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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여기, 뭔가 엄청 제국식 건물이네요?”

     “테르시안 제국의 유학생들이 머무르게 될 별도의 건물인 만큼,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썼습니다…?”

     “아카데미 설립 측에서 말이죠.”

     회색 작업복의 청소부는 빵모자를 벗은 백발의 변장녀에게 기숙사 내부를 안내했다.

     “1층에는 부엌과 식당, 휴게실, 세탁실 등이 있습니다. 화장실은 여기 남녀 별개로 하나씩.”

     “위층에서 내려와서 사용해야 하는 건가요?”

     “다른 기숙사는 층마다 하나지만, 이곳은 조금 다릅니다. 이쪽으로.”

     딸칵.

     회색 청소부가 벽으로 다가가 마석 버튼을 누르자, 곧 마석 버튼에 불이 반짝이며 접이식 문이 좌우로 열렸다.

     “와!”

     “제국에서는 이걸 두고 엘리베이터라고 하죠.”

     “다른 기숙사에도 이런 게 있나요?”

     “여기에만 있습니다.”

     “특혜 아녜요?”

     “특별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인 거죠.”

     청소부가 손을 뻗으며 안을 가리키고, 백발 여인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마워요, 후훗.”

     “별말씀을.”

     눈을 찡긋거리는 걸 본 건지 아닌지, 회색 청소부는 승강기 안으로 들어와 내부 버튼을 조작했다.

     “오오. 이거, 혹시 마법으로…?”

     승강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전장치로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으나, 기본은 바닥에 설치된 부유 마법이 기본입니다.”

     “부유 마법…?”

     “제국에서 생산되는 부유석이라는 물건을 여기 바닥으로 만든 겁니다.”

     “헤에….”

     백발 여인은 눈을 반짝이며 바닥을 발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거 막 뛰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안전장치 때문에 밧줄이 몇 번 잡아당겨 주겠지만, 낙하하면 그대로 망가지겠죠.”

     “방방 뛰는 건 조심해야겠네요.”

     “제국에서도 그러지 않습니까?”

     “어머나. 제가 제국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이번에 유학을 온 제국의 여학생들이 전부 백발이라고 하더군요.”

     “헤에….”

     띵.

     승강기가 멈췄다.

     “4층입니다.”

     “와아. 여기는….”

     “특실입니다.”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의 4층에는 오직 문이 하나만 달려있었다.

     그나마 하나 더 있다고 한다면, 계단 쪽 방화문이 끝.

     “여기는 뭐 주인이라도 사는 건가요? 막 수석을 위한 방?”

     “유학생 중에 가장 예쁘고 아름답고 고귀한 분을 위한 방이죠.”

     “헤에….”

     백발 여인은 방문 앞에 새겨진 명패를 손으로 두드렸다.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제국의 황손녀 분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렇겠죠?”

     “흐흠….”

     백발 여인은 마스크 앞을 손으로 만지작거렸으나, 곧 손을 내리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옥상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방 안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황손녀 전하께서 가장 먼저 열어보셔야 하니, 제가 함부로 열어서 보여드릴 수는 없네요.”

     “부우.”

     마스크를 끼고 있음에도 볼을 부풀리고 있는 게 한눈에 보였으나, 회색 청소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끼이익.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잠금장치까지 걸린 이중문이 열렸다.

     

     “와아!”

     “옥상에 따로 정원이 있습니다. 따로 천장도 있어서, 사실상 5층 같은 느낌이긴 하네요.”

     주변이 탁 트인 옥상.

     안 그래도 기숙사 건물이 다른 곳보다 대지가 높아 주변이 훤히 보이는데, 옥상까지 올라오니 모든 걸 내려다보는 것 같은 전경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는….”

     “옥상에 누가 와서 막 뛰어다니거나, 새들이 와서 함부로 더럽히면 곤란하잖습니까. 대책은 다 세워뒀지만,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인 거죠.”

     “흐흥….”

     휘이잉.

     바람이 분다.

     “엄청 예쁘네요. 여기. 준비하느라 엄청 신경을 많이 썼겠는걸요?”

     백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여인은 뒷짐을 진 채 옥상의 정원을 느긋하게 걸으며 키득거렸다.

     “여기가 바로 왕국과 제국, 지브롤터와 테르시안의 화합을 상징하는 곳인가요?”

     “지브롤터와 테르시안?”

     “어머. 말실수. 후후.”

     여인은 검지를 들어 마스크 위에 붙였다.

     “봐주실 거죠?”

     “저는 일개 청소부라, 그런 걸 잘 모르긴 합니다만.”

     탁.

     회색 청소부가 손을 빠르게 휘두르자, 날벌레 하나가 손을 맞고 튕겨 나갔다.

     “적어도 이 건물을 더럽히는 것들이 있으면, 바로 청소할 뿐입니다.”

     “그렇-”

     와아아ㅡㅡㅡ!

     

     아래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함성.

     “쯧….”

     백색 여인은 혀를 차고.

     “시험이 슬슬 절정에 이르는 모양이군요.”

     회색 청소부는 담담한 목소리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 번 구경하시겠습니까? 왕국과 협곡의 대결,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닙니다.”

     * * *

     노스트럼은 검의 나라다.

     

     검 이외의 것은 외도(外道)라고 평가할 정도로, 검에 살고 검에 죽는 나라다.

     그건 아마도 대대로 최강자가 지브롤터 가문이었고, 500년 동안 소드 마스터가 단 한 번도 ‘왕국최강’에서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다들 검을 익힌다.

     노스트럼의 또다른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용기병들이 쓰는 창술을 제외하면, 되도록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있을 때는 다들 검을 익힌다.

     노스트럼에서는 검이 1등이며.

     그 아래에 창이 있으며.

     

     그 밑으로는 전부 거기에서 거기라고 평가하는 것이 대세.

     그 흐름이, 어쩌면 지금 이 시험장에서 깨지는 게 아닐까.

     “힘내라, 지브롤터!!”

     “뭐하는 거야! 공주라고 봐주는 거냐!!”

     외야에 있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는 소년이 지브롤터라는 것도 잊고-

     “지브롤터의 힘을 보여줘!!”

     아니.

     지브롤터기에 더더욱 승리를 강요하고 있다.

     지브롤터는 불패.

     그 누구에게도 패배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상대가 창을 쓰는 왕국의 공주라고 하더라도!

     “우오오!”

     소년, 누아르가 검을 휘두른다.

     강철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나는 흡사 불씨처럼 반짝였고, 끊임없이 쇄도하는 창을 튕겨내며 거리를 벌린다.

     “우오아아아ㅡㅡ!!”

     시험장이라는 것도 잊고, 모두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역시 지브롤터야!”

     “저 나이에 저 정도로 마나를 발현시킬 수 있다니…!”

     “7살에 지브롤터 백작으로부터 검을 배웠다는 게 역시 사실이었군!”

     누아르 지브롤터는 이번 시험에 있어, 폭풍의 핵이었다.

     고작 14살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1학년으로 입학시키겠다.

     누아르 지브롤터의 아카데미 출전은 그를 향한 크림슨 지브롤터의 믿음과 신뢰가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노스트럼의 공주를 상대로도 이렇게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리라.

     “후….”

     나리아 공주가 창을 회수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는 것도 닦지 못한 채, 창을 계속 쥐었다 펴며 불편함을 드러낸다.

     “왜 그러십니까, 나리아 공주님. 대련용 창이라 사용이 거북하십니까?”

     “…….”

     누아르는 검을 뻗어 나리아 공주에게 도발했으나, 나리아 공주는 나무 창대를 이리저리 만지기만 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부ㅡㅡ웅!

     머리를 노리는 커다란 일격.

     동작이 커서 창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무슨 장대를 내던지는 듯한 일격.

     “오오!”

     “황금빛 마나!”

     

     그러나 그 끝에 실린 ‘마나’는 날카로웠다.

     “크윽?!”

     사락.

     창끝에 서린 마나가 아주 짧은 순간, 오러 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누아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

     순간, 누아르는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궤적이 스쳐 지나갔다.

     회색의 그림자.

     자신을 향해 장대를 휘두르며 압박하던 그 그림자.

     몇 년 전의 기억이지만, 나리아 공주의 몸 위로 어떤 남자의 잔영(殘影)이 스쳐 지나갔다.

     연격이 날아온다.

     봉을 휘두른 동시에 손목을 감아 위로 치켜올리고, 그대로 내려치며 정수리를 찍는다.

     -동작이 큰 연격이라면, 그 동작이 닿기 전에 먼저 막아야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치듯 귓가를 간질인다.

     -그러려면.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상대보다 더 빠른 공격으로 연격을 끊는다.

     “!!”

     어딘가 손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고 생각한 순간, 누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전력을 다해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우지끈!

     장대가 부러졌다.

     나무 파편이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지고, 누아르는 검을 억지로 앞으로 뻗었다.

     부ㅡㅡ웅!

     누아르의 검에서 흘러나온 검풍이 부서진 나무 장대의 잔해를 흩날렸다.

     

     검 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나리아 공주의 머리 위.

     검 끝이 두 뼘 정도만 더 내려왔다면, 그 검 끝은 어쩌면 나리아 공주의 이마를 향했을 수도 있겠지.

     “하아, 하아….”

     누아르가 거칠게 호흡을 가다듬고, 나리아 공주는 부서진 창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두 손을 펼쳤다.

     투둑.

     바닥에 망연히 떨어진 부서진 창대.

     “졌습니다.”

     나리아 공주는 두 손을 펼치며 항복했다.

     “와아아아ㅡㅡㅡ!!”

     다시금, 환호성이 시험장을 가득 채운다.

     “굉장하다, 누아르 지브롤터! 역시 노스트럼의 자존심!”

     “아암, 그렇고말고! 검의 명가, 협곡의 검이라면 그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지!”

     “지브롤터의 미래가 이렇게 밝을 줄이야!”

     짝짝짝짝. 

     시험장의 중앙에 있는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치르러 왔으나, 시험장에 모인 이들을 훨씬 웃도는 실력을 선보인 둘에게 찬사가 쏟아진다.

     “지브롤터! 지브롤터! 지브롤터!”

     정정.

     나리아 공주를 향한 찬사라기보다는.

     “우리의 검, 우리의 수호자! 협곡을 위해 모든 걸 바칠 노스트럼의 가디언!”

     누아르 지브롤터를 향한.

     “그 어떤 적이 나타나도 반드시 쓰러뜨려 줄 왕국의 수호신!”

     혹은, 자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켜줄 순교자의 탄생에 대한 축하.

     “…….”

     누아르는 조금은 떫은 얼굴로 검을 회수했으나.

     “역시 지브롤터의 후계자는 누아르 지브롤터인 건가요?”

     “그렇겠지. 지금도 저렇게 강한데,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얼마나 강해지려나?”

     “허허. 크림슨 지브롤터의 재림인 건가….”

     시험 감독관으로 나온, 혹은 시험장을 찾아온 나이 지긋한 이들의 말에 누아르는 어깨가 으쓱이기 시작했다.

     “흐, 흥…! 이기는 건 당연하지…! 나는 누아르, 지브롤터이니까!”

     

     누아르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검을 뻗는다.

     와아아아ㅡㅡㅡ!!

     대회도 아니지만, 승자를 향한 축하의 박수가 쏟아진다.

     “축하드립니다, 누아르 지브롤터.”

     그리고 그 중심에, 나리아 공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역시 지브롤터의 암흑섬광.”

     “예, 예…?”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리아 공주가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노스트럼의 미래를 위하여.”

     “…….”

     누아르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맞잡았다.

     와아아ㅡㅡㅡㅡ

     이전보다 더 큰 함성이 시험장을 가득 채웠으나, 누아르는 그 함성에 담긴 기이한 분위기에 어딘가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노스트럼! 지브롤터! 노스트럼!! 지브롤터!!

     그 어디에도.

     ‘누아르’라는 이름은, 없었다. 

     * * *

     “수석과 차석이 결정되었군요.”

     “지금 걸로요?”

     “나머지 모든 과목에서 100점이라면, 검술 대련에서 승패가 갈리면 1점 차이로 정해지는 법이죠.”

     “검술인가요?”

     “노스트럼에서는 검술대련이라는 개념 자체에 모든 무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검 말고 다른 걸 쓰더라도, 결국 검술대련이기에.”

     “이상한데요.”

     “그게 노스트럼이니까요.”

     “…….”

     백발 여인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 몸을 돌렸다.

     “저기, 여기에서 일하시는 분이시죠?”

     “일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면 혹시 그레이 지브롤터라는 사람의 소식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가요?”

     “그건, 갑자기 왜…?”

     “아뇨, 그냥.”

     백발 여인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리며.

     “누구는 어떻게든 예쁜 모습 보여주려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인터뷰도 자주 하고 사진도 찍고 그러면서 그랬는데.”

     검은 안경 위에 드러난 눈썹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누구는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요!”

     “…제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레이 지브롤터라면 조만간 나타날 겁니다.”

     “어떻게요?”

     “공식적으로는…음, 그렇네요.”

     

     회색 청소부는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제국 기준, 통일력 97년 3월 1일.”

     “왕국 사람이면 왕국력으로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복잡하고 근본도 없는 역법보다 깔끔하게 표현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와. 왕국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금빛 바람이 나부끼는 향월의 해, 세 번째 바람이 계곡을 처음 넘어가는….”

     “네, 네. 통일력 97년 3월 1일. 이 날은 ‘입학식’인데요.”

     “동시에 오로솔 아카데미의 개교기념일이기도 하고. 그레이 지브롤터를 찾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회색 청소부가 목을 가다듬으며 답했다.

     “입학식 때 뵙겠습니다.”

     * * *

     겨울이 끝났다.

     통일력 3월 1일.

     오로솔 아카데미의 정문이 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카데미를
    시자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

    120화라고 했는데 좀 더 당겨도 될 듯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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