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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그렇게까지 따라오고 싶었던 거야?”

       

       “그야 당연하지.”

       

       “···.”

       

       

       최전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다들 떨떠름한 눈빛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그래도 네 아버지인데···.”

       

       

       솔직히 아직도 충격이었다.

       

       아버지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까발리는 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조금 아니지 않나.

       

       그래. 한참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

       

       숨기고 있는 비밀이 왜 하필 그런 거냐고.

       

       취향이 특이하다 못해 괴상하잖아.

       

       맨날 최전방에서 논다고는 하지만 유명하고 인기 있는 영웅이잖아.

       

       그런 사람 취미가 라이트노벨인 게 말이 돼?

       

       작가님이 짜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걸까.

       

       작가님이 다급하게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어필하기 시작했다.

       

       

       [저, 저 아니에요! 진짜로!]

       

       “···.”

       

       [제가 한 건 그냥 아멜리아의 성격은 아버지한테서 유전된 거라는 설정을···. 그것도 한참 전에 해둔 거라고요!]

       

       

       네가 한 거 맞잖아.

       

       변명이랍시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부모님도 네가 위험해서 말린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그거야 그렇겠지. 맨날 나한테 장난치는 주제에 진짜 위험하면 말리니까.”

       

       “그걸 알면서도···.”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 안 나?”

       

       “···뭘?”

       

       

       아멜리아는 어떻게든 자신을 타일러 돌려보내려는 시우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나와 도로시가 의문을 표하고 있자니, 한숨을 내쉰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친구를 버리고 도망치는 놈이 영웅을 목표로 할 수 있겠냐?”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나와 시우가 감상에 젖었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 무심코 떠올라서.

       

       뭐였더라. 쥐 수인이었던가?

       

       툭 튀어나온 앞니가 인상적인 녀석이었는데.

       

       위기에 빠진 아멜리아가 친구를 버리지 않겠다며 앞으로 나선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나버렸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내 한 몸 지킬 자신은 있으니까. 도로시도 저렇게 보여도 엄청 귀한 몸이라고. 버프 토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여기가 게임은 아니잖아···.”

       

       

       버프 토템 취급받은 도로시가 축 늘어졌다.

       

       자신도 그게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을 들으니 상처받은.

       

       그러나 반박할 말이 없어 시무룩해진, 그런 얼굴이었다.

       

       

       “···조금 있으면 도착할 예정이에요. 슬슬 내릴 준비를 해주세요.”

       

       “아, 네.”

       

       “그리고 아멜리아 양은 제발 부모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생각해볼게요.”

       

       

       최전방에 있었던 경험 탓일까.

       

       학생 인솔 역으로 동행한 하율의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

       

       

       “하아···. 그 사람은 아직도 그런 걸···. 적어도 딸한테는 좀 숨기지.”

       

       “···어? 우리 아빠 알고 계세요?”

       

       “그야 알고 있죠. 예전에 잠깐 만난 적 있었는데요.”

       

       

       최전방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끈끈하게 묶여있답니다. 목숨을 나누는 전우니까요.

       

       그렇게 말한 하율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때도 그런 걸 봤어요?”

       

       “말도 마세요. 여자도 만날 시간 없다면서 매일 그런 것만 보고 있었죠.”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안 들켰어요?”

       

       “그야 동료의 사생활은 보호해줘야 하니까요. 게다가 그는 꽤 유망주였거든요. 한창 떠오르는 사람에게 구설수가 오르면 골치 아파지잖아요?”

       

       

       어떻게든 그의 취향에 대해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율은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뭐, 매일같이 바쁘니 여자 만날 시간도 없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들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엄마랑은 어떻게 만났어요? 둘이 사이 좋아 보이던데.”

       

       “어, 음. 그게···.”

       

       

       아멜리아와 대화하던 하율이 갑자기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뭐지?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재미있게 듣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 뭐라고 해야 하지.

       

       학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별거 아닐 텐데 흥미진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진짜 선생님이 천직 아냐?

       

       내 눈치를 보던 하율이, 학생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나 봐요. 오랜만에 휴가를 받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그만···.”

       

       

       크앙!

       

       양손을 벌리며 귀여운 제스처를 취한 하율이 작게 소리쳤다.

       

       

       “잡아먹혔답니다.”

       

       “···오.”

       

       

       뭐야, 다들 갑자기 왜 나를 봐?

       

       아멜리아와 도로시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고.

       

       시우는···. 잘 모르겠다. 저게 무슨 눈빛이지?

       

       하율은 걱정된다는 눈빛이고.

       

       

       “···이 이야기는 이 정도면 괜찮겠죠. 다들 일어나세요. 사령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갑시다.”

       

       

       이곳에서 몇 달간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챙긴 짐들을 하나둘 꺼내 들었다.

       

       작가님의 설정 변경 없이도 적당히 개연성에 맞춰서 수정되기 때문인 걸까.

       

       아멜리아는 어머니의 임신공격으로 태어난 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정은 화목한 것 같으니까 괜찮으려나.

       

       

       “···으음.”

       

       

       여자가 먼저 덮치다니, 서브컬쳐에서나 생기는 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일어나는 일이었구나.

       

       시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우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

       

       “가, 가자. 아르테.”

       

       

       목소리가 떨리는데.

       

       ···어디 아픈가? 감기라도 걸린 걸까?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 늦어요. 다들 저기 앞까지 갔잖아요.”

       

       

       일행들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었기에 황급히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좀 불안한데.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

       

       위험한 장소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설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병 같은 걸 걸리지는 않았겠지.

       

       다급히 시우의 손을 잡았다.

       

       

       “?!”

       

       “으음, 괜찮은 건가···?”

       

       

       ···모르겠는데.

       

       만화나 소설 같은 데에서는 사람의 몸을 만지면서 체온을 확인하던데, 다들 너무 감각이 좋은 거 아닌가.

       

       아무리 만져봐도 나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느껴지는 건 탄탄하고 잘 단련되어있는 손일 뿐이었다.

       

       

       “···저기, 아르테?”

       

       “···.”

       

       

       조물조물.

       

       이런저런 감정이 휘몰아쳐 괜히 시우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탄탄하네. 매일같이 수련하니까 당연할지도 모른다.

       

       시우의 몸매에 약간의 질투심이 들기도 하지만···.

       

       시우가 어떻게 수련하는지 두 눈으로 봐버렸단 말이지.

       

       과연 내가 시우의 수련 방식을 따라 할 수 있을까. 엄청 힘들어 보이던데.

       

       시우의 손 대신 내 손을 한번 만져보자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음, 그래. 뭐.

       

       힘들게 수련 안 해도 괜찮겠지.

       

       굳이 근육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예전에는 왜 이런 육체로 만들었는지 화를 낸 적도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익숙해진 걸까.

       

       슬슬 본래의 모습마저 기억나지 않는다.

       

       

       “···아르테. 슬슬 놔줘. 진짜 놓치겠어.”

       

       “아. 죄송해요.”

       

       

       이런.

       

       무심코 생각에 빠져있던 와중에 다시 시우의 손을 만지작거린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시우의 손을 놓고 다급히 동료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후우. 깜짝 놀랐네. 당황했잖아.”

       

       

       그렇기에 나는 잔뜩 붉어진 시우의 얼굴과 얕게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

       

       

       

       [그래서?]

       

       “응? 뭐가?”

       

       [새로운 무대로 옮긴다면서. 뭐 생각해둔 거 있어?]

       

       “아니? 딱히 없는데?”

       

       [너, ···아니다.]

       

       

       또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 모양이었구나.

       

       왜 설정을 안 하냐면서 이래저래 소리치려고 한 걸까?

       

       소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애초에 저기에 다들 갈 계획도 없었는걸!”

       

       [아,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소녀에게는 더 이상 스토리라인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탓에 슬슬 지루하다면서 다른 걸 하러 가는 놈들도 있었지만 알 게 뭔가.

       

       애초에 처음부터 자기만족이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세상을 찾아, 주변을 돌아다니는 영혼을 하나 주워서 만든 작품.

       

       내가 즐기고 싶어 만든 작품이었으니까.

       

       

       “이제 주인공의 성장스토리 따위는 관심 없어.”

       

       

       그저 한낱 관찰자였을 터인 독자님이 얼마나 기특한지.

       

       주인공의 성장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내려던 계획을 모두 뒤엎었다.

       

       애초에 주인공을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없어진 마당에, 불가능한 목표기도 하고.

       

       지금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

       

       독자님과 주인공이 이어지는 걸 바라보는 거다.

       

       

       “그러니까 장소가 바뀐 것도 별로 신경 안 써.”

       

       [···그래. 그것도 재밌어 보이니까.]

       

       

       주인공이 멋있게 활약하는 것도 물론 좋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이제 주인공의 성장이 아니다.

       

       독자님이 주인공과 어떻게 이어질까.

       

       소녀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주인공은 이미 반한 것 같고···.”

       

       

       손을 만지고 있기 때문일까. 독자님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의 얼굴은 붉었다.

       

       그야 사랑하는 사람이 저러고 있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

       

       

       [네 그 독자님은···. 절반 정도인가?]

       

       “응.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하지만 괜찮아.”

       

       

       소녀의 판단으로는, 이미 독자님은 시우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다.

       

       유일한 이해자. 세상이 모두 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

       

       농담 같은 게 아니다. 독자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이미 그런 감정 자체가 평범한 감정은 아니거든.”

       

       

       독자님은 그걸 그냥 믿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 정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글쎄. 절친한 친구가 남의 옷을 끌어안고 진정하고 있을까?

       

       이성적인 끌림이 있지 않고서야 힘들걸.

       

       

       “마침 배경도 전장이잖아?”

       

       

       그것도 아주 위험한 전장.

       

       감정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기 딱 좋은 장소지.

       

       소녀는 천진하게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슬 이야기해도 괜찮겠네요.

    실눈흑막은 올해 안에 완결 예정입니다.

    최근 휴재가 잦아져서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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