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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오딜리아는 자신에게 말을 건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보다 10cm 정도 커 보이는 키를 가진 남자는 커다란 키에 걸맞지 않은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토끼 같은 인상이 참으로 해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그사이에 풋풋함과 설렘, 그리고 일말의 두려움이 담겨있는 것이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흥.”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딱히 남자가 못생겼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운 얼굴과 큰 키, 소년과 어른의 사이에 있는 사람들만이 보여주는 풋풋한 매력, 거기에 치마만 입었다 하면 다 좋아하는 난봉꾼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매력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오딜리아에게 매력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글쎄….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에 그녀는 너무 오래 살았고.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첫사랑을 버리기에는 그녀의 고집이 너무나 강했다.

         

       “앗, 잠시만요. 잠시만 이야기만 좀 나누면 되는데….”

         

       하지만 그런 대마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왔다.

       그 모습이 마치 포기를 모르는 소년의 젊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웃음을 흘리자 남자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받아들인 것인지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남자의 목소리는 매몰차게 거절당했을 때의 실망과 절박함이 담긴 듯한 목소리에서 희망과 에너지가 담긴 목소리로 변했다.

         

       “그…. 오랜 시간 빼앗지는 않을 거예요. 잠깐 커피나 마시면서. 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만 나누고 싶은데…. 혹시, 될까요?”

         

       대마녀는 남자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뻔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

         

       “아, 커피는 제가 살게요.”

         

       무엇이 그렇게 다급한 것일까?

       무엇이 이렇게 젊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대마녀는 방에서 나오기 전 아이들의 넘치는 활력과 젊음을 보았다.

         

       그 활력이란 그녀에게 없는 것이라서.

       그녀는 이미 오랜 세월과 함께 버리고, 그 대신에 고집과 아집을 얻었기에.

       그랬기에 방에서 나와 무작정 걸어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에게 이렇게 온 힘을 다해 부딪치는 남자를 보니 무언가 변덕이라도 동한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늙은이의 변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이 젊은 남자의 열정에 감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러시아라는 낯설고 마음에 들지 않은 땅에서, 그나마 그녀의 마음을 동하는 일이 일어났기에 어울려줄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술사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보낼 심심풀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안내하세요.”

         

       수많은 ‘어쩌면’이 그 대답을 끌어냈다.

       이는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행운이 될 수도 있으나,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기에 더 큰 불행이 될지도 모른다.

       희망이라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는 눈에 드리워졌다가 사라졌을 때 더 깊은 절망을 주는 법이니까.

         

       다만 남자는 그 변덕마저도 기꺼운 듯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커피숍으로 안내해주었다.

         

       “커피는 어떤 거로 하시겠어요?”

       “커피, 흠.”

         

       그는 창가 쪽에 앉은 그녀에게 주문을 물었다.

       오딜리아는 자신의 머릿속에 수많은 주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기쁜 듯 미소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알아서 주문해줘요.”

         

       그러자 남자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마음대로 주문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귀찮다는 듯 답하는 대마녀의 모습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알겠다고 말하며 카운터로 갔다. 그리곤 무언가 주문하더니, 금방 쟁반에 커피 두 개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나는 맥주처럼 거품이 있는 커피였고, 하나는 평범한 카페라떼였다. 카페라떼의 위에는 라떼 아트로 만든 하트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모습에 대마녀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얼굴로 점원에게 하트 모양 라테 아트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카페라떼를 그녀의 앞에 건네주었고, 자신은 거품이 있는 커피를 들었다.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카페라떼를 주문했어요.”

       “그래요?”

         

       오딜리아는 대충 예상했다는 듯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커피 스틱을 휘저어 그림을 없애버리곤 커피의 향을 맡아보았다.

         

       “향은 좋네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맛도 괜찮을 거예요. 한 번 드셔보세요.”

         

       뿌듯해하는 토끼 같은 얼굴을 보며 그녀는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초콜릿을 닮은 향이 입과 코를 맴돌고, 우유와 원두에서 나오는 고소함이 그녀의 혀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게다가 그 향과 맛을 한껏 즐기고 삼키고 나면 향이 잠깐 남았다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놀라울 정도로 그녀의 취향에 맞는 맛이었다.

         

       “이건…?”

       “아, 마음에 드셨나요? 인도 마이소르 너깃 엑스트라 볼드 원두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로 달라고 했어요.”

       “싸구려 아시아 원두치고는, 괜찮네요.”

         

       그녀는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평을 툭 뱉고는 계속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을 즐길 테니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가 오롯이 커피를 즐기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인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러시아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질문이 이상하네요. 내가 러시아 사람일 수도 있는데? 왜 그런 판단을 한 거죠?”

         

       그녀는 방해받아 기분이 나쁘다는 듯 남자를 쏘아붙였다.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독일어로 말을 걸었는데 답해주셨고, 지금도 독일어로 답해주고 계시니까요?”

       “…흥.”

         

       그제야 그녀는 남자와 자신이 독일어를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독일어를 쓰신다고 해서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지요. 러시아 분이신데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마음대로 불러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평범하게…. 그래요. 레이디라고 부르면 될까요?”

         

       레이디.

       마녀는 남자가 고민하며 내뱉은 그 단어에 웃음을 흘렸다.

         

       레이디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으니까.

       어색한 듯 레이디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마치, 소년이 어른을 흉내 내는 것 같아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레이디에게서는 독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게 참. 문화권마다 그 사람들이 풍기는 묘한 느낌이 있단 말이죠. 처음에는 몰라도,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절로 구별이 됩니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어요.”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허세는.’

         

       오딜리아는 남자란 늙은 것이나 어린 것이나 한결같이 허세나 부린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얼굴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비웃음을 숨기기 위해 잔을 들어 카페라떼를 마셨다.

         

       “그, 독일 분이라는 것을 아니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작은 가방에서 종이 묶음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읽어보라는 듯 내밀었다.

         

       『 선호하는 이능에 대한 유럽 문화권 사람들의 관심도 조사 』

         

       설문지였다.

       대마녀는 그 글자를 읽자마자 이게 뭐냐는 듯 남자를 노려보았고, 남자는 창피하다는 듯이 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죄, 죄송해요. 그…. 연구 때문에 각 유럽 국가마다 100명씩 표본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제가 실수를 해서 한 명을 빼먹었거든요….”

       “…그래서요?”

       “그런데 일정은 짜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러시아로 오고…. 딱 한 명만 있으면 되는데 공항에서는 도저히 독일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그러다가 마침 호텔에서 레이, 디를 발견해서요. 네….”

         

       남자는 민망하다는 듯 슬쩍 몸을 움츠리더니,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안될까요…?”

         

       오딜리아는 안된다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카페라떼.

         

       아시아 품종은 다 싸구려라는 그녀의 편견을 부숴준, 인도 마이소르 너깃 엑스트라 볼드 원두로 만든 커피.

       그냥 평범한 커피였다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종이 뭉치를 남자의 면전에 집어던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후.”

         

       대마녀는 남자가 입도 대지 않은 커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커피, 내놔요.”

       “네? 네.”

         

       남자는 오딜리아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가 움직이자 거품이 뽀글뽀글 움직였고, 대마녀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카페라떼와는 달리 차가운 커피는 그녀의 입 안을 식히며 향을 퍼뜨렸고, 수증기가 폭발하듯 퍼졌던 카페라떼의 향과는 다르게 무겁게 가라앉는, 하지만 더 강렬하고 날카롭게 자극하는 향이 그녀의 혀를 지나쳐 목 아래로 내려갔다.

         

       “이 커피도 괜찮네요. 같은 원두를 사용해 만든 질소 커피?”

       “네? 네.”

       “좋아요. 이 커피가 맛이 없으면 그냥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해줄게요. 대신 받고 빨리 꺼지도록 하세요.”

         

       그녀는 핸드백에서 펜 하나를 꺼내 들고 내용을 읽어보았다.

         

       『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지는 유럽 문화권에서 선호하는 이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설문지입니다. 본 설문지에 담길 여러분의 답변은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본 설문지에 사용된 답변은 오로지 연구에만 사용될 것이며, 비밀이 지켜질 것을 약속드립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설문지를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하는 문항에 v, 혹은 O 표시를 해주십시오.

       만일 문항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면 기타를 선택하고 내용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1. 귀하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남자

       여자

         

       2. 귀하의 국적은 어디입니까?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

         

       3. 귀하는 이능 사용자입니까?

       O / X

         

       3-1. 만약 이능을 사용자라면, 어떤 이능을 사용합니까?

       (3번 문항에서 O에 응답하신 분만 답하여 주십시오.)

         

       …

       …

       … 』

         

       설문지는 두 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첫 장의 내용은 딱히 별것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며 나눠주는 설문지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오딜리아는 대충 첫 장을 채우고 다음 장을 보았다.

         

       “이거, 인쇄 잘못됐네요.”

         

       두 번째 장은 잉크가 잔뜩 번져서 도저히 글자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글자가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잉크 범벅이었다.

         

       “어? 이, 이러면 안 되는데….”

         

       남자는 두 번째 장의 상태를 보고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푹 쉬고는 오딜리아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 또 다른 실수 때문에…. 하….”

       “뭐, 저는 크게 시간을 뺏은 건 아니니까 됐어요.”

         

       오딜리아는 그렇게 툭 말을 뱉었다.

       어쩌면 위로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을 말이다.

         

       남자는 오딜리아의 그런 모습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본 대마녀는 거슬린다는 듯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왜요?”

       “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이 종이. 그림 같지 않아요?”

         

       남자는 날카로운 오딜리아의 물음에 당황하며 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는 누가 봐도 주제를 돌리려 하는 것이 보이는 태도로 종이를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잉크를 쏟은 듯한 그림이었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무언가를 연상하는 그림인 것은 맞았다.

         

       “그러네요.”

       “신기하죠…? 어…. 뭔가 닮은 것 같은데, 저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레이디는 떠오르는 게 있나요?”

       “뭐, 제 눈에는 망치 같아 보이네요.”

       “아, 망치요. 참! 드릴 게 있었는데!”

         

       그녀의 답에 남자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그…. 설문지에 답해준 분들에게 드리는 게 있거든요. 기념품인데….”

         

       그는 한참을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손바닥만 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은 성경에서나 쓰일법한 얇은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그마한 크기에 걸맞지 않게 꽤 뚱뚱했다. 하지만 표지는 가죽을 이용해서 만들었는지 고급스러운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거 아닌 기념품이에요.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줘봐요.”

         

       도도한 오딜리아의 말에 남자는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의 앞에 책을 밀었다.

         

       표지에는 별다른 장식이나 그림이 없었고, 오직 필기체로 쓴 듯한 글자가 가득했다.

         

       『 MALLEUS MALEFICARUM, M■leficas, & earum hæresim, ■t phramea p■tentissima conte■ens 』

         

       중간중간 글자가 뭉개져 있었지만, 그 글자는 오딜리아에겐 참으로 익숙한 글자였다.

         

       그녀는 분노에 찬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야?”

         

       모든 마녀와 이단을 창과 같이 심판하는 망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이라 불렸던, 마녀사냥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서적의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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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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