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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1월 중순, 리프트 남작저택.

     “남작성을 새롭게 지으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저택이라면 모를까, 굳이 성까지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멘테 리프트 경은 남작저택-이라는 명목의 4층짜리 목조건물에서 제국인 둘을 맞이했다.

     “건축사업을 펼치고 싶다면 사업 계획서를 가져오시게. 리프트 영지는 내가 관리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브롤터 영지니까.”

     “남작께 할양된 장소가 아닙니까?”

     “나보고 관리를 맡기셨지, 내가 멋대로 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네. 공.”

     “아, 아아….”

     대머리 남자는 곤혹스럽다는듯 머리-두피를 긁적거렸다.

     “알겠나이다. 리프트 경께서 만족하실만한 계획서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말고, 지브롤터 변경백을 만족시켜야 할 거야.”

     “으음….”

     “하지만 안심하게. 의외로 변경백께서는 제국식 건물들이 세워진다고 해도 싫어하시지는 않으실 테니.”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귀찮은 일을 싫어하시지. 자신이 나서야 하는 일 때문에 부인과의, 그리고 딸들과의 시간을 빼앗기는 걸 몹시 싫어하시거든.”

     “!!”

     대머리 남자와 안경 낀 키작은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남작님!”

     “그래. 그러면…애쉬. 애쉬 있나?”

     “부르셨습니까, 남작님.”

     문 밖에 기다리고 있던 회색 정장의 안경 집사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에지스 공과 에르치에이 공을 밖으로 모시게. 가는 길에 선물도 좀 드리고.”

     “아이고,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선물을 드리고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걸요!”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럼!”

     두 남자는 쏜살같이 방을 떠나버렸다.

     “…이런.”

     회색 정장의 집사 애쉬는 곤란한 얼굴로 떠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남작님.”

     “어떻게 보고 자시고.”

     멘테 남작은 솜누스를 우린 차를 찻잔에 잔뜩 부으며 가볍게 홀짝였다.

     “제국 건축회사가 자기네들 돈으로 건물을 지어 그걸 판매하겠다는데 뭘.”

     “그들이 가져온 건축설계도를 살펴보면, 제국인들이 이 리프트 영지에 머무를 숙소나 감옥식 호텔을 지을 것 같습니다만.”

     “일개 집사 주제에 제국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거 아니니? 후후.”

     “집사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교양입니다. 남작님.”

     

     집사 애쉬는 두 제국인이 책상 위에 놓아둔 서류를 집어들었다.

     “건물 한 채를 짓는데 십수 억이 들어가는데, 그걸 몇 채를 자기네들 돈으로 짓게 땅만 내어달라고 하는 걸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가하시죠.”

     “본 남작은 그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어차피 지브롤터 백작가에 떠넘길 거 아닙니까. 적당히 보시고 도장 찍으시는 게 편할 겁니다.”

     “누가 이 리프트 영지의 주인인지. 쯧쯧.”

     멘테 남작은 구시렁거리며 도장을 꺼냈다.

     

     “그런데 너, 생각보다 경계하는 것 같더구나. 이유라도 있니?”

     “그레이 지브롤터를 칭찬하더군요.”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 방면으로 위험한 자들은 아닙니다. 촉이 좋다고 해야하나.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자들이죠. 서로 윈-윈하면서 거래를 하면 됩니다. 이거 보십시오.”

     집사 애쉬는 제국의 건축회사 관계자들이 선물로 가져온 박스 하나를 번쩍 들었다.

     “망고 박스?”

     “망고가 아닙니다.”

     집사 애쉬가 겉에 망고가 그려진 상자의 입구를 열자, 안에는 망고가 아닌 종이다발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이게 그….”

     “뇌물이죠.”

     “멘테 리프트를 남작위를 얻자마자 뇌물이나 받아처먹는 쓰레기 귀족으로 만들려고?”

     “이건 뇌물이 아니라, 앞으로 좋은 거래가 있기를 바라는 ‘선물’인 겁니다.”

     집사 애쉬의 말에 멘테 남작은 떫은 얼굴로 비스듬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선물도 잘못 먹으면 탈 나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이거 그대로 제출하면 되죠. 보관하고 있다가 훗날 재판이 열린다면, 이걸 재판의 증거로 내세워 ‘저들이 부정청탁을 한 근거입니다’라고 고발해버리면 됩니다.”

     “그 많은 돈을 그대로 썩혀두자고?”

     “이자는 없지만 안전장치로는 충분하죠. 상태를 봐서는 전부 세탁된 돈인 것 같습니다만.”

     “돈을 빨래한다고?”

     멘테 남작의 말에 집사 애쉬는 장난치지 말라는듯 피식 웃었으나, 멘테 남작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뇨. 빨래를 하듯이 깨끗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제국에서 제일 무서운 기관이 뭔지 아십니까?”

     “황실의 그림자?”

     “제국 세금청입니다. 뭐, 자세한 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집사 애쉬는 상자를 고이 닫았다.

     “투자자는 많을 수록 좋고, 거래처 또한 마찬가지죠. 좋은 징조입니다. 제국의 자본은 협곡 뿐만 아니라, 왕도에도 무수히 많이 들어가겠죠.”

     “왕도….”

     “오로솔 아카데미.”

     집사 애쉬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작님께서는 특례입학을 하더라도, 못 들어가십니다.”

     “…….”

     “연령을 사기친다면 모를까.”

     “하. 그럴 바에는 그냥 차라리 여기에서 뇌물 주려는 놈들 명단이나 만들고 말지.”

     멘테 남작은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17살로 나이까지 속여가며 입학하려고 하겠느냐?”

     “멘테 남작은 그러지 않겠죠. 예. 다른 이들도 멘테 경을 본받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

     입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의 날.

     “저는 왕국에 17살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왕국 통계의 숫자와 별개로, 17세 근처의 귀족 자제들이나 부유층 자녀들이 하나둘 왕도로 모이기 시작했다.

     “하긴. 당연한 수순이겠네요.”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입학할 예정이며.”

     오로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하여.

     “제국에서는 유학생으로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제국 제일의 미소녀가 온다고 하니.”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야 당연히.”

     집사 애쉬는 어깨를 으쓱이며, 남작저택 선반의 먼지를 흰 장갑을 낀 손으로 가볍게 쓸었다.

     “미리 가서 청소해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날.

     집사 애쉬라고 하는 자를 리프트 영지에서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집사였기에.

     * * *

     제국의 통일력 97년, 2월.

     하얀 눈이 대륙을 덮은 겨울, 이 시기에 아카데미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왕국 다르고, 제국 다르다.

     학기가 시작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왕국과 제국이 3월로 같다.

     3월, 입학을 앞둔 달.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 왕국은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학생들-귀족 자제의 명단을 살피고는 한다.

     입학 전에 미리 친해지고자 하는 실세 귀족을 찾아나서고, 아카데미 근처의 살롱이나 카페 등을 찾아두기도 한다.

     제국은 어떠한가?

     제국은 1~2월 기간은 ‘시험’기간이다.

     학부생이 아닌, 입학생들을 위한 시험 기간.

     누구나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나 받아줄 수는 없기에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는 최저학력을 갖춘 자들만 입학할 수 있도록 시험으로 걸러낸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다며! 모순 아니냐!

     

     왕국의 여러 귀족들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졌으나, ‘읽고 쓰는 것’도 하지 못하는 자도 아카데미에서 받아줘야겠냐는 말에 반발은 수그러들었다.

     최저학력.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지식.

     일단은 학문을 배우는 곳이기에 최소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에 사회적인 능력 또한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걸 걸러내고자 제국에서는 제국 교육부의 차관이 직접 제국의 여러 아카데미 교수들을 이끌고 입학 시험을 주관했다.

     이런저런 협의 끝에 공식적으로는 ‘균형선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로솔 아카데미, 전체 입학 인원 300명.

     이 중 제국의 아카데미 방식을 존중하여, 왕국에서는 100명에 이르는 17세 귀족들을 입학생으로 ‘선정’했다.

     이미 1월부터 귀족 가문마다 입학을 권유하는 초대장이 발송되었고, 귀족들 중 17세 자녀를 가진 이들이 이 초대에 응했다.

     일부.

     17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7세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거나.

     원래는 없었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17살이 되는 양자를 들인 가문이 있다거나.

     소위 편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 귀족들도 있었으나, 법적으로나 입학 규정적으로나 문제로 두지 않았기에 별다른 군말은 없었다.

     원래라면 300명의 입학 정원 중에서 200명 정도가 이렇게 17세로 뽑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국식 아카데미 방식이고, 당연히 편법 없이도 제 자식을 오로솔 아카데미에 보내고 싶어하는 귀족들이 불만을 드러내기 마련.

     결국 방식은 제국의 것이지만, 대외적으로는 17세라는 나이 제한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균형선발’의 인원이 20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모두에게 열린 시험.

     하지만 일부 귀족들은 이 균형선발이라는 제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추측을 던지고 있다.

     “누아르 지브롤터가 올해로 14살이라고 했던가?”

     “17살인 그레이 지브롤터를 입학시키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겠지. 변경백이 손을 쓴 것이야.”

     

     지브롤터의 뜻.

     “카르멘 왕비께서 특례입학…크흠. 균형선발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셨지.”

     “카르멘 왕비께서? 지브롤터를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돕는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입학한다면, 나리아 공주랑 비교되어서 왕궁의 명예를 높일 수 있을 텐데?”

     “왕가의 자존심을 위해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보다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의 부탁을 들어준 거지.”

     “크으. 역시 과거의 사랑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이미 수년 전부터 모르가니아와 지브롤터가 제법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는 했는데, 그 쐐기를 박는 게 이번 선발 정원 조정 사태.

     덕분에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누아르 지브롤터를 억지로 오로솔 아카데미에 입학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 덕분에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이 확장되었으니까. 

     “시험장에 사람 진짜 많군. 이게 다 시험을 보러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저기 보게. 롤랜드 후작가도 왔어.”

     “저 청년은…칼리아 자작의 차남이 아닌가!”

     “세상에. 저 여자는…!”

     시험장 입구를 들어가는 귀족들은 대부분 17세가 아닌 이들.

     그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역시나-

     “누아르 지브롤터!”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 흑발의 청소년이 들뜬 얼굴로 대로를 걷는다.

     “그리고 저기 뒤따르는 두 사람이 바로 협곡 기사단의 카를로스 경…!” 

     “그 옆은 말도 할 것도 없지. 멘테 리프트 남작이야.”

     “세상에. 아들을 위해 기사단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을 붙이다니. 심지어 한 명은 마스터.”

     “얼마나 누아르라는 저 소년을 아끼는 거지?”

     오로솔 아카데미에 어중이떠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들어오게 하더라도, 14살인 차남을 입학시키겠다.

     차남에게 뭔가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마스터를 뒤에 호위로 붙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겠다.

     “사실상, 후계자 선언인가….”

     대로를 당당히 걸어가는 누아르 지브롤터를 향해, 많은 이들이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이번 수석 입학은 그러면 누아르 지브롤터인 건가…?”

     “아, 그거 말인데.”

     끼이익.

     마차 하나가 시험장 앞에 멈췄다.

     모르가니아의 기사들이 마부가 되어 끌고 온 마차의 뒤에는 다름아닌 ‘노스트럼’의 상징이 반짝이고 있었다.

     “공주님께서 이번에 자기 몫의 정원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자신은 직접 시험을 치르겠다고 선언하셔서 어떻게 될지 몰라.”

     “……공주님께서는 왜 그러신대.”

     “그게.”

     누아르 지브롤터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하얀 튜닉에 검정바지라는 기사와도 같은 제복을 입고 시험장에 나타난 금발의 여인.

     “본인의 실력을 입학할 때부터 모두에게 선보이고 싶어하시는 모양이야.”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17세라는 이점과 왕국의 공주라는 이점을 포기하고, 당당히 시험장에 나타났다.

     

     * * *

     

     오로솔 아카데미, 시험장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어느 한 장소.

     “흥, 흐흥, 흥~”

     검은 로브를 두른 한 여인이 머리에는 빵모자를 눌러 쓴 채 아카데미를 산책하고 있다.

     얼굴에는 검은색 안경을 끼고 있으며, 하관을 전부 가리는 제국식 호흡보조용 복면-‘마스크’를 착용한 채 아카데미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머나. 저 사람들이 다 시험을 보는 사람들인…와!”

     여인은 시험장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리아 공주가 직접 창을 들고 누아르 도련님을 압도하고 있다니…!”

     시험장의 중앙.

     여러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일제히 대련하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두 남녀가 대련을 펼치고 있다.

     서로 중급의 실력.

     서로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분명 보기에는 좋았으나, 그들의 배경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으음….”

     여인은 잠시 팔짱을 끼며 고민한 뒤.

     “이기는 편 내 편! 둘 다 내 편!”

     아주 작게 장난스레 속삭이며, 산책하고 있던 건물의 안으로 향했다.

     “여기가 제국 유학생들을 위한 숙소…!”

     “실례합니다만.”

     “……어?”

     오로솔 아카데미, 기숙사 중 제국 유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건물.

     “이곳은 현재 출입금지입니다.”

     “어…. 저기….”

     “나가는 문은 저쪽입니다.”

     하얀 마스크에 작업용 모자, 회색 청소복을 입은 남자가 바깥을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으음…아!”

     여인은 손뼉을 치며 활짝 웃더니.

     “여기, 소개시켜주세요!!”

     

     막무가내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어서요. 네?”

     “…….”

     빗자루를 들고 있던 청소부는 여인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번만입니다.”

     여인을 건물 안으로 들이며, 문을 잠가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 출
    캐 현

    4화째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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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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