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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새 학기에는 새로운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학기 정령마도학 강의를 맡게 된 카이뤼삭 교수라고 해요.”

       

        2학기 첫 교시인 정령마도학 시간.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교단 위로 올라오며 인사를 건넸다.

       

        “이게 왜 전필이지?”

       

        아니나 다를까, 뒷자리에 앉은 로즈마리가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린다. 마수와 정령족의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더구나 카이뤼삭 교수는 정령과 계약한 사람. 그의 몸에 깃들어 있는 정령이 로즈마리에겐 눈엣가시일 것이다.

       

        “저는 땅의 하급 정령을 이용하여 나노미터 수준의 소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 관심 있으신 학생은 부담 말고 언제든지 컨택하길 바라요.”

       

       다행히도 카이뤼삭 교수가 지닌 정령의 수준이 낮은 탓에 로즈마리의 정체를 간파하지는 못 하는 듯하다.

       

        반대로 로즈마리는 내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하급 정령이 상급 마수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반대도 성립하는 건 아니니까.

       

        아드득 까드득.

       

        뒤에서 알사탕을 씹어먹는 듯한 소리가 난다. 얼마나 화를 못 삭이면 이를 저렇게까지 갈아대냐.

       

        “교재는 다들 가져왔나요?”

       

        교수의 물음에 학생들은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라버스를 봐서 다들 알겠지만, 이 사람이 쓴 교재로 공부합니다.”

       

        카이뤼삭은 교탁에 있던 분필을 집어 칠판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클라라 하스펠트] 

       

        “클라라 하스펠트는 1학기 여러분 담임을 맡으셨던 클라이스 하스펠트의 친언니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질 겁니다.”

       

        하스펠트라. 영 좋지 않은 성씨가 튀어나왔다.

       

        나는 턱을 괸 채로 이어지는 교수의 말을 경청했다.

       

        “클라라 하스펠트는 제가 지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훌륭한 학자가 되더니, 상급 정령 둘과 덜컥 계약해버렸죠.”

       

        학생들은 자그마한 탄성을 흘렸다. 정령과 계약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심지어 ‘상급’으로 둘이라니.

       

       고위 정령과 계약하려면 사람 본성이 착해야 하고, 마도 지식도 뛰어나야 한다. 여신의 분신체 역할을 도맡는 정령이니만큼 청렴하고 순수한 사람에게만 계약을 허락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출처는 당연 버멜이다.

       

        어쨌건 하스펠트 가문의 이미지가 이미지다 보니 이 집안사람 중에 정령과 계약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형제자매가 쓰레기더라도 혼자서만 선인인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자세한 건 직접 만나 봐야 알겠지.

       

        “그 클라라 하스펠트라는 분은 어디 계시나요?”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안 좋은 일을 당한 모양이다.

       

        짝, 짝.

       

        우울해진 반의 분위기를 바꾸고자 카이뤼삭 교수가 손뼉을 치며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 정령마도가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만 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는 칠판에 엘프어로 ‘1단원 : 정령마도의 이해’라고 적었다. 아무래도 정령마도에 강세를 보이는 곳이 엘프 쪽이다 보니 수업도 엘프어로 진행하려는 모양이다.

       

        “정령마도는 정령을 활용한 마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마도의 한 계통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정령마도라는 계통이 따로 존재했더라면 여신이 내게 준 마도서에도 관련 내용이 적혀있어야 한다. 하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도 중에는 정령마도가 없었다.

       

        “사람과 계약한 정령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도의 효율과 출력을 올려줍니다. 이걸 전문용어로 ‘마도감응능력’이라고 하지요. 감응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어릴 적 남들보다 마법을 빨리 익혔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을 겁니다.”

       

        감응력은 재능의 영역이다.

       

        어떤 사람은 마소를 더 잘 느끼는 체질로 태어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소를 거의 못 느끼는 체질로 일생을 보내야 한다. 마소를 잘 느끼지 못하는 종족 중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금안족이고.

       

        다만 정령과의 교감을 통해 마도 감응력을 높일 수 있다. 이른바 후천적으로 재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많은 학생이 정령과의 계약을 바란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정령과 계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좋은 질문이군요. 일단 정령은 아무하고나 계약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준비된 선인에게만 찾아옵니다. 착하게 살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머리가 좋기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럼 중세 시대에 정령마도사가 많았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그렇죠. 대륙 전체에 여신 신앙이 강했을 때는 그만큼 견실하던 사람도 많았을 테니까요.”

       

        쉽게 말해 경건한 마음으로 마도에 힘쓰는 사람만이 정령의 프러포즈를 받을 자격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금안족도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건가?

       

       뿌득.

       

        아닌가 보네.

       

        수업에 집중하고 있자니 뒤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일부러 지우개를 떨어뜨린 뒤 줍는 척 뒷자리를 쳐다보았다. 로즈마리가 사람 하나 죽일 듯한 기세로 교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차분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흘러나오는 살기만큼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정령과 마수는 서로 상극이니 그럴 수밖에.

       

        아드득 까드득.

       

        …그렇다고 이 수업이 이를 갈 정도로 짜증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

       

       

        아드득, 까드득.

       

        “먹을 만하네.”

       

        담배 냄새를 감추는 데에는 역시 청포도 맛이 최고지.

       

        로즈마리는 하굣길에 올라 황성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선 큰 언니와 종일 붙어있고 싶었지만 ‘공녀’라는 표면적인 신분이 있다 보니 할 일이 많았다.

       

        “후우, 오늘도 힘들었어.”

       

        귀족으로서의 고달픈 업무를 마치고 제 방으로 돌아오자 블랜튼이 따라 들어왔다. 

       

        “로즈마리 님, 던전 생성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시작해 볼까.”

       

        잠들기 전 마지막 업무다.

       

        로즈마리는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고, 아공간에서는 스태프를 꺼냈다. 그러더니 창가에 걸터앉은 채로 은은한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틸레트 아카데미의 북부에 자그마한 던전 하나가 돌연 나타났다.

       

        이것을 아카데미 측에서 발견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그런 것도 있었고, 지난 입학식 때 수백 마리의 아이언 드레이크가 습격했던 사건도 있어서 그러했다.

       

        특히 입학식의 그 사건이 있던 뒤로는 아카데미 뒷산에 대한 원인 조사와 진상규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해당 장소에서 마굴이 출몰하였으니.

       

        “이사장님, 이걸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이사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뭘 어떻게 해? 위험한지 아닌지 대대적으로 조사를 해야지!”

       

        같은 날 새벽, 핫라인으로 급하게 업무 보고를 받은 이사장은 모든 조사 인력을 동원하여 아카데미 뒷산에 새로이 생긴 던전을 수사할 것을 요청했다.

       

        “저런 걸 학교 근처에 둘 수 있겠냐고.”

       

        조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규모나 출몰하는 마수의 종류를 보았을 때 아무래도 하급 던전인 것 같습니다.” 

        “그거 불행 중 다행이군.”

       

        하급 던전이라 하면, 하급 마수만 주로 출몰하는 던전을 일컫는다.

       

        하급 마수는 아카데미 저학년생조차도 쉽게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던전은 공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의 실습장으로 쓰이는 편이었다.

       

        “어떤가, 안전성은 검증된 것 같나?”

        “교수진이 동원하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교무처장의 보고에 이사장은 한시름이라도 놓은 듯 가슴을 쭈욱 쓸어내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수도에 생겨난 거지?”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장 곁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헤를라인 교수도 고개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황실에 뿌리 뻗은 마수가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무슨 이유로 ‘하급’ 던전을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

       

        ‘방심하는 순간에 일을 벌일 작정인가?’

       

        마수가 인간을 여럿 낚기 위해 던전을 미믹처럼 사용하던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건 널리 알려진 방법이었기에 황궁의 마수가 쓸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엉성했다.

       

        ‘목적이 있다면 대체 무엇이냐….’

       

        똑똑.

       

        “이런 시간에 누구인가?”

       

        [이사장님, 1학년인 버멜 호르데라고 합니다. 잠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버멜 호르데라.

       

        이번 연도 입학 석차가 1등이었던 엘프 유학생이다. 비록 2학기 땐 금안족 소녀에게 밀려 2등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기대가 되는 학생이었다.

       

        엘프야 정령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여기서 졸업한다면 좋은 아웃풋을 내지 않을까.

       

        서류 정리를 마친 헤를라인 교수가 이사장실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호르데, 어제는 왜 학교에 안 나왔니? 기숙사 사감님께 물어보니까 통금 시간 후로도 안 들어왔다고 하던데….”

        “죄송해요. 몸이 조금 아팠어요.”

       

        그런 것치고는 쌩쌩해 보였다. 그동안 꾀병을 부리는 아이들을 많이 봐온 헤를라인에게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버멜 정도 되는 모범생이 병을 지어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헤를라인은 별다른 추궁 없이 질문을 바꾸었다.

       

        “이사장실엔 무슨 일이니? 물어볼 일이라도 있어?”

        “저, 그게.”

       

        버멜은 품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자퇴하려고요.”

       

        이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이러는 걸까.

       

        이사장은 버멜이 내민 편지 봉투를 뜯어 읽어보았다. 그의 눈가가 천천히 좁아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흠. 그럴듯한 이유가 있구나.”

       

        로베스피에르는 손끝을 튕겨 자그마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 불꽃은 버멜이 내민 편지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봉투 내용물을 다 태운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버멜에게 말을 건넸다.

       

        “따라오세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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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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