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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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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이 모두 유리로 이루어진 실험실. 새하얀 침대만이 그곳이 생활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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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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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바닥이라도 뒹군 듯 흙먼지투성이인 남색 머리의 남자가 두꺼운 밧줄에 묶인 채 방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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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몸을 비틀어 제 옆방을 바라보았다. 마치 박물관 물건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투명한 유리방마다 어린아이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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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이를 으득 갈며 밧줄을 풀어내고자 마력을 끌어냈지만, 무언가에 방해라도 받은 듯 마력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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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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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유리방 너머의 긴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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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그 침입자인가?”
   “꽤 튼튼해 보이지? 마침 인간 실험체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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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쓰러져 있는 유리방으로 다가온 사람은 두 사람이었는데 한명은 도마뱀 모습을 한 지능 높은 몬스터였고 다른 한명은 머리 한쪽에 뿔이 자란 마족이었다. 엉성한 모습을 봐선 하급 마족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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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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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에 실험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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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시선이 옆방으로 향했다. 하늘색 피부를 가진 정령 꼬마가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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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험체가 필요했다고? 그렇다면 정령은 왜 잡아들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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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알기로, 이 연구소는 정령의 씨가 마를 정도로 정령을 긁어모았다. 노예 시장에서도 악착같이 모아간 건 오로지 정령들 뿐, 인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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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갑자기 인간 실험체가 필요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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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뭘 연구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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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이곳에 침입한 건 두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첫 번째 목적은 붙잡혀있는 정령들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마왕군 소속 연구소에서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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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 소속 연구소라서 그런지 일반적인 연구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비가 많았으며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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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정령 아이들이 갇혀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함정에 걸려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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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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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옷 소매에 박음질 되어 있던 아주 가느다란 쇳조각으로 조금씩 밧줄을 잘라가며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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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를 봐서 탈출한다. 기회가 보이기 전까진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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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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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으윽! 아파! 아파아아! 엄마! 엄마아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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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떨어진 유리방에서 정령 아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이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크게 부풀어 있었다. 다른 방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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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꾸러기지만 제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게 정령이다. 순수한 만큼 동족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의 방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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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과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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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
   [ 엄마, 엄마 애니가 아파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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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도 같은 정령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울려 퍼졌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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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읏, 꾸으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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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제 몸보다 커진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말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남자는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부릅뜬 눈으로 잔혹한 장면을 눈동자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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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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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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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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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져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피와 다른 파란빛의 액체가 유리 벽을 따라 흘러내렸다. 정령은 죽어도 자연으로 돌아가 언젠가 태어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령들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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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에 떨어진 액체 한 방울까지 전부 담아놔! 정령의 부산물은 전부 쓸모 있는 물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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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족이 목소리 높여 말하자 대기하고 있던 조수들이 방진복을 갖춰 입고 유리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령 아이들은 몸을 웅크린 채 제 친구가 유리병 따위에 옮겨 담기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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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어딘가에 갇혀 구슬피 울고 있는 제 엄마를 찾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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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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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이를 갈며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장면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새겼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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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실험은 멜론이 담당이었지? 이번 실험체는 폐기 되었다고 전해주고, 새로운 실험체를 배정해줄 테니 용량을 더 줄이라고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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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들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끔찍한 말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당연시 여겼다. 마왕의 땅이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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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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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개의 무리 중 가장 선두의 무리를 이끄는 릴리가 정돈된 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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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이런 곳에 길이 있을 줄이야.”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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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비서 모니카도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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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오빠는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직접 와봤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정보를 얻었다거나…”
   “카르디샨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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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느려지면 뒤에 있는 무리가 모두 발걸음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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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제일 앞장서서 걷는다는 건 위협을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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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며 앞서 나가던 두 사람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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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뒤따라오는 8명의 조직원에게 손을 들어 보여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수풀에 숨어 수상한 장면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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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리안 오빠는 폐가만 있다고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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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시선 끝에 자리한 건 허리춤에 검을 찬 남자가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 서서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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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거 아무리 봐도 폐허 아니지?”
   “네, 딱 봐도 누군가 사용하는 시설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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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조용히 몸을 뒤로 뺀 후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노아쪽에 눈앞에서 본 장면을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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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가가 아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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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가 이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고민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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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원작에선 폐허로 나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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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 만큼 원작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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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건과 관계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란 말이었지, 지형 건물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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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지금은 다른 길을 찾는 게 급선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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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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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은 폐허가 아니었지만 길은 원작과 똑같이 존재하니, 원작에 나왔던 샛길도 분명 존재할 거야. 그 길을 통해 빙 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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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샛길이 있는 곳을 추정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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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우리 그럼 예정을 바꿔서 새로운 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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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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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꺄아아악! ]
   [ 안돼! 막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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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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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구 너머에서 릴리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뒤이어 통신이 뚝 끊어졌다. 노아와 리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아는 곧바로 앞에서 두 번째 무리를 이끄는 네로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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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았어! 바로 가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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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한 후 곧바로 통신을 끊었다. 노아와 리안은 시선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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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빨리 선두로 가자!”
   “그래, 서두르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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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에 포함된 조직원들은 모두 불만 없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리안이나 노아에 비해 훨씬 느릴 터라 발목만 붙잡을 터다. 그렇다고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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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빠르게 눈치채 리안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자세를 잡고 있는 노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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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네가 먼저 출발해. 난 사람들을 챙겨서 앞으로 갈게.”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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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씩 웃어 보이며 말하자 굳어있던 노아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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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뒤를 부탁할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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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하고 있는 다른 무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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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를 들어보니, 화살이 쏘아지는 것처럼 빠르게 달려온 노아가 잠시 대기하란 명령을 내린 후 뛰어갔다고 말했다. 리안은 사정을 설명한 후 무리를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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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와 릴리라면 괜찮을 거야. 난 조직원들을 모아서 샛길 쪽으로 빠지는 데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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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발을 바쁘게 움직여 앞서 나가고 있던 5개의 팀과 추가로 합류했다. 앞으로 합류해야 하는 팀이 세 개쯤 남았을 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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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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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끼리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채 걷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슬슬 다음 무리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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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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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굳은 얼굴로 지금까지 모은 무리와 함께 샛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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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지금까지 모은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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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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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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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억!”
   “적인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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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앞에 새카만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마법진 위로 무언가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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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에에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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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몬스터나 인간 따위가 녹아내린 것처럼 생긴 생물이 철퍽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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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게 뭐야!?”
   “끔찍해..”
   “다들 뒤로 물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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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비명을 내지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에 비해 리안은 표정 변화 없이 마검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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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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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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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끔찍하게 생겼으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는 거지?’
   [ 모자이크? 저걸 모자이크라고 하나? 뿌옇게 보여서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군. ]
   ‘어어? 너한테도 그렇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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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피를 너무 많이 빨아먹은 탓일까? 마검은 개그 필터를 반쯤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리안과 떨어지면 사라질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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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은 곧, 개그 필터 사용자가 두 명이라는 끔찍한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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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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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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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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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의 몸에서 흘러내린 액체가 땅을 녹이기 시작했다. 꽤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리안은 딱히 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썩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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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기분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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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어 오자 리안은 식겁한 표정으로 마검을 냅다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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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엇?! 가,갑자기 그러면…. 에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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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맥없이 떨어지긴 싫었는지 마검이 급하게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려 멋들어지게 회전하더니 괴물에 몸 한가운데에 푹하고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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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에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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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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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에게서 검은색 핏물로 추정되는 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마검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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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웩! 맛없어 끔찍해! 기분 나빠! 파트너어 살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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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마검이 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들썩거렸다. 전이었다면 주먹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었겠지만, 머릿속에 미소녀 마검짱의 모습이 남아있던 탓에 순순히 다가가 마검을 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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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럽혀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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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오는지 언제나 궁금한 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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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소제목은 개그 당한 수많은 악당들의 눈물이 담긴 말입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벽이 모두 유리로 이루어진 실험실. 새하얀 침대만이 그곳이 생활 공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젠장..”

흙바닥이라도 뒹군 듯 흙먼지투성이인 남색 머리의 남자가 두꺼운 밧줄에 묶인 채 방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었다.

그는 몸을 비틀어 제 옆방을 바라보았다. 마치 박물관 물건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투명한 유리방마다 어린아이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남자는 이를 으득 갈며 밧줄을 풀어내고자 마력을 끌어냈지만, 무언가에 방해라도 받은 듯 마력이 흩어졌다.

또각또각.

그때 유리방 너머의 긴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그 침입자인가?”

“꽤 튼튼해 보이지? 마침 인간 실험체가 필요했는데 잘됐어.”

그가 쓰러져 있는 유리방으로 다가온 사람은 두 사람이었는데 한명은 도마뱀 모습을 한 지능 높은 몬스터였고 다른 한명은 머리 한쪽에 뿔이 자란 마족이었다. 엉성한 모습을 봐선 하급 마족으로 추정되었다.

남자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았다.

‘내 몸에 실험을 한다고?’

그의 시선이 옆방으로 향했다. 하늘색 피부를 가진 정령 꼬마가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간 실험체가 필요했다고? 그렇다면 정령은 왜 잡아들인 거지?’

그가 알기로, 이 연구소는 정령의 씨가 마를 정도로 정령을 긁어모았다. 노예 시장에서도 악착같이 모아간 건 오로지 정령들 뿐, 인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간 실험체가 필요하다니?

‘도대체 뭘 연구하고 있는 거지?’

그가 이곳에 침입한 건 두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첫 번째 목적은 붙잡혀있는 정령들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마왕군 소속 연구소에서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마왕군 소속 연구소라서 그런지 일반적인 연구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비가 많았으며 강했다.

남자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정령 아이들이 갇혀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함정에 걸려 잡히고 말았다.

드득.

남자는 옷 소매에 박음질 되어 있던 아주 가느다란 쇳조각으로 조금씩 밧줄을 잘라가며 눈을 번뜩였다.

‘기회를 봐서 탈출한다. 기회가 보이기 전까진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도록 하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깔끔하게 정리한 순간.

[ 끄으윽! 아파! 아파아아! 엄마! 엄마아악! ]

“…!”

꽤 떨어진 유리방에서 정령 아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이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크게 부풀어 있었다. 다른 방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장난꾸러기지만 제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게 정령이다. 순수한 만큼 동족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의 방 쪽으로 다가왔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과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 어머니.. ]

[ 엄마, 엄마 애니가 아파요. ]

[ … ]

노래와도 같은 정령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울려 퍼졌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꾸읏, 꾸으윽! ]

얼굴이 제 몸보다 커진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말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남자는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부릅뜬 눈으로 잔혹한 장면을 눈동자에 새겼다.

[ 엄..마… ]

아이는 그 말을 끝으로.

파앙!

터져버리고 말았다. 인간의 피와 다른 파란빛의 액체가 유리 벽을 따라 흘러내렸다. 정령은 죽어도 자연으로 돌아가 언젠가 태어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정령들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방에 떨어진 액체 한 방울까지 전부 담아놔! 정령의 부산물은 전부 쓸모 있는 물건이니까.”

마족이 목소리 높여 말하자 대기하고 있던 조수들이 방진복을 갖춰 입고 유리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령 아이들은 몸을 웅크린 채 제 친구가 유리병 따위에 옮겨 담기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어딘가에 갇혀 구슬피 울고 있는 제 엄마를 찾는 것뿐이었다.

으득.

남자는 이를 갈며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장면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새겼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이번 실험은 멜론이 담당이었지? 이번 실험체는 폐기 되었다고 전해주고, 새로운 실험체를 배정해줄 테니 용량을 더 줄이라고 전해줘.”

정령들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끔찍한 말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당연시 여겼다. 마왕의 땅이란 그런 곳이었다.

***

열 개의 무리 중 가장 선두의 무리를 이끄는 릴리가 정돈된 길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런 곳에 길이 있을 줄이야.”

“그러게요.”

릴리의 비서 모니카도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 오빠는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직접 와봤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어디선가 정보를 얻었다거나…”

“카르디샨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두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느려지면 뒤에 있는 무리가 모두 발걸음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제일 앞장서서 걷는다는 건 위협을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말과 같았다.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며 앞서 나가던 두 사람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릴리는 뒤따라오는 8명의 조직원에게 손을 들어 보여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수풀에 숨어 수상한 장면을 살펴보았다.

“분명 리안 오빠는 폐가만 있다고 했었는데…”

두 사람의 시선 끝에 자리한 건 허리춤에 검을 찬 남자가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 서서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폐허 아니지?”

“네, 딱 봐도 누군가 사용하는 시설 같아요.”

릴리는 조용히 몸을 뒤로 뺀 후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노아쪽에 눈앞에서 본 장면을 말해주었다.

“폐가가 아니었다고?”

리안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가 이내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고민에 잠겼다.

‘분명 원작에선 폐허로 나왔었는데…’

노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 만큼 원작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건과 관계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란 말이었지, 지형 건물에 영향을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지금은 다른 길을 찾는 게 급선무야.’

리안은 곧바로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건물은 폐허가 아니었지만 길은 원작과 똑같이 존재하니, 원작에 나왔던 샛길도 분명 존재할 거야. 그 길을 통해 빙 둘러 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샛길이 있는 곳을 추정해냈다.

“노아 우리 그럼 예정을 바꿔서 새로운 길로 -…”

리안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에.

[ 꺄아아악! ]

[ 안돼! 막아! ]

치지직!

통신구 너머에서 릴리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뒤이어 통신이 뚝 끊어졌다. 노아와 리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아는 곧바로 앞에서 두 번째 무리를 이끄는 네로에게 연락했다.

[ 알았어! 바로 가볼게! ]

네로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한 후 곧바로 통신을 끊었다. 노아와 리안은 시선을 교환했다.

“최대한 빨리 선두로 가자!”

“그래, 서두르는 게 좋겠어.”

무리에 포함된 조직원들은 모두 불만 없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모두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리안이나 노아에 비해 훨씬 느릴 터라 발목만 붙잡을 터다. 그렇다고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빠르게 눈치채 리안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자세를 잡고 있는 노아에게 말했다.

“노아 네가 먼저 출발해. 난 사람들을 챙겨서 앞으로 갈게.”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이지.”

리안이 씩 웃어 보이며 말하자 굳어있던 노아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풀어졌다.

“그럼 뒤를 부탁할게!”

“응.”

리안은 곧바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하고 있는 다른 무리를 발견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화살이 쏘아지는 것처럼 빠르게 달려온 노아가 잠시 대기하란 명령을 내린 후 뛰어갔다고 말했다. 리안은 사정을 설명한 후 무리를 합쳤다.

‘노아와 릴리라면 괜찮을 거야. 난 조직원들을 모아서 샛길 쪽으로 빠지는 데 집중하자.’

리안은 발을 바쁘게 움직여 앞서 나가고 있던 5개의 팀과 추가로 합류했다. 앞으로 합류해야 하는 팀이 세 개쯤 남았을 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없어.’

무리끼리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채 걷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슬슬 다음 무리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

리안은 굳은 얼굴로 지금까지 모은 무리와 함께 샛길 쪽으로 향했다.

‘우선 지금까지 모은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고 -…’

막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우웅!

“…!”

“허억!”

“적인가..!”

“엄마..”

그들의 앞에 새카만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마법진 위로 무언가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 크,에에엑! ]

마치 몬스터나 인간 따위가 녹아내린 것처럼 생긴 생물이 철퍽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저, 저게 뭐야!?”

“끔찍해..”

“다들 뒤로 물러서!”

다들 비명을 내지르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에 비해 리안은 표정 변화 없이 마검을 소환했다.

‘음…’

리안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끔찍하게 생겼으면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는 거지?’

[ 모자이크? 저걸 모자이크라고 하나? 뿌옇게 보여서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군. ]

‘어어? 너한테도 그렇게 보여?’

리안의 피를 너무 많이 빨아먹은 탓일까? 마검은 개그 필터를 반쯤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리안과 떨어지면 사라질 능력이었다.

그 말은 곧, 개그 필터 사용자가 두 명이라는 끔찍한 말과 같았다.

[ 키에엑! ]

괴물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자.

치이익.

놈의 몸에서 흘러내린 액체가 땅을 녹이기 시작했다. 꽤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리안은 딱히 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썩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으..! 기분 나빠…!”

모자이크 처리된 무언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어 오자 리안은 식겁한 표정으로 마검을 냅다 던졌다.

[ 어엇?! 가,갑자기 그러면…. 에잇! ]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맥없이 떨어지긴 싫었는지 마검이 급하게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려 멋들어지게 회전하더니 괴물에 몸 한가운데에 푹하고 꽂혔다.

[ 키에에엑! ]

촤아아악!

괴물에게서 검은색 핏물로 추정되는 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마검이 비명을 질렀다.

[ 우웩! 맛없어 끔찍해! 기분 나빠! 파트너어 살려줘! ]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마검이 우는 소리를 내며 몸을 들썩거렸다. 전이었다면 주먹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었겠지만, 머릿속에 미소녀 마검짱의 모습이 남아있던 탓에 순순히 다가가 마검을 구해주었다.

[ 더럽혀졌어… ]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워오는지 언제나 궁금한 리안이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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