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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인간의 모정을 기특하게 여겨, 이례적으로 이번만 특별히 먼저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 나는 아그라다의 주인,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우두머리. 우르스 올베인이다.

       

        = 음?

       

        간만에 또 외출하기 위해 내 둥지에서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호주에 출현했을 초월자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내가 모르는 이도 아니었다.

       

        ‘아그라다의 주인? 제법 유명한 이가 아닌가?’

       

        나도 다른 초월자에게 건너들은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항성을 삼키고 그것으로 초월을 이뤘다고 했던가?

        항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별(星)’을 의미하는 단어고, 별이라는 것은 우주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다.

        신이라 불리는 초월자들 중에서도 별 하나의 힘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그 항성 하나를 통째로 삼켰다?

        이것만 봐도 보통 재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진 이라면, 어쩌면 대화로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

       

        = 이 행성은 이제부터 나의 영역이다. 불만이 있는 놈은 덤벼라!

       

        = …….

       

        조금 전까지 대화로 평화롭게 해결하는 상상을 했는데,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그 대신 내 마음속에 들어차기 시작한 감정은 분노.

       

        ‘허? 감히?’

       

        내가 분노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저 아그라다의 주인이 ‘지구 전체’를 자기 영역으로 선포했다는 것.

        이것은 지구의 일부분에 영역을 주장하는 내 영역까지 침범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선포였다.

        즉, 지금 저놈은 나의 영역을 빼앗겠다고 공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펼친 ‘언령’ 때문이다.

        나나 내 아이들이 사용하는 ‘용언(龍言)’과 마찬가지로, 초월자가 사용하는 ‘언령(言令)’은 자기 의지를 조금의 변화나 묘사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말한다.

       

        말하자면 텔레파시와 비슷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생물들은 자기 생각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대화하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의견에 차이점이 생기고, 그 때문에 분쟁이 생기며, 그 때문에 소문이 와전되는 것이다.

        마법사들이 복잡한 마법진과 주문, 촉매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언어만으로는 완벽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마나에게 전달할 수 없으니,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월자들이 사용하는 ‘언령’은 자기 의지와 생각을 완벽하게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필멸자들의 ‘언어’나 ‘문자’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기에 조금도 왜곡되지 않는다.

        또한 자기 의지 그 자체가 담겨 있기에, 어떤 의지를 담느냐에 따라 그저 대화를 위한 텔레파시, 남을 해하기 위한 심검, 시동어만으로 마법을 발동시키기 기타 등등의 일들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조금 전 저 아그라다의 주인이라는 놈이 보냈던 언령의 기저에 깔린 의지는 ‘지배’ 의지.

        이 행성과 이 차원에 자신보다 강한 이가 없을 거라는 판단하에, 그 어떤 약자가 덤벼도 거뜬히 잡아먹겠다는 포식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던 것이다.

        즉, 감히 나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 하! 나도 깔보였던가?

       

        분명 저놈도 이 행성에 다른 초월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놈은 다른 초월자 모두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즉, 다른 모든 초월자들이 덤벼도 자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자, 나를 포함한 다른 초월자들 모두를 무시한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치이이이익!!

       

        나의 분노에 의해 게이트가 떨리기 시작한다.

        내 몸을 뒤덮은 용금이 일부 열리며, 미처 가두지 못한 내 힘의 일부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콰드드드득!!

       

        단지 그것만으로도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주인님!”

       

        = ……자예!

       

        창백해진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자예를 향해 말했다.

       

        = 다녀오겠노라.

       

        “……알겠습니다.”

       

        긴말은 필요 없다.

        나는 거칠게 공간을 찢으며 괘씸한 놈의 앞에 나섰다.

       

        쿠우웅!!

       

       

        *            *            *

       

       

        아그라다의 주인.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우두머리.

        수많은 차원의 관찰자들에 의해 관측되어 ‘불의 새’ 신화의 모티브가 된 초월자 중 하나.

        우르스 올베인은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바라보며 두 눈을 좁혔다.

       

        = 멸천룡 그랑 라그나라고?

       

        = …….

       

        멸천룡.

        들어 본 적이 있는 존재다.

       

        ‘분명 상위 초월자들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초월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은 정도지만, 신뢰성은 상당히 높았다.

        왜냐하면 초월자들 사이에 도는 소문은 ‘절대로’ 일부러 와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걱정이 되었었는데…….

       

        우르스 올베인의 ‘태양안(太陽眼)’이 멸천룡의 전신을 꿰뚫어 보듯 살피기 시작한다.

        비록 상대 역시 초월자인 데다, 저 존재의 몸을 뒤덮고 있는 ‘신기(神器)’의 힘 때문에 모든 것들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약해 보이는군.’

       

        그는 딱 한 번, 상위의 초월자라 불리는 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항성을 삼킨 그라고 하더라도 감히 쳐다볼 수 없었던 존재였다.

        그가 별 하나였다면, 그 ‘존재’는 마치 별들이 모인 ‘성단’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 비한다면…….

       

        = 흥! 나를 멸하겠다고?

       

        펄럭!

       

        우르스 올베인이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여러 개의 날개가 깃털처럼 모임으로서 이루어진 불꽃의 날개.

        그 기묘한 날개가 펄럭거리며 대기를 빠르게 불태운다.

       

        = 할 테면 해 보거라!

       

        = ……그러지.

       

        기이이잉-!

       

        그런 불꽃의 날개에 맞서, 멸천룡의 중날개에 위치한 6개의 강척력 엔진이 거칠게 배기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순간…….

       

        번쩍!

       

        콰과과과광!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호주 대륙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콰쾅!

       

        쿠과광!

       

        “꺄아악!”

       

        “도망쳐!”

       

        “부상자와 노약자 먼저!”

       

        “빨리 움직여!”

       

        갑작스러운 재난에 호주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래도 갑작스러운 EX랭크 게이트의 폭파 소식에 혼란스러웠지만, 멸천룡까지 더해진 지금에 와서는 ‘혼란’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도저히 이 사태를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지금, 이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으아악!”

       

        “이게 무슨 일이야..!”

       

        “끼요옷!”

       

        “Fuuuuuuuuck!!!”

       

        세계 각지에서 순간 이동 능력으로 긴급 배달(?)된 결계 능력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만들고 유지하는 초강도 결계가 폭풍우 속의 비닐하우스처럼 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북한 지도자였던 이처럼 S랭크의 결계 능력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이만한 숫자가 모여서 힘을 합치고 있는 것이다.

        S랭크는 넘어선…… 어쩌면 SS랭크에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결계를 만들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 모양 이 꼴.

        심지어 이 결계의 핵심은 결계 능력자들의 몫이 아니었다.

       

        = 젠장. 좀 살살 하시지!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결계에 백익룡이 식은땀을 흘리며 힘을 더했다.

        덕분에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출렁거리던 결계가 아슬아슬하게나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다른 이들은 죽어 나가겠지만.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 보면 모르…… 겠군? 지금 탐색전 중이다.

       

        “……저게 탐색전이라고?”

       

        이현이 실시간으로 원자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결계 안쪽을 가리키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대기가 찢어지고, 대지가 불타오르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뭔가가 산산이 갈려 나가는 것 같은 폭풍뿐인 장면.

        딱 보면 누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안쪽에서 폭탄이 연속으로 터지거나 폭풍이 휘몰아치는 장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저게 탐색전이라고?

       

        = 저 아그라다의 주인이라는 놈은 모르겠지만, 내 어머니는 주먹질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주먹을 드신다는 것은, 충분히 탐색전이라는 것이지.

       

        “…….”

       

        그게 그렇게 되나?

        뭔가 말이 될 듯 안 될 듯, 아리송한 느낌에 이현의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계 속 폭풍은 더더욱 짙어지다 못해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싸우는 두 존재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뭐지 갑자기 안쪽이 보여?”

       

        = 너무 강력한 에너지의 충돌에, 대기가 버티지 못하고 플라즈마 상태가 된 거다.

       

        “?!!”

       

        그게 된다고?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에 이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둘의 싸움을 계속된다.

        광속에 못 미치는, 하지만 음속은 아득히 돌파한 속도로 좁은(?) 결계 안쪽을 날아다니며 싸우는 둘.

       

        우르스 올베인의 태양 광선이 초고열의 레이저가 되어 멸천룡의 몸을 가르려 하나,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용금에 흡수되어 버린다.

        반면에 멸천룡 그랑 라그나는 음속을 아득히 초월한 자기 몸을 탄환 삼아 우르스 올베인을 향해 돌진하나, 불꽃의 몸을 가진 우르스 올베인의 몸에는 조금의 충격조차 주지 못하고 통과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막대한 에너지의 충돌.

        하나하나가 핵분열을 일으킬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에 결계 안쪽의 공간이 플라즈마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 하! 알겠다. 네놈의 수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한 둘 사이에서 아그라다의 주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 고작 그 정도 힘으로 날 멸하겠다고 한 것이냐? 우습구나.

       

        파아아앗!!

       

        그 순간 우르스 올베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 네 몸에 두른 신기를 믿었던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신기에 불과한 것.

       

        = 흠?

       

        치이이익!

       

        본래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과 압력, 그 외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여 금속을 만들어 내는 멸천룡의 ‘용금(龍金)’.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가진 신기라 하더라도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르스 올베인이 내뿜는 항성의 에너지가 그 한계를 뛰어넘게 되자, 멸천룡의 몸에 둘러졌던 용금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네 녀석의 그 공격 능력도, 방어 능력도 결국에는 신기에 의존한 것. 그렇다면 그 신기만 처리하면 별것 아니겠지?

       

        = …….

       

        철퍽!

       

        쿵!

       

        멸천룡의 몸을 공중에 띄워주던 강척력 엔진을 비롯한 무장 일체를 이루고 있던 용금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마치 한여름 태양 빛에 녹아내리는 얼음, 혹은 아이스크림처럼 질퍽한 모양새로 녹아내린다.

        그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은빛의 창백한 비늘과 앙상한 3쌍의 날개뼈뿐.

       

        “아앗!”

       

        “이럴 수가!”

       

        “멸천룡이…… 졌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모든 사람의 얼굴 위로 절망이 어렸다.

        그런 절망의 꼭대기에서 불꽃의 날개를 활짝 편 존재가 입을 열었다.

       

        =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의 우두머리로서 명한다.

       

        볼품없는 모습이 되어 버린 멸천룡을 향해, 아그라다의 주인이 선언했다.

       

        = 무릎 꿇어라!

       

        그것은 절망을 확정 짓는 선언이었다.

       

        = ……누가 그랬지?

       

        화르르륵!

       

        = 음?!

       

        우르스 올베인이 당황스러운 듯 날갯짓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을 공중에 띄워주는 신기(강척력 엔진)가 사라진 이상 땅으로 추락했어야 할 멸천룡이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떠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륵!!

       

        모든 용금을 벗어 버린 멸천룡의 창백한 은빛 비늘, 앙상한 날개뼈 위로 자색(紫色)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색의 불꽃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잠식하는 그 불길한 힘이 멸천룡의 몸을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 누가 감히 내 힘이 용금에서 나온다고 그랬지?

       

        = ?!

       

        오싹!

       

        아그라다의 주인은 갑자기 자기 뇌리를 울리는 본능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포심’.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숨겨 온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오싹한 기운을 뿜기 시작한 멸천룡에게, 그는 공포심을 느끼고 말았다.

       

        =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주도록 하마.

       

        = 큭!

       

        다시 말하지만…….

       

        = 내가 왜 ‘멸천룡(滅天龍)’이라고 불리는지 말이야.

       

        ……그것은 절망을 확정 짓는 선언이었다.

       

        = 보아라. 너의 멸망이 여기 왔으니.

       

        자색의 불꽃을 깃털처럼 두른 3쌍의 날개를 활짝 펼친 멸천룡이 두 눈을 번뜩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감기 걸렸다가 겨우 돌아온 작가입니다.

    본의 아니게 길게 휴재를 해버려서, 이번 편은 좀 빠르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번 편은 약 2~3편 정도로 긴 호흡을 가지고 쓸 예정이었습니다만…… 너무 오래 기다려주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조금 빠르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정 : 중간에 오해를 부를 내용이 있어서, 조금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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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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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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