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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

    루크는 속으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도저히 유니콘을 길들일 수 있는 재목이 아닌 탓이다.

    태어나길 남성으로 태어났으며, 이 몸이 된 이후론 순수와 꽤 거리가 떨어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유니콘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순순히 쓰다듬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야 흥분되지 않겠는가?

    그 오랜 세월,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이니까.

    마법사로서,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갚진 것이었다.

    ‘이것이 살아있는 유니콘의 감촉이로군! 이미 죽어 박피된 가죽은 수없이 만져보았지만, 살아있는 녀석의, 우호적인 마력의 형태는 상당히 진귀한 형태를 띄는구나!’

    그렇게 한참을 홀린듯 유니콘을 쓰다듬으며 감촉과 마력을 느끼고 있다가, 그 감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이제 호기심으로 달아올랐던 두뇌가 식는다.

    그렇게되니, 어째서 이렇게 유니콘이 자신에게 얌전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니콘이 자신에게 대체 왜 이렇게 얌전한 것인가.

    ‘……음, 유니콘의 눈으로 보면 나는 ‘순수’한 모양이로군. 그런가.’

    그 자신이 만들어낸 ‘순수’ 그 자체인 키메라는 유니콘의 영혼시로 보아도 정녕 깨끗한 상태라는 것일까?

    그래, 유니콘은 종 전체가 영혼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종족이다.

    그러나 이 종족처럼 영혼시를 결벽적으로 활용하는 종족은 드물다. 

    아니, 사실상 유일하다.

     

    유니콘의 기준으로, 남자라면 동정여부를 막론하고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남성의 영혼과 합일을 이루었던 여성의 영혼 역시 ‘순수하지 못한 것’이된다.

    유니콘에게 그 ‘순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영혼의 흔적에 결벽증 수준의 집착을 보이는 유니콘은, 그것이 굉장히 미세하더라도 결코 남성의 흔적을 좌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기에, 상대가 자신보다 얼마나 강력한 존재이든 유니콘은 앞뒤를 재지 않고 자신의 눈에 비친 영혼의 순수성만을 따지며 난폭해진다.

    그 집착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의 집착인지 이야기하자면, 무려 드래곤에게조차 비처녀라면 호전성을 내비치는게 유니콘이 지닌 광적인 집착의 예시로 들 수 있으리라.

    그 옛날에도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은 유니콘이 어찌나 많았던가…….

    헌데 그런 유니콘에게, 자신이 영혼의 순수함으로 인정을 받다니?

    자신의 영혼은 분명 남성일터, 유니콘의 기준으론 순수하지 못한 것일텐데.

    ‘나의 영혼은, 이미 ‘루크 이루시’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건가.’

    “…….”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떠올리기는 했었다.

    필멸자의 영혼은 5000년의 세월을 결코 견뎌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므로 불사의 육체에 들이기에 인간의 영혼은 어울리지 않는다.

    영혼도 일종의 자원이다.

    필요하다면 갈아야지, 마치 육체처럼.

    그렇다면, 너는 스스로 리치가 되지는 않았단 말이로군, 그렇지?

    루크 이루시.

    그렇지만 그럼에도 곤란한 것은, 어째서 이토록 생생한 기억을 담았느냐는 것이었다.

    지금도 떠올리자면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

    루크 이루시의 삶, 기억, 지식, 버릇, 가치관, 그리고 감정.

    모든것이 생생한데, 어찌 내가 나를 루크 이루시라 정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그 물음에 대한 질문은 끝냈다.

    그렇지 않나,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기억 뿐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오직 최초, 미약한 기억만이 어렴풋이 존재할 때조차 스스로를 루크 이루시로 정의내렸다.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지 말라.’

    그래, 나는 루크 이루시다.

    그 외에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야 언제나 해오던 것이었지 않은가.

    나는 루크 이루시다. 

    몇번이고 나를 정체성으로 뒤흔들어도, 나는 굴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말이다.

    만약에.

    정말로 루크 이루시, 그대가 또 다른 방식으로 필멸의 고리를 끊고 불멸에 도달했다면…….

    내 기꺼이 그대의 이름을 반납하도록 하지.

    다만, 만약에 그때가 온다면 꼭 내게도 어떻게 했는지 말해주길 바라겠네.

    알겠는가? 

    거절은 받지 않겠네.

    그대가 내게 그 호기심까지 온전히 전이하였으니, 이것은 그대의 업보일세.

    그러니 그동안 그 이름은 내가 맡아두도록 하지.

    대마법사의 칭호도 함께 말이야.

    ‘아직 대마법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

    “예르나, 아까 들어보니 그대는 유니콘을 만져도 ‘의미가 없다’고 했었지.”

    “……으, 응.”

    “그렇다면, 그대도 처녀란 말이겠군. 어떤가, 지금 이 녀석을 쓰다듬어보는것은? 이런 기회, 좀처럼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그, 그런……!”

    루크가 해맑은 표정으로 권하는 제안에, 예르나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바닥의 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치 김이라도 올라올 것만 같은 모습.

    루크는 그런 예르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도저히 그녀는 루크의 그런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디아나는 아직 유니콘이 무서운지 다이튼의 뒤에 숨어서 다가오지 않으려 했기에, 유니콘을 쓰다듬는 것은 루크와 예르나 뿐이었다.

    “부, 부드럽다, 되게……. 유니콘가죽으로 만든 로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렇지? 이게 만지다보니 감촉에 중독될 것 같구나.”

    유니콘이 유니콘가죽이라는 말에 살짝 움찔거린 것 같지만, 그걸 신경쓰는 사람은 적어도 여기엔 있지않았다.

    그렇게 루크와 예르나가 유니콘의 털을 쓰다듬는 중.

    동물원의 마물 사육사 장비를 차려입은 여성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니콘의 사육사인 듯 하다.

    멀리서 사육사의 모습이 보이자 마자 예르나는 유니콘에게서 손을 떼고는 몇발짝 뒤로 떨어졌다.

    스스로가 처녀임을 들키고싶지 않은 것 같았다.

    요즘같은 시대에 50년을 넘도록 남자경험이 없다니, 부끄러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루크의 사고과정에 들어있지 않았기에 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지만.

    아무튼, 사육사는 겨우 도착해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잇는다.

    “헉, 헉. 유, 유니를 잡아주셨군요.”

    “그런가봐요.”

    사육사는 유니콘을 쓰다듬는 루크의 모습을 보며 다행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휴, 아이라서 잡아둘 수 있었나보네요. 그런데, 저렇게까지 얌전한 아이는 아닌데…….”

    “그런가요……?”

    “뭐, 유니콘은 여자아이한텐 안전한 마물이니까……. 천만다행이네요.”

    사육사는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이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렇다쳐도, 이렇게까지 얌전하게 앉아있는건 처음이네요. 저, 저나 다른 사육사들한테도 이렇게 하진 않는데…….”

    “그런가?”

    루크는 그 이유에 대해 짧게 사색했다.

    ‘흠, 어쩌면, 영혼의 격이 다를수도 있겠군.’

    불멸의 육체에 걸맞는 영혼이다. 

    당연히 필멸자의 그것보단 훌륭하겠지.

    음, 정말 불멸인지에 관해서는 몇가지 실험을 거칠 필요가 있겠지만…….

    ‘이번에 돌아가면 간단한 실험을 좀 해봐야겠어.’

    그리곤 곧 사육사가 유니콘에게 말에게 씌울법한 재갈을 입에 물리며 이끌기 시작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파이가 쪼르르 다가와 기죽은 듯 소릴 냈다.

    -루크, 미안해…….

    ‘내게 사과할건 없지만,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말거라. 알겠지? 다친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용서하는 것이다.’

    -응…….

    마음같아선 직접 다니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령이 직접 다니며 사과를 해봤자 당사자는 사과를 듣지도 못 할텐데.

    그렇다고 스스로 제 친구인 정령이 폐를 끼쳤다고 말하며 사과한다 한들 누가 믿을까.

    그러고 있으니, 또 다른 사육사가 다가와 유니콘에게 말했다.

    “휴, 유니 이녀석아. 그렇게 나가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고맙다, 꼬마야. 덕분에 살았어.”

    “……아닐세.”

    또 다른 유니콘의 사육사도 역시 여성이었다.

    하긴, 여성 사육사가 아니면 누가 유니콘의 사육을 할 수 있겠느냐만은.

    그렇다면 자신은 현재 ‘여성’인가?

    ‘적어도 마법적으로는 그것이 사실이긴 하다만.’

    뭐, 마법적으로 여성이라고해서 스스로가 루크 이루시가 아니게 되는것은 아니다.

    비록 영혼시로 보아도 순수한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그래서 좋았다.

    일생에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이니, 마법사로서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파이가 미묘한 울림을 시작했다.

    아마도 일전에 놀이터에서 한 약속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 알겠다. 알겠어.’

    루크는 유니콘을 데리고가는 사육사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혹시, 날 태워줄수도 있겠느냐?”

    사실 이것을 물으면서도 루크는 굉장히 흥분되는 중이었다.

    과거에도 루크는 많은 말을 타보았는데, 저항하지 않는 상태의 유니콘은 단 한번도 타본적이 없기 때문에.

    루크의 부탁을 들은 사육사는 깜짝놀라며 말했다.

    “뭐어? 유니는 절대 사람을 등에 태운적이…….”

    푸르릉-!

    유니콘은 한번 울고는 루크가 올라탈 수 있도록 몸을 크게 낮췄다.

    “……없었는데.”

    ‘유니,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돼?’

    사육사들은 얼굴이 붉어졌다.

    ——

    사육사들은 혹시모를 낙마를 우려해 태울 수 없다고 말했지만, 루크가 스스로 경험이 있음을 밝히며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식으로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어른들이 듣기엔 여전히 어린아이의 고집인 탓에, 사육사들은 쉽사리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이튼 역시 루크가 요만큼도 다칠거라고 생각이 들진 않았기에 그냥 한번 태워주고 고집을 꺾게 만드는게 쉬울거라며 루크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었고, 결정적으로, 예르나가 그녀들에게 귓속말로 속닥였다.

    “그, 여차하면 제가 잡을게요. 그, 저도 처, 처녀라……. 제가 잡아도 유니콘이 날뛸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돌아가는 길까지만 애를 태워서 가는건 어떨까요……?”

    “아, 그렇……?”

    “……그.”

    사육사들의 시선이 조금 복잡해졌다.

    대체 이 손님들은 무슨 관계일걸까, 추측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르나는 또 그 설명을 하느라 조금 더 진땀을 뺐다.

    ———

    “이게 유니콘의 등이로군! 굉장해!”

    유니콘의 등은 일반적인 말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어떤 훌륭한 명마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승차감.

    루크는 그동안 타온 모든 말과 비교해보아도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그 탐승감에 연신 감탄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은 또 굉장히 흐뭇한 것을 바라본다는 표정이었지만, 루크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흥분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저항하지 않는 유니콘을 탄다는 것은, 그야말로 처음이니까 말이다.

    사육사들도 이제 루크가 스스로 승마경험이 있다는 말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실제로 사육사들이 보기에도 루크의 포즈는 꽤 타본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면에 미소를 띄운채 유니콘의 등에 올라타있는 루크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디아나가 우물쭈물거리며 다가와 말했다.

    “언니, 나, 나도 타볼래.”

    아직 유니콘이 무서워서인지, 디아나는 바지를 꾹 눌러쥐고는 루크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루크는 그런 디아나에게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올라타보거라. 내 승마를 가르쳐줄터이니.”

    사실은 가르쳐줄 것도 없는 수준이지만.

    어차피 유니콘은 디아나를 싫어하지 않을테고, 유니콘은 처녀에겐 그 어떤 말보다 배우기 쉬운 수준이므로 애초에 떨어질 일도 잘 없을 것이리라.

    그럼에도 루크의 그 말은 디아나에게 충분한 고려가 되었는지, 한결 풀린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자, 예르나가 웃으며 디아나를 유니콘 위로 올려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예르나의 몸이 좀 닿았지만, 역시 유니콘이 날뛰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유니콘의 등에 탄 디아나를 루크가 끌어안듯이 하여 앉았다.

    디아나는 긴장했는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노, 높다….”

    그러자 유니콘이 뭔가 기분좋은듯 투레질을 하며 뒤를 돌아본다.

    유니콘은 디아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마치 눈으로 웃는 것처럼 초승달을 만들어냈다.

    파이는 그런 유니콘의 표정을 바라보며 안심한 듯 한숨을 쉬었다.

    뭔가 둘만의 화해의 제스쳐가 오갔던 모양이다.

    루크는 하하 웃으며 디아나와 파이, 둘 모두에게 할 수 있는 말을 떠올렸다.

    “하하, 괜찮으니 안심하라는구나.”

    “으, 응…….”

    그후, 루크는 디아나에게 본격적으로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 다리를 이렇게 모아서 등을 붙잡는게 중요해. 알겠지? 그리고, 말의 움직임에 맞춰서 허리에 힘을 풀고…….”

    “응, 언니.”

    “좋아, 금방 배우는군. 디아나, 승마에 재능이 있구나?”

    “그, 그래? 헤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이렇게 희대의 괴조합, 용이자 마수이자 대마법사이자 남성이었던 유니콘라이더가 탄생했습니다!

    이 경험이 과연 루크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

    ps. 만약 탑승자가 처녀라는 전제하에, 유니콘의 탑승 난이도는 회전목마 수준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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