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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1.

       

       장장 수 시간에 걸쳐 이어졌던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당사자인 루드릭에게는 지루하고 피말리는 시간이었지만, 이어진 만찬 때문에 아직 자리에 남아 있는 귀족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쑥덕거렸다.

       

       “이번 임명식은 굉장히 짧게 끝났군. 궁정백이 얼렁뚱땅 처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네는 저번 임명식 때 아직 핏덩이였잖는가.”

       “어머님이 말씀해주셨네. 좀이 쑤실 정도로 길 거라고 해서 나름대로 대비하고 왔네만.”

       

       귀족들에게는 이렇게 싱겁게 끝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행사였다. 대개 황실에서 직접 주관하는 행사라는 게 대부분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쓸모 없는 예식으로 가득 차있는 것이 정상임을 고려한다면, 이번 임명식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물론 빠르게 끝난 것과 별개로 에일린이 표현했던 ‘대관식’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인 의미는 어마어마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일 뿐.

       

       적어도 지금은 모두가 방금 전의 임명식을 주제로 고급진 요리를 즐기며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오늘의 주인공, 루드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

       

       몇몇 귀족들은 노골적으로 관심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대개는 가족과의 자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관심을 접어둔 상태라 식사와 대화에 집중하기에 나쁜 여건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우리 아들이 이 애미보다 높은 작위가 됐구나. 그러니 너도 이제 품위에 걸맞게 행동하거라.”

       “……품위요?”

       “오며 가며 듣는 귀가 많지 않느냐. 황궁이라면 특히 듣는 귀가 더 많겠구나. 네 자리에 걸맞은 처신을 하라는 의미다.”

       

       메인 요리로 나온 스테이크를 썰며 바이스 백작이 말했다.

       

       비록 조막만한 영지라고는 해도,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바이스 백작령을 경영한 귀족으로서의 연륜이 묻어나는 조언이었다.

       

       루드릭은 얼마 전까지는 명색이 로렌초의 제자일 뿐, 공식적인 직함이 없는 반쯤 야인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 궁중 마법사라는 직위를 얻은 상태.

       

       제국이 바보라서 그 자리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세습만 되지 않는다 뿐이지 후작위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 점은 알린 바이스 백작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꺼낸 말을 혹여 누군가가 듣는다면, 거기에 필경 과장된 의미를 부여할 게 틀림 없다. 그러니 애초부터 타인에게 책을 잡힐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최선 아니겠느냐?”

       “……그렇긴 하네요.”

       “그리고 너도 유념하거라. 비록 사적으로는 이 애미가 네 부모일지언정, 공적으로는 에스겔란트 제국의 궁중 마법사와 바이스 백작의 관계라는 걸 명심하고.”

       “그렇다고 설마 막 저한테 존댓말하고 그러실 건 아니죠?”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타인에게 책을 잡힐 만한 행동은 애초에 하지 말라고. 괜히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필요가 있겠느냐?”

       “어머니가 저한테 존댓말로 말하는 그림이 잘 상상이 되진 않는데…….”

       

       켁.

       

       그 모습을 상상한 루드릭이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히려 옆에서 세릴라까지 거들고 나섰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

       “그렇다고 내가 누나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킬 수는 없잖아.”

       “왜? 내가 황궁 경비 서고 있을 때 네가 지시하면 나는 따르는 입장인데.”

       

       세릴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마자 루드릭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다고 내가 누나한테 피곤하니까 와서 어깨 좀 주무르고 마사지 좀 하라고 하면 할 거야? 아니, 근데 애초에 이런 건 경비 서고 있는 기사한테 시킬 만한 건 아니잖아.”

       “……뭐어, 그렇긴 한데.”

       

       중얼거린 세릴라가 문득 상상했다.

       

       10년 동안 몰라보게 자란 동생이었다. 원래 남매라는 생물은 서로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극과 극이지만,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세릴라가 처음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상경할 때만 해도 시무룩해 있던 꼬마 아이가 지금은 어느새 훌쩍 자라서는, 남동생 얘기를 꺼내자마자 소개시켜 줄 수 있겠냐고 묻는 동기들이 넘쳐나는 상태.

       

       피곤하니까 와서 어깨 좀 주무르라고 해도 세릴라는 귀여운 막내 동생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해줄 수 있었다.

       

       사실, 오히려 가까이 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좋은 향기가 나는 듯해서 불쑥 설레는 마음이 들어버리는 게 오히려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정신 차려, 미친년아. 동생이야 동생.’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세릴라가 혹여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들킬 새라 황급히 말미에 덧붙였다.

       

       “어쨌든 네가 상급자잖아. 까라면 까야지. 원래 조직 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야. 계급이 깡패거든.”

       “그래도 가족인데…….”

       “왜, 피곤할 때마다 부를 수 있게 호출용 아티팩트라도 하나 줄까?”

       “됐거든요?”

       

       영 내키지 않는 듯한 루드릭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세릴라가 싱글거렸다.

       

       저렇게 틱틱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어릴 때 업어 키우다시피 한 막내 동생이 잘 자라기는 잘 자랐다고 생각하면서.

       

       

       

       

       2.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 간에 나누는 대화에 흥미가 있는 귀족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사적인 대화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신경을 끄는 가운데 몇 쌍의 시선이 루드릭이 앉은 테이블을 향하고 있었다.

       

       “……부럽다. 나도 루드릭이랑 같이 떠들고 싶은데.”

       “쓰읍, 눈치 없이 저기 끼어들고 싶으십니까? 정신 차리쇼, 이 양반아.”

       “부관, 나도 알아. 하지만 소망 사항 정도는 말할 수 있잖아. 꼭 그렇게 자네는 상관에게 면박을 줘야겠어?”

       “눈치 없는 여자를 남자가 좋아할 턱이 있나.”

       

       홀짝.

       

       명색이 귀빈석이었지만, 라실은 부관인 크로우와 함께 처량하게 술잔이나 기울이는 신세였다.

       

       제국 해군의 군권을 쥐고 있는, 나름대로 실세라면 실세였지만 수도에는 아무런 정치적 연고도 없는 그녀는 이런 사교적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접근하는 귀족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군인일 뿐이라며 전부 몰아내고 남은 결과.

       

       넓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건 오직 라실과 크로우 뿐.

       

       청승맞게 와인이나 기울이는 신세라며 한탄하던 라실이 중얼거렸다.

       

       “부관, 사랑이란 뭘까?”

       “벌써 취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요즘 들어서 느끼고 있는 게 있어서 말이야.”

       “뭡니까, 그게.”

       

       시큰둥한 크로우의 대꾸에도 개의치 않고, 라실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소원이 하나 있어. 루드릭한테도 말하긴 했거든. 저번에 내 별장으로 왔을 때 말이야.”

       “그, 같이 배 타고 한가롭게 뱃놀이나 하면서 저분이랑 바다 구경 하는 거 말입니까?”

       “그래, 그거 말이야. 그래서 그때 소원 성취는 했잖아.”

       “성취했으면 됐지 또 뭐가 문젠데.”

       “그 이후로 줄곧 느끼던 건데 말이야. 이제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아. 그냥 좋아서 못 견디겠어.”

       “취했네.”

       

       짜증스럽게 대꾸하던 크로우가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실이 술잔을 홀짝거리며 루드릭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랑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이미 그녀는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독이 온 몸에 퍼진 상태였다. 지금은 그냥 단순히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어도 좋을 정도로.

       

       보고만 있어도 짜릿한 전류가 심장을 타고 흐르고, 손가락과 발가락 끄트머리부터 무언가가 간질간질거리는 기분.

       

       그래, 이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를 사랑이라고 부를까.

       

       “……그래서 말이지, 나는 그냥 그것도 좋다고 대답했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있어, 그런 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데, 같이 살기까지 하면 얼마나 좋겠어. 어쨌든 신혼에는 다들 알콩달콩 깨가 쏟아진다고 하잖아.”

       “……엥?”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던 크로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자연히 언성이 커지려다가, 자리가 자리라는 걸 자각하고 가까스로 목소리를 낮춘 크로우가 다급히 물었다.

       

       “뭐, 좋다고 했다고? 청혼이라도 받은 겁니까? 아니, 애초에 남자가 먼저 청혼했다고?”

       “쓰읍.”

       

       라실이 잠시 생각했다. 이걸 청혼을 받았다고 대답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그게 세간에서 상상하는 그런 결혼 생활은 아닐지언정,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청혼을 받은 셈이라고 볼 수 있을 터. 심지어 루드릭이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에일린에게 전해 들은 라실이 그냥 그것도 좋다고 덥석 물었던 거긴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생각을 정리한 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청혼받은 거라면 청혼받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식은 언제 올릴지 모르겠지만.”

       “아니, 그럼 그게 정말 효과가 있었다고……?”

       “부관, 뭐가 효과가 있었다는 거야?”

       “……사실 제가 알려준 그거 말입니다. 저도 그냥 이론상으로 배운 건데.”

       

       크로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크로우가 라실에게 전수했던 연애 비법.

       

       정작 크로우도 나이가 서른을 넘겼지만 아직 독신이었다. 아무리 험한 일을 하는 뱃사람, 특히 그냥 뱃사람도 아니고 해군이라는 걸 감안해도 굉장히 결혼이 급한 상태였다.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굉장히 늦은 노처녀라고 할 수 있었던 까닭에.

       

       햇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를 긁적이며 크로우가 툭하고 내뱉었다.

       

       “사실 말을 하면서도 엉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용케 효과가 있었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라실이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그럴 것 같더라. 그래서 부관이 알려준 건 하나도 안 써먹었어. 정말 자네가 알려준 게 효과가 있었으면 아직 그 나이 먹도록 부관이 혼자 살 리는 없잖아.”

       “…….”

       

       멈칫거린 크로우가 대꾸하는 대신, 눈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씁쓸했다.

       

       동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녀의 푼수같은 상관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먼저 결혼 약속까지 잡아놓은 게 사무치도록 부러웠다.

       

       정작 그 결혼의 내용이 오등분의 신랑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래도 그녀가 부러워할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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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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