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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4

       분근착골.

       뼈와 살을 분리해낸다는 의미를 담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고문술은 기어이 30분을 넘게 이어졌다.

       물론 정말로 뼈와 살이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맞먹는 고통을 겪었을 사람은 삼십 분이 30년처럼 느껴졌으리라.

         

       실제로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로이 반트는 반송장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명줄이 짧아진 모습.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독한 녀석이었어, 입이 얼마나 무겁던지….”

       “무거운 게 아니라, 선배님이 강제로 못 말하게 하신 거 아닙니까?”

       “어허.”

       “…….”

         

       경고 어린 근엄함에 요르드는 입을 다물었다.

         

       근육과 뼈가 기형적으로 뒤틀렸다가 다시금 제 모습을 되찾는 끔찍한 고문의 광경을 실시간으로 직관한지라 여러모로 그에게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겐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잔혹한 폭력.

       왜 고문 기술자들이 정신병이 생기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한데도 그는 굳건했다.

       하는 짓은 광기 어렸지만, 누구보다 냉정한 바.

       마치 의무적인 작업을 끝낸 모습이었고, 이를 보며 요르드는 한 줄기 땀방울을 흘렸다.

         

       ‘이 선배님은…, 정말 철저하신 거야.’

         

       요르드는 선배 기사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겉핥기로라도 이해한 느낌이 들었다.

       적에게 용서가 없으며, 적이라 규정한 이에게 한없이 냉혹하고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누군가는 ‘당연한 말 아니야?’ 란, 개소리를 지껄일 테지만, 알 사람은 알 거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있음을.

         

       ‘언젠가 다시 싸우게 되는 날이 있더라도, 배움의 의미로 싸우는 거지, 적이 돼서 싸우고 싶은 종이 아니야, 이 선배는….’

         

       여러 의미로.

         

       반대로 이한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도를 요르드가 높이고 있을 때, 이미 3년 동안 이한이란 인물을 경험한 제이크는 덤덤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어서.”

         

       아니, 덤덤한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사무적인 표정이었고, 상대방을 향한 동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군, 이런 일에 화를 낼 것처럼 보였는데.”

         

       이를 보며 요르드보다 창백해진, 아니 창백한 걸 넘어 속에 있는 걸 모두 게워 낸 아렌은 유일한 정상인이라 여긴 제이크의 또 다른 면모를 보고 몸을 움찔거리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었다.

       기사란 이가 어찌 포로라 한들 고문 같은 잔혹하고도 야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냐고.

       그런 원칙적이고도 정상인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제이크는 아렌의 의아함에.

         

       “팬드래건을 위협하는 적이 아닙니까. 물론 인륜적으로도, 기사도에도 위배되는 행위란 것도 압니다. 허나 기사된 자, 왕국과 백성을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라면 적군에게 악귀라 불릴지언정 칼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됩니다. 전 팬드래건의 적이 될 인물에게까지 감정을 소비하지 않을 뿐입니다, 8왕자 전하. 하니, 전 그가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며, 제 손을 더럽히는 그와 같은 이들이 있기에 왕국이 여전히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겠죠.”

       “…….”

       “이런 저와 저 녀석이 껄끄럽다면 지금이라도 왕도로 돌아가시길 권하겠습니다. 그는 제가 설득할 테니.”

       “…….”

         

       …지금껏.

         

       그를 공대하면서도 기사단장이나 경이라 꼬박꼬박 불렀던 제이크가 처음으로 [8왕자]란 단어를 썼으며, 저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아렌은 진정한 의미로 머저리였을 것이다.

       

       본인을 기사가 아닌, ‘왕족’으로 대한다는 것.

       그건 온실 속 화초로 살아가란 통보가 아닐 수 없었다.

       기사 놀이는 그만두고 말이다….

         

       이를 듣고.

         

       뿌득!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왕족 이전에 그는 사내라 할 수도 없다!

         

       “말을 조심해라, 난 8왕자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백은사자의 1기사단장이다. 주제를 알란 말이다, 제이크 파먼!”

         

       아렌은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물며 분노한 모습으로 언성을 높였고, 제이크는 이에 덤덤히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아렌 경.”

       “빌어먹을!”

         

       아렌은 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허나 그 화는 제이크를 향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못난 모습을 보이고, 못난 행동이나 한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지.

         

       ‘난 백은사자의 기사다!’

         

       이를 되뇌는 아렌은 제이크를 향해 눈을 반개했다.

       비록 그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었지만, 자신을 향한 도발만큼은 유쾌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제야 알 것 같군. 네 녀석이 저 괴수와 친구인 이유를.”

       “욕입니까?”

       “그럼 칭찬이겠나!”

       “으음, 욕이군요.”

       “이익!”

         

       아렌은 그의 존대가 이제는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옴을 깨달았다.

         

         

         

         

       “…제이크 선배님이 저런 도발도 하는군요. 그것도 상당히 열 받게요.”

         

       자신 같아도 저런 말을 듣고 자존심이 안 상할 수 없으리라.

         

       제3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아렌은 제이크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 보였고, 요르드는 순박하기만 한 줄 알았던 선배 기사의 색다른 면모에 마냥 혀를 내둘렀다.

       어딘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도발 어린 말투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쩝, 저놈 원래 순둥이었는데. 나랑 임무 몇 번 갔다 오면서 못 볼 꼴 많이 보니까 성격이 좀 뒤틀려지더라고. 하여튼, 군인 일이 사람 인성을 삐뚤어지게 한다니까.”

       “…….”

       “왜 그렇게 보냐?”

       “아, 아닙니다….”

       “…눈빛이 영 불손한데.”

       “진짜, 아무런 의도가 없었습니다.”

       “흐음….”

       “…….”

         

       요르드는 묵묵부답하며 입을 닫고 시선을 돌렸다.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선배님…, 아무리 봐도 군대보다 선배님이 원흉인 것 같습니다.’

         

       …라고.

         

       요르드는 입이 재앙의 화근인 걸 아는 현명한 눈치가 있었고, 침묵으로 제 안위를 챙겼다.

         

       사회인의 필수 패시브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 그, 그들은 어느 날 저에게 접근했습니다….

         

       로이 반트가 내뱉은 정보에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 언제부터 그들이 땅굴에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최소 10년 이상은 됐다는 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묻자.

         

       – …그들은 땅굴을 마치 본인들의 집처럼 사용했고, 구조를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땅굴을 관리하는 병사조차 모를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더군요.

         

       누군가에겐 지옥이자 처형장과 다름없는 수감소가 그들에겐 제 안방인 것처럼.

       이는 즉 개미집처럼 복잡하고도 미로처럼 길을 알 수 없는 땅굴의 구조를 완전히 파악해놨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웜들 때문에 그 구조가 수시로 변하는 땅굴이거늘….

         

       오래 있었다는 건 분명하리라.

       허나 10년이란 건 도무지 믿기 힘든 얘기였-.

         

       – 건물과 농장이 있습니다. 즉, 주거 가능한 시설이 땅굴 안에 있다는 겁니다.

         

       …믿기 힘들지만, 이들은 땅굴 이곳저곳에 자기들만의 거주지 등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최소 10년은 거주하지 않으면 만드는 게 불가능한 다양한 시설들이 만들어져 있는 셈.

       이 또한 믿기 힘든 정보다.

       아무리 병사들이 땅굴 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무관심할지언정 거주지 등이 만들어지는 것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의심과 함께 다시금 손을 움찔거리자.

         

       – 히익! 미, 믿어 주십시오! 지, 진짜란 말입니다! 저, 전 본 것만을 말하는 겁니다!!

         

       로이 반트는 울부짖었다.

       다신 그러한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하며 발악하듯.

         

       – 그, 그들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들은 조직적이었고! 땅굴에 있는 강자들을 회유했습니다! 대부분 억울한 사연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팬드래건, 아니 더 나아가 귀족과 왕족에게 분노를 품은 이들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해독약도 가지고 있어, 투기법을 되찾아 주기도 했으며! 무지렁이 농부에게 투기법을 전수하는 것도 봤습니다!!

         

       좀 더 최선을 다해 정보를 내뱉었고, 심상치 않은 얘기가 나왔다.

         

       –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브리튼 출신 하급 병사였습니다. 다만 민간인 약탈죄로 이곳에 들어왔고, 죽어날 날만 기다렸단 말입니다! 하, 한데 그런 저에게 그들은 투기법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겨, 경께서 제 주머니에서 꺼낸 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작용이 있지만 투기력을 상승시켜주는 비약입니다! 진,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더욱 믿지 못할 정보가 아닐 수 없는 바.

         

       2년이라 했다.

       놈이 땅굴에 수감된 기간이다.

       또한 투기법조차 모르던 병사가, 그것도 성인 장정이 투기법을 배워 2년 만에 저 정도 수준까지 오른 것.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다.

       백은사자의 반쪽짜리들보다 확실히 강하며, 그 반쪽짜리를 이끄는 1기사단장보다 확실히 강한 수준이다.

         

       한데 불과 2년이라니….

         

       1인분을 하는 기사가 완성되는 데 최소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 제, 제 임무는 어디까지나 귀족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을 영입하는 거였습니다. 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들을 영입한다면 출세도 보장되는 것을 알았고, 비약을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끄으으윽!

         

       로이 반트는 정보를 내뱉던 중 고통에 다시금 몸부림쳤다.

       그가 말을 듣던 중 그에게 다시금 끔찍한 수를 쓴 것이었고, 로이 반트는 억울한 낯빛으로.

         

       – 어, 어째서!?

         

       정보를 모두 내뱉고 있는데, 왜 이러냐는 반문.

       그러한 반문에.

         

       – 대놓고 거짓말을 하니까. 너 약탈만 저지른 거 아니지?

       – !!?

       – 그럴 줄 알았다. 딱 거짓말을 말하더라.

       – 끄으으으으윽!!

         

       로이 반트.

       그는 약탈만이 아닌 간살마저 저지른 특대형 범죄자였음이다.

         

       이를 확인한 그, 이한은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 내가 원래 쓰레기들을 잘 구별해.

         

       덤덤히 고문을 가할 뿐이었다.

         

       정보를 뱉어내기 위함이 아닌, 그저 괴롭히기 위하여.

         

         

         

         

         

       이렇듯, 대부분 정보를 들은 이들이었고, 기사들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 비약, 아무리 봐도 그거지?”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으음….”

         

       기사들은 한쪽 구석에서 실신한 로이 반트에게서 중독 증세를 보았다.

       또한 비상식적인 성장을 봤을 때….

         

       “이거, 마물의 살점으로 만들어진 거다. 아마 100% 확률로.”

         

       마물의 살점.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독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며, 먹는 순간 곧장 죽고 마는 독약과 같은 바.

       동물이 먹는다면 변이를 일으키며 ‘마물화’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런데 말이다. 그거 아는가?

         

       따지고 보면.

         

       “사람도 동물이긴 한데, 이걸 이렇게 증명해주네.”

         

       마물의 살점을 섭취한 인간 중엔 가끔 살아남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강력한 괴력과 재생 능력, 뛰어난 학습능력 등을 손에 넣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야말로 축복.

         

       허나.

         

       “살아남는 이들 대부분이 광증이 생기지.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살인을 저지르고. 점차 인간성이 마모되는 등.”

         

       축복과 저주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고 할까?

         

       그런 뜻에서 분명 마물의 살점은 끔찍한 저주임과 동시에 악몽임이 분명하리라.

         

       “얘기로 들은 적 있습니다. ‘마인병’, 즉 <마인(魔人)>이 된다고….”

       “…왕실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마인이 발견되었을 때가 30년 전이라더군. 그리고 그 마인은 단 한 달 만에 백 명의 병사를 압도하는 무력을 발휘하였고, 기사 열이 나선 후에야 처단되었다고 들었다.”

         

       마물의 살점을 먹고 살아남는 자의 최후는 늘 똑같다.

       마물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게 본능.

         

       그리고 마물이 된 인간, 마인의 본능 또한 사람을 죽이는 게 당연한 것이며, 더 나아가-.

         

       “‘동족포식’마저 하게 된다고 하지.”

       “으음!”

         

       제 자식마저 알아보지 못하고, 제 처와 자식을 먹는 사례.

       이를 생도 시절 몇 번이나 들었던 기사들은 비약을 끔찍하단 시선으로 보았다.

         

       이한은 비약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착 가라앉은 시선을 줬다.

         

       “…저놈이 완전히 인간성이 상실되지 않은 걸 보면, 이 비약은 그러한 부작용을 최대한 제거한 거겠지.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거야.”

         

       이한은 확신했다.

       비약을 보고 있노라면 느껴지는 불쾌한 악취.

       인간이 섭취해도 죽지 않을 소량의 살점이 섞여 있는 거다.

         

       “엄청나게 실험해댔겠군. 대체 몇 명을 죽인 거야?”

         

       사람이 가진 면역력과 내성 등을 최대한 알아낸 후 만들어 낸 약임이 분명하다.

       아니, 이건 약이나 독약이라 부를 수도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섭취하고 있던 중 어느 순간 문제가 발생할 테지.

         

       그리고 이러한 시한폭탄을 개발하기 위해선 최소….

         

       “만 단위의 인간을 실험체로 썼겠군. 하! 미친놈들-!”

         

       제이크의 확신 어린 발언이었다.

       가끔 이한과 함께 위법 마법사를 잡은 적이 있기에, 이러한 실험을 빈번하게 목도한 그다.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근사치 정도는 될 터.

         

       해서 더욱 끔찍했다.

       이것이 어찌 사람이 되어 할 짓이란 말인가!

         

       광기와 집념, 끝을 모를 악의 등이 느껴진다.

         

       “이제 이놈들이 혈십자인지 뭔지 하는 놈들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놈들은 무조건 지금 없애야 해. 그렇지 않으면 훗날이 더 끔찍할 거야.”

         

       “동감이다.”

         

       이만한 악의를 가진 집단이다.

       한데 이러한 집단이 사람을 마인으로, 아니 <반(半)마인>으로 만들 수 있는 약마저 가지고 있다.

       거기다 그런 이들에게 고위 투기법마저 가르치고 있다.

         

       과연 이런 이들이 몇이나 될까?

       만약 천 명, 아니 벡 명만 되어도 충분히 위협적인 수준인 바.

         

       왕국을 위협하는 적.

         

       이러한 단순한 사실이 중요했고, 기사들은 이한의 입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는 기사들의 기대에 응하듯.

         

         

       “가자, 싹 다 조지러.”

         

         

       ─시원하다 못해 통쾌한 답변을 입에 담을 따름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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