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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새카만 마나를 두른 카밀라는 명백한 적대의사를 내비쳤다.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주목하며 모든 기사들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셨죠, 발타사르.”

     

    카밀라의 분노는 명백하게 황제를 향했다.

     

    “한 번 적이라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목을 베는군요. 이십 년 전,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변한 게 없어요.”

     

    “적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있는가?”

     

    “그 적은 당신의 적입니까, 제국의 적입니까?”

     

    “짐이 곧 제국이다.”

     

    “당신의 아내인 저도 적인가요?”

     

    “흑마술사에게 관용은 없다.”

     

    황제가 감정을 죽인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대의 목적을 깨달았다. 그대는 짐에게 제국을 마법으로 물들이도록 종용했지. 그 틈새에 흑마술을 끼워 넣을 생각이었군.”

     

    마법사가 자신의 업적을 오직 홀로 품는 것과 달리 흑마술사는 파괴와 공포를 널리 퍼트리려 한다.

     

    둘의 명백한 차이를 황제는 경험에서 잘 알고 있었다.

     

    “짐이 마법을 거부하자 그 뜻을 펼칠 아셀라를 차기 황제로 만들려 했다. 일이 틀어지자 게오르크에게 붙었지만 그는 퇴궁당했다. 이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황태자인 권터를 해하고 짐을 시해해 제국을 혼란 상태로 만들어 침투할 생각이었는가?”

     

    정곡을 찔린 카밀라가 침묵했다.

     

    여태 그녀가 고트베르크를 포함한 귀족가들이나 토진궁의 게오르크에게 한 수 접었던 건 모두 더욱 큰 이상을 위한 권력을 갖기 위해서였다.

     

    오직 흑마술을 퍼트린다는 이상을 위해.

     

    황제가 싸늘한 분노를 내비쳤다.

     

    “비열한 마녀가.”

     

    그 단어에 카밀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를 제국으로 데려오신 건 당신이었습니다.”

     

    “그러했지. 실수였다.”

     

    “제가 태어났던 나라에서, 마녀는 마법을 쓰는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흑마술을 쓰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카밀라가 떠오른 과거에 화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마녀라고 밝혔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간사하게 혀를 놀리는군.”

     

    “저는 당신에게 은혜를 졌습니다. 당신이 흑마술을 혐오한다고 알았기에, 마법으로 제국을 도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걸 바쳐 저것도 만들었습니다.”

     

    카밀라가 아셀라를 가리켰다.

    아셀라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 직후 당신은 어찌하셨습니까? 전쟁을 멈추고 마법이 위험하다며 저를 하대하셨죠. 제 헌신은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카밀라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어찌해야 했겠습니까? 이 모든 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입니다. 귀족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황족의 힘을 빌려서라도 살아남고 싶었단 말입니다.”

     

    카밀라가 황제를 향해 애원했다.

     

    “제가 흑마술사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평생 얼마나 가슴을 졸여야 했는지 아시나요? 제가 얼마나…!”

     

    쾅!

     

    발밑에 커다란 얼음창이 떨어졌기에 카밀라는 말을 멈추었다.

     

    “그만.”

     

    아셀라의 지팡이 끝에서 여러 겹의 마법진이 작성된다.

     

    물론, 향하는 방향은 카밀라였다.

     

    “주절주절 시끄러워. 뭐가 그렇게 지리멸렬해? 결국 제국을 해하고 폐하를 시해하려 했잖아.”

     

    “아셀라…! 너어…!”

     

    “폐하, 전부 거짓말입니다. 카밀라는 목적을 위해서 자기 자신도 속이는 사람입니다. 본녀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음.”

     

    카밀라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아셀라의 발언이었다.

     

    그녀는 카밀라의 거짓말을 진작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다.

     

    황제가 신뢰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행동이 전부 흑마술을 제국에 퍼트리려는 이상 때문이었다는 게 훨씬 납득이 갑니다. 이 이상의 대화가 필요할까 싶습니다.”

     

    “올바르다. 짐이 발언 기회를 너무 많이 줘버렸군.”

     

    황제가 아셀라에게 동의했다. 잠시나마 카밀라의 화술에 말릴 뻔했다.

     

    “아셀라…! 이 배은망덕한 년!!”

     

    발작하는 카밀라를 아셀라가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어찌 내게 감히!!”

     

    처음에는 조금 동정심이나 애환도 들었다.

     

    아셀라가 타인에게는 절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완전한 악이라고 깨달은 지금은 오히려 여태 당해온 시간이 억울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황제가 팔을 치켜들었다.

     

    “토벌하라.”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일제히 카밀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카밀라가 눈에 불을 켜며 팔을 휘둘렀다.

     

    쓰러져있던 그녀의 제자들이 재가 되어 소멸한다.

     

    ―휘오오오!

     

    바쳐진 제물의 피로 진이 그려지고, 지옥에서부터 끔찍한 촉수가 기어 올라온다.

     

    철썩!

    그것을 자신의 팔인 마냥 휘두르는 카밀라.

     

    “크아악!”

    “위험하다! 절대 접촉하지 마라!”

     

    촉수에 긁힌 한 기사의 팔이 영혼째 불타오르며 즉시 카밀라의 마나로 변환됐다.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어야 할 황궁에서, 세상 가장 끔찍한 모습의 전투가 시작됐다.

     

     

     

    ***

     

     

     

    그리고 나는 촉수를 목격하자마자 아셀라를 향해 뛰었다.

     

    ‘이건 좀 위험한데. 지옥촉수, 악마와 계약해야 쓸 수 있는 6위계 흑마술이야.’

     

    카밀라는 생각보다 위험한 인물이었다.

     

    5위계에 도달한 마법사인데 그게 부업이니까, 본업인 흑마술은 훨씬 경지가 높을 것도 당연하네.

     

    직장의 만년 부장님이 알고 보니 연수익 억단위의 주식왕이라는 소식을 들은 기분이다.

     

    ‘내가 옛날에 잘못 개겼구나.’

     

    그때는 카밀라가 우리 가문을 먹어치울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참았기에 다행이지, 벌집을 들쑤신 꼴이었다.

     

    흠, 그러면 아셀라가 가진 저주는 저 카밀라조차 절명하게 했다는 소린데.

     

    대체 뭘 가지고 있는 거야?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No. 101 : 마력폭주 11% → 42%]

     

     

    이거 원. 배드엔딩 확률도 절찬 상승 중이었다.

     

    카밀라의 목표에 아셀라도 포함됐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실력에 비해 감정적인 여자다. 화를 못 참고 있는 대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콰앙!

     

    그녀가 휘두르는 흑마술이 지면을 박살내고 기사들을 튕겨냈다.

     

    “흡!”

     

    타냐가 검기를 감아 촉수를 베어냈다. 하지만 그 잘라낸 단면에서 두 개가 또 생겨나 다시 위협적으로 쏘아졌다.

     

    술자째로 한 번에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증식하는 촉수다. 까다로운 공격이다.

     

    “황녀님!”

     

    나는 아셀라에게 도착해 그녀를 보호했다.

     

    “라스?!”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카밀라는 생각보다 위험해요. 폐하도 부디.”

     

    “고트베르크.”

     

    황제는 이 현장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오히려 패기롭게 검을 뽑아 들었다.

     

    “도망치진 않겠다. 황비에서 폐위하였어도 카밀라는 아직 짐의 아내다.”

     

    “폐하.”

     

    아셀라도 양팔로 나를 밀어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친다.

     

    “나도 안 도망가. 어마마마는 내 손으로 매듭짓겠어.”

     

    “그건 안 됩니다. 분명 나중에 후회하실 거예요.”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겨우 이 정도, 이 정도로.”

     

    힘주어 말한 것과 다르게 지팡이를 쥔 아셀라의 팔은 떨리고 있었다.

     

    허세 부리기는.

     

    “물론 쓰러트리긴 할 겁니다. 이대로 황궁을 악마 소굴로 만들게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까요.”

     

    내가 슬쩍, 아셀라의 어깨를 눌러 힘을 빼도록 했다.

     

    “후우.”

     

    아셀라가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내가 상대해야 해. 저만한 흑마술을 돌파할 마법은 나만 시전할 수 있어.”

     

    아셀라의 말은 사뭇 올바른 판단처럼 생각됐다.

     

    ‘어디.’

     

    카밀라의 흑마술은 공격형. 자신의 생명력을 대가로 악마와 계약했고, 미리 제물로 모은 마나로 가동하는 원리다.

     

    ‘마법 쪽으로는 분신 마법을 쓴다고 했지.’

     

    시모어가 말한 적이 있었다.

     

    아셀라가 공간 마법에 재능이 있듯, 카밀라는 유일한 분신 마법의 구사자라고.

     

    다만 카밀라가 그걸 쓰지 않은 지가 벌써 10년쯤 되었다고 했었다.

     

    “시모어.”

     

    돌파구가 생각났다.

     

    그가 황실을 떠나며 내게 줬던 마지막 선물이 생각났다.

     

    나는 가운 안쪽에 조심스레 넣어놨던 작은 함을 꺼냈다.

     

    “공자, 그거.”

     

    아셀라가 무엇인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공자도 받았어?”

     

    그녀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함을 꺼냈다.

     

    나와 그녀가 각각 손에 든 상자는 마치 서로 맞물릴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마법이 필요할 때라면 바로 지금이겠죠?”

     

    “응.”

     

    아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각자 손에 쥔 함을 서로 마주쳤다.

     

    달각, 두 개의 뚜껑이 동시에 열리며 안에서 번쩍 빛이 났다.

     

    나는 그게 뭔지 바로 알아보았기 때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마법 저장구와 마나 저장구잖아.”

     

    어느 것도 전설급 아티팩트였다.

     

    단순한 작별 선물로 주기에는 지나치게 고가인 물건이었다.

     

    아셀라도 그게 뭔지 깨닫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콰아앙!!

     

    “아셀라!!”

     

    카밀라가 촉수를 다리 삼아 공중에 뜬 채로 우리를 향해 돌진해왔다. 기사들을 모두 날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사아악!

     

    그런 그녀의 뺨을 아셀라의 얼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선혈이 흐른다. 카밀라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다.

     

    “아셀라, 감히 나를 그런 표정으로 보다니. 평생을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쓰레기가!!”

     

    “공자, 그거 이리 줘.”

     

    아셀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녀가 지팡이를 카밀라에게 들이밀었다.

     

    시모어가 저장해놓은 초대량의 마나가 그녀에게 흘러 들어간다.

     

    황제는 빼든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한다.

     

    쿵, 쿵, 카밀라가 더욱 매서운 기세로 아셀라를 향해 돌진한다.

     

     

    [No. 101 : 마력폭주 42% → 96%]

     

     

    “황녀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 충돌 직전의 틈새에 내가 끼어들었다.

     

    나는 아셀라의 지팡이와 아티팩트를 가로채고 카밀라를 향해 뛰었다.

     

    “뭐, 야, 라스!!”

     

    아셀라의 다급한 외침은 무시했다.

     

    아무리 강인한 척해도 아셀라는 카밀라를 죽이길 망설이는 게 분명하다.

     

    친모니 어쩔수 없지.

     

    그 마지막 망설임 때문에 카밀라에게 역으로 살해당하고 말 거다.

     

    저렇게나 죽을 확률이 높은데 두고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녀는 자기합리화를 하느라 악녀가 되니까.

     

    이건 망나니인 내게 더없이 어울리는 역할이다.

     

    “고트베르크?!”

     

    내가 갑자기 나설 줄은 몰랐는지 카밀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아티팩트를 발동했다.

     

    ―화아악!

     

    저장되어있던 시모어의 마법이 그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순식간에 진을 그리고 시전으로 이행된다.

     

     

    진은 일곱 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위인, 현자가 도달한 7위계 마법이다.

     

    마법은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건 좀 멋있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카밀라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쇼, 장모님.”

     

    “너어―!!”

     

    “대정령 소환.”

     

    ―콰아아앙!!

     

    대지를 꿰뚫고 솟아오른 불기둥이 눈 깜짝할 새에 검은 촉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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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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