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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레오나르 경.

         

         네오 헤이븐의 캐릭터들이 으레 그렇듯 딱 잘라 정의하기엔 어려운 인물이다.

         고민할 것 없이, 주인공과 싸우고 결국엔 죽는다는 의미에서 빌런이라고 분류해버리면 끝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공되는 정보가 굉장히 제한된 게임의 특성도 한몫 했으나,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나 대화문이 짧은 만큼 더 파고들더라도 단락적인 역사밖에 알 수 없었다.

         

         가령… 전투가 끝난 뒤에, 보스전의 배경이 되었던 관제실과 그의 시신을 살펴보면 나오는 메모리 카드의 내용이라던가.

         

         정확히 뭐였더라.

         전 엑사테크 소속 연구자 겸 엔지니어였는데, 생체 기계화 연구에 누구보다 앞장서다가 순수하게 ‘살아있는 생명에게서 살점을 덜어내는’ 행위에 과하게 도취해서 탈주 요원(Rogue Agent)이 된 거였나?

         

         하여간 블랙마켓에 몸의 의탁한 채로 지내다가 침입해온 주인공에 의해 격퇴당하고, 마켓 측은 그의 극단적인 성격과 주인공의 유용함을 정상 참작해서 딱히 처벌도 내리지 않는… 죽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편한 퀘스트였던 것 같다.

         

         ……나도 레오나르 경의 고유 드랍 아이템 먹겠다고 파밍 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따로 원한이 있던 게 아니라! 저 친구 생김새만큼이나 주는 장비도 독특하고, 명색이 보스래서 그런지 루팅도 든든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달까… 괜히 미안해지네.

         

         …몰상식하게 사람을 꼬맹이 취급한 건은, 과거에 두들겨 팬 것과 상쇄해서 그냥 넘기도록 하자.

         

         “잠깐, 꺼지라고? 우리한테 말한 거여?”

         “…꼬라지나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관리 측에서 나온 놈 같은데… 뭘 근거로 갑자기 변별력을 발휘했는지도 설명 안 해주나?”

         

         여러모로 차별적인 언사와 더불어 난데없는 퇴거 선언까지 합쳐지자 관객들로부터 야유가 쏟아져 내렸다.

         

         걸쭉한 입담이나 치졸한 경향과는 별개로 썩어도 용병, 자부심 넘치는 넷 해커라고.

         상대가 딱 봐도 정상과는 억만 광년쯤 떨어진 미친 놈임에도 밟혔다고 꿈틀하는 모습은 썩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고 결과도 괜찮았으면 다행이지만!

         

         “…….”

         

         끼이익…!!

         

         뒷짐진 레오나르 경에게서 무슨 칠판 긁히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팔도, 다리도 미동조차 않고 가만 있었으나 화면에 출력되던 오페라 가면이 우는 표정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소름 돋는 잡음도 점점 커져갔다.

         

         흡사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속에서 삭여내느라 그를 이루는 부품이 뒤틀리는 듯한 풍경이었으니.

         

         심상치 않은 거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말 다음 바로 손부터 나가던 인간이 자신의 판단에 정면으로 대드는 걸 듣고 이정도 참아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착한 사람이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흉을 보지만, 미친 놈은 한 번만 자제해도 대견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까. 하긴 아예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또라이였다면 조직에 속하지도 못했겠지.

         

         “똥폼 잡지만 말고 뭐라 말을…!”

         

         “Ta geule!! Un chien 버러지들이…! 안내인에게 설명도 안 들었나? 시험장까지 이동 중에도 평가받는다는 걸!”

         

         으르렁대는 절규가 외야의 비난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오버코트(Overcoat; 무릎 부근까지 내려오는 외투) 뒤로 돌아가 있던 손이 다시금 신경질적으로 쇄골 부근의 기계뭉치를 잡아당겼다.

         

         그렇게 답답하면 좀 벗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엑사테크 출신답게 저것도 신체의 일부로 기억한다. 그가 막 나간다고 나까지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아서야 쓰나.

         

         “안내 방송을 가장해 대놓고 악성 유해 전파를 흩뿌렸는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눌러앉아 있던 떨거지들 주제에 무슨 정당한 평가를 바라는 게지? Bébé한테 주사를 놔도 이거보단 덜 시끄럽겠군!”

         

         “기저귀 값이 떨어졌으면 구걸하러 나오지 말고 Ta mère에게 달려가도록! 너희 같은 것들이라도 혈육이라고 Salope 일을 해서라도 챙겨주지 않겠나…!”

         

         거의 흘러내리는 것처럼 우울해하던 오페라 가면의 입이 옆으로 쫙 찢어지며 흉한 미소를 지었고, 새까만 장갑 낀 손가락이 불합격 낙인이 찍힌 인간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모욕감을 선사했다.

         

         그 와중에도.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설명을 시작했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장렬한 인신공격으로 바뀌는 게 참… 자연스럽네요. 네.

         

         “이야… 네오 헤이븐은 진짜 별 해괴한 사람이 많단 말이야? 아니면 혹시 이것 자체가 압박 면접 같은 걸까나?”

         

         “…그냥 저게 유달리 화가 많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숫제 도떼기 시장으로 변해버린 상황에 기가 질린 마리나가 소근거려왔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가 중간중간 지칭 명사를 혀 굴리는 단어로 대체해서 억양을 약하게 했음에도 별로 순화되지 않은 패드립이라는 건 모두가 느꼈는지 분위기는 한층 더 험악해졌고.

         

         하지만 그것도 그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배려라고 쓰고 탄압이라고 읽는 것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 방송 주파수에 있던 악성 코드? 그걸 눈치 못 챈 병신이 여기 어디 있다고! 당연히 시험 관련된 안내사항이 있을까 봐, 문제없는 부분만 추려내서 듣고 있었…….”

         

         따닥!

         쿠당탕…!!

         

         스스로 그 말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 레오나르 경이 손가락이 튕기자, 항의하던 사람들의 몸이 풀썩 하고 먼지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래도 별 문제가 없나?! 응?”

         

         한순간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사지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눈 까뒤집은 의식 불명자들이 무더기로 양산된 사건 현장-작품-을 만족스럽게 둘러보며 비웃은 그가 멀쩡하게 서있는 우리 쪽으로 시선…이 아니라 화면을 돌려왔다.

         

         이게 바로 기계(Mechanic), 인체(Ergo), 가상(Cyber) 세 공학 분야를 멋대로 해석, 재결합한 또라이 거장(Maestro)이자 기믹형 보스.

         

         미치광이 레오나르 경(Sir Léonard, The Lunatic)되시겠다.

         

         그러고보니 게임에서도 해킹 방어 기재를 준비하거나, 음파나 전자파를 상쇄할 수단을 갖춰야 기절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에임 좋고, 총만 잘 쏜다고 클리어가 가능했으면 이게 사이버펑크 게임이겠냐는 의미로. 영락없이 개발사에서 일부러 넣은 장애물이라 여겼는데 막상 직접 겪어보니 압박감이 꽤나….

         

         “…죽이진 않았다. 감염된 회선을 통해 초저주파를 뇌와 근육에 흘려 넣어서 생체 활동에 혼선을 초래했을 뿐. 이것들은… 안내인이라도 시켜서 정리하면 되겠지. 남은 싹수 있는 놈들은 승강기에 탑승하도록.”

         

         “……꿀꺽.”

         

         긴장한 꼬맹이의 침 삼키는 소리와 더불어 안내인 씨의 구슬픈 울음이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 그녀도 단순 노동은 견습들에게 짬처리하나? 잘 모르겠네.

         

         그나저나 역시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좋은 걸 배웠다.

         무식하게 감전시키는 것보다 특수한 신호를 발산해 교란한다라… 저런 원리를 이용하면 전처럼 내면 의식이 뒤섞이지 않은 채로 신체를 교란할 수 있을지도…?

         

         일단 우리는 요구받은 대로 가로누인 몸뚱어리들을 넘어, 위풍당당한 레오나르 경의 옆으로 돌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휴대용 재머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서 기뻐 보이는 마리나, 짐 가방이 자꾸 쓰러진 사람들 발치에 걸려서 짜증나 보이는 켄.

         경계 수준이 최대치에 도달한 제로를 포함 다섯이 모두 타니 조용히 닫힌 박스가 더 깊은 지하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또 인원이 다섯으로 줄었냐 하면.

         

         “이거 이거… 불쌍한 아저씨들 몫까지 우리가 힘내야 할지도!”

         “”…….””

         

         그야 합격 판정을 받은 나머지 해커들도 안전거리를 유지 못했는지, 침입한 신호를 차단하는데 실패했는지 다 같이 혼절했으니까?

         

         기껏 통과시켜 놓은 인원의 반이 또 쓸려 나갔음에도 레오나르는 따로 할 말이 없는지 마리나의 호들갑을 듣고도 침묵을 유지했다.

         

         오페라 가면이 미묘하게 꾸겨지고 시무룩한 걸 보니 어쩌면 그도 굉장히 민망해하는 와중일지도 모르겠고.

         

         “그… 그런데, 이러면 자동 합격 아니야? 우리밖에 없는데….”

         

         “이쪽 통로로 시험장에 입장하는 게 너희 셋일 뿐. 그런 얄팍한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주어진 과제를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끝내는 쪽과 계약하겠다는 말이 있었으니.”

         

         어림도 없다는 듯이.

         혼란한 와중에 그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가졌던 켄의 기대를 그가 싹둑! 하고 매몰차게 잘라버렸다.

         

         어쩐지, 전국에서 모인 것치고는 너무 인원이 적더라니… 그래도 덕분에 시험에 대한 힌트를 좀 얻었다.

         

         아마 공통 과제, 그리고 다른 무리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날카로워야 한다면 실상 경쟁전.

         대충 상상만 해도 피곤함이 몰려왔다. 비교적 다행인 점은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있는 것 같으니 결과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거 하나 정도.

         

         “윽…?!”

         “…! 야!”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인원만 탑승했거늘.

         일반적인 성인 남성조차 한 명 없는 주제에,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두 기계 덩어리 때문에 개인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공간에서 결국 사고가 났다.

         

         하강하는 도중, 승강기가 덜컹거림에 따라 흔들린 레오나르의 코트 자락이 켄의 얼굴 근처에 나부꼈다. 당연히 위에서 그 난폭한 천성을 구경한 소년은 그걸 손으로 쳐내려고 했고.

         

         허나 이 극악무도한 담당자의 행동 양식을 약간이나마 아는 내 눈에는 저걸 내버려두면 벌어질 지랄과 대참사가 선했으니.

         

         탁!

         

         그렇기에 기분 나빠 할 수도 있겠지만 냅다 손목을 붙잡아서 제지했다.

         그다지 특출나지 못한 내 운동신경을 고려하면 켄이 갑자기 다가오는 나를 보고 몸을 굳혔다는 점도 크게 도왔으리라.

         

         “……소독도 안 하고 함부로 만지면 안돼. 큰일나.”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유난을 떤 탓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켄은 뜬금없는 충고가 거북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고, 제로는 자신이 놓친 게 있는지 당황한 낌새.

         마리나야 그냥 고개를 갸웃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내가 누구인지 아나? Mademoiselle?”

         

         미친 기계 인간께서 급발진한 나에게 친히 흥미를 보여 오셨다.

         물결이 치는 것처럼. 반은 기뻐하고, 반은 슬퍼하는 유령 가면이 이쪽을 내려다본다.

         

         억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짜 난장판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에 대한 보상이 이런 괴인의 호기심이라니.

         

         자의식 과잉이라고 그냥 핑계를 대고 넘어가고 싶었으나. 그가 엑사테크의 추적을 받는 탈주자인 걸 고려하면 어쭙잖은 거짓말은 좋은 선택이 못 됐다.

         

         괜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가 오해를 사느니 차라리 솔직하게 정면돌파를 하고 말지.

         

         “안심해. …댁 전 직장이랑 관련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니니까. 그냥… 우연히 알았을 뿐이야.”

         

         “……흠.”

         

         위에서 아래로. 화면이 한 차례 물결친다.

         나를 충분히 살펴본 뒤, 반걸음 정도 앞으로 튀어나온 제로까지 응시한 레오나르 경으로부터 작은 헛기침이 나왔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지나가고 무표정, 평정을 되찾은 가면이 멀어진다.

         덤으로 정자세로 놀고 있던 그의 손이 코트를 당겨 여며서 추가적인 접촉이 일어날 가능성도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생각보다. 생각보다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승강기에 실린 채 하염없이 내려가던 우리는 마침내 블랙마켓이 정성스레 준비한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a geule; 조용히 하세욧!
    Bébé; 응애
    Ta mère; 귀하의 어머님
    Salope; 화냥년
    Mademoiselle; 미혼 여성, 마드모아젤

    원래 쓰려던 부분까지 다 못 쓰고 상 하편으로 나눌 때마다 너무 어지럽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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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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