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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115화. 순위전 ( 8 )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결투장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이스칼의 시련이 시작됨과 동시에 가득 차오른 안개. 그 안을 헤매던 이스칼은 풀썩 쓰러지더니, 안개들이 한군데 뭉쳐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안개가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진 것은 타원형의 거울.

       표면이 반들반들한 거울은 결투장의 상공으로 떠올라 모든 이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와악! 저건 뭐야!”

       

       “저게 대체 뭐지?”

       

       “저 풍경을 봐! 저기가 어디지? 꼭…”

       

       “전쟁터…인가?”

       

       “환상 같은 건가? 꼭 진짜 같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앞서 거대한 거인과 뱀, 외눈박이 거인 등 기상천외한 것들을 목격했던 관중들은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이윽고 관중들은 거울이 보여주는 풍경에 몰입했다. 거울이 보여주는 풍경은 현장에서 직접 보는 듯 아주 생생했고, 작은 소리까지 뚜렷하게 들려왔다.

       

       프리가도 거울의 풍경에 집중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시련이니 미리 살펴두려는 것.

       

       그런데 그녀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어?!”

       

       “저건 프리가 공녀님 아니야?”

       

       “공녀님이 왜 거기서 나와?”

       

       

       이스칼의 시련에 프리가가 나타난 것. 그것도 멀쩡한 모습이 아니라, 반쯤 죽어가는 아니 거의 다 죽은 시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 “야, 얼른… 도망가. 좀 있으면 녀석들이 올꺼야…”

       

       

       프리가의 면상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런 씨…”

       

       

       자신이 왜 이스칼의 시련에 나온단 말인가! 나올 거면 멀쩡하게나 나올 것이지, 다 죽어가는 시체 꼬락서니는 또 뭔가!

       

       거울 속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생생한지 프리가는 저도 모르게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창자를 흘리고 있으니, 괜히 자신도 아파오는 것 같았다.

       

       거울 속 이스칼은 얼굴을 굳히더니, 발을 돌려 프리가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그 모습을 보며 술렁거렸다. 

       

       

       “이스칼 님이 도망을…”

       

       “하지만 지금 보면 지원도 올지 모르고, 공녀님도 많이 다치셨고… 방패도 부서졌잖아.”

       

       “맞아. 저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그냥 개죽음이야.”

       

       “괴물들 숫자를 봐. 저기에 혼자 싸우는 건 자살이라고! 사는 게 먼저야!”

       

       

       관중들은 저마다 떠들며 거울 속 영상을 바라봤다. 대부분이 이스칼을 이해했다. 특히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며 이스칼을 바라봤다.

       

       죽어가는 동료를 뒤로하고 도망치는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살아남아도 죄책감이라는 족쇄가 남을 것을 알기에.

       

       

       – “하… 하하하!!”

       

       

       계속해서 달리던 이스칼이 멈춰서서 미친 듯이 웃었다. 웃고 웃고 또 웃다가, 이내 뒤를 바라봤다.

       

       괴수들이 몰려오는 곳. 프리가가 쓰러진 곳.

       

       파악ㅡ!

       

       이스칼이 작은 버클러 하나를 팔에 동여메고, 뒤로 돌아간다.

       

       

       

       괴수들이 오는 곳으로.

       

       쓰러진 그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스칼의 표정은 너무나도 엄숙하고 또 숭고해서.

       

       

       “…”

       

       “…”

       

       

       감히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 * * * *

       

       

       

       

       

       

       이스칼은 피를 머금은 대지에서 미약한 흔들림을 느꼈다. 괴수들의 발구름이 만들어낸 진동이다.

       

       이스칼도 다시 돌아가는 이 행동이 미련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는 자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에, 그는 해야 했다.

       

       상처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던 프리가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돌아온 것이 의외라는 듯, 커진 눈동자를 보니 제법 놀란 모양.

       

       

       “크으… 뭐야. 왜 다시 돌아온 거야.”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하. 죽기 전 유언치고는 너무 초라한데.”

       

       

       프리가는 힘없이 털썩 누우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유언, 유언이라.

       

       확실히 그렇다. 어쩌면 그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게 죽겠지.

       그대로 도망쳤다면 살 수도 있었다. 도망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 수많은 전장을 헤쳐온 무기의 부재, 사경을 헤매는 동료…

       

       이스칼이 도망친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누가 동료들의 방패가 될 것인가. 결코 뚫리지 않는 철벽의 방어를 누가 보여줄 것인가. 누가 죽어가는 동료를 지킬 것인가.

       그밖에 없었다. 오직 그만이 가능한 일.

       

       꾸욱-

       

       팔에 묶어둔 버클러를 단단하게 조인다. 꽉 조여오는 버클러의 감촉이 조금은 마음을 달래줬다.

       

       

       “멍청한 새끼… 죽어가는 반송장 때문에 너도 같이 죽겠다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누군가는 구하러 와주겠죠.”

       

       “하! 존나 희망적인 말이네.”

       

       

       프리가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이스칼도 알고 있었다. 아마 지원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도망쳐. 아직 녀석들이 오기까지 조금 남았어.”

       

       “어떻게 제가 그러겠습니까.”

       

       투두두두-

       

       

       땅에 고인 피 웅덩이가 가볍게 흔들리며 파문을 그려나간다. 고막을 찢는 괴성과 비명이 들리고, 땅울림이 점차 가까워진다.

       이스칼은 프리가를 돌아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제 뒤에 동료가 있는데.”

       

       “하! 등신…”

       

       ——————!!!

       

       가까운 거리에서 괴수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녀석들이 보인다.

       

       흉측한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칼날 같은 발톱으로 땅을 할퀴면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씹어먹고 도륙 낸다.

       

       괴수들은 네발로 땅을 딛어도 이스칼의 허리까지 오는 크기였으니, 두 발로 선다면 능히 이스칼의 키와 비슷할 것이다.

       

       ——————…

       

       녀석들이 이스칼과 프리가를 바라봤다. 사냥개의 떼거리처럼 몰려있는 놈들.

       

       ——————!!!

       

       괴수들이 사냥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땅을 박찼다. 빠르다.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민첩하다.

       

       이스칼은 이를 악 물고 다리에 굳게 힘을 줬다. 괴수들의 질주를 따라 이스칼의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며 본능이 날카롭게 비명 지른다.

       

       도망쳐라 도망쳐라 도망쳐라!

       네가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도망쳐서 살아남아라!

       

       빠드득-

       

       이가 갈리며 부서질 듯하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칠 수 없다.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아직 그의 뒤에 동료가 남아있으니까.

       죽어가는 동료라고 해도, 지원은 없다고 해도. 설령 개죽음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있다…’

       

       

       그는 동료들의 방패였으니까.

       앞에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동료들이 적을 해치운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버틴다.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

       

       

       괴수의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이스칼의 머리를 씹어먹기 위해 달려든다. 손바닥만한 바늘이 몸통를 향해 날아오고, 독사 같은 꼬리가 머리를 치켜들어 다리를 노려온다.

       

       이스칼은 눈을 부릅뜨고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들썩이는 괴수의 근육, 침이 뚝뚝 흐르는 송곳니, 날아드는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카가가각-!

       

       극한에 다다른 생존본능이 이스칼의 몸을 이끌었다. 감히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판단하고 움직인다.

       

       괴수의 아가리가 버클러를 긁으며 불똥이 튄다. 강하게 밀쳐내고 버클러의 모서리로 대가리를 찍는다.

       

       한 놈.

       

       

       날아오는 바늘은 버클러를 비틀어 흘려낸다. 흘려낸 바늘을 도로 잡아 달려드는 괴수의 눈동자 깊숙이 박아버린다.

       

       다시 한 놈.

       

       채찍처럼 꿈틀거리는 꼬리를 잡아채서 팔에 휘감는다. 괴수를 잡아당겨서 버클러의 모서리로 후려친다.

       

       또 한 놈.

       

       괴수떼는 이스칼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왔다.

       

       죽이고 죽이고 죽여도 끝이 없는 무언가와 맞서싸우는 듯한 절망감이 몰려온다.

       

       카캉ㅡ!

       

       앞발과 부딪힌 버클러의 일부분이 부서졌다. 날카롭게 부서진 파편을 주워들고 괴수의 몸통을 쑤셨다.

       

       

       “크윽ㅡ!”

       

       

       사각에서 날아든 꼬리가 등을 깊게 패고 지나갔다. 깊은 상처를 통해 하얀 뼈가 보였다. 이를 악물고 버클러의 파편을 휘둘러 괴수의 아가리를 찢는다.

       

       쩍 벌린 괴수의 아가리에 팔을 쑤셔 넣으며 머리를 보호하고, 너덜너덜한 다리를 질질 끌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어깨는 삐걱거리고, 온몸의 근육이 이제 한계라며 비명을 지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에서, 고통을 지지대 삼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를 한참.

       

       이스칼은 널브러진 괴수들의 시체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지평선을 바라봤다.

       

       또 다시 괴수들의 무리가 저 멀리 보인다. 그 수는 방금보다 훨씬 많다. 아득한 지평선의 너머까지 가득한 괴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 하아…”

       

       투둑ㅡ

       

       흘러내리는 피가 발 밑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과도한 출혈로 시야가 흐려지고, 한계를 넘어선 팔뚝이 덜덜 떨리며 경련했다.

       

       

       “고… 공녀, 하아. 님…”

       

       

       이스칼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등 뒤의 프리가를 불렀다.

       

       대답은… 없다.

       

       돌아보지 않는다. 어쩐지 복받쳐 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지평선을 노려본다. 

       

       아마… 아마도 잠시 잠든 것이리라.

       금방 일어나서 평소처럼 대련하러 가자면서 자신을 끌고 갈 것이다.

       

       그러니 돌아보지 않는다.

       그녀는 잠든 것이다. 깊고 깊은 잠에.

       

       

       “…다.”

       

       

       작게 속삭인 말은 너무나 작고 여려서, 실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버렸다.

       

       깨지고 부서진 버클러, 이제는 버클러의 일부밖에 남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움직여 버클러를 한번 더 강하게 조인다. 

       

       저벅 저벅-

       

       앞으로 걸어간다. 저 괴수들의 무리를 향해. 수만 수억에 달하는 괴수들을 향해.

       

       몽롱한 정신에 환청마저 들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왜 여기 남아 있는 거지?

       여기서 죽을 건가?

       

       ‘죽는다, 죽는다…하하.’

       

       

       불현듯 실소가 터져 나온다.

       

       

       

       변방 약소국의 한미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부와 유명세를 바랬지만 싸움을 겁내던 겁쟁이 이스칼이, 전장에서 홀로 적과 맞서 싸우다가 죽는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모르겠다.

       

       그저, 그저 해야 할 일이니까 할 뿐이다. 지금도 너무나 겁이 나고 무섭다.

       

       그러나.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그 끝에 있는 것이 죽음이더라도.

       

       부디…

       

       

       “부디 나의 죽음이, 덧없던 내 삶보다 가치있기를.”

       

       

       ——————!!!

       

       

       몰려온다. 괴수들이 이스칼을 향해 달려온다. 살점을 찢고, 뜨거운 피를 마시고, 부드러운 창자를 즐기기 위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는 살육의 바다가 몰려든다.

       

       

       “흐, 흐으…”

       

       

       그에 맞서는 것는 다치고, 죽어가는 한 명의 인간이라.

       이스칼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깨진 버클러, 죽어가는 몸뚱아리, 흐릿한 시야, 아군의 부재… 그럼에도 그가 도망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이스칼.

       그는 겁쟁이로 태어나, 마침내 수호자로 거듭났으니.

       

       

       ——————!!!

       

       “나는ㅡ!!”

       

       

       지척에 다다른 괴수들을 향해 외친다.

       

       

       “수호자 이스칼!!”

       

       들어라 마귀들아!

       

       나 이스칼의 말을 들어라!!

       

       “감히 나를 뚫지 않고서는ㅡ!!”

       

       단 한 놈도.

       

       “이 뒤로 갈 수 없다!!”

       

       내 시체를 밟고서야 가능할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블랙 바니걸의 해!! 올 한해에도 독자님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 ‘Meltrylliss’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써서 완결로 보답하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책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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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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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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