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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집사라는 직업은 전문직이다.

        

       특히 그 집사가 온갖 사업을 벌이고 있는 부르주아, 혹은 역사 깊은 귀족 집안을 관리하고 있다면 더 그렇다.

        

       황실의 재무관 정도의 일거리가 있지는 않겠지만, 오가는 돈의 양이 그냥 일반적인 가정에서 하는 것처럼 노트에 가계부를 쓰는 것 정도로 끝날 수준은 아니라는 것도.

        

       계산자와 기계식 계산기, 그리고 컴퓨터 비스름한 것들도 존재하는 세계였지만, 당연히 반도체를 이용하던 나의 세상보다는 기계가 하는 일이 느리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렇기에 그 기계들 사이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을 다루는 사람들의 질도 무척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적인 신뢰도였다.

        

       많은 돈이 오가는 것을 보고 자기 주머니에 슬쩍할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이. 세금 계산을 똑바로 해서 황실에 꼬투리 잡히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이. 그런 모든 조건을 가진 사람을 외부에서 불러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귀족들은 자기네 가문 내에서 그런 사람을 스스로 키워내려 노력한다. 애초부터 가문의 사람이라면 제일 좋다. 뭔가 슬쩍하더라도 결국 그 슬쩍하는 대상이 자기네 가문이니 많이 슬쩍해봐야 손해였고, 세금 계산도 칼같이 했다. 덜 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황궁의 해석기관보다 자기 머리가 똑똑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얼마나 훌륭한 일꾼인가.

        

       하지만 모든 귀족 가문의 일원이 그렇게 판단력 좋고 똑똑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을 길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제대로 충성심까지 심어서.

        

       이 남작가에 있는 집사도 마찬가지였다.

        

       “일생의 영광입니다.”

        

       그렇게 조금 과장된 말을 하긴 했지만, 말하는 태도는 ‘과장이 아니라 진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진심인 것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정말로 진심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집사는 짧게 자른 머리를 2대8로 나누어 포마드를 발라 머리에 딱 붙여 놓았다. 얼굴 나이만 봐서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염색이라도 했는지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다.

        

       콧수염은 정갈하게 정리해서 삐져나온 곳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입고 있는 스리피스의 검은 정장의 조끼에의 앞주머니에서 얇은 금색 체인이 흘러나와 있었는데, 아마 그 안에 회중시계라도 넣어둔 모양이었다.

        

       “저희도 이런 훌륭한 곳에 방문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분명히 이 영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는 것은 당신의 노력 덕분이겠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앨리스의 칭찬에 집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얼굴에서 스며 나오는 자부심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물론 그 자부심의 양이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음료로 따지자면 향만 조금 첨가한 수준일까.

        

       “황녀님들께 저택 안을 보여드리고 있었어요. 앞으로 며칠은 묵으실 예정이고, 어쩌면 또다시 방문하게 되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집사의 시선이 아주 조금 움직여서 우리 근처에 서있는 클레어를 향했다. 그리고 그 단 한 순간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한 모양이다.

        

       아니면 애초에 클레어와도 대화를 자주 나누는 사람이던가. 영지 입구에서 만났던 경비원들을 생각해보면 이쪽이 더 그럴싸한 추측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제가 대신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남작 부인에게 집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부인은 고개를 부드럽게 저었다. 이런 동작 하나하나만 보면 어린 시절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금지옥엽 자란 귀족처럼 보였지만, 아까 슬쩍 보았던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단순히 검을 휘둘렀던 수준이 아니라, 지금도 틈만 나면 검을 휘두른다는 증거다. 아마 한순간 내 시선이 자기 손가락을 향했던 것 정도는 부인도 눈치챘으리라.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황녀님들을 안내하는 것은 제가 해야겠죠. 이 집안의 안주인은 저니까요.”

        

       “알겠습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부인에게, 집사는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은 채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집사님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저택에서 일하기 위해 교육받고 있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집사의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 눈동자에 아주 잠깐 호기심이 일었던 것 같지만, 내가 제대로 그 눈을 보고 있을 때는 이미 지워진 뒤였다.

        

       “그 아이라면 지금 일과를 끝내고 쉬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찾아가는 것이 실례일까요?”

        

       “아닙니다. 남작가의 은혜를 입은 자이니까요. 분명 이야기를 들으면 기꺼이 나올 것입니다.”

        

       사실 일과시간 끝나고 찾아가는 것이 실례이기는 했다. 말 그대로 일 끝내고 쉬고 있는데 사장이 회장님을 데리고 와서 얼굴 한 번 보겠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귀족 사회고, 이 집안에서 일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거두어져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아이들이다. 게다가 목숨만 건지는 수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평민 가정에서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자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은 진심이리라. 아니면 적어도 여기 있고 싶다는 감정 하나만큼은 진심이겠지.

        

       생각해보니, 지금 만나려는 아이도 따지자면 원작에서 나온 적 없는 캐릭터였다.

        

       집사는 기억에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게임에서 그레이스 가를 방문할 때마다 있는 캐릭터였고, 나중에는 서브 퀘스트도 주는 NPC였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가 억지로 떠넘겼던 고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레나를 처음 만났을 때나 던전 안에서 만난…… ‘난가?’싶은 이상한 인간을 만났을 때보다는 덜 불편했다.

        

       적어도 여기 있을 그 애들은 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연상해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내가 여기서 계속 지냈다면, 그 아이들은 아마 나에게 언니, 누나 같은 호칭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

        

       아.

        

       앨리스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나는 시선을 살짝 다른 쪽으로 돌렸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시간을…… 하긴, 이제 시간도 그때로 돌릴 수 없게 되긴 했지.

        

       루카스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방법을 찾아 헤맨다면 또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간을 그때로 다시 돌릴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그래.

        

       루카스는 조금 무섭고, 제이든은 성가시고, 벨라는 조금 짜증 났지만, 그래도 앨리스는 좋았으니까.

        

       어린아이처럼— 아니, 어린아이로서 칭얼거리던 앨리스를 상대하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종종 엉뚱한 행동을 할 때가 아니면 언제나 진지한 캐릭터였고, 그렇게 칭얼거리는 모습을 직접 볼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기억은 ‘없던 것’으로 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아마 반대로 이쪽에 있었어도 똑같은 기분을 느꼈겠지.

        

       두 가지를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면 분명 죽을 때까지 갈등할 테니, 한쪽은 그냥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럼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으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집사는 저택 안에서 본인들이 지내는 곳으로 거리낌 없이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부인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뒤를 따랐다.

        

       그렇다는 것은 평소에 언제든 자신들의 주인이 들이닥쳐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방을 깨끗이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

        

       여기까지 오기 전만 해도 앨리스와 클레어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내 표정을 보고 나서는 조금 굳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먼저 표정이 바뀐 쪽은 앨리스였고,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와 나를 번갈아 보고 나서야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길래?

        

       ……아마 무표정이겠지.

        

       거울로 봐도 나 자신도 감정을 알지 못할 무표정.

        

       그게 내가 잡은 캐릭터성이었으니까.

        

       *

        

       지구에서 나보다 나이 많이 먹은 꼰대들은 초등학생 시절을 동심이니 추억이니 하면서 올려치기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나는 사실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내 기억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딸려서 그러는 건지, 어떤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별로 없고 희미했다.

        

       몇 명 떠오르는 아이가 있기는 했지만 보통 얼굴이나 이름 중 하나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니, 추억이니 뭐니 할 것도 별로 없다. 학교 앞 떡볶이집이 맛있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초등학생 때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추억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사실, 나보다 몇 살 정도 어려 보이는 남자애를 내 앞에 두고서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시절에서 다 벗어나지 못한 남자아이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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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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