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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베니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샤도우와 마주할 것을 약속한 뒤.

       

       안 그래도 전투로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였는데, 한바탕 티격태격대기까지 해서일까.

       

       잠깐 잡담 좀 하다가 너나 할 것 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잠 좀 미리 잔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다키마쿠라처럼 끌어안은 채, 푹 잠들어 있을 때였다.

       

       쿵!

       

       “잉?”

       

       “무, 뭐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잠이 확 깼다.

       

       “…베니. 혹시 2층의 계층 수호자라면 이 공간을 깨뜨릴 수 있나요?”

       

       “아니. 2층의 계층 수호자는 미노타우로스잖아. 맷집도 좋고 힘도 강하지만, 이 마법은 근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기야. 공간의 왜곡을 순수 물리력으로 어찌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여긴 판타지스러운 세상이니, 종종 소설에 나오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솔직히 그 정도면 하나의 이능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거겠죠?”

       

       “응. 모르가나 저 성질 더러운 년이 평범한 마법을 만들었을 리 없지.”

       

       한숨을 내쉰 베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일어나다 말고 그대로 멈칫했다.

       

       쾅! 콰앙! 쾅!

       

       “으읏!”

       

       연신 들려오는 굉음에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잘게 떨려오는 작은 몸뚱이.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베니는 정신적으로 너무 취약해진 상태니까. 이대로라면 제대로 마법을 펼치지도 못할 터.

       

       하여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살짝 높은 체온. 말랑말랑한 살결과 가느다란 손가락의 감촉이 전해져온다.

       

       분명 나랑 비슷한 체격일 텐데 인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엘리나 리디아가 나를 볼 때도 이런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써먹어 봐야지 하는 생각을 뒤로하며 베니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베니는 옛날과 달리 강해졌잖아요?”

       

       “으응….”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면 조금 다르게 말해볼게요.”

       

       슬쩍 베니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배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에 코를 묻으며 속삭였다.

       

       “베니. 베니가 저를 지켜주시겠나요?”

       

       “……!”

       

       나는 안다. 남자가 얼마나 여자 앞에서 폼 잡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생물인지를.

       

       그리고 이는 남녀역전 세계인 판 대륙에서는 여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겠지.

       

       어쩌면 지금의 베니는 평소와 달리 유약할지도 모른다. 작은 자극에도 소동물처럼 과민 반응하며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 뒤에 지켜야 할 상대가 있음에도 겁먹고 있을 정도로 못난 사람은 아니다.

       

       아직 베니를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있다.

       

       베니는 자기 주변 사람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슬슬 친구 비슷한 수준까지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굳어있던 베니의 눈동자에 작은 불씨가 타오른다. 누군가는 분위기에 의한 착각이라 부를 터이고, 누군가는 단순히 동공이 확장되며 빛이 반사된 것이라 하겠지만…나는 이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를테면 의지라던가 말이다.

       

       “…가만히 있어 봐.”

       

       깊게 심호흡을 한 베니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작은 몸뚱이 피어오르는 희미한 아지랑이. 시각화된 마력이다. 아마 자는 사이에 회복된 힘을 전부 끌어오려는 거겠지.

       

       시키는 대로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 괜한 짓을 했다가는 집중력만 갉아먹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렇게 한참 동안 마력을 끌어올린 베니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직 떨리는 목소리로 영창을 입에 담았다.

       

       “철창. 침체. 사취. 비명. 그리고 격리.”

       

       떠오르는 말을 필터 없이 내뱉는 듯, 두서없는 단어의 나열.

       

       하지만 이는 하나의 명확한 심상을 그리고 있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누구도 부수지 못하리라.”

       

       나와 베니를 감싸는 투박한 철창. 베니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검붉은 마력으로 일렁이는 감옥에서는 어쩐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베니가 갇혀있던 철창을 재현한 것이리라.

       

       베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창에 갇혀있는 것은 답답하고 무서웠지만, 반대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왜냐면 황혼을 삼키는 자의 실험은 아이를 철창 바깥으로 끄집어낸 뒤에야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철창은 베니를 가두는 감옥인 동시에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안전지대였고……마지막까지 부수지 못한 벽이기도 하다.

       

       베니는 지금 나를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을 끄집어낸 것이다.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의 베니에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말없이 베니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잠시 뒤. 마법을 마무리 지은 베니가 들어 올린 팔을 내리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마법이 붕괴하며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니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야겠지만.”

       

       미세한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 이에 나 또한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답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혼자 죽진 않을 테니 외로울 일은 없겠네요!”

       

       “그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베니가 빼액 소리 지르며 내 쪽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쾅! 콰직…쩌적!

       

       새하얀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제 조금 뒤면 이 큐브가 부서지리라 직감한 베니가 그대로 나를 덮쳐 쓰러뜨렸다.

       

       “엎드려!”

       

       “흐악!”

       

       베니가 고위 모험가답게 체구에 걸맞지 않은 힘으로 나를 깔아뭉갰다. 마치 마법이 깨지더라도 자신이 방패가 되겠다는 것처럼.

       

       이대로 베니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겁하며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채애애앵———!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간 전체가 산산조각나 무너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새하얀 잔해가 철창에 부딪혀 저 멀리 튕겨 나가는 것도 잠시. 뒤이어 퍼져나온 화염이 주변을 뒤덮었다.

       

       화르륵!

       

       지옥이 이러할까. 세상 전체를 불태우려는 듯, 맹렬한 불꽃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날카로운 공간 파편이 부스러지며, 그로부터 이쪽을 보호하던 철창은 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지. 설마 마법이 부서지며 다른 공간으로 날아간 건가?

       

       미궁에서 이 정도의 불길이 존재할 만한 곳은 하나뿐이다.

       

       전쟁의 신이 잠든 7층.

       

       만약 정말 거기까지 날아간 것이라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리 베니라도 최전선인 7층을 샤도우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건…….

       

       “……요나?”

       

       “넹?”

       

       머릿속 한가득 차오르던 불길한 상상이 익숙한 목소리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리디아가 있었다.

       

       전신에 불처럼 새빨갛고 맹렬한 오러를 두른 채로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불길에서는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가 않네. 진짜 불이 아니라 리디아의 오러였던 건가.

       

       …그런데 리디아가 대체 왜 여기에? 거기에 이 어마어마한 양의 오러 방출은 또 뭔가.

       

       아무리 리디아라도 이 정도는 힘들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리디아가 안도와 감사가 뒤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재차 외쳤다.

       

       “요나!”

       

       주변을 불태우던 오러를 회수하며 달려오는 리디아. 나 또한 반가움에 활짝 웃으며 손을 뻗었다.

       

       “리디아 님! 구해주러 오셨군요!”

       

       “응! 지금 거기서 꺼내 줄……으응?”

       

       바로 앞에서 멈춰 선 리디아.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 니? 어째서…?”

       

       마치 오리너구리의 해골이 조작된 것인 줄 알고 부리를 잡아당겨 보았으나, 분리되지 않은 사실에 놀란 사람처럼.

       

       그리고 바톤 터치라도 하듯, 움직이지 못하게 된 리디아 대신 내 위에 올라탄 베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으…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아, 정신 차렸어요 베니? 이제 마법을 풀어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리디아 님이 저희를 구하러 왔거든요!”

       

       “리디아가? 진짜?!”

       

       얼굴에 화색이 돈 베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리디아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대로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굳어버렸다.

       

       끼기긱.

       

       고장난 로봇처럼 어색한 움직임으로 나와 자신, 그리고 다시 리디아를 번갈아 바라보는 베니.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 진정해 리디아. 전부 설명할 수 있으니까!”

       

       “베니…그런 차림으로, 요나를 이런 꼴로 만들고, 시전자 말고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마법에서, 지금 같은 자세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거야?”

       

       “그래! 분명 이 상황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단 내 말을 들어….”

       

       “아, 베니. 큰일 났어요. 저희 옷이랑 속옷이 조금 전 리디아의 오러에 다 타버린 것 같은……읍읍?!”

       

       급하게 내 입을 틀어막은 베니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큼직한 대검을 꺼내든 리디아가 있었지만.

       

       “요나. 지금 구해줄게.”

       

       “네? 저 이제 안 위험한데요?”

       

       “아냐. 내가 보기엔 위험해.”

       

       단호한 태도를 그리 말한 리디아가 철창을 향해 오러에 뒤덮인 대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 개고생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혹은 베니의 평판이 끝장나는 소리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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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EP.115





       베니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샤도우와 마주할 것을 약속한 뒤.


       


       안 그래도 전투로 피로가 쌓여있는 상태였는데, 한바탕 티격태격대기까지 해서일까.


       


       잠깐 잡담 좀 하다가 너나 할 것 없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잠 좀 미리 잔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다키마쿠라처럼 끌어안은 채, 푹 잠들어 있을 때였다.


       


       쿵!


       


       “잉?”


       


       “무, 뭐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잠이 확 깼다.


       


       “…베니. 혹시 2층의 계층 수호자라면 이 공간을 깨뜨릴 수 있나요?”


       


       “아니. 2층의 계층 수호자는 미노타우로스잖아. 맷집도 좋고 힘도 강하지만, 이 마법은 근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기야. 공간의 왜곡을 순수 물리력으로 어찌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여긴 판타지스러운 세상이니, 종종 소설에 나오는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솔직히 그 정도면 하나의 이능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그거겠죠?”


       


       “응. 모르가나 저 성질 더러운 년이 평범한 마법을 만들었을 리 없지.”


       


       한숨을 내쉰 베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일어나다 말고 그대로 멈칫했다.


       


       쾅! 콰앙! 쾅!


       


       “으읏!”


       


       연신 들려오는 굉음에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잘게 떨려오는 작은 몸뚱이.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베니는 정신적으로 너무 취약해진 상태니까. 이대로라면 제대로 마법을 펼치지도 못할 터.


       


       하여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살짝 높은 체온. 말랑말랑한 살결과 가느다란 손가락의 감촉이 전해져온다.


       


       분명 나랑 비슷한 체격일 텐데 인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엘리나 리디아가 나를 볼 때도 이런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한 번 써먹어 봐야지 하는 생각을 뒤로하며 베니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요. 베니는 옛날과 달리 강해졌잖아요?”


       


       “으응….”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면 조금 다르게 말해볼게요.”


       


       슬쩍 베니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보드라운 배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에 코를 묻으며 속삭였다.


       


       “베니. 베니가 저를 지켜주시겠나요?”


       


       “……!”


       


       나는 안다. 남자가 얼마나 여자 앞에서 폼 잡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생물인지를.


       


       그리고 이는 남녀역전 세계인 판 대륙에서는 여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겠지.


       


       어쩌면 지금의 베니는 평소와 달리 유약할지도 모른다. 작은 자극에도 소동물처럼 과민 반응하며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등 뒤에 지켜야 할 상대가 있음에도 겁먹고 있을 정도로 못난 사람은 아니다.


       


       아직 베니를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있다.


       


       베니는 자기 주변 사람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슬슬 친구 비슷한 수준까지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굳어있던 베니의 눈동자에 작은 불씨가 타오른다. 누군가는 분위기에 의한 착각이라 부를 터이고, 누군가는 단순히 동공이 확장되며 빛이 반사된 것이라 하겠지만…나는 이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를테면 의지라던가 말이다.


       


       “…가만히 있어 봐.”


       


       깊게 심호흡을 한 베니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작은 몸뚱이 피어오르는 희미한 아지랑이. 시각화된 마력이다. 아마 자는 사이에 회복된 힘을 전부 끌어오려는 거겠지.


       


       시키는 대로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때 괜한 짓을 했다가는 집중력만 갉아먹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렇게 한참 동안 마력을 끌어올린 베니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직 떨리는 목소리로 영창을 입에 담았다.


       


       “철창. 침체. 사취. 비명. 그리고 격리.”


       


       떠오르는 말을 필터 없이 내뱉는 듯, 두서없는 단어의 나열.


       


       하지만 이는 하나의 명확한 심상을 그리고 있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누구도 부수지 못하리라.”


       


       나와 베니를 감싸는 투박한 철창. 베니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검붉은 마력으로 일렁이는 감옥에서는 어쩐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베니가 갇혀있던 철창을 재현한 것이리라.


       


       베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철창에 갇혀있는 것은 답답하고 무서웠지만, 반대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왜냐면 황혼을 삼키는 자의 실험은 아이를 철창 바깥으로 끄집어낸 뒤에야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철창은 베니를 가두는 감옥인 동시에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안전지대였고……마지막까지 부수지 못한 벽이기도 하다.


       


       베니는 지금 나를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을 끄집어낸 것이다.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의 베니에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말없이 베니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잠시 뒤. 마법을 마무리 지은 베니가 들어 올린 팔을 내리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마법이 붕괴하며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니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야겠지만.”


       


       미세한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 이에 나 또한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답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혼자 죽진 않을 테니 외로울 일은 없겠네요!”


       


       “그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베니가 빼액 소리 지르며 내 쪽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쾅! 콰직…쩌적!


       


       새하얀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이제 조금 뒤면 이 큐브가 부서지리라 직감한 베니가 그대로 나를 덮쳐 쓰러뜨렸다.


       


       “엎드려!”


       


       “흐악!”


       


       베니가 고위 모험가답게 체구에 걸맞지 않은 힘으로 나를 깔아뭉갰다. 마치 마법이 깨지더라도 자신이 방패가 되겠다는 것처럼.


       


       이대로 베니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겁하며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채애애앵———!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간 전체가 산산조각나 무너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새하얀 잔해가 철창에 부딪혀 저 멀리 튕겨 나가는 것도 잠시. 뒤이어 퍼져나온 화염이 주변을 뒤덮었다.


       


       화르륵!


       


       지옥이 이러할까. 세상 전체를 불태우려는 듯, 맹렬한 불꽃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날카로운 공간 파편이 부스러지며, 그로부터 이쪽을 보호하던 철창은 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지. 설마 마법이 부서지며 다른 공간으로 날아간 건가?


       


       미궁에서 이 정도의 불길이 존재할 만한 곳은 하나뿐이다.


       


       전쟁의 신이 잠든 7층.


       


       만약 정말 거기까지 날아간 것이라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무리 베니라도 최전선인 7층을 샤도우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건…….


       


       “……요나?”


       


       “넹?”


       


       머릿속 한가득 차오르던 불길한 상상이 익숙한 목소리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리디아가 있었다.


       


       전신에 불처럼 새빨갛고 맹렬한 오러를 두른 채로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불길에서는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가 않네. 진짜 불이 아니라 리디아의 오러였던 건가.


       


       …그런데 리디아가 대체 왜 여기에? 거기에 이 어마어마한 양의 오러 방출은 또 뭔가.


       


       아무리 리디아라도 이 정도는 힘들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리디아가 안도와 감사가 뒤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재차 외쳤다.


       


       “요나!”


       


       주변을 불태우던 오러를 회수하며 달려오는 리디아. 나 또한 반가움에 활짝 웃으며 손을 뻗었다.


       


       “리디아 님! 구해주러 오셨군요!”


       


       “응! 지금 거기서 꺼내 줄……으응?”


       


       바로 앞에서 멈춰 선 리디아.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베, 니? 어째서…?”


       


       마치 오리너구리의 해골이 조작된 것인 줄 알고 부리를 잡아당겨 보았으나, 분리되지 않은 사실에 놀란 사람처럼.


       


       그리고 바톤 터치라도 하듯, 움직이지 못하게 된 리디아 대신 내 위에 올라탄 베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으…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아, 정신 차렸어요 베니? 이제 마법을 풀어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리디아 님이 저희를 구하러 왔거든요!”


       


       “리디아가? 진짜?!”


       


       얼굴에 화색이 돈 베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리디아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대로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굳어버렸다.


       


       끼기긱.


       


       고장난 로봇처럼 어색한 움직임으로 나와 자신, 그리고 다시 리디아를 번갈아 바라보는 베니.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 진정해 리디아. 전부 설명할 수 있으니까!”


       


       “베니…그런 차림으로, 요나를 이런 꼴로 만들고, 시전자 말고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마법에서, 지금 같은 자세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거야?”


       


       “그래! 분명 이 상황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단 내 말을 들어….”


       


       “아, 베니. 큰일 났어요. 저희 옷이랑 속옷이 조금 전 리디아의 오러에 다 타버린 것 같은……읍읍?!”


       


       급하게 내 입을 틀어막은 베니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큼직한 대검을 꺼내든 리디아가 있었지만.


       


       “요나. 지금 구해줄게.”


       


       “네? 저 이제 안 위험한데요?”


       


       “아냐. 내가 보기엔 위험해.”


       


       단호한 태도를 그리 말한 리디아가 철창을 향해 오러에 뒤덮인 대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 개고생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혹은 베니의 평판이 끝장나는 소리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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