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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5

   크라슈는 아닉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해했어.”

     

   그의 머릿속은 지금 밤을 훔칠 생각으로 팽팽 돌고 있었으나, 겉보기에는 그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 영악한 놈, 갈수록 연기만 늘어서는. 또 뭔 말도 안 되는 걸 떠올린 게냐? ]

     

   유일하게 크림슨가든만이 크라슈가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고, 핀잔을 줬다.

     

   크라슈는 밤의 신의 묘지에 가야 하는 이유와는 별개로 황색 마탑이 왜 의뢰했는지도 이해했다.

     

   침식사가 유적에서 농성하면 황색 마탑으로서는 손쓰기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 힘을 빌리자니 이래저래 이권 다툼이 거슬린다.

     

   그러니 차라리 아예 의뢰를 모으고 있는 라헬른 아카데미라면 이권 다툼 없이 소정의 보상만으로 해결 가능하니 냉큼 의뢰한 것이다.

   하여튼 마법사라는 것들은 영악한 놈들이 많았다.

     

   “다 봤냐?”

     

   크라슈는 하링 쪽을 보며 묻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졌다.

   크라슈는 의뢰서를 다시 엘핀에게 넘겨주었다.

     

   “그럼 여관에 가서 짐만 풀고 바로 출발할게. 준비된 여관 쪽에 유적까지 길 안내해줄 분이 있거든.”

     

   유적까지의 거리는 꽤 된다.

   적어도 일주일은 넘게 도보로 이동해야겠지.

     

   사막 지대에 익숙지 않은 녀석들이니 길 안내가 있으면 수월했다.

     

   아닉스가 앞서 걸어가자 크라슈는 어느새 자기 옆에 따라 걷고 있는 하링을 보았다.

   다른 녀석들은 하링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안 보이니 그나마 동기 옆이 편한 모양이다.

     

   ‘이 녀석이 옆에 있으면 괜히 비앙카가 생각난단 말이지.’

     

   생김새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둘 다 무표정이라서 그런가.

   이렇게 보니 비슷한 녀석들끼리 묶인 모양이다.

     

   ‘데브람이 대추야자로 만든 간식이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돌아가기 전에 비앙카에게 하나 마법 배송으로 보내 놓아야겠다.

   단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 좋아하며 먹겠지.

     

   [ 또 약혼녀 생각이냐? ]

     

   이 녀석은 남의 속 좀 그만 읽었으면 좋겠다.

     

     

   * * *

     

     

   그 뒤 크라슈는 얼마 안 가 데브람의 여관 중 하나에 도착했다.

     

   여관은 귀족들이 쓰기에도 불편함 없는 여관이었다.

   황색 마탑이 지원한다는 말은 사실이겠지.

     

   아닉스는 길 안내를 부탁받은 이와 만난 뒤 사막을 넘기 위해 여관에서 준비한 음식이나 여러 가지 준비물을 챙겼다.

     

   “이야, 그라이자 가문은 저희 황색 마탑에서도 유명한데. 만나 뵙게 된다니 영광입니다.”

   “저희야말로 황색 마탑의 적극적인 도움에 감사드려야죠.”

     

   아닉스와 길 안내 마법사는 서로 친분을 만들며 하하 호호했다.

   그 꼴을 보고 있으니 크라슈는 아닉스 녀석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저놈, 길 안내 마법사뿐만 아니라 자기 단원들에게도 똑같이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내를 숨기고 있네.’

     

   아닉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크라슈 눈에는 아닉스의 가식적인 웃음이 훤히 보였다.

     

   ‘한결같은 놈.’

     

   다른 건 몰라도 저 웃음만큼은 절대 좋게는 못 보겠다.

   그러는 사이 준비가 다 끝났는지 아닉스가 이쪽으로 왔다.

     

   “다들 출발하자.”

     

   그렇게 우리는 밤의 신의 묘지를 향해 사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터졌냐?

     

   아니, 딱히 별일 없었다.

     

   첫째 날, 둘째 날, 그리고 셋째 날까지.

   데브람의 성벽 밖인 사막 지대를 크라슈는 별문제 없이 지났다.

     

   무법지대인 만큼 중간중간 세계 침식이 자주 발생하기는 했으나.

     

   세계 침식이 익숙하지 않은 2기생들도 아니고 훈련을 통과한 뒤, 무려 6개월간 실습을 해온 1기생들이다.

     

   그들도 1년 동안 아카데미 생활하며 세계 침식에 많이 익숙해졌다.

   덕분에 크라슈가 딱히 나설 것도 없이 자기들끼리도 척척 잘했다.

     

   ‘아마 내 기억으로 이 녀석들은 원래도 호흡을 맞춘 녀석들이었지.’

     

   아닉스와 같은 삼걸 중 한 명인 엘핀의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스타론 출신 일곱 명은 칠인방이라고 불릴 만큼 붙어 다닌 녀석들이다.

     

   원래도 가문끼리 사이가 좋고, 세계 침식도 함께 막는 가문이니 아무래도 호흡이 잘 맞았다.

   거기에 아닉스가 눈여겨보고 데려온 다른 녀석들도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맞았다.

     

   그래서일까.

   그런 이들 중에서 붕 뜬 것은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한 명은 크라슈고, 다른 한 명은 역시 후에 독봉이 될 하링이었다.

     

   크라슈의 경우.

   크라슈가 뭐할 것도 없이 다른 이들이 너도나도 그의 호감을 따보려고, 크라슈 대신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칠인방의 경우에는 아주 난리이었다.

   같은 스타론 출신이니 발하임의 이름값이 얼마나 높은지 알기 때문이다.

     

   ‘별의 성지에서는 날 뒤에서 뜯기 바쁘던 녀석들이.’

     

   반푼이라는 타이틀을 벗자마자 이 꼴이라 코웃음이 다 나왔다.

     

   하지만 크라슈도 인제 와서 4성급 세계 침식 정도야 별 관심 없었다.

   세계 침식은 마경에서 질리도록 다 흡수했다.

     

   밤을 얻게 된다면 모를까, 지금은 세계 침식을 더 흡수할 필요 없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니들 알아서 하거라 하고 대충 물러서 줬다.

     

   반면에 하링은 그냥 외딴섬이었다.

   아무도 딱히 뭘 시키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크라슈는 하링과 함께 뒤에서 쭉 지켜보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게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을 그러고 있으려니.

     

   크라슈도 하링과 대충 말을 텄다.

     

   “하나 먹을래?”

     

   크라슈가 챙겨온 건빵 하나를 건네자 하링은 대답 없이 그걸 받았다.

   그러고는 작은 입에 넣고 크라슈랑 같이 우물거리며 세계 침식에 맞서는 쌍아단을 구경했다.

     

   처음 며칠은 건빵을 건네줘도 딱히 안 먹던 하링이었지만 이제 건빵을 줘도 먹는 걸 보고 있으니 먹을 걸로 조금 친해진 길고양이 같았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한 탓일까.

   그렇게 쓸데없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던 날.

     

   “다 왔습니다!”

     

   드디어 길 안내 마법사가 유적의 도착을 알려왔다.

     

   쌍아단은 멈춰 선 채 유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본다 한들 보이는 거라곤 죄다 모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이 밤의 신의 묘지는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니까 말이다.

     

   시간은 아직 한낮.

   그러니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좀 걸릴 듯싶으니까, 저기 바위 그늘에서 쉬고 있자.”

     

   그렇게 쌍아단은 때아닌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바위 그늘에 가려지자 좀 살만했다.

     

   게다가 마법사가 있는 만큼 모래도 걱정이 없었다.

   방어 마법을 둥글게 쳐두면 모래가 날려 들어오지 않으니 말이다.

     

   덕분에 꽤나 쾌적한 휴식 시간이 이어졌다.

   하링과 크라슈는 계속 쉬었으니 휴식이라 할만한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저, 크라슈 님.”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물병을 들고 있는 엘핀이 있었다.

     

   이마가 드러난 검은색 머리칼과 장신의 키.

   어딘가 까치가 떠오르는 옷차림인 그녀였다.

   

   아닉스 그라이자

   발락 호그마

   

   이 둘과 함께 같이 스타론의 삼걸이라 불리는 여성.

   엘핀 에밀리아.

   

   그녀가 물병을 건네자 크라슈가 그걸 받았다.

     

   보아하니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앉아.”

     

   크라슈의 말에 엘핀은 치마를 정리하며 앉았다.

   그사이, 하링 녀석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슥 물러났다.

     

   다시 봐도 길고양이 같은 녀석이었다.

     

   “아닉스 님과 예전에 있으셨던 일 기억나십니까?”

     

   예전이라면 별의 성지 때 이야기일 것이다.

   그보다 더한 기억이 있는 크라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후로 크라슈 님 덕분에 아닉스 님은 꽤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일은 아닉스 님도 여러모로 미안하게 생각하십니다.”

   “내 눈에는 그대로인데.”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만도 합니다.”

     

   아닉스는 지금도 단원들과 가식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

   저놈은 좀처럼 자기 속내를 안 드러내니 말이다.

     

   “그래도 달라지신 건 사실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하셨으니까요.”

     

   아닉스와 같이 삼걸이라 불리는 엘핀은 아닉스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이다.

   그런 만큼 그녀야말로 아닉스의 변화에 가장 예민했다.

     

   “그리고 그건 전부 크라슈 님 덕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저놈에게 영향 줄 게 뭐가 있냐.”

   “아닉스 님은 샬롯 님에게 깨진 후, 갈피를 잃으셨습니다.”

     

   샬롯은 너무도 밝게 빛나는 별이다.

   너무 강한 별은 옆에 있는 별의 빛마저 억눌러 없애 버린다.

     

   그러니 아닉스는 샬롯이라는 별 앞에 자신을 잃었다.

     

   “샬롯 님을 동경하는 한편, 미워하기도 하셨겠죠. 천재가 무엇인지 보고 말았으니까요.”

     

   샬롯의 재능은 스타론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었다.

   분명 최고의 검이지만 옆에 있는 이를 상처 입히고 만다.

     

   크라슈 또한 한때 그 검에 상처 입었던 이이기에 이해는 했다.

     

   “하지만 별의 성지에서 크라슈 님을 만난 그 날, 아닉스 님은 재능이 아닌 다른 걸 엿보셨습니다.”

   “나는 샬롯처럼 별이 아니라 보기 쉽다 이 소리냐?”

     

   크라슈의 사람 놀리냐는 반응에도 엘핀은 옅게 웃음을 흘렸다.

     

   “아뇨. 샬롯 님과는 전혀 다른 별이죠. 샬롯 님은 태양입니다. 두 눈을 뜨고 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타오르는 태양.”

     

   엘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반면에 태양만큼 밝게 빛나면서도 먼 거리에 있기에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추성(天樞星)이야말로 크라슈 님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에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천추성.

   엘핀은 크라슈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별이라 말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살성의 첫 번째 별이 다름 아닌 천추성이었다.

     

   “아닉스 님도 그런 천추성을 보고, 길을 잡으셨습니다. 어쩌면 나도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감정을 마음속에 무심코 품게 되신 겁니다.”

   “내가 한 건 그 녀석 꼴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대 패려던 것뿐이야.”

   “원래 무엇이든 해석하기 나름이라지 않습니까. 선대가 남긴 글을 후대가 해석을 덧붙이는 것처럼 말이죠.”

     

   이 녀석 의외로 달변가였나.

   엘핀은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하고픈 말은 아닉스 님을 옛날 일만으로 평가해주시지는 말았으면 해서 하는 말입니다.”

   “내가 아닉스에게 뭐라 했냐?”

   “아뇨. 단지, 크라슈 님은 아닉스 님만 오시면 눈썹이 이렇게 되십니다.”

     

   엘핀은 크라슈의 얼굴을 보여주듯 자기 눈썹을 손으로 구겼다.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

     

   [ 깔깔, 똑같이 잘하는구나. ]

     

   크림슨가든의 말은 적당히 무시했다.

     

   “그저 조금 제 말을 고려해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엘핀은 고개를 숙인 뒤, 아닉스 쪽으로 떠나갔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하 복은 있는 아닉스였다.

     

   ‘남이 유심히 보고 있던 걸 정확히 찔러 들어오긴.’

     

   크라슈는 혀를 차며 세운 무릎에 턱을 기대었다.

   하늘 위, 해가 조금씩 저물기 시작한 때였다.

     

     

   * * *

     

     

   하늘에 별이 촘촘히 뜬 밤이 찾아왔다.

   커다란 보름달이 밤하늘에 드리운 때.

     

   드디어 사막 지대에 잊힌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끝도 없이 쌓여 있던 모래들이 일제히 사라지며 거대한 유적의 건축물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움직이자.”

     

   아닉스의 말을 따라 쉬고 있던 쌍아단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막에 가려졌던 장소인 만큼, 모래의 경사가 져 있었다.

     

   그 경사 부분을 따라 내려가자 유적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그럼 전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길 안내 마법사가 안내하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순전히 쌍아단의 능력에 달렸다.

     

   “마란, 부탁해.”

   “예!”

     

   아닉스의 부탁을 듣고, 정찰 비술을 지닌 이가 선두에 섰다.

   그걸 시작으로 쌍아단은 전원 유적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유적 내부는 돌과 이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명 방금까지 모래에 휩싸여 있던 곳이라고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내부에는 모래가 하나도 없었다.

     

   “앞에 아무것도 없네요. 전진하죠.”

     

   정찰병이 앞으로 나서는 동안 크라슈는 제 육감을 주변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유적은 사실상 미로에 가까웠다.

     

   그와 동시에 여러 기척이 미로 전역에서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기는.’

     

   여기저기서 침식종들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 네 반경이 너무 늘어나 버린 거다. 애들 탓을 해서 쓰냐? ]

   “나도 일단 나이로는 같은데.”

   [ 이제는 겉모습도 아니다. 쯧쯧, 예전에는 귀여움이라도 있었지. 이제는 징그럽게 생겨서는. ]

     

   가면 갈수록 취급이 박하다.

   그 순간 유적 전체가 쿠웅 하니 울려 퍼졌다.

     

   “마란, 유적 상태는?”

   “금방 찾겠습니다!”

     

   아닉스가 마란을 돌아보자 그의 얼굴 또한 당황했다.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서둘러 파악 못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진정해. 천천히 해도 되니까.”

     

   아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천히 오러를 불러일으켰다.

   만약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사이, 크라슈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제 육감이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아래.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요 이르마는 침식사.’

     

   동시에 그의 눈이 스산하게 떠졌다.

   일이 쉽게 풀리길 기대했더니 아무래도 쉽게 풀리긴 그른 모양이다.

     

   우리가 유적에 들어왔을 때처럼 저쪽도 이쪽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 종이 누군가 했더니 달토끼 놈의 종이었느냐? ]

     

   그리고 크림슨가든 또한 아래의 기척을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크라슈의 눈에는 그것과 별개로 의문이 서렸다.

     

   크라슈는 월묘가 묘지에 침식사를 보내 놓은 이유는 그냥 묘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기척을 보아하니 이건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건 밤의 신의 힘을 빼가는 중인 거 같은데.’

     

   후에 월묘는 밤의 신의 힘을 이용했지.

   밤의 신의 힘을 빼내는 식의 방법은 쓰지 않았다.

     

   잘못하면 밤의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전(罰錢)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네.’

     

   크라슈는 기막힌 반응을 보였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월묘는 침식사가 일부러 밤의 신의 힘을 빼내도록 유도 시켰다.

     

   설령 실수해서 벌전을 당한다 해도 벌전을 당하는 건 침식사지 자신이 아니니 말이다.

     

   ‘침식사가 밤의 신의 힘을 빼내는 데 성공하면 자기가 냉큼 와서 먹고,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침식사를 버린 패로 쓴 거네.’

     

   그리고 그건 실패로 이어졌을 것이다.

   월묘가 밤의 신의 힘을 빼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탓이겠지.

     

   ‘이러니까 내가 침식사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지.’

     

   이놈은 밤의 신의 노여움을 사 벌전에 당해 죽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결국 실패할 일이란 건 맞는데.’

     

   이쪽이 목표로 한 걸 건드리는 건 마음에 안 든다.

   그 순간 아래의 기척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야, 아닉스.”

     

   그러니 크라슈는 경고할 겸 아닉스를 불렀다.

   아닉스가 돌아본 순간 크라슈가 짧게 말하였다.

     

   “온다.”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정찰 담당 마란이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무언가 아래에서 옵니다!”

     

   늦다. 늦어.

     

   “모두 당장 여기서 멀어진다!”

     

   아닉스의 지시가 떨어졌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즉시 바닥에서 멀어지려는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바닥이 폭발했다.

   

   폭발한 바닥과 함께 잔해가 휘날렸다.

   휘날린 잔해 속.

     

   꾸드드드득!

     

   벽에서 돋아난 나무들이 일제히 솟구치며 바닥을 메꿈과 함께 폭발에 휘말렸던 이들을 향해 나무가 솟아 들었다.

     

   아닉스가 속한 그라이자 가문의 비기인 목천도식이었다.

     

   “모두 잡아!”

     

   아닉스가 외친 그 순간 쌍아단 인원이 빠르게 나무를 발판 삼아 추락을 면했다.

   그들도 지난날, 세계 침식과 맞서 온 만큼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한 것이다.

     

   “모두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무사합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답을 들으며 아닉스의 눈이 좁혀졌다.

   쌍아단 소속인 마란의 기척 감지는 그를 스타론의 칠인방으로 불리게 할 만큼 상당히 넓다.

     

   아닉스도 그런 마란을 꽤나 신용하고 있었지만, 그의 기척 감지보다도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마란보다 훨씬 빨랐어.’

     

   크라슈는 바닥의 붕괴를 이미 진작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란조차 한참 늦게 감지한 상황이다.

     

   그 말은 즉, 크라슈는 마란보다도 훨씬 넓은 기척 감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만한 전투 능력을 지녔는데. 마란보다도 더 넓은 감지 능력이라고.’

     

   아닉스는 입학 시험에서 크라슈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런 만큼 그곳에서 크라슈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그건 피를 깎는 노력을 넘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닉스는 주먹을 꽈악 쥐었었다.

     

   ‘발하임.’

     

   그 이름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벽에서 솟아난 나무가지에 서있던 아닉스의 눈이 조용히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닉스 님!”

     

   멀리서 엘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닉스가 만들어 놓은 나무를 발판 삼아 이쪽으로 다급히 다가왔다.

     

   “크라슈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아닉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러자 아닉스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없다.

   크라슈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닉스의 시선이 서둘러 아래로 향했다.

   무너져 흩날리고 있는 잔해 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렁텅이였다.

     

   설마 추락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크라슈는 분명히 바닥이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여기에 없단 건.

     

   그 순간 아닉스는 누군가 한 명 더 없음을 깨달았다.

     

   “……엘핀, 하링은?”

   “아?”

     

   엘핀도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국파이기 이전에 같은 쌍아단 인원이 아니라 확인이 늦었다.

     

   하링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설마 크라슈 님은…….”

   “하링을 구하러 내려간 걸거야.”

     

   아닉스가 짧게 혀를 찼다.

   크라슈는 그렇다 쳐도 하링을 챙기지 못한 건 자신의 실수였다.

     

   아무리 특급과이였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2기생이었다.

   돌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는데 크라슈는 그걸 알고, 대처해준 걸지도 모른다.

     

   아닉스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쌍아단은 자신의 단이다.

   거기에서 벌어진 일은 오롯이 자신의 책임과 이어진다.

     

   “후우.”

     

   한숨을 내쉰 아닉스의 눈이 새까만 공간 아래로 향했다.

     

   “모두 정비하고 아래로 내려간다.”

     

   당장 2기생들을 찾으러 가야 한다.

     

     

   * * *

     

     

   한참 떨어진 공간 아래.

   크라슈가 벽들을 박차며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바닥이 폭발하자마자 아닉스가 반응하는 걸 보고, 크라슈는 망설임 없이 아래로 향했다.

   그야, 밤의 신의 묘지의 중심부에 혼자 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냉큼 독단으로 움직이려 했더니.

   크라슈는 뜻밖의 인물이 따라왔길래 뒤를 돌아보았다.

     

   “넌 왜 따라 내려왔냐?”

     

   크라슈를 따라 바닥에 착지한 인물은 다름 아닌 크라슈와 같은 2기생인 하링 라그렌이었다.

   설마하니 그녀가 같이 내려올 줄은 몰랐던 크라슈는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하링은 자신의 목 뒤를 매만진 채 시선을 피했다.

   

   “……추락하는 거 같길래.”

   

   

   

     

   하링은 아닉스의 예상과 달리 추락한 게 아니었다.

   크라슈가 무너진 바닥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자 그걸 보고, 그가 추락한다고 판단해 뒤따라 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크라슈가 벽들을 가볍게 박차며 속도를 줄이는 걸 보고는 그가 추락하는 게 아니란 걸 눈치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링의 말을 들은 크라슈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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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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