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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게임에서 어린 여자애나 남자애는 보통 예쁘게 그려진다.

        

       그렇다. 남자애도 마찬가지다. 사실 ‘애’를 멋지게 그리는 방법이 얼마 없다. 아무리 멋지게 그려두더라도 어른이 보기에는 그냥 애일 뿐이니까. 초등학생이 ‘너를 지키겠어!’라는 말을 해봐야 귀엽게 보일 뿐이다.

        

       ……그렇다. 초등학생.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는 만 15세다. 이 몸 안에 있는 영혼의 나이를 빼고, 이 몸이 만들어졌을 때의 설정상의 나이를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온 기간에 더했을 때의 나이가 그랬다.

        

       한국이라면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물론 겉보기로는 고등학생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게임에서의 모델링이 여기서도 먹힌 것인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애들한테 바니걸 복장을 입히는 게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인가 싶긴 하지만……

        

       캐릭터가 바니걸 복장을 하고 발육 상태가 지구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자주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여기 캐릭터들은 죄다 1편 기준으로는 그냥 애송이였다.

        

       아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면 카지노에서 우리가 어리다는 것을 다들 한눈에 간파했겠지.

        

       그전에 앨리스가 황녀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먼저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보다 몇 살이나 어려 보이는 눈앞의 아이는 너무나 확실하게 초등학생 고학년, 혹은 중학생 초반쯤으로 보였다. 이 세상에는 아직 중학교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는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초록색이라는 점, 입고 있는 옷이 어린이용 집사복 코스프레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굉장히 반반하고 귀여워 보이는 얼굴 때문에 원작에서는 레귤러 캐릭터로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원작에서는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당연하다. 내가 구하지 않았다면 아마 얘도 팔려나갔을 애니까. 애초에 얼굴이 반반하지 않았다면 그 고아원에 있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고 그 아이가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람 표정을 감별해내는 데는 앨리스만큼 뛰어난 재능은 없어서, 그게 순전히 나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 ‘실비아 블랙’이었다는 것을 알아보고 놀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내실 귀한 분들이다.”

        

       집사는 그 아이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아, 네.”

        

       순간적으로 돌아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집사의 미간이 아주 살짝 모였다. 아무래도 순간 멍하게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앞에서 아이를 꾸짖을 정도로 분별없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큰 목소리로 사람을 꾸짖을 것 같지도 않았다. 집사 앞에서도 이 꼬마 예비 집사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으니까. 만약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아이는 한 손을 심장 위에 살포시 얹고, 다른 한 손으로 뒷짐을 쥔 채 우리 쪽으로 허리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 일련의 동작이 무척 부드럽게 이어져서 아이가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집사 교육을 받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얘가 우리를 직접 안내해서 다닐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아.

        

       다니엘.

        

       이름을 듣고 나자 기억 저 안쪽 깊은 곳에 묻혀있던 기억이 천천히 떠올랐다. 선명한 초록색 머리를 가진 애가 한 명 있었다. 무척 얌전하고 조용한 애였다. 클레어와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해야 하나. 어리기는 더 어렸지만.

        

       우리 모두 다 어렸었다. 나도, 클레어도 고작 만 5세였고, 그보다 더 어린애들도 있었다. 죄다 고아원의 그 노파가 어디선가 사 온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상품’.

        

       다니엘이 나를 잘 따랐던가?

        

       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때 나의 신경은 거의 다 클레어에게 쏠려 있었다. 다른 애들한테도 잘해주고, 나의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어색하게 지어낸 옛날이야기를 해주곤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를 따르던 애들의 숫자는 많았다. 수십 명 수준은 아니었지만, 한 명 한 명을 죄다 챙겨주기에는 나는 혼자였다.

        

       그래도 기억 속에서 유난히 속 썩이거나 했던 애들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얘도 내 말에 잘 따르는 아이였을 것이다.

        

       “다니엘!”

        

       마치 오랜만에 봤다는 것처럼 클레어가 앞으로 튀어 나가려다가 멈칫,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남작 부인은 조금 엄한 표정으로 클레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클레어를 봤다.

        

       클레어는 양손을 조금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다니엘에게 달려가서 확 끌어안기라도 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열다섯이나 된 여자가 그러면 곤란하지.

        

       십 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조혼은 이 세계에서도 흔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미에 들어간 아이들이 계속 어린아이 취급만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몹시 희미해서, 나이를 속이고 군대에 들어간 17세 청년의 이야기가 마치 영웅의 미담처럼 퍼지기도 하고, 동시에 십 대들이 이런저런 일을 하려고 하면 20세 이상의 ‘진짜 어른’들이 나타나 어린아이들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기도 했다.

        

       인권 헌장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이었으니까. 앞으로 만들어질지 어떨지도 잘 모르고.

        

       “오, 오랜만이야?”

        

       클레어는 들어 올리던 손을 황급히 펼쳐서, 마치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다는 것처럼 열심히 흔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하하…….”

        

       다니엘은 그런 클레어를 보고 곤란하다는 듯 웃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클레어 아가씨도 오랜만입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클레어는 곧 불만스러운 표정을 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 이성 관계의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러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한쪽은 아직 어려 보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성숙해 보였고, 한쪽은 여전히 어린아이 쪽에 더 가까웠으니까.

        

       그보다는—

        

       나는 시선을 천천히 들어서 방 안을 한 번 훑어보았다.

        

       굉장히 깔끔하게 잘 정리된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휑한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으면서도 여기저기 딱딱 맞춰 들어가 있어서 편안했다.

        

       방 안에는 이층침대가 두 개 있었다. 원래는 여러 사람이 쓰는 방인 모양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다른 일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곳에서 지내는 아이는 다니엘 한 명뿐입니다.”

        

       나의 시선을 보고 집사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대답해주었다. 부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였다.

        

       어쩌면 클레어도 이런 곳에서 다니엘과 함께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성별마다 방은 다르게 하긴 했겠지. 그래도, 그레이스가에 입양되기 전에는 마치 언니 동생 같은 사이로 지냈으리라.

        

       포옹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걸까? 클레어 성격을 생각하면 그랬을 것 같기는 했다.

        

       허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의 시선이 다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다니엘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찬찬히 그 얼굴을 살폈다.

        

       어디 다친 곳이 있는지. 불행하거나 슬퍼 보이는지. 내가 왜 그런 것을 찾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혼자 만족하고서 입을 열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내 소개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니엘은 마치 자기가 내 소개라도 들었다는 듯 말했다.

        

       “예,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다음 할 말을 골랐다.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까.

        

       “같은 고아원에서…… 온 다른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그레이스 가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각자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들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

        

       내 얼굴을 기억하냐는 질문을 무심결에 할 뻔하다가 도로 삼켰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처음에는 그냥 나 같은 손님이 갑자기 찾아온 것에 놀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황녀 두 사람이 저택을 방문한다는 말은 이미 영지의 모든 사용인이 다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얼굴에 깃든 이해의 표정은 그런 종류와는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지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서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내일, 일정이 비신다면.”

        

       거기까지 말을 꺼내놓고도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것인가 잠깐 고민하다가,

        

       “당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결국 그렇게 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딱히 긴장감 넘치는 정적은 아니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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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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