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4

       마계주식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마계 태생 상단일 거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아니었다.

         

       회사는 당당한 제국계 상단이다. 사실 상단이라 부르기 애매한 감이 있는 게 제국 예산을 투자해 마계 관리용으로 만든 준정부기관 같은 곳이었다.

         

       마계의 무역금지령이 너무 강력해 마석 수입에 영향이 생기고 첨단 산업이 멈출 지경이 되자 민간 밀무역을 활성화해 뚫어버리려고 만들었다.

         

       제국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상인 연합체.

         

       그런데 규모가 준국가급인.

         

       결국 마계 정복 이후 마석 광산 채굴권 등의 권한을 독점하고 관리했으니 일개 상단이라 부르긴 명칭이 가벼운 감이 있다. 종종 연합왕국이 회사의 압력을 못 이기고 개혁 각료를 파면할 정도였다.

         

       시일이 지난 지금에 와선 제국에 몇 번 하극상을 시도했다가 찍히고 각종 독점에 균열이 생기긴 했지만 영향력과 권한 자체는 여전하다.

         

       하지만 하늘섬 전체 예산보다 돈이 많다는 건 전성기 시절 얘기였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마계의 연합왕국이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국가는 국가다. 공학에 장기 투자를 진행해 슬슬 덩치가 커지며 회사를 무시하자 회사의 수익은 악화 일로를 거듭했다.

         

       비록 안전한 마계 밀무역 루트를 제공하고 수수류를 받는 혁신을 거듭하며 숨을 돌리긴 했어도 상인 연합체로서 썩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초심에 따른 본업이긴 해도 밀무역 서비스는 준국가급이 하긴 구차한 감이 있다. 수입은 매우 좋으니 하기 싫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지만.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 혁신했더라 해도 전성기는 지나버렸다. 한때 마족 과격파에게 병장기를 건네주고 거슬리는 제국 상단을 테러하도록 지원한 사실을 들켜도 괜찮던 참된 전성기는 지났다.

         

       “하지만 자산에 신용까지 끌어 쓰면 현금이 하늘섬 총예산은 되고도 남는다.”

         

       곤란.

         

       파스텔은 걸어가며 입의 막대 사탕을 까딱였다. 정장 차림의 행정 직원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복도에 걸음 소리가 가득 찼다.

         

       철도 사업은 자산을 털어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업성을 체감하기엔 너무 신기술 분야인 것도 사실.

         

       매물 가치를 오판할 가능성은 충분한가.

         

       “회사의 저번 분기 줘 보세요.”

         

       행정 직원이 서류 가방에서 즉시 꺼내 건네줬다. 파스텔은 회사의 회계보고서를 훑어봤다.

         

       매출액, 총자산, 총부채가 정리된 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마계주식회사는 이름대로 선진 주식회사기 때문에 분기마다 장부를 공개한다.

         

       저번 분기에 하늘섬 부동산들을 매입하며 현금 자산이 다소 줄어들었다라.

         

       회계보고서의 세부 설명에 따르면 크래프트 후작의 입학으로 하늘섬이 중요시될 거라는 예측이 맞았으니 추가 투자를 진행했다고 한다. 아카데미 테러로 일시 폭락한 부동산을 급히 저점 매수한 거기도 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부동산 투자 좋지.”

         

       안정적이고, 꾸준하고.

         

       철도 상단의 매입을 준비한다고 하기엔 고개가 갸웃해지는 행보긴 해도.

         

       파스텔은 회사와 제국은행의 관계를 의심 중이었다.

         

       구체적으론, 이거 둘이 짜고 치는 경매 아닌가? 우리는 그냥 불청객 취급일지도? 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마족으로서 누구보다 마계 사정에 빠삭할 엘리에게 물어보니 빽빽한 보고서를 통해 대답해 줬다.

         

       ―제국은행이 철도 상단을 의도적으로 부도시킨 건 확실해. 이걸 회사에 매각하려는 일련의 계획까지 준비했는진 몰라도 그런 동기는 있어.

       ―동기 자체는 충분하다는 거야?

       ―상단이 소유한 마계 철도 부설권을 손에 넣어두면 제국 입장에선 편하니까. 연합왕국은 제국계 상단에 부설권을 안 주거든. 제국은행 아니 황실 입장에선 마계주식회사가 소유해 놓고 있으면 차후 마계에 간섭하기 편해지겠지.

         

       뭔가 악감정이 많이 들어간 뉘앙스로 말하는 엘리의 소견이 마계에 편향되긴 했어도 제국은행이 상단을 의도적으로 부도시킨 건 맞는 거 같다.

         

       회사의 회계보고서엔 하늘섬이 중요시될 거라고 투자를 늘렸는데 정작 제국은행은 차후 투자가 위험해 보인다며 융자를 강제 회수해 부도시켰으니.

         

       둘 중에 누군가 틀렸다면 아무래도 정략적 동기로 거짓말을 했을 소지가 다분한 제국은행 쪽 아니겠는가.

         

       제국은행이 계획적이라면 회사도 계획적일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정말 둘이 짜고 치는 경매인가?

         

       왜 매매가 아니라 경매인지도 이해가 된다. 회사와 경매로 맞붙고 차후의 보복도 감수하겠다는 간 큰 상단은 없을 테니 경매를 통해 넘겨줘 정치적 면피를 얻겠다는 거겠지.

         

       우리가 회사에 철도 부설권을 넘겨준 건 차후에 마계에 정치적으로 간섭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경매를 열었더니 우연히 회사에 넘어간 거다. 우연일 뿐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라는 뭔가 친숙한 변명으로.

         

       오잉.

         

       파스텔은 순간 오잉오잉 됐지만 자신은 정말 결백하기 때문에 넘겼다.

         

       어쨌든 이러면 대뜸 회사도 상대하기 껄끄러워지는 하늘섬 행정부가 등장해 경매에 참여한 건 굉장히 예상외일 거다.

         

       “불청객이네~.”

         

       파스텔은 걸어가며 막대사탕을 까딱였다. 깨물자 사탕이 깨지고 아그작 소리를 냈다.

         

       우연일 뿐 이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다소 미안할지도.

         

       그렇다고 순순히 빠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살짝 뒤편의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사탕 깨물어 먹지 마라.』

         

       악마가 본인 볼을 톡톡 두드리며 주의를 줬다.

         

       파스텔은 대답 없이 붉은 눈동자와 마주 보다가 뒤를 돌아봤다. 정장 차림의 관료들이 뒤따라왔다.

         

       앞을 보자 연회장의 닫힌 대문이 보였다. 격식에 맞춰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대문을 박차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다른 귀족의 초대장을 확인하던 호령꾼이 서둘러 외쳤다.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 후작 각하 드십니다!

         

       샹들리에, 테이블, 촛대 그리고 커튼과 액자 그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무수한 시선이 쏠렸다.

         

       불청객 크래프트 등장.

         

       싱긋 웃었다.

         

       연회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 먹은 사탕 막대를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건네주고 느긋하게 연회장을 둘러봤다.

         

       연회장 삼분의 일을 차지한 듯한 영역에 멜리사 일행이 있었다. 다가가자 멜리사가 와인잔을 놓으며 반가워했다.

         

       “마침 잘 왔어요. 이제 연회가 거의 끝난 참이거든요. 곧 매물로 나온 상단의 설명회가 시작된다네요.”

       “분위기는 살펴봤어? 우리가 정말 불청객인지 아닌지.”

       “멜리사는 오는 사람들 맞이하느라 바빴고 그건 앨시어가 했어.”

         

       엘리가 와인잔으로 앨시어를 가리켰다.

         

       앨시어가 포크로 콕 찌른 소시지를 베어 물려다가 멈췄다.

         

       “응, 내가.”

       “어땠어?”

       “불청객 맞아.”

         

       손가락이 연회장 곳곳을 가리켰다. 제국은행과 회사로 보이는 인원들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영역에 따로 모여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기들끼리는 경매 얘기를 활발히 하는데 우리와는 잘 안 해. 내가 가도 벨라몬트 관련 얘기만 하고.”

         

       역시 그런가.

         

       그런데 그 대답에 멜리사가 살짝 당혹스러워했다.

         

       “그건 벨라몬트가 연회 경험이 적어 잘못 이해한 거 같네요. 귀족을 상대로 사업 얘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하는 건 다소 예의가 아니에요.”

         

       멜리사가 가끔은 대놓고 평소엔 은근히 표현하듯 천박하니까.

         

       “그에 비해 저기 회사 사람들은 평민 신분이 많아요. 서로 편히 대화하는 거죠.”

         

       헤에.

         

       “물론 그렇다 해서 저희가 불청객이 아니라는 건 아니에요. 다른 분들과 얘기를 해보니 제국은행에서 당황했다고 하더라고요. 경매 방식이면 입찰 경쟁자가 많은 게 은행 입장에선 좋을 텐데 신기한 일이죠.”

         

       응응.

         

       예상 범위.

         

       분홍 눈동자가 회사 쪽 영역을 살펴봤다.

         

       “회장은 어디 있어?”

       “그게.”

         

       멜리사가 난감해했다.

         

       엘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안 왔어.”

         

       헤에.

         

       파스텔은 뾰로통해졌다.

         

       기 싸움 졌네.

         

       연회장 대문이 열렸다.

         

       ―매케나스 펨브로크 백작 각하 드십니다!

         

       육중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이사진을 이끌고 들어왔다. 연회장을 둘러보며 눈에 띄는 분홍 머리카락을 찾더니 바로 발견하곤 직선으로 걸어왔다.

         

       “처음 뵙겠소이다, 크래프트 후작. 마계주식회사의 경영 책임자인 매케나스 펨브로크라 하오.”

         

       거친 손이 내밀어졌다.

         

       파스텔은 그걸 보고 분홍 눈동자가 떨렸다. 바로 눈에 들어온 장식품 때문이었다.

         

       내민 손에서 금반지들이 반짝였다. 얼마나 꼈는지 안 낀 손가락보다 낀 손가락이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손목엔 화려한 금팔찌까지 있었다.

         

       멜리사가 망측한 무언가를 본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가 살며시 폈다.

         

       그에 반해 파스텔은 악수도 대응 못 하고 숨을 들이켰다. 떨리는 눈동자로 상대를 샅샅이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 베이스의 금색 찬란한 무늬가 섞인 화려한 정장에 금목걸이까지 갖추고 있었다.

         

       허억.

         

       허어억.

         

       이건.

         

       이건…….

         

       금반지, 금팔찌, 금목걸이.

         

       블랙 앤 골드.

         

       흐아아!

         

       부패 레벨에서 밀려어!

         

       착한 자신은 절대 당도할 수 없는 경지.

         

       파스텔은 급격히 기가 죽었다.

         

       백작 주제에 예의 없게 먼저 악수를 건넸다고 면박 주는 게 절대 아니었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