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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 ***

         

       “비가 올 것 같은데…피풍의를 입는 게 어떻겠니.”

         

       “그럴까요.”

         

       여일예는 혁기린이 건네 준 피풍의를 받아 어깨에 둘렀다. 여일예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자신의 대사형을 바라보았다. 큰 눈망울에 서린 걱정과 긴장감.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응.”

         

       관아 정문에 호천안과 흑묘가 배웅을 나와 있었다. 말없는 인사를 나눈 여일예는 황금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천성은 아침부터 이런저런 소음이 가득했다.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흐린 날씨와는 반대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색은 밝았다.

         

       “산적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토벌했다지?”

         

       “사천성의 무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산적들 따위야 한방감이지!”

         

       “암! 암!”

         

       이미 앞서 도착한 전령이 승전 소식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천성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던 산적이 제거되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하며 개선식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여일예는 그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황금가로 향했다.

         

       떠들썩한 사천성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황금가는 완벽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여, 여일예…”

         

       황금가의 문지기가 마른침을 삼켰다.

         

       “막을 셈인가?”

         

       문지기는 대답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쳤다. 관의 직인이 찍힌 포고문이 황금가에 살포되었고 그 포고문의 내용은 읽은 자들은 황금가의 말로를 짐작했다.

         

       문지기들의 눈에는 전의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여일예는 말없이 문지기들을 지나 황금가의 대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정적 속에서 여일예의 손에 문이 열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문이 열리자마자 배치된 무사들이 여일예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관군은 아니긴 하지만, 싸울 생각인가?”

         

       무사들이 술렁였다. 살포된 포고문에는 여가산장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이성을 잃고 황금가를 습격했던 여일예. 그때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난동을 부리며 외쳤던 의미심장한 말들.

         

       여일예가 여가산장의 관계자라는 것은 누구라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 가지만 묻겠소.”

         

       무사 중 누군가가 물었다.

         

       “이 포고문…포고문에 적힌 것이 사실이오?”

         

       여일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무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한 사람이 움직이니 그 다음은 쉬웠다. 수치를 느낀 듯이 물러서는 무사도 있었고 이제 황금가는 완전히 끝장날 것이라는 걸 짐작했는지 도망치는 무사도 있었다.

         

       물론 모든 무사들이 저항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 이놈들! 뭐 하는 거냐! 어서 막아라! 막아!”

       

       숫자만 따지면 도망치거나 전의를 상실한 무사 쪽이 소수였다. 나머지 무사들이 상급자들의 호령에 긴장한 안색과, 겁 먹은 기색으로 여일예에게 달려들었다.

         

       쿠우웅!!

         

       여일예는 그런 무사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무기를 사정없이 박살내고 덤벼드는 무사들은 거대한 경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날려보냈다.

         

       순식간에 수십의 무사가 널브러졌다. 죽은 자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자들도 없었다. 비명과 신음이 황금가의 마당을 메웠고 남은 무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뒷걸음쳤다.

         

       검집째로 휘둘러지는 검에 닿은 무기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일수에 몇 사람씩 쓸려나갔다.

       

       아무리 떼를 지어 덤비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으니 전의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이, 이놈들 물러서지…억!”

         

       연신 전투를 강요하던 경비대장이 단번에 거꾸러졌다. 본래라면 인의 장막 속에 보호받아야 할 경비대장이었지만 이미 와해된 진형과 바닥을 치는 사기로 인해 빈틈이 드러난 상황. 여일예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단번에 접근해 경비대장을 쓰러뜨렸다.

         

       “이, 이길 수 없다!”

         

       “도망쳐! 황금가는 이미 망했어!”

         

       구심점을 잃어버린 황금가의 무사들은 더 이상 여일예의 앞을 막아설 수 없었다. 여일예는 뿔뿔이 흩어지는 무사들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황금선은 도망칠 수 없다. 황금선은 황금가라는 가문과 가문에서 나오는 금력을 제외하면 그저 힘없는 늙은이에 불과할 뿐이니까.

         

       ‘가주전….’

         

       가주전에 있는 가주 전용 옥좌. 아마 그곳에 황금선이 앉아 있을 터였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가며 쟁취했던 황금가의 가주 자리. 황금선은 단 1초라도 그 자리를 더 누리고자 할 테니 그곳에 있겠지.

         

       그리고 그곳에서 결착을 내려고 할 것이다.

         

       아무리 포고문을 받았다고는 해도 앞을 막아선 무사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졌다. 어떤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황금가는 이 사천 제일의 부를 자랑하는 가문.

         

       정예들은 자신의 주변에 따로 모아놓았겠지.

         

       ‘황금선이 모을 수 있는 힘이야 한계가 있겠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복수는 종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황금선을 잡는다고 복수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끝이기도 했다. 여가산장의 혈사에 대한 물증이 모이고 증언이 확보될 테니까. 양지에 살아가던 자들은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할 것이고 음지에 있는 자들도 모두 무림공적이 될 것이다.

         

       황금선을 잡은 뒤에도 다른 원수들을 잡는 과정이 있을 테지만…양지의 인물들은 여일예가 쫒을 필요도 없이 몰락할 테고 음지의 인물들도 순식간에 고립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십오 년 전 끝날 일이라 여겼던 이들은 모두 갑작스럽게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모두 잃고 알몸으로 내던져 질 것이고 그런 그들을 조용히 수확하는 일이 될 터였다.

         

       황금선을 잡는 일은 여가산장의 원한을 갚은 행보의 마지막 분기점이었다.

         

       ‘결착을 짓자.’

         

       여일예는 가주전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그 가주전 앞에서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

         

       흑립을 쓰고 있는 낭인 한 사람. 그리고 여일예를 보자마자 검을 뽑아든 소년 한 사람.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심적 충격이 여일예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 두 사람을 보자마자 한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은원(恩怨).

         

       “….오년 전. 여름이었다. 너는 대로변에서 낭인을 만났지.”

         

       노기로 떨리는 소년의 목소리에 여일예의 발이 멈추었다.

         

       “그날 낭인의 팔을 베었던 것을 기억하느냐? 팔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검기에 깊은 상처를 입은 그 낭인은 다시 무기를 잡을 수 없었다.”

         

       여일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머릿속이 헝클어져서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분이 내 아버지였으며 저번 달에 돌아가셨지. 그날 이후 아버지는 술독에 빠져 사셨다. 무공은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정진했던 목표였고 더 이상은 그 목표에 매진할 수 없는 아버지는 살아갈 의욕을 잃으셨지.”

         

       소년은 불타는 눈으로 여일예를 바라보았다. 여일예는 그 소년의 눈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소년의 눈에는 호천안을 만나기 전의 여일예가 담겨 있었다.

         

       증오에 원한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했던 그 시절의 여일예가.

         

       “강건한 무인이었던 아버지가 숨 쉬는 것조차 어려운 폐인이 되기까지 5년.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아버지의 무공을 계승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아버지를 절망의 수렁에서 건져내려 노력하던 나날이었지.”

         

       여일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년 전…오른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된 날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무인이었고 무인이 아닌 자로서 살아가실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그저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

         

       소년은 선언했다.

         

       “너는 아버지의 원수(怨讐)다!”

         

       원수, 그 말에 여일예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아버지의 원한. 이 구현수가 갚겠다!”

         

       구현수가 검을 뽑아들었다.

         

       여일예는 구현수의 눈에서 시선을 떼고 그 검과 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무공을 익혔다 했던가. 처음 보는 기수식이었지만 자세는 안정되어 있었다.

         

       검 손잡이는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였고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해진 옷 사이로 드러난 팔뚝은 강건했다. 열 두 살에서 열 다섯 살 사이로 보이는 소년이 쉬이 얻을 수 있는 근육이 아니었다.

         

       소년의 몸에 새겨진 노력의 흔적을 더듬던 여일예는….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뭐?”

         

       구현수의 눈에 당황이 서린 것도 잠시였다. 그 감정은 곧바로 경악으로 바뀌었으니까.

         

       달칵.

         

       여일예는 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구현수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초절정 고수인 여일예가 고작해야 삼류나 될까한 소년에게 무릎을 꿇었다.

         

       “십오 년 전의 일이었다.”

         

       여일예는 그날을 떠올렸다. 십오 년간 자신의 마음을 불살랐던 광경. 마음 속에 화인이 새겨진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군. 부엌일을 하는 하인이 몰래 챙겨준 당과를 한입 베어물고는 칠보옥대를 구경하기 위해 창고에 숨어들었다가 혼구멍이 나고는 방에 갇혀 있던 날이었다.”

         

       “무슨 소리를…”

         

       “비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지. 익숙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리고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옷장 속에 숨었지. 곧 어머니가 나타났고 나를 지하실의 비밀 공간에 숨기며 말했다. 꺼내 주기 전까지는 절대. 절대 나오지 말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지.”

         

       구현수의 검극이 한 치 내려갔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두려움에 떨고 있자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더군. 땀이 뻘뻘 났지만 그래도 무서워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군…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비밀 공간에서 나왔을 때…날 반겨 준 것은 잿더미였다.”

         

       “나는 정기적으로 산장에 물건을 공급하던 상인의 손에 구조되었지. 그리고 범인도 들을 수 있었다. 낭인들. 요새 정세가 심상치 않아 산장에서 고용했던 낭인들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그게 우리 아버지랑 무슨 상관이야!!”

         

       구현수가 소리 질렀다.

         

       “우리 아버지가 그 산장을 불태운 범인이었나! 말해봐! 아니라고! 아니잖아!”

         

       “그래. 맞다. 아니지.”

         

       여일예는 담담하게 인정했다. 구현수가 이를 갈며 여일예의 목에 검을 드리웠다.

         

       “내가 동정이라도 할 줄 알았어?! 네 기구한 사연을 들으면 용서라도 해 줄 것 같았냐고!!”

         

       “나는 무턱대고 낭인을 증오했다.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지. 스스로를 낭인이라 소개하는 자들은 대부분 떳떳하지 못한 자들이었고 진짜 낭인들 역시 돈이면 뭐든지 하는 자들이었으니까.”

         

       여일예는 구현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거리낌없이 증오를 불태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겠다. 사실 낭인이 협객이라고 추앙받는 자들일지라도 나는 증오하고 검을 휘둘렀겠지. 나는 분풀이 대상을 찾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증오의 불길에 온몸을 맞긴 소년. 여일예는 진심으로 소년이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길 바랬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구현수. 네가 나를 찾아와 내 목에 검을 겨누고 있지.”

         

       “….”

         

       “십 오 년이다. 부모님과 산장 식구들의 원수. 사천성의 만민을 인질로 잡아 그 악행의 대가를 피하고 나를 막으려 들었던 황금선을 눈앞에 두고 나는 너를 넘어서지 못했구나.”

         

       “그래서! 그래서 봐주기라도 하라는 말이냐!!”

         

       여일예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네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증오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지 않기를. 지금 휘두른 일검이 나중에 후회로 남지 않기를.”

         

       감정이 격해진 구현수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로 인해 여일예의 목에서 한 방울 피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여일예는 고요히 구현수를 바라보았다.

         

       “증오로 얼룩진 시선이 아닌, 너의 눈으로 나를 보아라. 충동이 아닌 그 의지로 검을 쥐어라. 자신을 속이지 말고 사실을 보아라. 네 아버지는 나에게 무인으로서의 생명을 잃었다. 그로 인해 너는 나를 원수로 여기고 검을 겨누었다.”

         

       “복수를 위해 황금가를 찾은 나 여일예를 막아섰고, 너를 이곳에 부른 황금선이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지른 자라는 것 역시 잊지 마라. 나를 죽이면 너 역시 그 업보를 짊어지게 됨을 명심하거라.”

         

       “닥쳐! 닥쳐! 닥치라고!”

         

       구현수는 검을 들어 올리며 악을 썼다.

         

       “네가 뭐라고 한들!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 그런데 그딴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그럼에도 너는 살아가야 하고 선택해야 하지. 네 선택이 무엇이든지 나는 수용하겠다. 그저…후회없이 결정하길 바랄 뿐이지.”

         

       구현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은 구현수의 모습에 여일예는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내가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았더라면…너에게 괴로운 선택지를 강요하지 않아도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를 죽인 주제에! 함부로 말하지마!”

         

       구현수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미안하구나.”

         

       “으아악!”

         

       구현수의 검이 휘둘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신화]님이 [10코인]을 후원해주셨군요.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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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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