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15

       “음흉한 얼굴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뒤에서 말이 걸려왔지만 혈교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저 자가 다가오고 있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음흉하다뇨. 생각이 깊다고 해주시죠.”

       

       혈교주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혈사파 문주 나석도는 거기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대신 터벅터벅 혈교주의 옆으로 온 그는 가만 화산파 부지를 바라보았다.

       

       “제가 말했죠? 괴물 같은 사람이 올 거라고.”

       

       석도의 말에 혈교주는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을 해서 혈교주도 처음엔 석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반쯤은 허풍일 것이라 여겼다.

       

       무림 전체를 뒤져봐도 검선의 인정을 받은 이가 드문 게 현실인데 외부인 중에서 검선의 제자가 될뻔한 이가 나왔다니.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석도가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저런 괴물을 탐내지 않을 무인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무를 이어 받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천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건 무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무언가일 것이다.

       

       혈교주의 웃음이 충분한 대답이 된 듯 석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아쉽게 됐네요. 여기 꽤 오래 준비했잖습니까.”

       

       혈교 측에서 화산에 들인 시간만 해도 몇 년이니 화산문주라는 작품은 그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본 결과도 괜찮았다. 화산문주는 혈술을 이용해 벽을 넘는 데 성공했으니까.

       

       단순 내공의 양만을 따진다면 무림의 최강자를 논하는 다툼에 낄만했던 화산문주는 분명 잘 빚어진 도자기였다.

       

       상대를 잘못 만난 탓에 바로 박살이 나버리긴 했지만.

       

       허나 실패를 논하는 석도나 혈교주의 얼굴은 그리 험악하지 않았다. 그들도 실패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혈교주가 품에서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일전에 혈교주가 화산문주에게 주었던 보라색의 구슬이었다.

       

       과거엔 아무런 기운도 담겨 있지 않았던 구슬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그 안에는 화산문주에게 모여들던 사기의 일부가 집약되어 있었다.

       

       “화산문주가 힘을 다루는 데 서툴러서 다행입니다. 그 분이 운기하지 못한 기운만 모아도 이 정도라니.”

       

       혈교주가 괜히 혈술이 실행되던 당시 화산문주의 옆에 머무른 게 아니었다.

       

       석도는 그 구슬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이번 실험은 대성공이네요. 다른 지역에서 일을 벌이는 게 한층 수월해 지겠는데요.”

       

       그들이 화산에 여러모로 공을 들인 건 사실이지만 혈교가 암약하는 장소는 이 곳만이 아니었다.

       

       아니 따지자면 다른 곳이 더 많았다.

       

       화산이 아무리 타락했다 한들 화산이 속한 지역은 정파의 지역. 혈교가 움직이기엔 운신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사파가 지배하는 곳이나 천마라는 재앙 탓에 지배자를 잃어버린 지역 같은 경우엔 혈교를 막을 이가 없으니 그들이 움직이는 게 한층 수월했다.

       

       그런 탓에 혈교에서 암약하는 장소는 보통 정파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 훨씬 더 많았다. 어디까지나 화산이 예외였을 뿐.

       

       “다 혈사파 분들 덕이죠. 고생을 해주신 덕에 편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콩고물 정도는 주시렵니까?”

       “물론이죠! 어찌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 하지 않겠습니까.”

       

       혈교주는 자신을 따르는 혈사파를 꽤나 좋아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 혈사파는 혈술을 사용하는 것에도 혈술의 제물이 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저들은 열성적인 협력자임과 동시에 호의적인 실험체였다. 그런데 어찌 혈교주가 저들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말을 잘 듣는 강아지에겐 응당한 보상을 주어야 하는 법이었다.

       

       대신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머리를 깰 생각도 해야겠지만.

       

       “감사합니다. 이번에 애들이 고생을 했는데 뭐라도 줄 수 있겠네요.”

       

       석도도 혈교주가 자신들을 개처럼 여기는 걸 모르지 않았다.

       

       사람을 편리한 도구 정도로 여기는 걸 숨기지 않는 혈교주의 의도를 모르는 건 그에게 세뇌된 혈교도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에 석도도 혈교주가 제대로 보상을 지급하는 지금은 따르는 체를 하고 있었지만 한켠으로는 언제나 배신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를 언제든 이용하다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

       

       번뜩 눈을 뜬 하린은 멍하니 천장을 쳐다봤다.

       

       그녀가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방 안은 어느새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 얼마나 잔 거야?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뒀을텐데?

       

       더듬거리며 스마트폰을 찾은 그녀가 화면을 키자 맞이해 준 건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린 시간과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였다.

       

       큰일 났다.

       

       하린은 다급히 일어나선 그녀가 속한 문파원들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 하린아. 무슨 일 있냐?

       – 지금 싸움 시작할 것 같은데 자냐?

       – 일어나면 들어와라.

       …

       – 아니다. 천천히 와라. 지금 일 대충 끝났다.

       

       문파원들이 보낸 문자에 따르면 검선이 머무르는 필드에서 일어난 싸움은 한 문파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 같았다.

       

       현 화룡무인 유저 문파 1위인 무림맹에서 다른 문파의 랭커들을 끌어들이는 강수를 두는 바람에 힘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단 모양.

       

       메시지를 다 확인한 하린은 다급히 이제 잠에서 깼다고.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보통이라면 화를 낼 법도 하거늘 하린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하린이 있었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할 뿐이었다.

       

       하린의 실 나이를 알고 있는 문파의 아저씨들은 딸 또래의 그녀를 귀엽게 보고 있었으니까.

       

       – 진짜 죄송해요.

       – 됐다. 그보다 하린아. 네 스승님이 또 깽판 쳤으니까 그거나 봐라.

       

       스승님이라면… 화령님을 말하는 걸까?

       

       배움을 구하는 입장이지만 아직 제자는 아닌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제자처럼 보이는 걸까.

       

       하린은 사실을 바로 잡을까 생각을 하다 채팅에 적었던 글을 지우고 물음을 던졌다.

       

       –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 화산이 망했다.

       – …네?

       – 형님. 그렇게만 설명하면 하린이가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데.

       –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줘야죠.

       – 니가 해라. 난 지금 연이 위로한다고 정신없다.

       – 걔 아직도 울고 있습니까?

       – 지가 몇 년 동안 키운 문파가 망했는데 진정이 되겠냐?

       

       아무리 봐도 농담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늘 화령님이 화산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러 간다는 걸 듣기는 했지만 그거 분명 화산을 구하러 가는 퀘스트 아니었나?

       

       하린은 문파의 아저씨들이 그걸 설명해주길 기다렸지만 박연을 놀리는 데 여념이 없는 아저씨들은 그녀에게 설명을 해준다는 걸 잊은 듯 했다.

       

       직접 찾아봐야겠네.

       

       하린은 채팅방에서 빠져 나와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거기에 올라와 있는 글들엔 하나 같이 화령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대체 화령님 오늘 무슨 일을 벌이신 거야?

       

       모든 글을 읽어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에 하린은 일단 화산과 관련된 내용부터 찾아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화산 초비사아아앙!]

       

       화령이랑 신령 피셜로 화산에 있는 NPC들 전부 다 혈교한테 협력하고 있다는데?

       

       “화산이 혈교랑 협력하고 있었다고?!”

       

       화산이 어디인가. 정파의 육대문파가 어디냐 물으면 항상 나오는 문파이지 않은가.

       

       무협지에서도 심심찮게 주인공이 속한 문파로 나오는 장소가 화산인데 그 화산이 혈교와 어울리고 있었다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지만 그건 거짓말도 농담도 아니었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화산과 관련된 게시글들은 대개 난장판이었다.

       

       여태 화산을 위해 헌신했는데 버림받았다는 사람. 게임을 접는다며 삭제를 인증하는 사람. 다른 문파 괜찮은 곳이 없냐고 묻는 사람. 그리고 지금 당장 소림으로 오라고 권유하다 욕을 먹는 사람까지.

       

       하린은 감정을 쏟아내는 글들을 다 넘기고 화령이 하는 일을 중계하는 글만 확인했다.

       

       화령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그 상대는 화산에서 일을 꾸미는 혈사파의 단원이기도 했고.

       

       혈술에 당해 이성을 잃고 폭주를 하는 신령이기도 했고.

       

       뒤늦게 나타나 재수없는 말을 지껄이는 혈교주이기도 했다.

       

       그녀가 벌인 투쟁은 하나하나가 경이롭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온갖 기행을 벌이는 화령이기에 말이 덜 나오는 거였지. 다른 유저가 비슷한 일을 벌였다면 한참 커뮤니티를 달궜을 게 분명했다.

       

       여러 영상 중에서 하린의 시선을 끈 것은 공청 석유의 막대한 내기를 손쉽게 다루는 화령의 모습이었다.

       

       하린도 이전에 화룡무인에서 환단을 먹고 내공을 다스려 본 경험이 있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린이 먹은 건 평범한 소림의 환단이었고, 그걸 안전한 장소에서 시간을 들여 운기를 했음에도 여러모로 고생을 했다.

       

       근데 자연물 중에서 최고로 치는 공청석유의 막대한 내기를 저리 가볍게 다루다니!

       

       대체 얼마나 내공을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야 저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걸까.

       

       혈교주와의 싸움이 끝난 후에도 화령은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심화취정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의 머리 위에 자하신공의 보랏빛 내기로 꽃나무를 만들어 낸 화산문주와 화령이 만나고 또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지형을 바꾸어 버리는 화산문주와 그를 자신이 지닌 무로써 상쇄시키는 화령.

         

       그 싸움은 압도적인 힘과 경이로운 기술의 대결이었다.

       

       그 투쟁이 화령의 승리로 끝난 후 주변에 흩날리는 매화를 보던 하린은 지금 당장 화룡무인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압도적인 힘에 무로써 대응하는 화령의 모습엔 무인을 꿈꾸는 사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하린 뿐만이 아니었다. 커뮤니티의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원래 겜 접을랬는데.]

       

       화산에서 일한 세월만 육 년인데 뒤통수 맞아서 겜 접을랬거든?

       

       겜 삭제하고 화령이 화산문주 박살내는 거만 보고 술 빨려고 했는데 화령이 싸우는 거 보고 있으니까 도저히 겜 못 접겠다.

       

       화산에 매화 뿌려지는 게 보니까 무뽕 겁나 차네.

       

       – 너두? 야 나두!

       └ 겜 삭제했다가 다시 설치하고 있음.

       – 아. 화령 손에 매화검법 있다고 ㅋㅋ. 그거 배우고 가야 한다고.

       └ 나중에 매화검법 풀어주겠지?

       └ 방송에서 누가 물어보니까 비급서 내용 따로 올려준대.

       

       [화령 방송이 재밌는 게 이 사람 존나 과몰입 심함.]

       

       시청자들하고 티키타카할 때는 평범한 유저 같은데 채팅창 안 보기 시작하면 그냥 무협 속 인물 그 자체임.

       심지어 실력도 좋아서 정색하고 싸우는 거 보면 뽕이 안 찰 수가 없음.

       그리고 가끔 투정이나 고집 부리는 것도 귀여워서 좋음.

       천마눈나. 나 죽어.

       

       – 마교도들 어딨냐. 얘 좀 잡아가라.

       – 마지막이 이상하긴 한데 뽕차서 좋다는 건 ㅇㅈ함.

       – 방송 보다보면 무협겜 하고 싶어진다니까.

       – 나도 화령 방송 보다가 화룡무인 깔았음.

       

       [화령 또 깽판 친다.]

       

       이 사람은 가는 데마다 일을 안 일으키면 답답해서 죽기라도 하나.

       

       – 또 뭔 일인데?

       └ 프롤 낭인객잔 박살내는 중.

       └ ㅁㅊ ㅋㅋㅋㅋㅋ.

       

       아직 방송하고 계시나 보네?

       

       프롤로그에서 문제 생길 여지가 있나?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데.

       

       호기심이 생긴 하린이 화령의 방송에 들어간 순간 보게 된 것은 바닥에 널부러진 수십 명의 낭인들과 화령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낭인객잔 여주인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을 잘하는 분의 영상을 보다 보면 게임을 키고 싶단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작 게임을 키면 현실이 참혹하단 걸 깨닫고 얼마 안 가서 끄게 되지만.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