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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

         

         

         고등위 마법사를 죽이는 일은 어렵다. 문자 그대로 ‘어렵다.’

         

         학파와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마법사들은 각종 기괴한 수법으로 자신의 목숨에 여벌을 만들어두는 탓이다. 방호 주문이든, 생명 보존 주문이든 상관없이.

         

         그중 가장 죽이기 어려운 학파를 꼽으라면, 이반은 고민 없이 네크로맨서를 떠올릴 것이다.

         

         리치화 시술이라 불리는 주문, 영혼을 쪼개어 성물함에 담아 보존하는 그 주문 탓이 절반 정도의 이유이며,

         

         남은 절반은, 막상 육체를 파괴해도 육체 자체에 끔찍한 저주들을 둘둘 두르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중 최악은 당연하게도 아비디타스였다. 사용하는 주문을 제외해도 본체가 용이었던 탓에 그 역량만으로도 군단을 상대하고, 막상 파괴하면 저주를 뿜어대며, 죽이더라도 10분 내에 부활해 돌아왔으니.

         

         창공을 비행하며 저주를 폭격처럼 쏟아내고, 수만 명의 망자들을 부렸다. 그것을 모두 뚫어내어 본체에 도달하면, 죽지 않는 용을 백병전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터트리는 마력,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부패시키는 저주, 속삭임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파괴하는 신성력.

         

         욕망의 화신. 살아서 천 가지 주문에 통달하고, 천 가지 보물을 모으고, 천 개의 도시를 무너트린 악룡. 모든 사령술과 망자들의 주인.

         

         사룡의 군주, 아비디타스.

         

         이반은 살며 겪었던 가장 끔찍한 전투 중 하나로 언제나 그 시절을 꼽는다. 가장 악랄한 적수이자, 그에게서 가장 많은 것들을 앗아갔던 날이었으니.

         

         그 탓일까. 이반은 이따금 그 날의 꿈을 꾼다. 꿈의 내용은 언제나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 그를 바라보며, 원망하듯 속삭이며.

         

         

         너, 바깥 세상의 이방인아. 어찌 너 홀로 살았느냐.

         

         

         이반은 언제나 대답하지 못했다. 다만 후회 속에서 그날의 전투를 복기할 따름이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조금만 더 강하게 달려갔다면.

         

         그때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방식으로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패배한 기사(棋士)가 대국을 복기하듯이. 한 수 한 수를 되짚으며 한탄하곤 한다. 그랬더라면, 한 사람은 더 살아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하면서.

         

         그러나 세상 모든 후회와 한탄이 으레 그렇듯이, 이반의 복기 또한 홀로 두는 착수에서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후회하더라도 바뀌는 것 따윈 없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너, 바깥 세상의 이방인아.

         

         

         복기를 마친 뒤 바라본 창 밖에선 그런 목소리가 울린다.

         

         어쩌면 떠나간 이들의 망령일 수도, 어쩌면 창에 비친 그의 모습이 속삭이는 탄식일지도 모를 말들이.

         

         전쟁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

         

         

         그러나 이제 용은 죽었고, 그 시체를 파먹는 구더기들이 용의 행세를 하고 있다.

         

         가당치 않게도, 그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복수의 권리는 언제나 저들에게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그만의 것이어야 했다. 저들은 감히 그 입에 복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다음.”

         “어, 어어… 이거 맞죠?”

         “맞다.”

         

         

        -프슉.

         

         

         이반은 팔뚝에 바늘을 꽂고 실린더를 박살냈다. 프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약물이 그의 혈관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알싸한 감각이 팔뚝부터 시작되어 온몸을 좀먹는 것처럼 갉았다. 극약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극독이므로, 강화된 신체마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와—!! 모습을 드러내라, 이바아안!!]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공장지대 전체에 휘몰아쳤다. 쥐와 박쥐 따위가 건물을 오고가며 그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반은 루시아가 건네는 약물을 차례로 팔뚝에 꽂아 넣으며 천천히 마력을 조율했다.

         

         면역증강제, 항마력강화제, 신경독소중화제.

         

         간 기능과 마력 기관, 중추 신경에 지대한 타격을 주는 독약에 가까운 약물들이다. 하지만 괜찮다. 초인의 육체는 감사하게도 이 모든 약물을 견뎌낼 힘이 있으니.

         

         가장 끔찍한 수술을 집도할 때 연금술사들조차 최대한 희석해 투여하는 약물을 원액 그대로 쏟아 부으며, 이반은 실시간으로 파괴되는 내장기관을 느끼고 있었다.

         

         코에서 쇠냄새가 진동을 한다. 핏물이 저도 모르게 울컥 솟아 목을 적시고 내려갔다.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상대가 아비디타스의 진신, 그 능력의 일푼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그는 후방 지원 없이 그의 팀이 해냈던 모든 일을 홀로 해야 하므로.

         

         저들 또한 몇 년간 오직 복수만을 위해 실력을 가다듬으며, 죽은 아비디타스의 유산을 도굴해 제 살점을 불려오지 않았겠는가.

         

         

         이반은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그의 능력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 전투 수행 능력이란 것은 일종의 도구와 같은 것이므로, 훌륭한 요원이라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의 카달로그 스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이반은 필요한 일을 했다. 묵묵히 자신의 몸에 독소를 퍼부었다. 아비디타스는 결코 홀로 상대할 수 없으며, 그의 제자들 또한 이반 못지 않은 준비를 하고 이 자리에 와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이반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결코, 결코 도망칠 생각이 없었으므로.

         

         오직 죽음만이 오늘의 결말로 남으리라. 그의 것이든, 놈들의 것이든.

         

         

        -후우….

         

         

         마지막 조율이 끝났다. 이반은 눈을 감고 달뜬 체열을 가다듬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루시아.”

         “네, 사형….”

         “엔리케에게 입전. 3시간 후 3번 집결지에서 구조 요청.”

         “네…? 네?”

         “너는 이제 3번 집결지까지 전력을 다해 뛰어라. 네 역할은 이제 끝났다.”

         “하, 하지만 사형!”

         “보는 것으로 얻을 게 없는 싸움이다.”

         

         

         이반은 당황한 루시아에게 차갑게 대답했다.

         

         애초에 이번 작전에서 루시아의 의의는 두 가지였다. 엔리케와의 실시간 정보 교환, 그리고 루시아에게 실전을 가르치는 과정.

         

         작전의 최종장에 도달한 이 시점에서 엔리케와의 소통은 무의미하다. 죽거나, 죽이거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른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루시아에게 이 전투는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 꼬마는 용사 파티의 일원이 될 예정이므로, 피해를 감수하며 홀로 싸우는 행위를 배울 필요 따윈 없다.

         

         이 꼬마에겐 자신의 후방을 지원해줄 동료가 있다. 그와는 달리.

         

         그러니 이 전투는 교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시대는 그의 시대에서 끝나야 했다. 용사조차도 홀로 마왕을 상대하진 않았다.

         

         용사가 되지 못한, 용사의 일원이 되지 못한 이들의. 평범한 이들의 싸움이다. 일개 범인들의 분투다. 초월한 영웅들이 아닌, 사람의 싸움이다.

         

         이반은 눈을 뜨며 일어섰다. 그의 시선을 한참동안 마주본 루시아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말을 삼켰다.

         

         

         “가라.”

         “남자… 들이란…!!”

         

         

         루시아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 다음에 학교에서요. 나머지까지 가르쳐 주는 거에요. 저는, 저는 아직 배우고 싶으니까. 혼자 싸우는 법은 필요 없다고 해도, ‘둘’이 싸우는 법은 꼭 배우고 싶으니까. 아시겠어요?”

         

         

         이반이 대답하지 않자 루시아는 창틀을 밟고 그를 내려보았다.

         

         

         “짐이 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니까요. 앞으로 같은 상황에서 당신 ‘혼자’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훌륭한 요원이 되기 위해선 아직 네 수준으로는 모자라다.”

         “하하…. 기준이 너무 빡빡하잖아.”

         

         

         루시아는 부드럽게 투덜거리며 창밖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흡혈귀 특유의 이동이다. 이반은 그녀가 남긴 긴 궤적을 눈으로 훑었다.

         

         그 사이에 남긴 물기는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에게 더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반은 마지막으로 무장을 챙긴 뒤, 정 반대편 창가로 향했다. 공장지대의 중심지로 향하는 저격 포인트로. 도끼를 들고, 탄환을 헤아리고, 장갑판을 꽉 조이고.

         

         체내에 흐르는 약효의 유효 기한을 상기하며.

         

         탁,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이반의 몸이 창가에서 사라졌다.

         

         

        *

         

         

        -탁.

         

         

         공터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내려 앉았다.

         

         시끄럽게 지저귀던 독충들도, 분노를 토해내던 사령술사들도, 긴장감에 중얼거리던 드워프들도. 이 자리의 모두에게서 소란이 사위었다.

         

         기름진 고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반 페트로비치—!! 네가 여전히 죽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침묵을 깨고 환희가 울려 퍼졌다. 겁에 질린 드워프들 너머로, 거대한 시체 용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반은 그림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죽던 날 당시의 아비디타스를 굉장히 유사하게 복제한 물건이었다.

         

         용의 유해를 건져내지 못한 탓인지, 저 괴물의 뼈대는 수많은 인간의 유골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여 얽어놓은 흉물이다.

         

         그러나 그 위압감만큼은 비슷한 수준이라 하겠다. 수많은 증오, 원념, 망집과 저주가 뒤얽혀 혈관처럼 맥박치고 있었다.

         

         

         [보아라, 네가 이루지 못한 것을 보아라. 너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죽음을 유예 받았을 따름이리라. 지하 깊은 곳으로 돌아왔구나, 너의 죽음을 향해 돌아왔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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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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