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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작가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건 여태까지 내가 들은 작가님의 발언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재미를 위해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그것을 위해. 그 이상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이라의 설정을 바꾸고, 빌런을 잔뜩 풀어놓고, 하율에게 옛 친구에 대한 기억을 심어 넣고.

       

       마수를 풀어놓고, 비밀의 방을 만들고, 500년 전쯤의 사건까지 집어넣은 것까지 모두.

       

       모두 재미를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건은 작가님의 손에서 일어났기에, 지금의 이 상황이 어색한 건 사실이다.

       

       작가님의 손이 닿지 않은 사건.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작가님의 손이 닿지 않았기에 작가님은 기뻐 보였다.

       

       아카데미 외부로 나가서 잠깐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면서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할 정도로.

       

       그러니 어쩌면 내 눈앞의 이 상황은 필연적일지도 모르지.

       

       그녀들은 히로인이었으니까. 선역이었으니까.

       

       친구들이 위험한 곳에 향한다는 말에 달려와 막으려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차라리 우리도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도 말이야.

       

       

       “나도 데려가.”

       

       “저도요.”

       

       “···하아.”

       

       

       결연한 표정의 도로시와 아멜리아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안된다고 이미 여러 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전방은 굉장히 위험한 거 아시잖아요. 학생은 안 돼요.”

       

       “그럼 넌? 시우는? 둘 다 학생이잖아.”

       

       “저희는 마수 사냥 경험이 있으니까···.”

       

       “벌써 반년이 훨씬 넘은 일이잖아. 나랑 도로시는 빌런 퇴치 경험이 있어. 꽤 많다고. 아직 실전 경험이 녹슬지도 않았어.”

       

       “그래요! 우리도 데려가요!”

       

       

       ···안 되네. 들을 생각이 없구나.

       

       이게 다 시우 때문이야. 괜히 최전방에 간다고 이야기해서는.

       

       마수 사냥 경험 이야기를 꺼내도 반년 지났으니 녹슬었을 거라며 듣지를 않는다.

       

       머리가 아파져 시우를 바라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시우가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자기도 잘못한 건 알고 있구나.

       

       내 책임을 추궁하는듯한 눈빛에 시우가 변명을 내뱉었다.

       

       

       “···그래도 친구잖아.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거야 그렇지만···.”

       

       

       시우의 생각도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반대하면 골치 아프다고.

       

       그냥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골치 아프다.

       

       딱히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으니까.

       

       협회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러 간다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잖아.

       

       최전방은 위험한 곳.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총알받이처럼 쓸려나가는 곳.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강한 영웅들이 널려있음에도 쉽사리 전선이 나아가질 않는 곳.

       

       그것이 세간의 인식이었으니까.

       

       주변의 엑스트라 학생들의 시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가게 될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장소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너무 일찍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담긴, 동정의 시선.

       

       슬슬 어떻게 좀 해달라는 생각이 들어 하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선생님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나마 저들을 납득시킬만한 명분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갈 수 없단다.”

       

       “어째서!”

       

       “계속 설명했는데···.”

       

       

       나의 시선을 느끼고 둘을 제지하려던 하율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담겼다.

       

       여태껏 열심히 설명했는데 단 하나도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저렇게 차가운 인상이면서 생각보다 감정은 풍부하단 말이야.

       

       하긴, 그러니까 친구의 복수니 뭐니 하면서 빌런을 증오하게 된 거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최전방은 신청하는 게 아니야. 초인들에게 권유하는 거지.”

       

       

       그러나 침울해 있던 것도 잠시. 하율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익숙해진 걸까?

       

       학생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는 선생님이 된 그녀가 다시금 설명을 시작했다.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말이야.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생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

       

       “···어째서죠?”

       

       “너희 진짜 아무것도 안 들었구나. 나 진짜 충격인데···.”

       

       

       하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정말 자신의 설명을 단 하나도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직감 같은 능력은 정말 희귀하단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언가를 감지해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전선에서 도움을 요청한 거지.”

       

       “하지만, 시우는 학생인데요!”

       

       “우리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하지만 강요는 없었고, 계속 지내는 것도 아니야.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전에는 돌아올 거야.”

       

       “···그럼 아르테는요?”

       

       “그녀는···. 학생 중에서는 가장 강하기도 하고, 마수 사냥 경험도 있고. 주변에 실을 깔아놓는 걸로 지역 장악도 가능하잖니.”

       

       

       둘이 친구기도 하고. 외지에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덜어줄 수도 있을 거란다. 이제 이해했니?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끝마친 하율이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더는 반박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 걸까.

       

       이제 완전 선생 일이 익숙해졌구나. 많이 변했네.

       

       어쩌면 이전부터 교육자의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하율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도로시라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불만을 가지지만 납득하겠지.

       

       자신이 뒤집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어, 아빠.”

       

       “아멜리아 양?”

       

       “응. 지금 바빠? ···괜찮다고? 응. 아니, 별 건 아니고. 조금 부탁할 게 있어서.”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도로시는 몰라도 아멜리아는 절대 저런 말에 납득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아멜리아라면 그렇다.

       

       게다가 정말 유감스럽지만, 그녀에게는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나 최전방 갈래. ···헛소리하지 말라고? 아, 그래. 그럼 저번에 아빠가 몰래 산 러브☆디럭스 전부 불에 태운 뒤에 SNS에 올려도 돼?”

       

       

       그건 또 뭐야.

       

       아멜리아의 대화에 뜬금없이 이상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는데.

       

       

       “러브 디럭스? 그거 분명···.”

       

       “설마 아멜리아의 아버지가 정말로 그런 걸 본다고? 그냥 소문 아니었어?”

       

       “에이, 설마···.”

       

       

       뭐길래 저런 반응이지.

       

       무심코 궁금해져서 휴대폰으로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만화책과 소설의 표지였다.

       

       ···여자애가 반쯤 헐벗고 있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아니, 아빠. 그런 거 숨기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좀 잘 숨겨봐. 침대 밑에 숨기는 건 너무 들키기 쉽잖아.”

       

       

       라이트노벨 소설 제목이구나.

       

       아멜리아의 아버지는 어떻게든 그런 취향을 숨기고자 노력한 모양이었지만, 아무래도 아멜리아에게 들켜버린 모양이었다.

       

       그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하필 그런 걸 자기 딸한테 들키냐고.

       

       심지어 침대 밑에 숨기는 건 무슨 애도 아니고.

       

       아멜리아의 통화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전해졌다.

       

       절대 안 된다던 아멜리아의 아버지가 쩔쩔매며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멜리아가 저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까.

       

       

       “아, 나 말고 한 명 더. 도로시 게일이라는 애도 넣어줘. 그건 진짜 안된다고? 잘 안 들리는데, 아빠. 진짜 안돼?”

       

       “···.”

       

       “그렇구나. 아아, 어쩔 수 없네. 그러면 저기 별장 창고에 숨겨놓은 비밀 컬렉션도 다 팔아버릴게. 필요 없지?”

       

       

       도로시와 하율, 나와 시우.

       

       구경하고 있던 학생과 선생님들까지 모두 조용해졌다.

       

       이건 이제 협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깨달았으니까.

       

       ···협박이었다.

       

       

       “아이, 아빠. 두 눈 꼭 감고 부탁 한 번만 들어주면 모두 괜찮을 건데.”

       

       

       잠깐의 시간이 지난 이후.

       

       무언가를 들은 듯, 아멜리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좋아! 사랑해요, 아빠. 그건 내가 잘 보관해두고 있을게. 앞으로는 좀 잘 숨겨. 알겠지?”

       

       

       휴대폰을 경쾌하게 내려놓은 아멜리아가 빙긋 웃으며 하율에게 말했다.

       

       

       “저랑 도로시도 초대받았는데, 가도 괜찮죠?”

       

       “···.”

       

       “뭐야, 이 분위기는? 다들 왜 그래?”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다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듯한 분위기에서, 시우가 대표로 아멜리아에게 물어보았다.

       

       

       “···그, 저기. 괜찮은 거 맞아?”

       

       “응? 뭐가?”

       

       “네 아버지 말이야. 그렇게 막 대해도 괜찮은 건가 싶어서.”

       

       “아, 괜찮아. 나도 가끔 당하니까.”

       

       

       가끔 당한다니.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모두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빠 사랑해요 소리 한번 듣겠다고 무슨 짓을 했는지 들으면 놀랄걸.”

       

       “···그,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무슨 문제?”

       

       “아버지가 숨기고 싶어 했다면서. 읽는 책 말이야. 여기 사람도 많은데, 다들 들어버린 게···.”

       

       “들으라고 말한 건데?”

       

       “···뭐?”

       

       

       아멜리아는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를 지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아빠가 처음부터 해줬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약간의 보복이야.”

       

       “그래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던 것 같은데···.”

       

       “어차피 극성팬들은 반쯤 짐작하고 있던 거니까 괜찮아.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으니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고.”

       

       “···그럼, 일부러 이야기 한 거라고?”

       

       “응. 슬슬 SNS에 올라온 이야기 보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지 않을까.”

       

       

       뒷감당은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

       

       아니, 아멜리아라면 그런 건 생각하지도 않고 저지른 걸지도 모른다.

       

       

       “자, 아빠가 도로시랑 저도 초대했으니 가도 괜찮죠?”

       

       “···어, 응. 그렇지?”

       

       “가자, 도로시.”

       

       “···네.”

       

       

       사악하다.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대요.

    하지만 아멜리아도 당했던 걸 되돌려주는 것 뿐이래요.

    몇 년 전에 발견한 약점을 드디어 풀어버린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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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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