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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프란체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빠져 규칙과 질서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네.’

         

       고개를 휘젓곤 목청에 마력을 담는 프란체.

         

       “다들 정지-!”

         

       크게 울려 퍼지는 우아한 목소리에 모두가 우뚝 멈춰섰다. 시선이 일제히 프란체 쪽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데카르트의 전선은 내가 지휘할 거야. 불만이 있는 사람은 미리 말하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뻣뻣이 드는 프란체. 그녀에겐 그럴 자격이 있었다.

         

       유일하게 이 자리에 서 있는 순혈 데카르트이자 웬만한 기사, 궁정 마법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공녀님. 기사단장입니다. 제가 감히 상황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기사단장.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보렴.”하고 대답했다.

         

       “현재 데카르트 전선의 최대 전력인 공작님과 소 공작님께서 위급하신 상황입니다. 여기서는 후퇴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게 맞는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기사단장의 의견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최고 전력인 둘이 빈사 상태. 중앙 본대는 궤멸.

         

       사상자가 많이 없다곤 하지만 그 마수가 아직도 서성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원 요청이 최선이었다.

         

       “흠, 기사단장.”

       “예.”

         

       깍듯이 고개 숙인 기사단장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조용히 읊조리는 프란체.

         

       “내가 공작님과 소 공작님께 항상 듣던 말이 있어. 그게 뭔 줄 알아?”

         

       기사단장은 힐끔 프란체를 바라보며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데카르트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마라.”

         

       움찔. 기사단장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이대로 후퇴하면 데카르트의 명예는 훼손된다. 아무리 설화의 마수, 혹한의 망령이 출몰했다지만, 공작가가 재앙의 파도를 막지 못한 건 매우 큰 사건이다.

         

       “왜 내가 지휘를 하려는지 알겠니?”

         

       꾸욱. 기사단장은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머금었다.

         

       “공녀님, 정 그러하시다면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일순 프란체의 눈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발밑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유령처럼 움직이며 기사단장의 사지를 감싸 결박했다.

         

       “무, 무슨…!”

       “기사단장.”

         

       프란체는 손에 든 부채로 기사단장의 턱을 들어 올렸다.

         

       “지금 내가 여자라고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그간 나를 무시했던 마음가짐이 아직 남아있는 건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프란체의 눈빛에, 긴장으로 신음한 기사단장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을 흘렀다.

         

       “내 옆에 있는 호위기사 두 명은 공작님이나 소 공작님보다 훨씬 강한 소드 마스터야. 곧 진 바렌베르크도 합류할 거지.”

         

       정확히는 라데아와 케일로 위장한 엑시드의 어쌔신이지만. 프란체는 말을 이었다.

         

       “그 셋과 궁정 마법사보다 강한 나를 중심으로 전선을 다시 구축할 거야. 알겠니?”

         

       살결이 얼어붙는 듯한 북부에서 한밤의 우물보다 검은 목소리. 기사단장의 등골에 서늘함이 깃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살기였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프란체는 픽 웃으며 결박을 풀었다.

         

       “잘 판단했어.”

         

       일단 기사단장에게서 지휘권을 뺏어오는 건 성공했다.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기사들을 설득하는 것뿐.

         

       ‘일반 병사들은 기사들의 전의만 회복시킨다면 문제없을 거야.’

         

       프란체는 간단한 계획을 세우곤 고개를 주억였다.

         

       ‘진이 내게 맡겼으니 해야지.’

         

       자신을 신뢰하고 맡겨준 것이다. 프란체는 결코 진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었다.

         

       “기사단장? 기사들을 집합시켜. 한 명도 빠짐없이.”

         

       기사단장은 입술을 머금고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떨리는 목소리에 심란함과 복잡함이 묻어 나왔다.

         

       “라데아? 곧 케일이 준비를 끝내고 돌아올 테니 준비하렴.”

         

       라데아는 “네!”하고 대답한 뒤 곧장 케일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그다지 먼 곳은 아니라 금방 돌아올 것이다.

         

       ‘흐음. 뭐라고 말해야 할까.’

         

       프란체는 눈썹을 좁힌 채 부채로 손바닥을 두드렸다. 고민의 시간도 잠깐. 기사단장이 곳곳에 퍼진 기사들을 이끌고 왔다.

       

       “공녀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기사들이 전부입니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모인 기사들. 프란체는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소리쳤다.

         

       “기사단은 들으라!”

         

       고개를 올린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프란체에게로 모인다.

         

       “우리 앞에 선 강적을 보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그저 마수를 죽이기 위함이 아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다!”

         

       확신에 찬 우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혹한의 망령은 물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에겐 누군가를 지킨다는 이상이 있다! 긍지가 있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무기다!”

         

       기사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두려워 말라! 패배란 오직 포기했을 때만 찾아오니까! 다시 일어나서 칼과 방패를 들어라! 데카르트의 기사단으로서 자부심과 영광을 잊지 마라!”

         

       스릉! 기사들이 일제히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아 들었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기사다! 페델리안 제국의 귀족이다! 결코 두려워 하지 않는다!

         

       따로 준비한 것도 아니었지만, 반응을 보니 완벽한 연설이었다. 프란체는 픽 웃고는 부채로 정면을 가리켰다.

         

       “다들 전선으로 복귀하라!”

         

       두두두두─! 수많은 발이 움직이며 웅장한 소리를 내었다. 프란체도 전선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공녀님! 데려왔어요!”

         

       라데아가 케일을 데리고 왔다. 모습을 가리기 위한 사슬 갑주는 적당히 버리고 온 모양.

         

       “오랜만에 마수들 목을 베어내서 재밌었는데, 아쉽게 됐군.”

         

       얼굴에 붉은 마수의 피를 잔뜩 묻히고 불평하는 케일. 프란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다시 시작할 거니 아쉬워 말렴.”

         

       프란체는 그리 말하곤 고개를 돌려 어쌔신을 바라봤다.

         

       “너는 이제 돌아가도 좋단다.”

         

       어쌔신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림자로 변해 사라졌다.

         

       “이거로 준비는 됐단다. 전선으로 가자꾸나.”

       “네!”

       “그러지.”

         

       중앙의 프란체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케일이, 왼쪽에는 라데아가 섰다.

         

       데카르트의 주인이 되기 위한 연출과 무대가 완성됐다.

         

       이젠 결과만 남았을 뿐.

         

         

       * * *

         

         

       철퍽! 적당한 숲으로 들어와 칠흑의 갑주를 벗어 던졌다.

         

       “후우.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갑주를 입어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투구가 시야를 제한하고, 초월 마법사가 마법을 걸어뒀다는 거에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가야 하는데.’

         

       중앙 본대가 궤멸하고, 공작과 에덴이 전선을 이탈했다. 프란체도 계획대로 움직일 터.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을 보면 케일은 이미 만났을 거고.’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남은 건 마지막 장식을 다는 것뿐.

         

       ‘가자.’

         

       나는 다리에 오러를 최대로 싣고 달렸다. 말보다 세 배는 빠른 속도. 최후방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 옷은 지금 데카르트 공작가의 제복이니 문제는 없고.’

         

       전선의 중심부로 향하니 프란체와 케일, 라데아가 보였다.

         

       “공녀님.”

         

       휙. 붉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진!”

         

       나를 보자마자 방긋 미소짓는 프란체. 기사들과 병사들을 움직인 걸 보니 잘 해줬군.

         

       “잘해주셨군요. 믿고 있었습니다.”

       “그럼, 누가 키운 공녀인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걸어오는 프란체.

         

       “최전방에서 마수는 얼마나 해치웠니?”

       “절반도 줄이지 못했습니다.”

       “꽤 많이 남았구나.”

       “전선을 오래 유지 못 했으니까요.”

         

       데카르트가 맡은 전선에서 관측된 마수의 숫자는 7천. 여기서 3할 정도가 줄었다. 그마저도 케일이 잡은 거지만.

         

       “저와 케일이 토벌대로 나가겠습니다. 공녀님은 전선을 지휘해주십시오.”

         

       프란체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토벌대로 나갈 거야. 그간 연습한 마법을 보여줄게. 그 마법서에서 신기한 마법을 배웠거든.”

         

       고대 마법서에서 배운 마법? 불안한데.

         

       “위험한 건 아니겠죠?”

       “나도 그 정도는 판단할 줄 안단다.”

         

       그래, 이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봐줘야 하는 그 공녀님이 아니다.

         

       내게서 완벽히 독립 준비를 마친 공녀님이지.

         

       “그럼 가시죠.”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토벌대를 편성하겠다! 내 호위기사들과 진 바렌베르크. 그리고 나까지. 총 넷이서 토벌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천의 마수 소굴로 들어가는 인원이 단 네 명.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기사단장, 최후방이 뚫리는 일은 없도록 하게.”

         

       기사단장은 각 잡힌 경례와 함께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기사단장이 저러는 걸 보니 뭔가 있었나 보네.’

         

       내가 다 뿌듯하다.

         

       “가자.”

       “예.”

         

       우리는 최후방의 방어선을 넘었다. 저 멀리서 눈사태처럼 달려오는 수천의 마수.

         

       “중앙은 이쪽에 맡기고 측면으로 빠지죠. 뒤를 칩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 뒤 우리는 마수가 없는 측면으로 빠져 방어선을 넘었다. 이제 토벌 작전을 개시다.

         

       “라데아, 케일. 공녀님의 근처에서 싸워라. 내가 혼자 전열로 진입하지.”

         

       그리 말하곤 검을 뽑았다만.

         

       “진? 이번에는 내게 맡겨주렴.”

       “예? 뭘 하시려고…….”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단다.”

         

       씩 웃으며 손바닥으로 흑마법을 펼치는 프란체. 고대 마법서에서 배운 마법을 보여주고 싶은가 보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공녀님이시니까요.”

         

       사실 내가 혼자 전열에서 날뛰고 남은 세 명이 뒤따라오는 게 효율적이지만…….

         

       ‘연출은 필요한 법이니까.’

         

       곧 데카르트의 주인이 될 프란체다. 기사단과 영지민들인 병사들에게 강한 인상은 새겨줘야지.

         

       “갑시다! 공녀님, 제게 업히세요.”

       “그래.”

         

       나는 프란체를 업고, 다리에 오러를 실었다.

         

       “다들, 따라올 수 있겠지?”

       “그럼요.”

       “우리를 뭐로 보고.”

         

       자신만만하다. 그래도 전력을 내면 못 따라올 테니 적당히 조절하자.

         

       쾅! 세 명의 소드 마스터가 진각을 밟자 지면이 움푹 파였다.

         

       “공녀님, 꽉 잡으세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힐끔거리며 주변을 보니 라데아와 케일도 잘 따라오고 있다.

         

       확실히 소드 마스터의 오러를 실어서 달린지라 금방 마수들의 뒤쪽에 도착했다.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으응. 좀 어지럽긴 하네.”

         

       눈살을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프란체. 이윽고 고개를 휘저으며 눈을 부릅떴다.

         

       “자, 토벌을 시작하자.”

         

       진형은 삼각형. 중앙에 프란체를 두고 둘러싸는 방식이다.

         

       “우선 길을 뚫어주렴. 마수들의 중앙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나는 “예, 뜻대로 하겠습니다.”하곤 곧장 검에 오러를 실었다.

         

       우웅─! 거대한 오러가 움직이며 주변이 짓눌렸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길을 뚫는다.

         

       “흐읍!”

         

       훙──!

         

       종베기로 검을 내리치자, 거대한 검격이 앞으로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씹어먹는 듯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콰과과광─!

         

       난데없이 검격을 맞은 마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소멸했다. 덕분에 길 하나는 훤하게 뚫렸다.

         

       “이대로 중앙으로 진입하자!”

         

       프란체의 말대로 우리는 뚫린 길 사이로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작전이지만, 우리는 가능하다.

         

       -키에엑!

       -크라라락!

       -우어어어!

         

       지척에서 달려드는 여러 종류의 마수들. 우리는 그저 검을 휘둘렀다.

         

       스각! 스각!

         

       라데아의 검격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휘몰아치자, 환상적인 꽃이 만개했다. 케일의 검은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로 미끄러져 지나가 수십의 마수들을 베어냈다.

         

       ‘나는 힘 조절을 해야겠군.’

         

       내가 제대로 싸우면 수천의 마수야 단번에 정리할 수 있다만, 지금은 프란체의 무대니까.

         

       ‘적당히 하자.’

         

       그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자니, 별안간 주변에 심연과도 같은 마력의 선풍이 일었다. 그 깊고 새까만 마력은 사체를 집어삼키며 주변을 침묵과 공허로 가득 채웠다.

         

       ‘뭘 하려는 거지?’

         

       나와 케일, 라데아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프란체를 응시했다. 그녀는 씨익 웃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깨어나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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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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