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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하나의 몸을 둘이 공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불편한 일은 아니었다.

        

       사라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불만 같은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내 일상에 끼어들어 어떤 행동을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게 정말로 욕심이 없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삶에 초탈했다는 느낌이 컸다.

        

       사라는 애초에 삶을 한 번 포기했었다. 그리고 내가 돌려준 삶조차 자신의 삶이 아니라며 나에게 맡겨버렸다. 희미하게 전달되는 감정은 ‘기쁨’이었지만, 그게 삶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냐고 하면 조금 의문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 그러니까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고, 최소한의 건강관리를 하고, 즐기는 취미가 있거나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사라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그 순간 좋다고 생각하고 끝이고, 바라는 것이 있어도 그냥 바라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걸 무조건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일시적인 끌림은 있더라도, 삶의 목적이 되지는 못했다.

        

       뭐, 그런 존재가 사라에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격이 바뀌는 스위치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 인격이 가졌던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내면 깊은 곳에 틀어박힌 인격이 바깥으로 끌려 나올 만큼, 그래서 몸의 주도권을 틀어쥘 만큼 강렬한 기억.

        

       그 기억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일단 ‘일생에서 그 외에 겪어 본 적 없는 강렬한 기억’이면 되는 모양이니까.

        

       그리고 강렬한 기억을 가장 확실하게 불러오는 방법은, 그 기억의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다.

        

       “싫어.”

        

       그리고 사라는 그렇게 스위치를 건드리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인격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 인격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잘 모른다. 내 주위에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사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그 ‘인격장애’나 ‘정체성 장애’같은 것과도 다른 종류였으니까.

        

       정신과적인 문제가 아닌, 완전히 판타지의 개념 아래에서 한 사람의 몸에 원래 인격과 바깥에서 온 인격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는 두 인격 중 하나가 주도권을 가지고 몸을 움직인다. 이건 생각보다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지난 3개월간 사라의 몸에 거의 적응했고, 사라는 내가 몸을 움직이는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만약 우리 둘이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원수였다면 큰 문제였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그렇다면 조금 의문이 생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표가 되어 움직이는 낮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면 몸이 잠든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두 인격 중 하나가 대표가 되는 상황이 아닌, 어떤 의미에서는 동등해지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뭐, 정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려면 어머님을 다시 만나야 하잖아.”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사라의 방.

        

       내가 사라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사라의 방과는 배치가 약간 달랐다. 입구 근처에 침대와 옷걸이가 하나씩 더 있는 것을 보면 이건 소희가 메이드로 오고 난 뒤의 방이었다.

        

       하지만 소희와 수아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이곳에는 나와 사라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잠이 들고 나서, 의식이 정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은 뒤. 우리는 이렇게 정신 속의 어느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너는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네가 대신해 주고 있잖아.”

        

       내 물음에 사라가 너무 거침없이 대답해버려서, 나는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의식 안의 내 몸은, 사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이 안에서 거울을 써본 적은 없지만, 아마 얼굴도 별로 다른 점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라는 ‘정신 안에서는’ 나보다 훨씬 자유로운 모양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꿈속에서 만나던 광경을 생각해보면, 배경이나 나의 모습은 모두 사라가 상상하는 대로 되었으니까.

        

       아무래도 몸의 주인이 사라였기 때문일까.

        

       여기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었다.

        

       첫째로, 이 몸 안에서 사라의 감정이 격하게 움직이면, 나도 그 상황에 휘말린다. 사라는 몇 번 정도 나에게 장난을 쳤었는데, 주로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을 휘황찬란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즐거워했기에, 나는 그냥 얌전히 당해주기로 했다.

        

       참고로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뭔가 레이스가 잔뜩 달린 셔츠와 까만 바지였다. 꼭 르네상스 시대 배경의 외국 사극에서 남주인공이 입을 것 같은 복장.

        

       그리고, 두 의식이 함께 마주하고 있긴 했지만, 다행히 서로의 생각을 읽는다든가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신의 주인인 만큼 사라는 내가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내 생각이나 감정을 꽤 쉽게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의식 대 의식’으로 만났을 때는 다른 사람을 만난 것처럼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생각을 전할 수 있었다.

        

       하긴, 서로 속마음까지 완전히 읽게 되어버리면 서로 여러모로 엄청나게 불편하겠지.

        

       “하고 싶은 일이라.”

        

       나는 작게 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앉았다. 사라는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앉는다. 그렇게 딱 달라붙은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 없어? 갑자기 뭔가 먹고 싶다거나, 어딜 가보고 싶다거나. 뭘 해보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그런 일을 바래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거 자살 생각하던 사람을 설득하는 거랑 똑같잖아. 전문지식이라도 필요한 거 아냐? 함부로 위로 같은 거 하려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던데.

        

       다행히도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사라에게서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라는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그런 것들도 네가 다 해주잖아.”

        

       그렇게 대답했다.

        

       “…….”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니, 뭐, 나도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긴 했었는데.

        

       나도 누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면 좀 편할 거 같다고 생각해보긴 했었다. 공부 좀 대신해주고, 운동도 좀 대신해주고……

        

       뭐 나는 공부는 대신해준 적 없고, 사실 운동도 딱히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기는 했지만.

        

       물론 학교 친구들과 다시 학창 시절을 보낸다든지, 마르지 않는 통장에서 돈을 퍼다가 뿌리면서 살아간다든지 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사라가 걱정되었다.

        

       뭐랄까,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다.

        

       “……방금 무슨 생각 했어?”

        

       사라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나를 올려다본다.

        

       원판이 워낙 예뻐서 그런지, 사라는 무슨 표정을 지어도 예뻤다. 뭐, 눈이 날카로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면 조금 섬뜩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냥 그런 느낌을 잠깐 느끼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십 대 소녀’가 그렇게 노려보는 셈이었으니 공포감이 몇 배는 되었겠지.

        

       “아니, 뭐…….”

        

       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렇게 몸으로 나오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최나경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라는 최나경을 가족으로서 사랑했다. 사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친어머니보다 더 어머니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애초에 친어머니는 사라가 너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기에 기억도 없었고.

        

       그랬기에 사랑했지만, 동시에 증오하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려 버린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증오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공포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 그 ‘어머님’이 자신을 완전히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마치 세상의 모든 감정을 한 사람에게 느끼는 것 같은, 지독하게 복잡한 감정.

        

       사라가 최나경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런 감정이었다.

        

       당연히 인격전환 스위치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라가 다시 한번 그 감정에 노출되어야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인격을 바꿀 때마다 매번.

        

       ‘가장 자극적인’ 기억에 접근하는 거니, 어쩌면 인격을 바꿀 때마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라는 이렇게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차라리 최나경밖에 모르던 시절이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사라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구축해둔 생활을 하면서 ‘바깥의 다른 감정’을 느꼈다.

        

       여러 극단적인 감정이 마구 섞인, 정신적인 폭력이나 다름없는 부정적인 기분이 아닌, 부드럽고 예쁜 일상 속의 느긋한 감정들.

        

       그렇기에, 굳이 최나경을 만나 그런 종류의 감정을 마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돼……?”

        

       고민에 빠져있으려니, 옆에서 사라가 내 손 위에 부드럽게 자기 손을 겹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라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너와 함께 다니고, 이렇게 밤에는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느끼고 함께 기억하면서 살아가면 안 되는 거야?”

        

       “…….”

        

       그래, 이것도 문제였다.

        

       잘난척하는 것 같아 말하기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나는 엉겁결에 사라의 인생을 구해버린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라에게서 가장 가까운 인간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최나경과 같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라는 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그리고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여전히 엄청나게 걱정되긴 했다.

        

       자기 삶을 남에게 완전히 맡겨버리겠다는 거니까.

        

       “혹시, 떠날 생각이야?”

        

       “……아니.”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종 미국 드라마나 만화에 등장하는 것 같은, 어린 시절의 상상 속의 친구처럼.

        

       이런 식으로 계속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사라의 몸에 함께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타인이다. 사라의 삶을 영원히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지금은 사라가 나에게 이렇게 의지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의 시야도 더 넓어지고, 더 많은 일을 겪게 되겠지.

        

       당연히 친구도 더 늘어날 거고.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나와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사라에게 참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사라의 삶을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책임지면서 개인적인 욕망에 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 계속 여기 있어 줄 거지?”

        

       사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여기 있을게.”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나의 의식 더 깊은 곳까지 사라가 읽을 수 없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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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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