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5

        

         

       오딜리아가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자, 남자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보시는 것처럼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남자의 말과 함께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은 저절로 펼쳐졌다. 그러더니 강풍에 흩날리는 것처럼 페이지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빠르게 어떤 글귀를 찾는 모양새인지라, 대마녀는 자신도 모르게 책을 탁자 위로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은 튕기거나 덮이는 일 없이, 대마녀의 손에서 펼쳐지던 모습 그대로 탁자 위에서 페이지가 넘어갔고, 이윽고 백지에 다다르자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백지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무언가 쓰이기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얗고 반투명했던 페이지에는 검은 잉크가 꾸물거리며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그 모양이 깃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라틴어의 문장이라.

         

       대마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글귀를 읽고 말았다.

         

       “신의 이름으로….”

         

       책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햇살과 한없이 닮은. 하지만 따뜻하다기보단 한없이 광기에 가까운 열기를 품은 빛은 잠시간 십자가의 형상을 이루었다가 안개처럼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흩어진 빛은 카페의 벽면에 들러붙으며 결계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결계가 만들어지자 카페의 모습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손님들은 조각조각 부서지며 벌레가 되어 카페의 천장으로 들러붙었다.

       직원들은 표정 없는 마네킹이 되었다.

       밝고 화사했던 카페의 분위기는 폐가에 온 것처럼 우중충하고 습했고, 깔끔하기 짝이 없던 카페 곳곳에는 얼룩이 묻어있었다.

       향긋했던 커피의 향기는 코를 찌르는 곰팡이의 냄새가 되었고,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던 창문은 검은 무언가에 코팅되어 거울처럼 변해있었다.

         

       밀실.

       카페는 밀실이 되었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그 누구도 나갈 수 없는 밀실이.

         

       “Maleficos non patieris vivere.”

         

       남자는 사제처럼 책을 집어 들고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설교를 하는 목사와 같으니.

       참으로 신실하고, 참으로 믿음이 가는 모습이라.

         

       그 설교를 듣는 신도들이 그 설교를 따라 외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더란다.

         

       [ 신께서 말씀하시길! ]

       [ 너희는 말레피쿠스(maleficus)를 살려두지 말라 하였느니라! ]

         

       마네킹이 외쳤다.

       마네킹은 살아있는 것처럼 한 손을 위로 뻗고, 텅 비어버린 얼굴에 벌레로 그림을 그려 귀와 입을 만들어 소리치고 있었다. 마네킹이 소리를 칠 때마다 입에 달라붙은 벌레들이 움직이며 모양을 바꿨고, 벌레의 날갯짓 소리로 만들어진 기괴한 음성은 카페에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말레피쿠스란 무엇인가!”

       [ 그것은 신을 능멸하는 존재들입니다! ]

       [ 우상과 함께하고,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

         

       벽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말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조명의 빛을 자신의 뿌리 삼아 퍼진 그림자는 형체 없는 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과 귀를 만들었고, 몸을 흔들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귀가 아닌 영혼으로 듣는 말.

       그림자를 매개로 전달되는 그 음산하고 가라앉은 의지는 남자와 대마녀에게 분명히 닿았다.

         

       “사람들을 영적인 무지로 빠뜨리게 하려는 자. 하나님을 멀리하는 우상 숭배자. 모두를 죄로 물들게 하는 끔찍한 자. 그 비밀이 악하여 사람을 악으로 빠뜨리고, 나아가는 길에 해악을 뿌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 신께서 말하기를 그 존재를 사악한 마녀라 하였으니.”

         

       남자는 외쳤다.

         

       “너희는 사악한 마녀를 살려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Maleficos non patieris vivere)!”

       [ Maleficos non patieris vivere! ]

       [ Maleficos non patieris vivere! ]

       [ Maleficos non patieris vivere! ]

         

       남자의 말에 호응하듯 카페 여기저기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블에 악령이 샘솟아 기괴한 몸짓으로 춤을 추며 답을 하였고, 벽면에 빼곡히 자리 잡은 그림자 인간들이 몸을 흔들거리며 소리쳤으며, 얼굴 없는 마네킹들이 벌레로 그린 입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다만 무고한 자를 죽이면 아니 되는바, 마땅히 순서를 지켜야 할 것이니.”

         

       남자는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카페를 장식하고 있던 자그마한 나무망치 하나가 그의 손에 쏙 들어왔다.

         

       “여기, 신의 이름으로 재판을 시작하니. 그 어떤 삿된 것도 이곳을 범하진 못하리라!”

       [ 신성한 재판을! ]

       [ 신성한 재판을! ]

         

       “이 미친 신성술사놈이!”

         

       오딜리아는 격노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백을 집어 들었고, 피부 아래 흐르는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그녀의 땀구멍에서 페로몬을 한껏 품은 체취가 뿜어졌고, 체온이 올라 몸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얌전히 뛰던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치고, 몸을 부숴버릴 것처럼 혈액이 그녀의 온몸을 순환하며 생명력을 끌어올렸다.

         

       그렇다.

         

       생명력.

       마녀들이 위치크래프트에 사용하는 힘은 바로 생명력이었다.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힘.

       사람의 건강과 수명을 결정짓는 힘.

         

       그리고, 변화의 형태로 세상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힘.

         

       “감히 나를 공격하려 들어-! 이따위 결계를 만든다고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딜리아는 분노를 담아 찢어질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이 어찌나 흉흉하고 날카롭던지, 듣는 것만으로 귀가 베이고 뇌가 헤집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는 오딜리아가 생명력을 끌어올리고 분노를 터뜨려도 태연한 듯 그 자리에 선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그냥 바라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호의적인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기까지 했다.

         

       “하하하하. 나는 지금, 자네를 공격할 생각이 없느니라.”

         

       남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순진하고 어린 소년의 말투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인의 말투가 되었고, 너무나도 순수해 맑은 물과 같았던 분위기는 너무 깊고 어두워 무엇이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늪과 같이 변했다.

         

       얼굴도.

       옷도.

       몸도.

         

       그 무엇도 변한 것이 없이 오직 분위기만이 변했다.

         

       하지만 그 바뀐 분위기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아까의 순진했던 모습과 너무나도 괴리감이 커서.

         

       오딜리아는 분노조차 잊고 남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생명력을 거두고 자리에 앉게.”

         

       남자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오딜리아에게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말투는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오딜리아가 그에게 털끝만큼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 태도는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충격에 잠시 넋을 잃고 있었던 오딜리아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고, 오딜리아는 사라져버렸던 분노에 다시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보는 그 시선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책을 든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생명력을 거두라니까?”

         

       명백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부탁보다는 한없이 명령에 가까운 말.

         

       오딜리아는 그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분노를 터뜨리며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했다.

         

       “고작 신성술사 주제에!”

         

       생명력과 의지가 결합하면 기적을 발현할 수 있는 법.

       그녀가 발현한 위치크래프트는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와 테이블로 스며들었다.

         

       스며든 힘은 테이블과 탁자를 괴물의 형태로 바꾸고, 그녀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 그를 물어뜯을 것이다.

         

       그래.

       물어뜯어야만 했다.

         

       “…너.”

       “왜, 무엇이 잘 안 되는가?”

         

       남자는 조롱하듯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아까 대마녀가 그를 보며 지었던 표정과도 닮아 있었다.

         

         

         

        * * *

         

         

         

       마녀의 시작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떤 이는 여성 드루이드가 유럽 대륙으로 건너오며 변형이 된 것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드루이드였던 ‘최초의 마녀’가 어떤 체계적인 법칙을 발견해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로 발전시켰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마녀가 사용하는 기술과 연금술의 유사성을 들어 마녀의 시작은 아랍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누군가는 젊음을 원하는 것이 연단술과 닮았으니 그 기원이 중국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초월종과의 계약으로 얻은 힘을 흉내 내서 만든 것이 위치크래프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마녀라는 존재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라 불리는 마녀들 특유의 힘을 사용하고, 영원한 젊음을 목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위치크래프트는 생명력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정확히 말하면, 의지로서 생명력을 조각해 ‘변화’의 힘을 발현하는 능력이다.

         

       무생물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하고.

       식물과 동물을 괴물처럼 만들어 자신을 지키는 호위로 삼고.

       생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섞어 약을 만든다.

         

       연금술이 무생물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면, 위치크래프트는 생물을 변화시키는 힘이었다.

         

       물론 생물에게 작용하는 것이니만큼 자신도 통제 못 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혼돈 그 자체’라는 뜻의 ‘마녀의 가마솥’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 불가능한 사고, 마녀들이 ‘요정의 장난’이라고 불리는 변수의 발생은 가끔은 재앙이 되고는 했다.

       단순히 질병에 듣는 약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끔찍한 전염병이 되고, 밭에 뿌릴 비료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것이 한 방울로 장정 스무 명을 죽일 수 있을 맹독이 되기도 했으며, 애완동물을 강화하려고 했던 것이 끔찍한 괴물을 만드는 등의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사고는 마녀들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순한 독이나 질병으로는 생명력이 넘치는 마녀를 죽이기는 힘들었고, 애완동물이 괴물로 변이된다 한들 마녀의 괴물에 가까운 재생력을 뚫고 목숨을 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목을 잘라도 몇 시간 내로 맞추기만 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 반쪽이 날아가도 생명력으로 재생하는 것이 바로 마녀라는 족속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녀에게 멀쩡하다고 모두가 멀쩡할 수는 없는 법.

         

       독.

       질병.

       괴물.

         

       마녀가 만들어낸 사고의 결과물은 종종 마녀의 통제를 벗어나 평범한 사람에게 날아갔다.

         

       물을 타고 흐르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동물의 몸에 담겨 이동했다.

         

       독은 사람의 목숨을 해하고 땅을 황폐하게 했고.

       질병은 가족을, 이웃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괴물은 밤의 어둠에 녹아 사람들을 습격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요정의 장난 자체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대부분 마녀가 그 자리에서 해결해버렸으니까.

         

       하지만 백에 한 번.

       천에 한 번이라도 빠져나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이 바로 인식이 되고, 인식은 곧 편견이 된다.

         

       이러한 편견은 마녀의 강력한 힘에 눌려 불만의 형태로 쌓이고 또 쌓였다.

         

       그렇게 쌓인 분노는 증오가 되었고, 그 증오는 마침내 터져버렸다.

         

       마녀사냥.

         

       당시에는 ‘성자’, 혹은 ‘성녀’라고 불렸던 신성술사들이 마녀에게 칼을 들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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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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