

        “누가 미취학 아동을 여기 데려다 놓은 거예요?”

       

        아, 역린을 건드려 버렸네.

       

        “야 인마!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후, 누가 이 건방진 꼬맹이 좀 떼어놓아 주세요.”

        “꼬맹이? 꼬맹이이?! 야, 너 말 다 했어!!” 

       

        하는 수 없이 나는 로테에게 부탁하여 프레이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이 이상 둘이 싸우면 나와 버멜만 힘들어진다.

       

        …그런데 버멜 얘는 어디 갔는지 안 보이네.

       

        “그리고 등록금을 안 내긴요. 제 아버지가 이 학교에 얼마나 많이 기부를 해 주셨는데요. 중앙도서관을 중건할 수 있었던 이유도 블랜튼 공작가에서 건설 자금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랍니다. 그걸로 한 학기 수강료 대신 쳐 주지 않으시겠어요?” 

        “핏.” 

       

        뒷자리로 간 프레이는 혀를 차대며 자기 팔뚝만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나마 이 정도 선에서 끝나 다행이다.

       

        입학식 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것도 그렇고, 로즈마리에게 지금 시비를 건 것도 그렇고. 요호족에겐 금안족을 분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이 아닐까.

       

        “…뭐, 그래도 황실에서 낸 것만큼 많은 돈을 기부한 건 아니지만요.”

       

        이제 로즈마리의 시선은 구석 창가 자리에서 먼산을 바라보고 있던 클리온 황자에게로 향했다. 타겟을 바꾼 것이다.

       

        “그렇지 않나요, 클리온 황자님?”

        “…….” 

       

        클리온의 고개가 뻣뻣하게 돌아간다. 어째 나에게 캘리퍼스로 머리를 찍히기 직전에 지었던 표정보다도 더 다급해 보이는 안색이다.

       

        “그, 그렇지. 그래도 너는 꽤 분수를 아는 계집이구나. 칭찬할 만하다.”

       

        쟤는 갑자기 왜 저래.

       

        “클리온 황자님.”

        “왜, 왜 그러느냐?”

        “그냥 불러 봤어요.”

       

        로즈마리는 클리온에게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검은 깃털로 장식하여 고상함을 풍기는 부채가 살랑살랑 움직인다. 그에 따라 클리온의 앞머리도 불안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클리온 황자님?”

        “또 왜 그러느냐…!”

        “궁에서 만나 뵈셨을 때보다도 훨씬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학기 초라 적응하기 힘드신 걸까요?”

        “쿨럭, 쿨럭…!” 

       

        클리온은 곧 죽을 사람처럼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숨을 진정시키는 사이, 로즈마리가 ‘언니’ 하고 부르며 나를 끌어들였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님께선 언니 이야기를 가끔가다 해 주시곤 하셨어요. 언젠가 에테르 언니를 사로잡고 말 거라면서 기세등등해 하셨죠.”

       

        나는 로즈마리를 흘겨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황자의 표정도 똥 씹은 듯이 변했다.

       

        “안 그러셨나요? 클리온 황태자님.”

        “그, 그랬었지. 어떠냐, 금안족 계집. 요새 인플레이션 때문에 평민 신분으로는 살기 팍팍하지? 내가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우리 궁에 시녀로 들어오는 건…….”

        “안 가.”

        “성깔머리는 여전하군.” 

        “후흐, 언니는 가차 없으시네요. 그래도 곧 나라의 수반이 되실 분께 함부로 반말을 사용하시면 안 돼요.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 가면 안 좋은 버릇으로 굳어질지 모른답니다.”

       

        로즈마리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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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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