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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116 – 선배들의 공포>

     

    의무실을 가득 채운 2학년들의 모습에 벨로카시오는 헛웃음을 지었다.

    침상에 누운 환자들의 진료명찰을 살펴보니 <동상>, <수족냉증> 따위가 적혀있다.

    명찰을 손가락을 손으로 툭 치자 나타나는 뒷면에 적힌 글자, 환자명 <페이퍼콤퍼니>.

    나름 빨간이빨버섯 불법양식 경영자협회의 바지사장이랍시고 점찍어둔 녀석이건만, 동료들을 부리는 솜씨와 다르게 제대로 성공한 계획이 하나도 없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하나같이 한심한 꼬락서니를 하고 있군.”

    “우리 잘못이 아니다… 저놈들이 강해도 너무 강했단 말이다! 크윽. 어떻게 된 녀석들이 상급반과 하급반의 결속이 그리도 단단한지…!”

    “상급반이 하급반을 도와?”

    “틀림없어. 우린 처음에 하급반을 노렸어. 그런데 갑자기 상급반 학생이 끼어들어서 물바다를 모조리 얼려버렸다고!”

     

    페이퍼콤퍼니도 딴에는 억울했다.

    움직이는 물체에 마법을 거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그것을 고정시키는 일은 술사의 마법제어력에 큰 영향력을 받는다.

    좌표를 고정시키고, 변동값을 찍어 누르고, 흩어지려는 힘을 계속해서 응집시킨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들어가는 마나와 정신력이 더욱 커지고 계산량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한 번에 두께가 5cm가 넘는 유체를 일거에 얼리고 20분이 넘게 유지한 마력이라고. 그것도 범위 너머로 매번 빙판길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벨로카시오의 눈에도 처음으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과연 상급반은 상급반이군. 1학년 주제에 그만한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다니.”

     

    마법은 지능과 친화력과의 싸움이다.

    지능이 높으면 술식계산으로 들어가는 마나량과 정신력을 경감시킬 수 있다.

    그러고도 미처 다 계산하지 못한 술식은 마나에 의지를 실어 전개하면 친화력의 힘으로 마나 스스로 형태를 갖추도록 유도할 수 있다.

    머리가 정말 좋거나 속성친화력이 매우 뛰어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마법사가 되려면 죽을 각오로 악착같이 해당속성이 극에 달한 자연환경에 찾아가서 다년간 생존과 적응훈련을 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그냥 순순히 공부를 해서 술식을 배우고, 조금이라도 노력으로 계산량을 늘리는 수밖에.

    하지만 겨우 열흘 남짓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1학년이 술식을 배워봤자 뭘 얼마나 배웠겠는가.

    이건 순수한 친화력의 힘이라고 봐야 했다.

     

    “고생이 많았군.”

     

    벨로카시오는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무능은 죄이지만 천재지변에 휘말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 이해해주는 건가…?”

    “이래보여도 나는 꽤 합리적인 성격이야. 비이성적인 투정이나 부리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고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어.”

    “벨로카시오…! 늘 뒤에서 일만 시키고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씨 하나만큼은 따뜻한 녀석이었구나!”

     

    벨로카시오는 접근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번 빙판사태로 확실해졌다.

    1학년 하급반 학생들은 언제든 가지고 놀 수 있다.

    거슬리는 것은 상급반.

    그 중에서도 페이퍼콤퍼니의 작전을 결정적으로 방해했던 학생 두 명이다.

     

    “A그룹수석 오크노디. 북부대공녀 아이린. 향후는 이 두 명에게 집중한다.”

    “오크노디…! 그 영악한 계집 때문에 나는 열 살 짜리 애를 진심으로 때리는 쓰레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 절대로 용서 못 해!!”

    “좋아. 그 분노를 잊지 마라.”

     

    공교롭게도 벨로카시오의 계약사기를 방해한 것 또한 오크노디.

    1학년을 수족처럼 부리려면 오크노디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부터 오크노디를 조사해라. 은밀하게. 가급적 들키지 않도록. 가능하겠나?”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볼게!”

     

    페이퍼콤퍼니는 굳게 의지를 다졌다.

     

     

    * *

     

     

    병실에서 나온 뒤, 페이퍼콤퍼니는 불법양식 동료 중 몇 명의 이탈선언을 들었다.

     

    “상급반 녀석들은 학년을 불문하고 너무 강해.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어.”

    “복수고 나발이고 헛짓거리 하느라 강의를 따라갈 시간이 부족해. 난 이쯤에서 관두겠어.”

    “양호실까지 도망치는 동안 발에 걸었던 윈드워커 마법이 시시각각 줄어들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그런 끔찍한 경험은 두 번 다시 사양이야.”

     

    페이퍼콤퍼니는 협회동료들의 이탈을 비겁하다고 욕할 수 없었다.

    일순간에 배와 신발 밑창이 얼어붙을 때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거대한 파도처럼 솟구친 마나가 물바다를 얼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혹한을 만들었다.

     

    쩌적 쩌적

     

    걸음마다 올라오는 냉기에 양말은 살갗이 바닥에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기에 급급했고, 냉기가 발까지 얼리려는 것을 막고자 있는 마력 없는 마력을 전부 쥐어짜내야만 했다.

    그마저도 탈출범위에 도달했다 싶으면 제 등굣길 가는 길에 거듭 마법을 펼치는 아이린 탓에 눈물을 머금고 계속 걸어야만 했다.

     

    -안돼… 마나가 다 떨어졌어…!

    -크흐흑! 발이 너무 차가워!

    -손으로 땅 짚지 마! 바닥에 손이 붙으면 그땐 어떡하려고 그래!

     

    애초에 그들은 빨간이빨버섯 불법양식을 해서라도 마나의 절대량을 늘리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처지에 속한 열등생들.

    절대적인 마나량을 요구하는 빙판 위에서 마나가 다 떨어지고 동상에 시달리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차라리 잘됐어. 의리 없는 녀석들은 다 떨어져나갔지만 우리는 달라.”

     

    페이퍼콤파니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에 남은 동료를 보며 말했다.

    2학년 기사학부 <박스 차우더>.

    2학년 마법학부 <페이퍼콤파니>.

    이제는 이 둘이서 복수를 이어나가야 한다.

     

    “박스. 너 학점은 괜찮아?”

    “괜찮다.”

     

    박스 차우더는 말했다.

     

    “강의를 하나 포기하면.”

    “박스…! 그건 너무 미친 짓이야!”

    “이번 일로 느꼈다. 무기술을 연마해도, 편법으로 마나량을 늘리는 수단으로도 결국 진정한 강자 앞에서는 속수무책임을.”

     

    이제 와서 강의 하나를 더 듣는다고 늘어날 실력이 아니었다.

     

    “강자를 이기려면 강자의 약점을 찾아 공략하는 사냥꾼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번 작전에 동참하는 것은 그 예행연습의 일환이다.”

     

    자신의 약함을 통감했지만 무너지고 좌잘하는 대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다.

    박스 차우더의 과감한 결단력에 페이퍼콤파니 또한 뜨거운 열의를 품었다.

     

    “박스. 꼭 성공하자!”

     

    2학년 열등생 남학생은 조용히 투지를 끌어올렸다.

     

     

    * *

     

     

    뒷조사의 시작은 정보수집.

    페이퍼콤파니는 얼굴이 팔리지 않은 다른 2학년생들에게 간식거리를 주며 말했다.

     

    “이거 줄 테니까 1학년들한테 가서 오크노디나 아이린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냐고 물어봐주면 안 되냐?”

    “왜. 애 또 패려고?”

    “…사과하려고 그래!”

     

    대부분의 학생은 쓰레기의 변명이라고 생각하며 코웃음 쳤지만 몇몇 학생은 기회를 주었다.

     

    “불의한 과거를 뉘우칠 줄 아는 것도 용기의 일종이지.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청산할 첫 걸음을 도와주마. 힘내라, 페이퍼콤파니.”

    “고, 고맙다…”

     

    잘생긴 얼굴에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 뛰어난 성적으로 인기가 많은 2학년 하급반의 인재 <안테노르>는 금방 그가 원하는 정보를 구해왔다.

     

    “평판이 꽤 좋은 학생이군. 오크노디라는 아이. 열 살 남짓한 주제에 최연소 수석답게 달리기와 체력, 궁술, 검술, 상술, 필기속도에서 두각을 발휘했다.”

    “하. 진짜 괴물같네… 마법은?”

    “아직까지는 크게 마법적인 재능을 보인 적은 없군. 그쪽 관련으로 선물을 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어.”

     

    선물은 공격으로 돌려줄 작정이지만 페이퍼콤파니는 애써 웃는 낯으로 연기했다.

     

    “고마워. 조금이지만 참고가 됐어.”

    “아. 그래도 냉기저항 관련으로 선물로 주는 건 가급적 피해라.”

    “왜?”

    “듣기로는 그 아이린이 빙결마법을 사용할 때, 바로 지척에서 배후에 매달려 이동한 적이 있다더군.”

     

    자신이 약한 건 알고 있다.

    천재들이 잘난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렬한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은 흔치 않았다.

     

    떨그렁.

     

    “페이퍼콤퍼니? 왜 그러냐. 갑자기 들고 있던 짐을 떨어뜨리고. 혹시 괜히 허세 부린다고 의료실에서 너무 일찍 나온 거 아니냐?”

    “그, 그럴지도 모르겠어.”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페이퍼콤퍼니.

    그러나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진정시킬 수 있는 고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질투 때문이었다.

    비할 수 없는 재능에 느끼는 거대한 질투가 그가 두통을 느끼는 이유였다.

     

    ‘이쪽은 두 발로 버티고 서는 것조차도 힘겨워서 의료실 신세를 질 정도로 엄청난 냉기와 침투력을 동반한 빙판마법이었다고.’

     

    오크노디는 자신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그것도 빙결술사의 지척에서 동행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의료실 신세 한 번 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약점이 있을지도 몰라.’

     

    일말의 희망을 품고 정보수집을 이어나가는 페이퍼콤퍼니.

    주말 내내 모은 정보를 취합하고자 접선지에서 박스 차우더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깨달았다.

    박스 차우더의 퀭한 눈과 그 안에서 일렁거리는 절망의 깊이가 자신의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다고.

     

    “무슨 정보를 구했는데 그래?”

    “오크노디의 수강신청표를 구했다.”

    “문제가 있었나?”

     

    박스 차우더는 진지한 얼굴로 화요일 목요일 2교시 <은퇴한 전직용사의 모험기담>을 가리켰다.

     

    “이 강의가 뭐지 알겠나?”

    “처음 보는데.”

    “전대 용사파티에서 만능도적으로 활약했던 세계최강의 도적 <디스트로이어>가 교수를 맡은 강의다.”

    “뭐, 뭐라고?!”

    “수강생은 그가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래로 오크노디 단 한 명. 전대용사에게 선택받은 차세대 용사파티 후보라는 뜻이다.”

     

    세계제일의 교육기관 기프트 아카데미에도 교수들 간에 격의 차이는 존재한다.

    세계에서 기왓돌을 가장 잘 굽는 생산직 교수와 세계에서 사람 모가지를 제일 잘 써는 전투직 교수의 이름값이 같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 그럼 오크노디는…”

    “우리 세대에서 세계제일의 도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재라고 봐야겠지.”

    “자, 잠깐. 잠깐만. 도적은 정보활동도 주특기잖아. 그러면 그 녀석, 설마 우리가 요 며칠간 정보를 캐고 다녔던 것도 알고 있던 거 아냐?!”

     

    박스 차우더의 눈에 공포가 일렁거렸다.

    페이퍼콤퍼니의 손이 덜덜 떨리며 컵에서 물이 흘러넘쳤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 뭐가 있는데!”

    “어느 귀족가에서 암살교육을 받은 현역 암살자라는 소문도 있다.”

     

    페이퍼콤퍼니는 생각했다.

    오늘밤은 침대 대신 옷장에서 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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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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