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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115 – 오늘따라 춥네요>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오크노디! 괜찮아? 숨 쉴 수 있겠어?”

     

    멀리 발리스타가 발사되는 소리와 충차가 창문을 뚫고 돌격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살 부렸다고 해명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좋아. 결심했어.’

     

    나는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몸에서 힘을 풀고 기절한 척 축 늘어졌다.

    난 기절했음.

    아무튼 모르는 일임!

     

    “감히 제가 눈여겨본 용사파티 동료후보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요!!”

     

    지나가던 용사마저 격분한 채로 싸움에 가세했다.

    2학년 선배들의 배는 부서지고, 물고기를 독점하던 선배들은 밧줄에 묶인 채로 줄줄이 끌려왔다.

     

    “이런. 오크노디는 괜찮나요?”

    “애가 물에 빠졌더니 정신을 못 차려요.”

    “걱정 마세요. 저는 성녀랍니다.”

     

    용사와 함께 다니던 성녀가 무릎베개를 해주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린 양에게 치유와 안식을 허락하소서.”

     

    신성주문까지 외워가며 치료를 시도하기에 여기서도 눈 안 뜨면 진짜 큰일나겠다 싶어서 눈이 떨리는 연기를 하면서 찬찬히 눈을 떴다.

     

    “아앗. 눈 부셔.”

    “오크노디. 정신이 들어?”

     

    [연기 경험치+5]

    [속임수 경험치+5]

    [나쁜아이 경험치+2]

     

    …오늘만큼은 내가 나쁜아이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겠어!

     

     

    * *

     

     

    “그래서 1학년들한테 집단린치를 당한 끝에 배도 잃고 물고기도 다 뺏기고 풀려났다고?”

    “그 녀석들은 보통 1학년이 아니야. 애초에 용사까지 가세한 걸 우리가 어떻게 이겨?”

    “너희가 불쌍한 애한테까지 손찌검을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적당히 식량으로 목줄을 당기라고 했지, 누가 애를 폭행하래?”

     

    페이퍼콤퍼니는 억울해서 펄쩍 뛰었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다.

    모두가 자신이 폭행을 했다고 믿는 상황.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같은 빨간이빨버섯 경영자협회 회원들도 이건 좀, 하는 시선으로 그를 힐난하는 마당에 그의 편이 되어줄 이는 누구 하나 없다.

    1학년부수기 계획을 대실패한 죄를 물어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죄인이 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자문가. 이제 어떻게 하지?”

    “복수는 이대로 포기해야 해?”

     

    벨로카시오는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마지못해 지혜를 빌려주었다.

     

    “포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1학년들이 나름 영리하기는 해도 우리와는 근본적인 경험의 차이가 있지.”

     

    벨로카시오는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직 써먹을 수 있는 복수수단이 있다.

     

    “<풍랑>주문을 사용해. 파도를 일으켜서 놈들의 배를 전부 뒤집고 목요일의 해상등굣길을 모조리 막아버리는 거다.”

    “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풍랑주문의 섬세한 조절은 2학년인 우리한테는 너무 어려워. 원한이 있는 몇 명만 묶어두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일은 불가능해.”

    “그런 짓을 해버리면 죄 없는 1학년들까지 모조리 휘말리잖아.”

    “그런다고 1학년들이 너희에게 고마워할 것 같나?”

     

    벨로카시오는 순진한 회원들을 비웃었다.

     

    “놈들은 이미 2학년의 배를 부수고 물고기도 빼앗고 선배를 쥐어 패기도 했어. 땅에 떨어진 체면 때문에 같은 2학년 사이에서도 너흰 업신여김당하겠지.”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동기들 사이에서 ‘1학년에게 맞고 다니는’이라는 수식어로 불리기 시작하면 너희가 졸업하는 그 날까지 아카데미 생활이 어떻게 될 것 같냐.”

     

    한 번 얕잡히면 졸업하는 그 날까지 남은 생활은 조졌다고 봐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2학년들도 그제야 눈에서 독기가 번들거렸다.

     

    “페이퍼콤파니가 먼저 손찌검을 하긴 했지만 걔들도 너무하긴 했어. 발리스타를 쏘다니!”

    “충차를 던지고 잃어버린 애들이 우리 때문에 잃어버렸다고 3학년 조교한테 일러서 배상금 청구가 날아온 건 어떻고? 아직도 억울해 미치겠어!”

    “당한 것도 억울한데 졸업하기 전까지 평생 놀림거리로 전락할 수는 없어!”

     

    울분에 찬 2학년들은 복수를 다짐했다.

    억울하게 아동폭행범이라고 누명을 쓴 페이퍼콤퍼니의 분노는 가장 심했다.

     

    ‘그 꼬맹이 때문에 전교생한테 쓰레기로 찍힌 이상, 다음에 보거든 그 망할 꼬맹이는 진짜로 패주겠어!’

     

     

    * *

     

     

    저녁식사시간의 대소동 이후.

    5교시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시간이 돌아왔다.

    해골교관이 뼈를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날 작정이었던 우리들에게는 다행히도 강의장에 있던 건 사다코교수님이었다.

    수면에 둥둥 떠다니면서 긴 머리카락을 말린 미역처럼 흐트러뜨리고 창백한 피부는 미동도 않는 시체같은 몰골로 기다리지만 않으면 참 좋을 텐데.

    덕분에 해골교관이 없는데도 즈앙과 티토소가의 동공진동수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역시 돌아갈래.”

    “너무 무서워.”

     

    이미 늦었다.

    낙장불입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듯이 익사체처럼 떠다니던 사다코 교수님이 물에 잠긴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마치 지옥의 늪에서 몸을 일으키는 구울 같은 모양새에 불쌍한 티토소가는 비명도 못 지르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본 고라니처럼 바짝 얼었다.

     

    “왔구나.”

    “안녕하세요, 교수님!”

    “2학년과 1학년이 싸웠다고 들었는데.”

     

    친한 교수 하나 없을 것처럼 생긴 사다코 교수님은 의외로 아카데미 소식에 어둡지 않았다.

     

    “아무튼 저쪽이 나빴어요!”

    “시체는 가져왔느냐?”

    “…가져올 리가 없잖아요!”

    “저런.”

     

    사다코 교수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모처럼 좋은 기회이니 좀비생성과 해골화 주문을 가르쳐줄까 했는데. 아쉽게 됐구나.”

    “…저희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 들으러 왔거든요? 언데드 소환술 배우러 온 거 아니거든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언데드를 소환하면 야간행동의 불리함과 불편함을 모두 언데드를 부려 해결할 수 있다. 배워서 손해 볼 일은 없지… 아마도.”

    “아마도?!”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려던 즈앙의 발을 지면에서 솟구친 해골 팔이 붙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티토소가의 양팔까지 해골팔들이 꾹 눌러 자리에 앉히는 섬뜩한 짓을 벌여놓고도 사다코 교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강의 도중에 멋대로 자리를 뜨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안전상의 문제로.”

    “이, 이 정신 나간 교수님. 우리 주변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우리는 깨달았다.

    2학년과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역시 제일 무서운 건 교수님들이라고.

     

     

    * *

     

     

    강의가 끝나고 혼비백산해서 돌아가는 3인조.

    1학년 새내기들의 뒷모습을 보며 사다코는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친절한 분이신 줄은 몰랐네. 제자 키우기에 재미가 들리셨나?”

    “…디스트로이어 교수. 당신이야말로 오크노디에게 관심이 많군.”

     

    사다코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배후를 점하고 소리를 내는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목소리에도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건 진짜 걸물이거든.”

    “그래서 <투쟁의 악몽> 주문을 걸었나.”

    “이런. 눈치 채고 있었나?”

    “사령마법사는 정신계통에도 조예가 깊은 편이니까.”

     

    교수들의 전공분야는 다를지라도 정말로 우수한 인재는 분야를 막론하고 눈에 띄기 마련이다.

    오크노디는 특히나 더욱 그랬다.

    그녀의 강의를 맡은 교수들은 대부분이 오크노디에 대한 평가를 최고점 내지 그에 준하는 후한 성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독식은 안 돼.”

    “그럴 생각도 안 했다. 저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니까.”

    “…전대용사인 당신이?”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미지수의 실력으로 알려진 디스트로이어지만 사다코 교수만큼은 아카데미에 초빙되기 전, 외부에서의 인연으로 그를 알았다.

    디스트로이어가 전대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약한 소리를 하다니.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하더군.”

    “…하필이면 그쪽인가.”

    “조사를 보낸 정보원의 연락이 끊겼다. 꽤 오랜만의 일이지. 내 수족이 잘린 건.”

    “…그걸 알려주는 이유는?”

    “잘려도 상관 없는 수족을 쓰려면 언데드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지저분한 일에 끌어들여지는 것은 사양인데…”

    “오크노디를 아끼는 스승끼리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저 아이의 스승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 않나? 재단에서 그녀를 만든 첫 스승.”

     

    사다코 교수의 입매가 삐뚤어졌다.

     

    “원하는 하수인을 말해.”

     

     

    * *

     

     

    아침이 밝았다.

    교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어제 화단에서 슬쩍 한 꽃씨를 만드라고라가 둥둥 뜬 물병에 뿌려줬다.

     

    “퉤.”

     

    입맛 까다로운 만드라고라는 꽃씨를 뱉고 손으로 하나하나 물 밖으로 건져냈다.

    영약에서 꽃향기가 나게 미리미리 향 좋은 음식을 먹이려던 수작은 실패로 돌아갔나보다.

    칫.

    누굴 닮아서 저리 편식이 심하담?

    날 닮았으면 주는 대로 다 먹어야 하는데.

     

    “엣취.”

     

    어제 물에 빠져서 그런가.

    복도로 나오니 부쩍 한기가 들었다.

    근데 잘 보니 나 말고도 다들 어깨춤을 움츠리며 덜덜 떨고 있다.

     

    “안녕하세요, 이사벨. 오늘따라 좀 춥네요.”

    “당연히 춥지. 빙판이 열렸는데.”

    “넹?”

    “저길 봐.”

     

    이사벨이 가리킨 창밖.

    빙판이 되어버린 등굣길을 검집과 지팡이로 짚으며 등교하는 1학년들이 보였다.

     

    “파도가 자꾸 치니까 아이린이 짜증 나서 다 얼렸대.”

    “우와. 마나 짱 많나보다.”

    “덕분에 우리도 편하게 됐지. 얼음 녹기 전에 얼른 등교하자.”

     

    등굣길 중간중간 뗏목이나 밑창이 얼어붙은 신발이 보였다.

    나중에 얼음 녹으면 지젤이랑 같이 저거 수거나 하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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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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